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호 목사 (강의 3) 부르심의 목적
오늘 오후 행복한 시간 잘 보내셨습니까? 우리 귀한 찬양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는 부르심의 목적과 성령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세 번째 시간 말씀을 대언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꾸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자꾸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새 마음 거듭남이고요. 이 예수님을 자꾸 쳐다보면서 예수님이 이루신 것이 어떤 큰 구원인지를 확인하고 오늘 우리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저는 부르심에 대해서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대학 입학 학력고사를 시험을 치고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입학하기 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장로교인 어머니가 신앙을 알려주셨습니다.
장로교회를 다닌 기억도 있는데 그것보다 어느 순간부터 더 열심히 다닌 것은 전도관이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흔히 천부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박태선 저희 어머니가 거기도 좀 계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기억에 기장에 신앙촌에 가서 집회를 했던 기억이 있고 거기서 나오는 카라멜을 잘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제가 침례를 받고 대학생 시절에 교회를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 당감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대학생 시절에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교사도 하고 학생반 교사도 하고 여러 가지 직분들 조그만 교회였으니까요.
그렇게 4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대학교 4학년 동안
화요일 금요일 안식일 예배를 빠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교회 가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교회 형님들 교회 누나들 장로님 집사님들이 참 좋았습니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 깊이 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 가지를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1번이 취직이었습니다.
제 전공이 기계설계공학이었기 때문에 공대생이었으니까 다 다른 친구들은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1번 취직 2번은 제 전공 쪽으로 계속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3번은
언제부턴가 이 신학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양복을 쫙 빼입고 면접 보러 쫓아다니고 있을 때 저는 이 세 가지를 놓고 고민을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3번이었습니다. 자꾸 기도를 하면 뭔가 제가 뭐 노시나 공부하거라 무슨 특별한 계시가 주어지거나 어떤 특별한 이적이 주어지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근데 기도를 하면 자꾸 3번이에요. 자꾸 3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고 제가 97년도에 영남 앞에 이 합회 부산중앙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서정준 목사님의 담임 목사님이셨습니다.
아버지 같이 참 훌륭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다가 1년 뒤에 학원 목회를 하라고 또 그쪽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제가 세 번을 거절을 했는데 발령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15년 뒤에 재림연수원으로 가라고 발령이 났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분들이 목사가 되라는 부름을 받지는 않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쯤에 신학 공부를 하겠다고 그러니까 반대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일 반대하는 분은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뭐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목사가 될 수는 없는데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믿으십니까? 여기 보시면 마가복음 3장 13절에 보면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온지라.
이에 12을 세우셨으니 빨간 글자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여러분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최소 1년 6개월 지난 이후에 여러분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이 제자로 선택하셨을 때 그들은 자기 직업을 그대로 가지고 일도 하고 또 예수님 따라다니다다가 하다가
이때 이후로는 온전히 예수님의 제자만 됩니다.
그전에는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게 한 1년 6개월이었습니다.
파트타임 제자들이 풀타임 사도가 되는 것이 이때였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두 가지를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도록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의 구원을 위함이었고요.
두 번째는 그들을 보내어서 전도를 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부르심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여러 목적과 이유들이 있는데 그 모든 기초에는 이 두 가지가 깔려 있습니다.
제자를 부르신 것도 그렇고 여러분과 저를 재림 신자로 부른 것도 그렇고 첫 번째는 부름 받은 사람의 뭐를 위해서야?
구원을 위해서 두 번째 그 사람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명이죠.
여러분 이걸 절대로 잊어버리시면 안 되겠습니다.
근데 이게 안다고 해가지고 실천이 되는 게 아니고 이 부르심의 목적이 우리가 성령을 경험하게 될 때 실현이 되고 삶에서 실천이 된다는 것이지.
여러분 이 사명과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실패하는 건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미국 유학 중에 한 분은 뉴욕에 있는 교회에 집회를 갔었습니다.
