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7/ 아사셀의 정체는 무엇이며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아무런 책임이 없음에도 한 집단의 잘못을 혼자 뒤집어쓰게 된 사람을 가리켜 영어로 scapegoat, 즉 '희생양'이라고 표현한다. 집단은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그에게 돌려 모든 부정적 감정을 그에게 쏟아 붓는다. 결국 그의 희생으로 진짜 잘못을 저지른 대상이 잊히게 된다. 본인은 억울하지만 집단을 살렸다는 뜻에서는 좋은 뜻이다. 이 단어는1530년 윌리엄 틴덜(William Tyndal)이 레위기 16장에 언급되어 있는 아사셀을 번역한 데서 비롯되었다. 과연 아사셀은 그런 뜻인가? 틴덜의 번역이 옳다면 아사셀은 대속의 메시아를 상징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표적인 오역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아사셀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아사셀을 중심으로 대속죄일의 절차를 정리해 보자.
(1) 아론은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5절)를 준비하여 "회막 문 여호와 앞에”(7절) 둔다.
(2) 자기와 권속을 위한 속죄제를 드린 다음에 두 염소를 놓고 제비를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8절) 뽑는다.
(3)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9절)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10절)둔다.
(4)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20절)“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21절) 보낸다.
(5) 염소가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 염소를 광야에 놓"(22절)는다.
(6)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26절) 진영으로 들어간다.
두 마리 염소 중 산 채로 광야에 보내지는 염소가 '아사셀을 위한 염소이다. 이 염소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아사셀'의 정체부터 파악해 보자. 아사셈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오직 이 장에서만 네 번 등장한다(S, 10, 26절), 그래서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글개역과 개역개정을 포함한 한글 성경은 모두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아사셀이라고 음역하고 있다. 어원을 통해 그 뜻을 알아내려는 학자들의 노력으로 분분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첫째는 '도망간 염소(scapegoat)이다. '염소'라는 에즈와 '달아나다는 아잘의 합성어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문의 '아사셀을 위한 (10절)이나 '아사셀에게 보낸(26절) 염소에 적용하면 우스꽝스러운 개념이 된다. '도망간 염소를 위한 염소나 '도망간 염소에게 보낸 염소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추상적인 의미인 '완전한 제거'이다. 8절의 '아사셀을 위하여'란 라아자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하여'로 해석한다.
셋째는 유대인 랍비들의 견해로 아자즈 알, 즉 '거친 절벽'이라고 해석한다. 아사셀이 놓이는 곳이 접근하기 어려운 땅・・・광야(22절)라고 하는 데에 근거한 것이다.
넷째는 아사셀을 사탄이나 마귀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다. 위경인 에녹서도 아사셀을 악한 영의 이름으로 사용한다(에녹서 8:1; 9:6 등). 아사셀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적이거나 선한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이 대개의 공통된 이해이다.
그러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 혹은 '아사셀에게 보내는 염소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 그 염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문에 묘사된 다음의 정보들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첫째로 이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와 대조되는 염소이다.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레 168) 라는 표현은 '아사셀'도 '여호와와 같은 인격적인 존재이되 여호와와 구별되고 대립되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둘째로 이 염소는 속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취급하는 순서는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20절) 있었다. 그것은 속죄가 마치고 등장하였다. 물론 레위기 16장 5절은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를 가져가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의미가 두 마리 모두 속죄제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제비뽑기가 진행이 되면 두 마리 중 하나만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되지만 그전에는 둘 중 어느 것도 속죄제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제비뽑기 전에는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일단 제비뽑기가 끝난 이후에는 오직 여호와를 위한 염소만 '속죄제 염소(15, 27절) 혹은 '속죄제물(25절)이라고 불린다.
셋째로 이 염소는 의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20절) 있었다. 그것은 산 채로'(10) 광야에서 놓여졌다. 그것은 죽임을 당하며 피를 흘리지 않았다. '피 흘림이 없으면 속죄도 구속도 없다(히 9:22). 그러니 그것은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벧전 1:19)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가 없다.
넷째로 이 염소는 아론이 두 손으로 그 "머리에 안수하여"(21절) 둔"모든 불의를 지고"(22절) 광야로 보냄을 받았다.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20절) 진행되는 안수 행위가 용서를 위한 속죄의 절차일 수는 없다. 이 안수는 다른 사람의 죄를 희생제물에 전가하여 대신 죽음으로 제물을 바친 자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의 죄를 자기에게 돌려 죄의 책임을 지게 하는 형벌의 절차이다. 레위기에는 이런 안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한 모계 혼혈 이스라엘인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였다. 이에 그 저주를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레 24:14) 얹은 후에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다(23절). 속죄가 마친 후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그 염소가 죄를 지고 가기에 그것을 광야에 끌고 간 자는 "옷을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26절)어와야 했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할 때,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십자가 희생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는 없다. 반대로 레위기 16장에 묘사된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역할은 인간을 위한 구속 사업이 마친 이후에 죄와 불의의 창시자로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버려지게 될 사탄을 상징한다. 결국, 아사셀은 사탄의 다른 이름이며,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그 사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엘렌 G. 화잇 역시 아사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죄를 옮길 때에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 위에 그 죄들을 고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모든 죄를 죄악의 창시자요 선동자인 사탄에게 씌울 것이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지고...쫓겨난 것처럼 사탄 역시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범하게 한 죄를 지고 천 년 동안 세상에 감금될 것이다.” (쟁투, 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