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6
유럽 수소경제가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용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글의 요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유럽의 수소전략은 탄소중립(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사실상 추가배출 제로를 만드는 것)을 위한 에너지 시스템 재편이다. 즉 생산은 늘고 있지만 적기(適期) 사용이 어려운 태양광·풍력 발전 에너지로 수소를 대량 생산해 이를 에너지망에 연결함으로써 유럽의 산업을 유지·성장시키 위한 것이다. 방점은 유럽의 주력 산업을 지키는 것에 찍혀 있다.
2. 자동차 분야에서 수소의 활용은 탄소중립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그 수단이 꼭 수소연료전지차일 필요는 없다.
3. 자동차에 수소를 활용하는 방법은 수소연료전지차 이외에도 합성액체연료, 수소엔진 등 대안이 많으며 오히려 이 쪽이 유럽의 산업 보호에 적합할 수 있다.
4.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은 장기적 관점에서 대형트럭 등 상용차 쪽에선 전망이 있지만, 승용차 쪽에서는 사실상 전기차에 밀려 대량 보급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상용차에서라도 수소연료전지차의 유럽 보급을 원한다면, 유럽이 세운 수소전략을 면밀히 파악하고 파트너와 협력해 유럽에 경제적 실리를 챙겨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수소연료전지차에서 1등이며 이를 선도해 세계시장을 제패하겠다는 것을 강조하면, 유럽의 수소경제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
5. 국내 수소 관련 기업도 유럽의 자금투입이 집중되는 태양광·풍력 에너지를 활용한 수전해(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 생산), 그렇게 만들어진 그린수소(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를 에너지망에 연결하는 분야에서 유럽의 파트너를 찾고 그들과 협력해 수출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유럽위원회가 지난 7월 8일 ‘유럽 기후중립(탄소중립)을 위한 수소 전략(Hydrogen strategy for a climate-neutral Europe)’을 발표하고 이를 위해 2030년까지 5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요. 발표 이후 국내에선 수소연료전지차(FCEV·Fuel Cell Electric Vehicle) 보급의 전기(轉機)가 마련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밀고 있고, 현대자동차가 이미 십수년간 기술을 개발·축적해 현재 생산·판매 세계 1위인 그 수소연료전지차 말입니다.
▲ 유럽에선 수소와 CO2를 합성한 액체연료를 자동차에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그림은 세계최대 자동차부품회사인 독일 보쉬가 합성액체연료를 홍보하는 내용. / 보쉬
◇ 유럽 수소 전략은 자국 산업 위한 것... 자동차에 수소 사용하는 방향은 미정
그런데 정말일까요? 유럽이 2030년까지 수소 관련에 500조원을 쏟아부을 예정이고, 현재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1위가 한국(올해 1~10월 누적 5000대로 국가별 수소차 판매에서 압도적 1위)이니, 유럽에서 한국산 수소연료전지차가 보급되는건 당연한 것일까요? 저 역시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물론 차량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명제로 볼 때 가야 할 방향이 맞고,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알기 위해선 지난 7월 발표된 유럽의 수소 전략이 정확히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주 내용은 2030년까지 수소 생성과 수전해(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것)장치에 최대 420억유로(55조3000억원), 이 장치와 태양광·풍력 발전의 연결망을 구축하는데 3400억유로(448조8000억원)를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수소연료전지차는요? 내용에 없습니다. 전략의 핵심은 유럽에서 태양광·풍력 발전 때 남는, 혹은 적기(適期) 활용이 어려운 전기에너지로 담수(淡水)를 전기분해해 수소로 바꾼 뒤, 이를 유럽 에너지망에 연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수소연료전지 논의는 버스·트럭, 철도, 선박 등에 그치고 있고요. 승용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해선 명확한 방침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승용 수소연료전지차를 시판 중인 회사는 현대차·도요타·혼다 뿐이지요. 그중에서도 혼다는 사실상 개점휴업이니, 현대차(SUV형태인 ‘넥쏘’)·도요타(세단 형태인 ‘미라이’) 두 곳 뿐이군요. 살짝 불안하지 않으신가요? 다른 업체들이 따라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 이유는 유럽의 수소 전략이 탄소중립(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사실상 추가배출 제로가 되는 것)을 이루되 어떻게 하면 유럽의 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2030년 유럽 전체의 전력 생산에서 태양광·풍력 등이 차지하는 비율을 절반 쯤이라고 본다면요. 이런 종류의 발전은 수요에 따른 생산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대규모 저장·유통 시스템이 필요하겠지요. 이를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한 ESS(Energy Storage System)로 채운다면요? 안그래도 유럽의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폭증해 한국·일본·중국 업체들 수익만 늘려주고 있는데, 유럽 에너지망 전체에서까지 그런 일이 발생하게 만들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태양광·풍력 에너지의 효과적인 저장·유통 도구로 수소를 키우는 것 뿐입니다. 대량의 수전해를 위한 담수화 기술, 수전해, 수소 저장·유통 쪽에서는 유럽의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지요. 따라서 유럽이 아시아나 미국의 친환경 기술에 맞서, 자국 산업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말이 됩니다.