안식일 아침에 수석 장로님 댁에 초청을 받아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장로님 내외가 교회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에 저는 이제 집 밖에 나와서 조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가 유대인 마을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복장을 하고 회당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근데 그 장로님 집과 집 앞에 큰 도로가 있었고 그 집 맞은편에 또 큰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는데 집 앞에서
그
길 건너편에 있는 큰 집에서 한 젊은이가 나왔습니다.
나와서 저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이 친구가 나한테 볼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이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여기까지 왔어요.
와서
자기 집에 가서 뭘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예상을 했습니다. 얘들이 안식일이니까 뭔가 또 부탁을 하겠구나.
제가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한 20대 젊은이였습니다.
그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아버지인 것 같았습니다.
키가 큰 분이 유대인 정통 복장을 하고 이 토라를 큰 거를 들고 중중중 저희가 듣기에는 익숙하지 않는 말로 그 토라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엌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머니가 야치마를 매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저보고 여기 게스 오븐 렌지에 전원을 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안식일에 그거 끄지 않거든요.
평소에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 힘든 걸 꺼줬습니다.
이렇게 탁 끄고 그랬더니 자기 방에도 좀 가세요.
자기 방에 따라갔습니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스탠딩 스탠드로 된 에어컨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전원도 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것도 그 어려운 걸 꺼줬습니다.
이렇게 끄고 그러면서 이제 집을 나오면서 그냥 가기가 좀 그래서 그 젊은 친구한테 제가 이렇게 살짝 이야기하겠 했습니다.
나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안식일을 지키는 목사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을 했어요. 왜냐면 그때 제가 양복을 입고 있었고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여러분 제가 그 집에 가서 자기들이 못하는 그 힘든 그 버튼을 두 개나 꺼줬는데 제가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목사라고 소개를 했는데 그러면 반응이라도 있어야 되잖아요.
당신이 목사냐고 또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목사냐고 뭔가 반응이 나와야 되는데
아무 말이 없어요. 제가 했는데 들었는지도 모르게 말이 없어요.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이 친구들 봐라 이렇게 뭐 그리고 그냥 그냥 나왔습니다.
거기 뭐라 할 수는 없고 제가 그날 아침에 유대인들이 지금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고 있구나.
여러분 제가 대학원 시절에 성경의 땅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저희 차에서 안내를 해주었던 분이 계신 교회 집사님이셨는데 히브리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분이었어요.
자기가 유대인 마을에 살았는데 안식일에 아침이 되거나 뭐 그렇게 되면 종종 자기 집에 유대인이 와서 자기 애들을 데리고 가가지고 집에 불을 꺼달라는지 불을 켜달라는지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걸 말로 들었고 또 책에서 읽었고 왜냐하면 그들이 안식일에 뭐 하지 않는 조항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걸 들었는데 그날은 제가 이제 알고 있던 바를 실제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안식일을 이렇게 지키고 있구나 그리고 나도 안식일을 지킨다고 말했는데 당신들은 안식일을 지키든지 말든지 그 사람들 눈에는 저는 이방인이거든요.
그러니까 당신들이 안식일 지키든지 안 지키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한테는 여러분 그게 유대인들이에요 여러분 지금 모습이 예수님 당시의 모습하고 똑같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 또 자신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름받은 그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랬기 때문에 12 제자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그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만약에 유대인들이 그 역할을 잘했더라면 12 제자는 부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교회가 이제 그렇게 시작된 교회가 또 탈락하지.
여러분 여기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똑같은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 초기 교회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적용되는 말씀인데
그의 귀한 덕에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기이하다는 말은 영어로는 원더풀이라고 돼 있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놀랍고 어떤 성경에 보면 마블러스라고 아주 경의로운 그런 빛에 들어가게 하고 첫 번째는 이 예수님의 귀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이 첫 번째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첫 번째는 구원이에요.
