많은 사람들은 현재 강세를 보이고 있는 트로트 열풍에 대해 트로트의 부활로 봅니다.
그러나 대중음악평론가 김영대 님은 트로트 열풍에 대해 트로트의 부활이 아니라 변신이라고 평가합니다.
김영대 님은 최근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은 분입니다.
그는 트로트의 부활로 보는 견해에 대해 트로트 역사를 모른 채 드러난 모습만 본 탓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트로트는 한 번도 한국 대중음악에서 비주류 장르가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 의식하지 못했을 뿐 트로트는 늘 주류에서 맹위를 떨쳤다.
단지 '노회한 음악'이나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었을 뿐이다 " 라고 지적합니다.
김영대 님은 장르가 아닌 정서로서의 트로트는 대중 곁에서 사라지거나 영향력을 내려놓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리가 아는 트로트가 단일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아 실체를 몰랐을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
그는 "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트라는 게 '단장의 미아리고개'나 '대전블루스', '돌아가는 삼각지' 등이었는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최근 음악산업에서 트로트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부상했다.
트로트를 우리 정서라고 생각하는 한 트로트는 형태를 바꿔가면서 계속 유지될 것이다." 라고 확신합니다.
김영대 님은 지금의 트로트 열풍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트로트가 다른 장르의 음악과 어떤 관계로 섞이며 변화돼 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대중가요에 흐르는 '뽕짝유전자'를 강조합니다.
다음은 김영대 님이 시대별 트로트의 진화에 대한 평가입니다.
1. 해방 부터 1960년대 까지
해방 후 1960년대까지 널리 유행했던 초기 대중가요와 미8군시대 이후 상륙한
미국풍 록·소울음악의 진화 과정에서도 '뽕기'는 변함없이 발견됐다.
트로트의 선율과 비트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2. 197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로큰롤 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스타 남진-나훈아의 대격돌이 있었다.
나훈아·남진 이후에는 현대적인 사운드로 변화했다.
포크와 발라드 열풍이 불어 닥쳤다.
'음악' 하면 '팝'으로 통하던 음악다방 시절이었지만 그때도 음악에 녹아든 '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대중은 여전히 트로트풍 대중가요를 선호했다.
3. 1980년대
가왕 조용필의 음악도 절반은 트로트나 뽕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쌍쌍파티' 같은 고속도로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주현미와 현철은 1980년대 중반 '고속도로음악'이라 불린 '쌍쌍파티'류의 뽕짝을
주류 전통가요 위치로 올려놓으며 모던 트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4. 1990년대
트로트는 제도권화 돼 전성기를 이루었다.
1990년대 초 청소년들은 서태지와 태진아의 음악 사이에서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팝에 익숙한 그들의 귀에는 이미 '뽕짝유전자'가 깊이 새겨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서태지의 '랩혁명' 이후 트로트가 몰락했다고 말하지만 이것도 겉모습의 변화일 뿐이다.
1990년대 중반의 댄스가요, 이제는 '토토가'로 더 기억되는 나이트클럽용
댄스음악 대부분은 "테크노"나 "하우스"라고 우겼지만 실체는 뽕짝에 가까웠다.
코요테·벅·소찬휘·터보뿐 아니라 김건모도 뽕짝 멜로디를 차용한 댄스음악을 앞세워 인기가요 차트를 점령했다.
테크노세대를 타겟으로 업그레이드된 한국형 일렉트로닉뽕짝'이었다.
5. 2000년대
2000년대 초반을 점령한 한국형 소몰이창법의 R&B음악이나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마이너발라드음악도 '뽕'의 정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중은 R&B 특유의 그루브나 흑인음악의 스케일, 혹은 재지(jazzy)한 화성을 즐긴 것이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뽕짝의 호소력에 취한 것이다.
트로트라고 말하긴 어려울지언정 정서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즈음 트로트는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시대나 로컬리티를 기반으로 만든 정통 트로트와는 달리
가사를 대중적으로 쉽게 쓰고 멜로디도 재치 있고 발랄하게 표현한 곡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수들의 표정과 몸짓도 다채로워졌다. 장윤정과 홍진영, ·박현빈 그리고 1980년대 트로트 붐을 주도한
김연자의 화려한 귀환까지 트로트는 시대를 넘나들며 막강함을 과시했다.
6. 트로트 열풍 직전의 상태
트로트는 90년대 초 이후 주목받지 못하고 '여전히 촌스럽고 왜색이 짙은 음악'이라는 이미지에 지배당했다.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에서 멋지게 꾸미고 풋풋하기까지 한 아이돌 공연과 비교조차 되지 못했다.
K팝이 부상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꼈다.
7. 트로트 팬덤의 공고화
'미스트롯'에서 시작된 트로트 열풍은 트로트의 부활이 아니다.
케이팝 아이돌과 경연 예능 전성시대에 맞게 탈바꿈한 트로트 버전업이다.
정확히 트로트라 부를 수 없는 여러 장르의 노래를 '꺾어' 부르는 것만으로 '트로트'라 명명되고 있다.
여기에 참가자들은 TV를 통해 스타로 만들어졌고 트로트스타를 지지하는 대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들은 아이돌 팬덤의 행위나 방식을 모방해 새로운 형태의 팬 액티비티('팬질')를 만들어냈고,
트로트스타를 그들만의 아이돌로 숭배한다.
트로트 팬들은 이 모든 것을 그들만의 독특한 팬덤으로 완전히 씻어냈다.
트로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취향의 공동체가 구성됐고, 그 안에서 희열과 만족을 느끼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트로트는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오래전 로큰롤이 록이 되고, 테크노가 EDM으로 이름이 바뀌었듯이
트로트 역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으로 마치 새로운 장르인 것처럼 팬덤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트로트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활한 것이 아니다.
'트로트DNA'가 새로운 시대에 맞게 포맷하고 대중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는 기회를 얻으면서 모멘텀을 얻었을 뿐이다.
트로트 열풍은 돌아온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이다.
시대마다 형태를 달리해 우리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