유럽 수소전략은 태양광·풍력 에너지 즉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로 만들어진 수소 즉 ‘그린수소’의 활용이 핵심입니다. 대량으로 수소를 만들려면 수전해가 가장 적합한데, 만약 수전해를 위해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사용한다면 곤란하겠지요. 역으로 말하면 태양광·풍력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즉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애초부터 수소경제는 성립 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전제가 그린수소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 BMW는 과거 수소를 기존 내연기관의 실린더 안에서 태우는 수소엔진 자동차를 개발했다. 현재는 개발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수소엔진이 유럽의 수소경제 확대와 더불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 BMW
◇ 자동차에 수소 활용하는 방법은 연료전지 외에도 다양... 유럽 산업에 가장 도움되는 방식 선택될 수도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2030년 전후로 유럽에서 대량으로 수소가 생산·유통된다면, 당연히 수소연료전지차도 대량 보급되지 않을까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꽤 있습니다.
그 설명에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을 중심으로 자동차 환경규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잠깐 얘기 드릴게요. 현재는 주행중 즉 연료탱크에서 주행까지라는 의미의 탱크 투 휠(Tank to Wheel) 방식으로만 CO2 배출량을 평가하고 있지요. 주행 중에만 CO2를 배출하지 않으면 그 차량의 CO2배출량을 제로로 쳐주는 겁니다. 하지만 2025년 이후에는 1차 에너지(Well·유정·친환경발전 등의 채굴원)부터 주행까지 측정하는 웰 투 휠(Well to Wheel)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2030년 이후로는 전과정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로 바뀔 가능성이 높고요. LCA는 자동차의 생산과 에너지, 주행, 폐기, 재활용 등 라이프 사이클 전체에서 CO2 배출량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꼭 주행단계에서 CO2 배출을 제로로 만들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더 가혹해질 탄소배출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생깁니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유럽에서 수소가 많이 생산되면 수소연료전지차 보급도 당연히 증가하지 않을까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수소연료전지차 이외에도 수소를 자동차에 활용할 다른 방법이 꽤 많고, 그 경우 유럽의 자국산업에 어느쪽이 더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선택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대안 중 하나가 수소와 CO2를 합성한 액체연료입니다. 즉 그린수소로 합성액체연료를 만들어 기존의 휘발유·경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한다는 구상이지요. 처음에는 기존 화석연료에 일부 섞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요. 최종적으로는 합성액체연료만 쓸 수도 있습니다.
내연기관차에 합성액체연료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2030년 이후 도입이 예상되는 LCA 규제 하에서는 내연기관차의 화석연료를 합성액체연료로 바꿈으로써, LCA에서 차량 CO2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됩니다. 합성액체연료를 쓰면 기존 엔진이나 급유 인프라를 많이 공유할 수 있고, 엔진 공장 등을 유지해 유럽의 고용을 지킬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도심에 세우기 어렵고 건설비도 매우 비싼 수소충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고, 합성액체연료 공장 신설에 따른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지요. 다만 아직 생산비가 비싼 데다 누가 투자해 생산체제를 구축할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 과제입니다.
또 하나의 대안은 수소를 직접 엔진의 실린더 안에 집어넣어 태우는 방식의 차, 즉 수소엔진 자동차입니다. 원래 BMW가 개발했다가 중도에 접은 사례가 있는데요.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계최대 자동차부품회사인 지난 4월 독일 보쉬는 배기량 2L(리터) 4기통 수소엔진을 발표했는데요. 비슷한 배기량의 디젤엔진과 동등한 성능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수소연료전지차는 순도 99.97% 이상인 고가(高價)의 수소를 써야 하지만, 수소엔진차는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순도를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요.