우리가 그 구원을 경험하라는 것이지
두 번째는 그렇게 우리를 구원의 아름다운 빛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 그 아름다운 덕을 자랑하고 선포하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거 1번만 하면 되지 이 부담스럽게 2번을 하라 그래요.
이 첫 번째 내용은 예수님의 귀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걸 다른 말로 하면 나의 구원을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라고 부르신 것은 남의 구원을 위해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잊지 마시요. 이 예수님을 믿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이 두 가지입니다.
뭐라고요? 이 두 가지 뭐 하고 뭐라고요? 나의 구원하고 누구 구원하고? 남의 구원하고 근데 유대인들은 어디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내 구원
여러분 내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면 구원을 안 잃어버릴 것 같죠? 여러분 내 구원에만 관심만 가지고 남의 구원에 관심을 안 가지면 내 구원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게 유대인이에요 남의 구원에 관심을 가질 때 내 구원도 잃어버리지 않아요.
여러분 공부 잘하는 학생은요 남한테 설명을 잘해줘요.
여러분 저희 둘째가 이제 컴퓨터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삼육학교를 다녔습니다.
한 번도 삼육학교를 다니지 않은 적은 대학교 외에는 없어요.
대학교를 들어갔는데 대학교를 대학교를 갔는데
개강을 하고 학교에 가보니까 교수님이 이렇게 저렇게 수업을 들어오는데 두 과목이 안식일날 시험에 있는 것이 시험을 보겠다고 이제 발표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애가 걱정이 된 거예요. 한 번도 자발적으로 안식일에 교회를 가거나 하도록 반대를 맞아본 경험은 없는 아이예요.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한 겁니다. 아빠 어떡하면 되지? 뭐 어떡하기는 교수님 찾아가서 너의 신앙을 이야기해야지.
아빠 나 뭐라고 이야기해야 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제가 답을 안 해줬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책을 소개해주고 사이트를 알려줬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왜 다른 친구들은 안식일에 놀러도 가고 시험도 치는데 너는 그렇게 놀러도 가지도 않고 시험도 치지 않고 교회에 오고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데 너가 시간을 쓰는지 너가 스스로 너한테 답을 해봐.
너한테 답을 못하면 남한테도 못해. 여러분
안식일이든 어떤 성경의 교리든 진리든 여러분이 확실히 알려면 확실히 알고 싶습니까? 알고 싶죠 그죠? 성경의 중요한 진리 교리들을 근데 혼자 공부해가는 잘 몰라요.
남한테 한번 알려줘 봐요. 여러분 그러면 내가 자세히 아는지 제대로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요.
그래서 여러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요 혹시 여기 젊은 우리 부모님들 계시면 학생들 공부를 잘 시키고 싶으시면 공부해라고 닥달을 하지 마시고 시험 기간에 너 공부한 거 엄마 아빠한테 한번 설명해봐.
그리고 잘 들어주셔요. 그리고 엄마가 조금 지혜가 있거나 재치가 있으면 아이들 공부를 먼저 보고 난 다음에 질문도 가끔씩 한번 해보셔요.
그래서 아이가 나한테 완벽하게 설명하도록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공부 굉장히 잘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최고로 어떤 사실이나 진리를 잘 아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남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애를 쓰고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애쓸 때 우리가 최고로 진리 가운데 살게 돼요.
여러분 이게 하나님 방법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내 구원과 남의 구원을 동시에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살리는 방법이 이 방법인 것입니다.
제가 시간 되는 대로 두 가지를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목적이 뭐라고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그래서 여러분 재림 신자로 부름받으셨기 때문에 개인 영성생활을 하시든 교회를 출석하시든 유튜브 방송을 들으시든 무슨 경험을 해야 되는가 하면 예수님하고 나하고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하셔야 돼. 여러분 그렇지 않으면 신앙이 굉장히 피상적이에요.
