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은 말을 복잡하게 하고 거짓말쟁이는 구차한 누더기의 말을 하며 겁쟁이는 변명과 합리화를 많이 합니다. 반면에 정직하고 올바른 자는 말을 단순하고 정확하게 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흔히들 청교도 이야기를 할 때 청교도의 설교는 단순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국내외의 청교도에 대한 책들도 설교의 단순성 이야기는 거의 꼭 합니다. 구분선 아래에서 조엘 비키 목사님의 설교의 단순성 설명을 들어보면 청교도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될 것 같습니다.
설교의 단순성
설교 방식의 측면에서, 청교도들은 단순한 설교를 선호했다. 다만 이런 단순성은 반(反)지성주의와는 달랐다. 설교의 단순성은 성경의 메시지를 알기 쉽고 분명한 방식으로 전달하되, 먼저는 회중의 지성에, 그러고는 그들의 마음에 와 닿도록 전하는 것을 뜻했다. 마침내는 그들의 외적인 삶에 영향을 끼쳐, 회중이 그 가르침을 행실의 지침으로 삼게 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헨리 스미스는 이렇게 언급한다. "단순한 설교는 무식하거나 혼란스러운 설교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꾸밈없고 명쾌한[분명한] 설교다. 그러므로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이라도, 마치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대답할 때처럼 그 내용을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한 위대한 청교도 선교사 존 엘리엇(John Eliot, 1604-1690)에 대한 추모의 글에서, 코턴 매더는 이렇게 언급했다. "그의 설교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그리하여 이런 본문과 주제들에 대한 그의 강설 속에서는, 어린양이 뛰어놀 뿐 아니라 코끼리가 헤엄을 치는 일도 가능했다(내용이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심오한 깊이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는 의미-옮긴이)." 또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 1639-1723)는 아버지 리처드 매더의 설교에 관해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의 설교방식은 단순했다. 그분의 목표는 회중의 머리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화살이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 깊이 꽂히도록 하는 데 있었다."
청교도들이 전한 설교의 첫 부분은 주해와 해설이었으며, 두 번째 부분은 교리와 가르침,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적용의 성격을 띠었다. 첫째로 청교도들의 설교는 성경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들의 설교에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설이 담겨 있었는데, 이에 관해, 청교도 에드워드 더링(Edward Dering, 1540-1576년경)은 이렇게 언급한다. "신실한 목회자는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자다." 오웬도 이 점에 동의한다. "목회자의 으뜸가는 의무는 말씀을 부지런히 전하여 양 떼를 먹이는 데 있다. 밀러 맥클러 (Millar Maclure)는 이렇게 언급한다. "청교도들의 경우, 설교는 그저 성경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설교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설교에 성경 본문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설교 자체가 그 본문 안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 간단히 말해, 그들의 설교를 듣는 것은 곧 성경 안에 거하는 것과 같았다."
둘째, 청교도들은 성경 해설을 통해 뚜렷하고 명확한 교리들을 발전시켰다. 퍼킨스는 교리를 “영원히 복되고 유익하게 사는 법에 관한 학문"으로 불렀으며, 에임스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관한 교리 또는 가르침"에 관해 언급했다.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B. Ferguson)은 청교도들을 두고 이렇게 언급한다. "청교도 목회자들에게 조직신학은 마치 의사가 지닌 해부학 지식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한 목회자가 죄와 사망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영적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며 치료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신학의 체계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패커는 당시 청교도들의 확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누군가 ‘교리를 꼭 설교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청교도들은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아니, 그것 말고 설교할 다른 내용이 있습니까?" 위선자들은 교리 설교를 따분히 여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한 양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교리 설교뿐이다. 설교자의 임무는 불신자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내용을 선포하는 데 있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든 교리의 초점이 되심을 알고 있었다." 이에 관해. 토머스 애덤스(Thomas Adams, 1583-1652)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성경 전체의 요점이 되신다. 그분은 성경에서 예언되고 상징과 예표를 통해 표현되며, 널리 드러나는 동시에 예증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모든 장, 거의 모든 절에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성경은 아기 예수를 감싼 강보와 같다." 또 아이작 앰브로즈(Isaac Ambrose, 1604-1664)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성경 전체의 내용이자 정수, 그 영혼과 목적이 되시는 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로버트 볼턴(Robert Bolton, 1572-1631)도 이 점에 동의한다. "우리는 매 주일 말씀을 전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자에게 아낌없이 제시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이처럼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들을 전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교리들도 그분께 연관 지어 설교하게 되었다. 그런 교리들 가운데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교리와 함께 죄와 성화, 자기부인에 관한 교리들이 있다."
셋째, 교리적인 가르침은 "적용"으로 이어졌다. 이 적용 부분은 종종 본문의 ‘쓰임새'(uses)로 불렸으며, 목회자가 다양한 청중을 상대로 성경을 적용함에 따라 그 분량이 늘어날 수 있었다. 이 부분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중의 마음속에 생생히 전달하거나, 또는 백스터의 표현처럼 "그들의 지성에 진리를 밀어 넣고,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심어 주는 데 있었다.
이런 적용은 반드시 올바른 대상을 향해 제시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회중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교도 설교의 특징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각기 “구별되는 방식으로” 진리를 적용하는 데 있었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은혜의 표지들을 식별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으며, 이는 곧 교회를 세상과, 참된 신자들을 그저 이름뿐인 신자들과 구원의 신앙을 일시적인 신앙과 구분 지어 주는 표지들이었다. 여러 청교도들은 참된 신자들을 거짓 신자들과 구별 짓기 위해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런 작품으로는 토머스 셰퍼드 Thomas Shepard, 1605-1649의 『열 처녀』(The Ten Virgins)와 매튜 미드 Matthew Mead.1629-1699의 『유사 그리스도인』(The Almost Christian Discovered),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Religious Affections) 등이 있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회중을 변화시키는 데 목표를 두었다. 제임스 더럼(James Durham, 1622-1658년경)에 따르면, "설교의 생명“은 바로 적용에 있었다. 그러므로 설교는 설득이나 증언, 간청 또는 탄원, 당부 또는 훈계로 불린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체험적으로 선포될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각 개인과 나라들을 변화시키신다고 가르쳤다. 캡틴 존 스필먼(Captain John Spilman)의 고백은 체험적인 청교도 설교에 담긴 변혁의 능력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된다.