유럽은 최근까지 디젤엔진이 강했지만, 2015년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퇴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존 디젤엔진 인프라를 모두 버린다면, 고용 등 피해가 너무 크지요. 전기차 배터리는 아시아 기업의 독무대라서 유럽의 고용에 디젤만큼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수소엔진의 구성부품은 디젤엔진 등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존 공장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게 큰 장점입니다. 다만 과도한 조기착화(수소를 실린더 내부에 쐈을 때 의도된 시점보다 미리 폭발하는 것), 냉각손실 등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고, 또 합성액체연료와 달리 수소충전 인프라의 대량 보급이 필요하다는 것이 과제입니다.
수소를 자동차에 활용하는 것에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이 방식이 유럽의 산업을 유지·성장시키는데 유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소연료전지차에는 연료전지만 들어가는게 아니라 전기차와 비슷한 용량의 배터리까지 들어갑니다. 이 역시 아시아 배터리기업의 수익으로 돌아가겠지요. 또 전기를 수전해해 수소로 만든 뒤 다시 그 수소를 초고압으로 압축해 자동차의 초고압탱크로 옮긴 뒤, 공기 중 산소와 탱크 안 수소를 반응시켜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로 차를 굴리는 과정에서, 상당한 효율 손실과 저장·유통의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유럽에서 수소연료전지차의 대안으로 고려되는 두 가지도 기술적 과제를 안고 있지만, 기술적 난제로 따지면 수소연료전지차도 못지 않다는 거죠. 결국 보급의 열쇠는 유럽의 수소경제 하에서 어떤 방식이 유럽의 산업을 더 살릴 수 있을지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앞선 두가지 대안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 유럽에 수소연료전지차 보급하려면, ‘1등인 우리가 선도한다’고 말할게 아니라 유럽 수소경제에 실익 제공해야
한편 당장의 유럽 자동차회사들은 배출가스 제로 승용차를 전기차로 일원화하는 상황입니다. 벤츠 등은 원래 현대차는 물론 도요타보다도 연료전지 개발 역사가 길지만, 최근 26년간 개발해 왔던 승용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버스·트럭 등 상용차에서는 몇몇 유럽업체가 여전히 개발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안하는 걸까요? 반복 드리지만, 도심 중심의 배출가스 제로 자동차는 전기차로 일원화하는 것이 사실상 결론 난 상태이고요.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대량 보급해 승용 수소연료전지차를 대량 보급하는 것도 사실상 포기했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버스·트럭처럼 몸집이 크고 정해진 곳을 주로 달리는 차는 앞으로 보급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역시 어느정도 규모가 될지 불확실합니다. 이유는 버스·트럭 역시 작은 것은 수소연료전기차보다 전기차로 바뀌는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수소를 자동차에 활용할 방법은 수소연료전지차 이외에도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소연료전지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나라는 세계에 한국과 일본 단 두 곳입니다. 현대차의 수소차 넥쏘는 올해 1~10월 누적으로 국내에서 약 5000대가 팔렸는데요. 전세계 국가별 수소차 판매에서 말할 것도 없이 1등이죠. 같은 기간 넥쏘의 해외 판매 전체를 합쳐도 국내 판매의 20% 수준에 불과하니까요. 도요타라는 막강한 수소연료전지차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있는 일본에서는 올 상반기 수소연료전지차 보급대수가 겨우 175대였습니다. 한국·일본 모두 세금으로 끌어올린 판매일 뿐, 실제 보급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일본의 상반기 수소차 판매 175대는 사실상 보급 실패이죠. 가장 큰 이유는 도심의 수소충전소 건설·운용이 잘 안돼 소비자가 수소차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늘리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을 얘기할 때 승용차보다는 ‘상용차’라는 단어에 집중하기 시작했고요. 도요타도 최근 중국의 주요 자동차 관련 5개사와 수소연료전지 개발 합작사를 설립, 2022년까지 중국 트럭·버스에 자사의 연료전지시스템을 제공한다고 밝혔지요. 유럽의 수소 전략 등에서도 알 수 있듯, 수소경제가 확립된다고 해도 반드시 수소연료전치차, 특히 수소연료전지 승용차 보급이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승용차가 안되면 상용차에서라도 어떻게든 자사 연료전지 시스템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절박함이 큰 것이죠. 그래서 도요타는 중국 정부의 친환경전략에 맞춰주고, 그동안 외부 공유를 꺼려왔던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중국 자동차 핵심 업체들과 공유하는 식으로 중국에 실익을 챙겨주면서까지 보급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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