여러분 사마리아 여인 예수님이 정오에 부지런히 가셔서 만난 스토리를 알고 있습니다.
여기 요한복음 4장 3절과 6절에 우리 내용을 재림교회 성경 주석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때는 ad 28년 12월이나 ad 29년 1월경이었다.
28년 29년 이런 거 모르셔도 됩니다.
근데 12월이나 1월은 좀 기억하셔요.
12월과 1월은 계절상 뭐예요? 겨울이에요.
예수와 제자들은 새벽부터 길을 걸어왔을 것이며 24~32km 정도 여행했을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개인적인 피로를 채우거나 갈증이나 배고픔과 같은 신체적인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결코 이적을 행하지 않았대.
여러분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물들어 온다는 것을 알고 정오에 오는 것을 알고 그때 만나러 가기 위해서 유대 땅에서 출발합니다.
사마리아 땅이거든요. 그러니까 거리는 24~32kg 남자분들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군장 메고 행군할 때 보통 4kg를 1시간에 걷습니다.
그러니까 24에서 32kg면 몇 시간에서 몇 시간 사이예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네요.
6시간에서 8시간이에요. 그러면 12시 정오에 도착해야 돼요 몇 시에 출발했어야 돼요? 6시간이면 오후 오전 6시 8시간 걸렸으면 새벽 4시 봄여름 가을 겨울 어디라고요? 겨울 여러분 팔레스타인의 겨울은 우리나라 겨울만큼 춥지는 않습니다.
근데 그래도 겨울은 추워요. 추운 겨울 새벽 시간
예수님이 어딜 가세요? 제자들은 분명히 곤하게 자고 있을 시간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꾸지런히 가는 것을 봤습니다.
도대체 이 예수님이 이 새벽에 어디를 이렇게 가시나 그렇게 하고 나서 정오에 가본 곳이 어디예요? 사마리아 여인 그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주석의 뒷부분에 뭐라고 나와 있는가 하면 여러분 예수님은 신성을 쓸 수가 있었죠
축지법 이런 거 들어보셨죠? 이거 짜짜짝 짠하면 저쪽에 딱 나타나는 거 이때 예수님 그거 하실 수 있었죠 왜 안 했을까요?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새벽 6시 혹은 새벽 4시에 부지런히 올라가서 그 정오에 물 뜨러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상종하기 싫어하는 그 여인의 공허한 마음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그 새벽 시간에 추운 겨울에 제자들 깨워가지고 데리고 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무얼 보았을까요?
야 그 여자 만나는 게 그렇게 중요해? 딴 시간에 가면 안 돼
이런 거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세상에서 배울 수 없고 볼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한 영혼의 가치 우리가 개처럼 취급하는 혹은 우리가 상종하지 않는 저 사마리아 사람 저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이 추운 새벽 새벽에 이 이른 시간에 올라간다고 그것도 신성도 쓰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가지고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뭘 배웠을까 이 말이죠.
뭘 느꼈을까요?
누가복음 11장 1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그럽니다.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나옵니다.
그분이 고된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의 시간에서 돌아오실 때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서 평화의 모습 곧 전신을 휩싸고 있는 듯한 상쾌함을 보았대.
누가 이런 말하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반의 끝에 끝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으셨으면 과로사하셨을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요. 여러분 예수님 제대로 드셨어요? 못 먹었습니다.
제대로 잠 주무셨어요? 못 잤습니다.
제대로 못 먹고 못 자고 3년 반이었지만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그런 상태에서 보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탈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년 반 동안 그 공생의 끝에 십자가에 안 달려 돌아가셨으면 과로사 하셨을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 피곤해 보이는데 조용히 혼자 기도를 하고 돌아오면 예수님 달라 보이는 거죠.
활기가 넘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래서 제자들은 무슨 결론에 내리기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하면 기도를 하고 오면
이런 일이 일어나나 보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런 거예요. 기도에 뭘 보았기 때문에? 기도가 실질적으로 예수님에게 어떤 능력과 힘을 베푸는지를 보았기 때문에 이론이 아니지.
