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네밥상>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건물, 세련된 인테리어, 거기다 깔끔한 밥상이다. 투박한 시골인심보다 상큼한 도시 이미지가 가득한데, 맛만은 묵은 시골맛이다. 된장찌개에 쌈장맛이 그만이다. 깔끔하게 담긴 찬들의 양을 얕봤다간 큰일난다. 배가 너무 불러 함포고복이다.
1. 식당얼개
상호 : 송가네밥상
주소 :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풍로 1862
전화 : 061) 395-9001
주요음식 : 쌈밥, 버섯전골, 닭백숙
2. 먹은 음식 : 돌솥밥쌈밥정식 13,000원
먹은 날 : 2020.8.12.저녁
3. 맛보기
전채요리로 야채샐러드와 전이 나오는데, 어? 여기 백양사 입구 맞아? 장성 북하면 맞아? 아무리 식당 모양새가 화려해도 동네 분위기답게 투박하고 뚝뚝하고, 뭐, 그런 품새라야 기대와 맞을 텐데, 첫술부터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한다. 도시, 그것도 도심 다운타운분위기다. 그렇게 기대를 배반당해 행복하다.
유자청을 소스 삼아 세련된 움푹 도기에 담긴 샐러드, 치커리에 적채에 양상추에 방울도마토에 시리얼이 폼난다. 마요네즈 범벅이 아니다.
전은 참말 맛나다. 재료는 그야말로 허접하다. 깻잎에 부추에 당근과 양파 몇 가닥이지만 간이 맞고 적당히 노릇노릇 지졌는데, 부치자마자 상에 오른다. 갓 부처낸 전을 만나면 외식이 주는 행복감을 가눌길 없다.
집에서는 누구도 맛있는 전을 먹지 못한다. 주부는 전을 다 부쳐내느라, 식탁에 대기한 가족들은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느라, 팬에서 접시로 갓 옮겨담은 전에 손대지 못한다. 엄마가 일 다하고, 찬 준비가 끝나고 앉으면 어느새 전은 접시에 앉아서 제몸에서 뿜어낸 열기를 습기로 바꾸어 싸안고 앉아 있다.
그 사이 고슬고슬한 밀전병의 맛은 누글누글한 묵은 전으로 얼굴도 맛도 바꾸고 앉아 있다. 아까, 10분 전에, 5분 전에 먹었더라면, 아쉬워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 식탁 준비의 구조적 모순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니까.
식당에 오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완전히 분리되는 구조, 그 구조에서만 제대로 제맛 볼 수 있는 음식이 전이다. 재료가 별 게 아니어도 적당히 노릇노릇하고 온도와 습도를 머금었으면 그것만으로도 높은 맛을 내는 전을 바로 여기서 만난다.
*한정식같은 찬이 깔린다. 손님 노릇은 제대로 온 거 같다. 게다가 찬마다 다 제몫의 맛을 낸다. 이래저래 영양도 군형이 맞는 듯하다. 익은 채소, 생 채소, 계란, 된장, 홍어, 우렁, 버섯, 도토리묵, 젓갈, 돼지고기 등등 육해공군 다 동원된 식재료 전시장같은 화려한 밥상은 영양 완전성도 지향한다.
여기다 돌솥밥으로 밥알의 맛이 찬의 맛을 최고로 높여준다. 거기다 가격은 이 밥상에 맞는 가격이냐? 싶을 만치 저렴하다. 소위 가성비가 이만큼 높기도 어려울 터이다.
가운데 된장 쌈장에 젓갈이 나왔다. 갈치속젓, 목포 젓갈맛만은 못하나 쌈밥에 변화를 주는 소스맛으로는 그만이다. 참나물, 목이나물, 고추볶음이다.
계란폭탄이다. 숟갈로 떠 먹고 밑바닥을 보니 그리 많이 눓지도 않았다. 간도 맞고 식감도 그만이다. 찜의 속살이 뚝빼기찜이 아니라 밥 위에 사발을 얹어 찐, 부드러운 맛이다. 조리법을 배우고 싶다. 맛과 식감을 기억하며 숙제로 안고 간다.
홍어까지는 아닌 거 같고, 가오리 정도 되는 거 같다. 삭은 맛은 전혀 없다. 깔끔한 맛에 오돌뼈 식감이 좋다. 간도 맞다.
같은 반찬 같아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하나는 참나물초무침에 도토리묵무침, 다른 하나는 오이우렁초무침에 깻잎초무침이다. 절기에 따라 제철음식으로 달라지는 찬들이다.
상큼한 맛에 아삭거리는 신선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숨이 죽어버린 채소는 시간이 지나면 물을 내며 힘을 잃고 맛도 잃는다. 맛을 제대로 내는 음식은 때를 놓치지 말고 상에 올리고 먹어야 한다. 제때, 적시에 먹게 되어 제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춘향가 기물치레처럼 사설치레에 집중하다 주인공을 홀대했다. 쌈밥의 주인공 돼지고기볶음이다. 비게에 껍데기에 살코기가 적당한 비율로 들어 있어 맛도 영양도 질리지 않게 균형을 갖췄다. 마지막 한 점까지 맛있게 비울 수 있다. 너무 맵지도 달지도 않아, 매운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즐길 수 있다.
된장찌개, 얼핏 듬성듬성 들어간 건더기들, 국물 맛은 일품이다. 건더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된장 맛을 제대로 낸다. 프로 솜씨다. 상차림 보고 모양만 내는 얍삽한 상이라고 지레짐작하면 이 밥상 즐길 자격이 없다.
