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글 | 강남미 그림 | 보림 | 2011
발제일 : 2024. 3. 06 | 발제자 : 박현이
작가소개 안소영 (1967~ )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故수학자 안재구의 둘째 딸이다.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시대적 변동이나 환란에 맞닥뜨린 역사 속 인물들을 추적해 그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을 주로 쓴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백탑파 벗들의 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 정약용의 둘째 아들 학유의 눈으로 아버지 다산을 그리는 책 『다산의 아버님께』, 조선 후기 젊은이들의 개혁에 대한 열정을 담은 『갑신년의 세 친구』, 시인 윤동주의 고뇌를 세밀히 탐구한 책 『시인 동주』, 그리고 『마지막 문장』 『당신에게로』, 감옥의 아버지와 주고받은 10년 동안의 편지를 엮은 『봄을 기다리는 날들』 등이 있다.
얼마 전 도서관 도서 반납대 앞에 서있는 한 아이를 봤다. 5학년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였는데,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보라며 건네고 있었다. 바로 『책만 보는 바보』 였다. 발제도서이기도 해서 아이 엄마가 뭐라며 건네는지 궁금해서 살짝 엿들었다. “이거 추천도서야! 좋다더라. 읽어 봐.” 책을 건네받은 아이는 책의 두께를 먼저 살피더니 심드렁했다. 아이 엄마 말이 아쉬웠다. 엄마가 먼저 읽고, 책을 권했다면, 추천도서야 말고 좀 더 나은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책만 보는 바보』 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이다. 오래 전, 이덕무와 그의 백탑파 친구들,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그리고 스승 홍대용과 박지원. 나이와 신분을 뛰어 넘는 벗들의 우정에, 세상을 향해 품었던 뜨겁던 마음에, 사람을 향한 그들의 절절한 사랑에 얼마나 가슴 뜨거웠고 벅찼는지 모른다. 다시 읽는 백탑파 벗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나에게도 백탑파 친구들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에 대한 갈망을 남겼다. 두 아들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좋은 벗을 살필 줄 아는 눈과 사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권했다. 그때 뭐라며 건넸던가. 네게도 좋은 벗이 생겼으면 좋겠다 말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야 사귀었지만 아쉬운 것은 아이들과 친구들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처럼 책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는 이덕무의 입을 빌어 1인칭 형식으로 씌어졌다. 작가는 마치 이덕무인 듯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사료이고 작가의 상상력인지 궁금했다. 상상력은 그저 떠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료를 찾고 확인하는 시간의 축적에서 풍부해진다. 역사동화로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나에겐 작품을 쓰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가의 자료 수집 시간들이 보였다. 박제가가 『북학의』를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연경 거리를 헤매는데 들인 시간만큼, 유득공이 『발해고』를 쓰기 위해 심양을 샅샅이 살피고, 백동수와 이덕무가 『무예도보통지』 쓰기 위해 발로 뛰었던 시간들. 다른 듯 닮았다는 백탑파 벗들과 안소영 작가도 닮았다.
할 수 하다면, 이덕무와 그의 벗들에게서 닮고 싶은 모습을 연등에 붙여 나가는 종이꽃잎처럼. 이덕무의 밀랍매화(윤회매)처럼 매화꽃 한 닢 두 닢씩 내 살에 부쳐 나가고 싶다. 한편으론 백탑파 벗들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온전해서 아니고 다른 듯 닮은 그들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벗들로부터 채워 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내가 온전해지기보다 좋은 벗을 사귀어 나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이기 하지만. 이덕무도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인연들 아닌가.
나는 언제나 이러한 벗들이 그리웠다. 내 입으로 글을 읽어도 듣는 것은 나의 귀뿐, 내 손으로 글을 써도 보눈 것
은 나의 눈뿐, 오로지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아 위안해 온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나도, 드
디어 소중한 벗들을 만나게 되었다, 벗들에게로 가는 길을 나에게 내어 준 것은, 은은한 달빛 아래 더욱 환하게 모
습을 드러내는 백탑이었다. 탑은 제 그림자를 다리처럼 길게 놓아, 벗들에게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내
가 오래도록 머무를 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p.39
큰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비숫한 또래를 가진 지인과 1박 2일 서울역사기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 때 묵
었던 숙소가 백탑(원각사지 10충석탑)이 있는 탑골공원 근처였다. 교교한 달빛이 내린 백탑을 봤어야 했는데, 몰라서
못 봤다. 다시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가서, 그 아래에 서서 백탑파 친구들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다시 시간
을 내어 줄지 모르겠다.
주변에 책을 권할 때, 책을 읽어야 하는 여러 이유를 말하는데, ‘가난한 시절, 나의 독서법’ 속 이덕무가 열거한 독서의 이로운 점도 서글프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속이 비었을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되면서 천만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누구는 어쩌면 도피성 책읽기라 한심하다 하겠지만, 정말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고, 오직 견뎌야만 하는 걱정에 시달리고, 춥고, 배고프고, 아파 본 사람에게는 이덕무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나도 한 때 그랬으니까. 가난한 이덕무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 책 읽는 이유 중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일러 주고 싶다.
이덕무의 벗들 중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연암 박지원을 만나고 싶다. 박지원과 박제가의 첫만남이 인상 깊다. “슬기로운 젊은이여, 부디 오래오래 사시게“ 다기에 하얀 쌀밥을 지어 옥쟁반에 받쳐 나온 연암. ‘연암, 제비와 바위. 날렵한 몸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제비와 한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듬직한 바위. 이 두 가지를 함께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p172), 그를 꼭 닮을 호. 든든한 존재. 진정한 멘토가 없는 시대라서 연암 박지원이 더 그립다.
알아 봐 주고 격려해주는 벗이기도 한 스승의 말을 통해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세상에 대한 불만은, ‘할 수만 있다면 신분의 굴레가 씌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서고 싶다’ 는 간절한 소망이 된다. 그 옛날 서자 출신 이덕무와 그의 친구,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p178) 나는 무엇을 벗어 던지고 싶고, 나의 본래의 모습은 무엇인가 물어 보는데 답을 모르겠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없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품은 뜻으로도 살아간다. ‘언제일지 누구일지 모르지만, 그가 돌아와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지금 우리가 내딛고 있는 발자국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자랄 뿐이다.(p. 194) 그 발자국을 『책만 보는 바보』 속 이덕무 옆에 서서 잠시 나마 함께 걸었다. 이덕무는 조선 후기 정조 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였다.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고 했지만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결코 책 속에만 머무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실학자와 그들의 저서 말고, 『책만 보는 바보』을 통해 이들을 알고부터 ‘실학’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떠올리게 되었다.
수도거성(水到渠成) 물이 흐르면 도랑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학문을 깊이 닦으면 저절로 도가 이루어진다, 때가 되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백탑파 벗들이 분노만 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정조의 부름에 나아가지도 품은 뜻을 펼쳐 보지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분노를 품고, 절절한 심정으로 준비하는 사람. 언제나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엄마, 책에 무지개가 떴네. 막내가 말한 책장마다 덕지덕지 붙인 인덱스스티커가 그들을 닮고 싶은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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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기>
1. 이덕무는 언뜻 생각하면 책만 읽은 책상물림이 실학이라는 사회개혁적인 조류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그가 담헌 홍대용이나 연암 박지원 선생을 좇아 실학에 힘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 살아가면서 벗어 버리고 싶은 굴레가 있는가?
첫댓글 잊지 않고
발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잊지는 않지요. 다만 늦었을 뿐!!😅
@박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