아 기도는 이런 건가 보다. 그분은 아침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간을 보낸 후에야 사람들에게 하늘의 빛을 전하기 위해 나가셨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과 사업의 능력이 그분의 기도 시간과 관련이 있다고 결론지었대.
그래서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게 한 거예요. 여러분 이건 이론인 거예요? 경험인 거예요? 경험이죠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이 영혼을 어떻게 대하는지 하나님과 어떻게 교통하면서 능력을 충전하는지 이걸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본 거죠.
이걸 보라고 제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이 그들에게도 전달되도록 여러분 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보낸 이 시간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흔히 이런 말 하죠 있을 때 잘해.
여러분 지금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우리 교우님들과 함께 신앙생활하는 거 그 암흑의 교인 그 가족이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십니까?
여러분 이 제자들이 그때는 그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게 그렇게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노란 부분 보십시오. 그들이 과거의 3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돼.
그러니까 이제 성령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과거를 쭉 돌아보면서 예수님이 우리 곁에 같이 있을 때
왜 우리는 서로 만나가지고 계속 누가 크냐 누가 잘났냐 왜 이런 이야기만 하고 살았지? 왜 예수님이 그렇게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러 가고 그렇게 밤새워 기도하고 그렇게 그렇게 하셨던 것에 대해서 왜 그 의미와 가치를 몰랐지? 우리가 만약 3년을 다시 살 수 있으면 우리가 정말로 제대로 한번 살아볼 텐데 이렇게 후회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보면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생애의 장면들이 마치 행렬처럼 그들 앞을 스쳐 지나갔대.
그들이 그분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할 때 그러니까 계속 복귀하는 거죠.
여러분 바둑 뜬 사람들 바둑 끝나고 나면 집중을 하고 뜨기 때문에 자기가 돌을 어디에 놓았는지를 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쭉 내가 어디에서 실수했는지
그러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 성령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을 때 자기들이 3년을 계속 돌아보면서 그분이 그때 그렇게 말했고 그분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 딱 곰치 보면 우리가 그때 왜 그렇게 말했고 왜 그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지 그걸 계속 생각하면서 후회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3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여러분 제가 말씀 서두에 드린 것처럼 오늘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께서 재림 신자로 부르신 이유는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신앙생활에서, 교회 생활에서 누구와 함께하시려고 있습니까? 저는 연수원에 있으면서 연수원에서 가장 은혜로운 시간은 안식일날 연수생들이 간증하는 시간이에요.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많이 말씀을 못 드리는데
하나님 만난 이야기, 예수님 만난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감동이 있어요.
안식일에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서 오신 성도님이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 교회가 힘을 모아서 교회를 건축하는데 그 교회 바로 옆에 가까운 곳에 사는 한 이웃 남자가 그 교회가 건축되는 것을 계속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분은 기저귀와 물티슈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자산이 한 100억 정도가 된다고 자기 입으로 막 와서 떠들고 그랬대요.
그러면서 내 재산 이걸 다 손해를 보더라도 당신들이 교회 이곳에 짓는 걸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가지고 교회 건축도 스트레스인데 그 사람이 방해를 하니까 늘 모여가지고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기도를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며칠 한동안 기도를 드리는데 어느 부나 이 사람이 그 교회 건축하는 데 와서 방해를 하고 시비를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뭔가 자세히 살펴보니까 이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 그리고 그 회사에서 정부에서 물티쇼 하고 기저귀 하고 뭔가 이렇게
어떤 세니타이즈 뭐라 그럽니까 약간 이렇게 위생 관련된 제품들을 하는 모든 회사들에서 일괄적으로 감사가 들어간 거예요.
왜 감사가 들어갔는가 하면 그때 한동안 한국어에서 시끄러웠던 가습기 살균제
그 가습기 안에 뭘 넣어가지고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잖아요.