과거에 육신적인 상태에 있을 때, 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특히 말씀을 장시간에 걸쳐 전하는 자들을 경멸했었다. 이는 오래 설교하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어떤 이의 설교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언약을 다룬 히브리서 8:8, 10에 관한 설교였다. 당시 그 설교는 내 삶에 생생히 적용되었으며, 내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다. |
조엘 비키, 『설교에 관하여』, pp.218~222.
첫댓글 조엘 R. 비키
퓨리턴 리폼드 신학교의 총장이자 조직신학과 설교학을 가르치며,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에 있는 헤리티지 화란 개혁주의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리포메이션 헤리티지 출판사와 인헤리턴스 출판사를 통해 개혁주의와 청교도에 관련한 도서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또한 저술 활동을 통해 개혁주의와 청교도의 신앙 전통이 현대에도 이어지도록 온 열정을 바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언약 자손으로 양육하라』(성서유니온선교회),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출처: 교보문고
우리 말로 치면 청교도 개혁 신학교의 총장이니 청교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겠습니다.
추천사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
‘설교’라는 한마디에 다시금 심장이 뛰기를 원한다면, 부디 이 책을 들기 바란다. 한국교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설교를 깊이 사모하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줄곧 행해지는 설교 문화는 안타깝게도 본질을 잃어 가고 있다. 설교의 현장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뜨거운 현장이다. 저자가 말하듯, 지식과 정보 전달로만 이루어진 설교는 결코 영혼을 일깨울 수 없다. 설교의 목적은 길 잃은 회중을 영광의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있다. 이 책 『설교에 관하여』는 종교개혁과 청교도 전통이라는 교회사의 한 강줄기를 따라 힘차게 헤엄쳤던 탁월한 하나님의 설교자들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특히 저자는 설교에 관한 이론적 탐구와 목회적 실천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설교’라는 사역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에게 명쾌하게 전달한다. 만일 당신이 강단에 서는 사역자가 되기 원한다면, 먼저 책상 앞에 앉아 이 책을 정독하기를 바란다.
이찬수 목사님이 강추를 하셨네요. 공감합니다.
우병훈 (고신대학교 교의학 교수)
탁월한 청교도 토머스 굿윈은 “하나님께는 세상에 오직 한 아드님이 있었는데 그를 목사로 삼으셨다”고 말했다. 이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청교도들은 설교직을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은 설교의 영광을 보여주기보다는 시류에 영합하고 인간의 타락한 심성에 편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세태에 마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듯한 설교학 서적이 나왔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조엘 비키 목사가 자신의 신학과 삶을 모두 녹여내어 쓴 설교학 교과서이며, 더 나아가 교회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 될 만한 책이다. 저자는 16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진정한 개혁주의 설교자들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줌으로써 체험적 설교의 다양한 면모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설교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정말이지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뛰는 이 책은 설교자에 의한, 설교자를 위한, 설교자의 책이다. 이제 설교학은 이 책 한 권이면 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류에 영합한다는 표현에 매우 공감합니다. 청교도 같은 단순한 설교를 갈망합니다.
@노베 네, 공감합니다.
마이클 호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설교,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동시에 길르앗의 향유를 발라 주는 설교다. 이 책에서는 그런 설교의 놀라운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조엘 비키에게 들었던 모든 설교를 감사히 여긴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이 그의 글에서 교리와 체험, 우리의 삶 사이의 신선한 연결고리를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변증학 석좌교수]
싱클레어 퍼거슨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조엘 비키는 이 책을 쓸 특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신학자이자 설교자로서, 그만큼 폭넓고 깊이 있는 경험을 쌓은 사람은 드물다. 독자들은 노련한 안내자인 저자와 동행하면서, 종교개혁 이후 가장 인상적인 설교자들을 함께 살펴보는 놀라운 여정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마이클 호튼의 추천도 있었군요. 호튼 교수의 글도 더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시골 회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설교의 단순성 5가지’
... 그의 설교에는 단순성 5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설교의 주제를 분명하게 인지하라는 것, 둘째는 쉬운 말을 사용하라는 것, 셋째는 간결한 문체를 유지하는 것, 넷째는 직접적인 어투를 사용하라는 것, 다섯째는 경험담과 예화들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7268
성공회 소속이었지만 청교도 운동을 한 분으로 보입니다. 훌륭한 분 같습니다.
좋은 설교의 본보기를 보여 주었네요. 존경스럽습니다.
가톨릭의 신부나 주교의 설교에 비해 청교도의 설교는 얼마나 단순 명료하고 정확합니까?
청교도의 설교가 주해와 해설- 교리와 가르침- 적용 순으로 전하는 형태가 정착되어 개신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 같습니다.
요즘의 설교는 성경본문을 장식품으로 여기고, 설교자의 생각, 사심을 더 메인에 두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교회가 개혁되려면 강단의 설교부터 달라져야겠지요. 전하고 가르치는 내용이 바뀌면 교회 전체가 움직여지니까요.
핵심을 잘 짚어 주셔서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단순한 설교, 정직한 설교, 성경을 담백하게 알려주는 그런 설교가 그리워지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네, 저도 좋은 설교, 단순한 설교를 그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