오늘의 비장의 카드다. 요것이 무엇인가, 했는데 내 지식의 범주 안에서는 담이 안 나왔다. 공손하게 물어보니 돈나물이란다. 세상에, 돈나물조림이다. 돈나물은 보통 초로 생무침을 하는데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조림을 만들었다. 이게 말이 되는 찬이냐? 근데 말이 된다. 달근하고 쫀득한 맛을 낸다. 식재료의 확장과 조리법의 확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전남이다. 전남은 어디나 맛있다. 전북은 전주에 집중된 듯한 맛이 전남에서는 식재료의 다양성과 맛의 상향 균질성에 편차가 더 적다. 이러니 한국음식이 일 낸다. 이보다 맛있기, 이보다 더 즐기기 하기 어려운 게 한국음식이다. 요새는 프랑스 음식이 와서 울고 간다. 남불에 가서 프랑스 음식 망하는 것을 보고 왔다.
한국음식이 되는 집인 것은 이렇게 사소한 데서도 확인이 된다. 한국음식, 전남음식 대단하다. 아니 이 집 음식 대단하다.
1인용으로 따로따로 돌솥밥을 지어 낸다. 탱탱하고도 윤기 흐르는 쌀밥, 그 밥에 갖가지 찬이다.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조선조 왕은 특히 자연재해가 있을 때면 대부분 감선을 했다. 반찬 가짓수를 줄여 여러날 근신을 했다. 아래 상궁들이 임금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감선을 했다.
요새같이 기록적인 홍수에는 거의 99% 감선을 했을 게다. 임금도 찬을 줄여야 되는 이런 재해 속에서 단돈 13,000원에 이처럼 끝간 데 없는 사치를 누린다. 요새는 밥상으로만 보면 누구나 조선조 임금 못지 않다. 시대를 잘 타고난 복, 평소에는 모르고 살다, 오늘 새삼스럽게 스스로에게 자각시킨다.
무슨 후식까지 이렇게 사치스러운지. 참외 한쪽만 줘도 이미 먹은 게 있어 황송할 텐데, 메론이 모양지게 올라왔다. 거기다 맛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게 최고의 과일맛이다. 감동이 거듭되니 둔해진다.
깔끔함을 넘어 단아한 맛을 내는 실내장식. 미슈랭이 왔다가는 단번에 등재되겠다. 인테리어를 많이 봐서 화장실 가이드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는 미슐랭 평가사라면 물론 최고 점수를 줄 것 같다.
4. 먹은 후
장성호가 지척이다. 백양사를 봤다면 4,5킬로 지점에 있는 장성호를 둘러보자. 1976년에 왼성된 인공저수지다. 그때는 대역사로 기억되는데 이제는 자연호수처럼 산도 사람도 품고 제 자리를 잡았다. 광활한 호숫가로 나무 데크길을 만들어 산책을 도와준다.
이번 홍수피해는 없는 거 같다. 물리 찰랑찰랑 수면을 높여줘, 토정을 앞지르는 소금장수의 막대기 아래 놓인 바닷물같다.
일부 구간은 걷고 일부구간은 드라이브를 하면 환상적인 길이다. 넓은 호수와 조용한 시골길, 앝으막한 산길을 죄다 맛볼 수 있다. 장성호는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 상류 쪽에 있는 저수지다. 황룡이 장성을 지키는 누런 용이 살았다고 하여 황룡강이다. 그 용이 누런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고 하여 황룡강이다. 장성은 그 노란색을 도시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삼아 옐로우시티를 만들고 있다.
호숫가에서는 임권택시네마테크도 만난다. 임권택, 소재주의에 머물고 만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그 감독을 여기서 만난다. <서편제>, 예술을 위한 신체 훼손은 우리 정서가 아닌 서양의 정서다. <눈 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이나, 유럽 중세 성가대의 카스트라토 등, 기시감 드는 인물 유형이 생각난다.
여성을 성가대에 세울 수 없어 소년을 거세하여 목소리를 보존하게 만들어 여성의 높은 음역을 소화해냈던 카스트라토는 거세한 남성가수다. 우리는 <파리넬리>라는 영화를 통해 유명한 카스트라토 가수를 만난 적이 있다. 인간 다음이 예술이지, 예술 다음이 인간이 아니라는 상식을 거스르는 서양의 정서가 틈입한 작품이 서편제다. 구조적으로도 이청준의 원작을 변형시켜 서사적 균형도 잃고 있다.
그래도 우선적으로 기억하자. 한국 영화사에는 높은 공적을 남긴 작품임을. 최초로 100만 관객을 넘겼고, 최초로 해외에 제대로 수출된 작품이다. 한국 관객을 한국 영화로 회귀시켰고, 세계 여러 나라에 한국 영화를 알렸다. 또한 100편이 넘는 작품을 제작하여 한국 영화 중흥에 기여하였다. 그것을 기억하자고 만든 기념물이라면 불만 없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시 풍미, 송가네의 음식이 맛으로 우리 정서와 조화를 이뤄냈듯이,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임권택도 장성 출신 예술인으로 우리 영화사에 세운 높은 공적으로 엘로우 시티? 다소 낯선 상징을 토착화시킬 인물로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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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가을 전라남북과 경상남도 지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계획인데, 장성을 빠트려선 안되겠습니다. 음식, 문화 유적, 풍광을 모두 갖춘 빼어난 지방인 것 같습니다. 연경 선생의 사설만 듣는데도 입에 침이 고이고, 눈이 번쩍 뜨이고, 귀에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권리풍광이 본지풍광을 넘어설 수 있다는 실례를 여기서 확인합니다. 연경 선생이 쓰는 문장의 마력입니다.
장성, 볼것도 많고 음식도 좋습니다. 백양사와 필암서원만으로도 와봐야 하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직접 와 보시면 역시 본지풍광이지, 할 것입니다. 어찌 졸필을 본지풍광에 대겠습니까. 문장에 대한 찬사, 과분하지만 더 잘 쓰라는 고무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