지금도 아직 소송 중에 있는 그 사건이 국가 전체로 문제가 생기면서 이 관련된 사업을 하는 모든 회사들을 감사를 들어간 거예요.
근데 이 사람이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가 굉장히 어려워진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눈에 자기 코에 지금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니까 교회 방해하러 못 온 거예요.
그러면서 그 교회가 건축이 잘 되었다라고 그분이 간증을 했어요.
여러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방해하면서 잘 되는 사람은 없어요.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몸된 교회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자꾸자꾸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돌보시는 내 인생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게 우리가 부름받은 첫 번째 이유예요.
제가 미국에 유학 중에 출석했던 교회에 한 여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신앙이 참 좋으셨는데 그분이 여자분인데 장로가 되셨어요.
이분이 한국에서 미국에 시집을 갔습니다.
그때는 신자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아주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이분의 계획은 아들이 둘이었는데 아들 둘을 하버드 대학에 보내는 것이 이분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분이었어요. 근데 이분이 암에 걸려요.
그러다가 이제 미국에서 이상구 박사를 통해서 우리 재림 신자가 된 거예요.
근데
그냥 뜨뜨미지근한 신앙을 한 게 아니고 제대로 신앙을 한 겁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어느 날 중학생 아들 집이 굉장히 잘 살았어요.
그래서 그 백인들이 사는 그런 곳이었는데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계속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이 학교에 가서 왕따를 당하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슬퍼해요.
근데 그 왕따를 당하는 중학생 아들을 불러놓고 이 엄마가 뭐라고 이야기를 했냐면 아들아 너가 이제야 예수님이 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구나.
그러면서 옳은 뺨을 맞으면
웬 밤도 돌려대면 좋겠다. 여러분 이 중학생 아들이 이해를 했을까요? 근데 이 엄마는 정말로 그런 신앙을 하고 있었어요.
예수님 제대로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근데 이 아들이 그걸 이해를 못한 것 같았는데 혼자 방에 들어가서 곰곰히 그 엄마의 말을 아들은 생각을 한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난 다음에 이 아들이 학교에서 어느 날 돌아오는데 너무 흥분을 해가지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서 엄마한테 쫓아온 거예요.
엄마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무슨 일이 있었어? 내가 집에 오려고 가방을 다 챙겨서 이렇게 울러메고 나오는데 또 나 괴롭히는 친구들이 빙 둘러서더니 가방도 뺏어가지고 짚어 열어가지고 다 안에 있는 학용품 책들 다 쏟아붓고
그렇게 나를 왕따를 시키고 힘들게 했어.
근데 있잖아 내가 예수님 생각했어. 그리고 정말 예수님 바라보고 예수님 생각했어.
그랬더니 내 마음에 화가 안 나는 거야.
그러면서 그렇게 자기를 삥 둘러서 있는 친구들에게 정말 한번 쫙 돌아보면서 웃어줬어.
근데 그거는 정말 걔들 비꼬고 그렇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환하게 내가 웃어줬어.
여러분 봐봐요. 자기가 괴롭히는 그 아이가 자기들을 쳐다보고 비웃거나 조롱하는 웃음이 아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얘들이 봤어요.
제정신이에요 아니에요
그리고 그걸
불평불만하지 않고 학용품 책 값 가방에 다 집어넣고 짚어 잠그고 다시 울러메고 나오기 전에 또 한 번 돌아보면서 색 웃어.
천사의 미소로 그러니까 모든 애들이 얼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학교에 무슨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가 하면 야 쟤 암옥에 건드리지 마.
쟤는 리어 크리스천이야. 쟤는
그냥 아니고 교인이 아니고 쟤는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그래서 그다음부터 누가 다른 사람들이 그 아이를 괴롭힐 때 그 친구들이 막아줬다.
그래요 그건 제가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예요.
여러분 봐봐요. 그 엄마가 하나님 만나고 그렇게 감격적으로 살고 있으니까 여러분 생각해 봐요.
왕따당하는 중학생 아들한테 옳은 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줘라.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제정신이에요
여러분 그건 무슨 정신이에요? 그건 그리스도의 정신이에요.
엄마가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경험을 하니까 아들한테 그 말 해주는 거예요.
아들이 긴가민가 했지만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뺨은 안 돌려대더라도 예수님 생각하면서 그 예수님의 미소로 그 아이들에게 화답했을 때 그 아이들이 바뀌어버린 거예요.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첫 번째 이유는 그 예수님 만나고 경험하여서 우리의 삶의 구원을 경험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을 봐도 그래야 되고 교회 생활을 해도 그래야 되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신명기 5장에 보면 여러분 신명기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가나안 땅에 가득 들어가게 될 출애굽 2세대들에게 출애굽 1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율법을 재확인시킨 모세의 설교들로 구성돼 있는 게 신명기예요.
근데 이게 신명기 5장에서 10계명을 다시 한 번 출애굽 2세대들에게
반포를 합니다. 설명을 해주는데 이게 뭐라 보십시오.
2절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오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 모세의 말이 뭐냐 하면 야 십계명은 지금 광야에서 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그 사람들하고 세운 언약이 아니고 오늘 우리하고 세운 하나님의 언약이야.
이렇게 말하는 거
여러분 맞아요 틀려요?
틀려요
여러분 이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던 출애굽 2세대들은 그때는 어린아이거나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자기 부모들의 세대가 십계명 받은 거죠.
근데 그분들은 다 불순종해서 이제 광야에서 돌아가셨다 이 말이에요.
근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출애굽 2세대들에게 다시 십계명을 말하는데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십계명은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언약이 아니고
오늘 여기 살아있는 오늘 여기 지금 여기 오늘은 모세의 말씀을 듣는 이 모아 평지에서 그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출애굽 2세대들에게 살아있는 우리와 세운 언약이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아요 틀려요? 왜 모세는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그 신의산에서 나타나서 십계명은 자기 조상들에게 준 것인데
여러분 결국 물론 이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첫 번째 적용의 의미를 몰라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은 이 세대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오늘 누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거죠? 오늘 말씀을 읽고 있는 나한테 주신 말씀이라는 거죠.
그 말씀을 읽고 십계명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준 것도 이기도 하지만 오늘 나한테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거죠.
여러분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경험을 하라는 것이지
제가 유학 중에 미국에 있을 때 여성 선교회 한 집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동부 지역에 한 교회가 자기들의 영적 친교 모임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소그룹 모임이었는데 딴 거 이렇게 지도해 주는 분도 없고 그렇게 해서 그냥 무작정 정로이게 된
이 책을 하나를 택해가지고 몇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우리 모여서는 읽지 말고 한 주 내내 이 말씀을 한 챕터를 읽고 한 3분에서 4분 혹은 5분 정도 소감만 간단하게 모여서 이야기 나누자.
그래서 한 소그룹이 시작된 거예요. 그래서 몇 명이 처음에 모이고
와서 읽지 않고 계속 주중에 읽고 내가 어떤 은혜를 받고 무얼 깨달았고 내가 어떤 잘못을 뉘우치고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나누어 근데 점점점점 그 시간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티슈 한 꽉 앞을 딱 놓고 이야기하면서 뽑고 뽑고 뽑아주고 해서 거의 그 모인 분들의 간증을 나누는 시간이 끝날 때는 각 티슈 하나가 다 없어질 정도로
그렇게 서로 울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러면서 하나님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분들이
만나고 나니까 그분들이 그 눈에 누가 들어오기 시작했는가 하면 교회에 소외되고 와서 예배만 드리고 조용히 가는 그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기하고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생각이 나요.
그래서 그 사람들 초청하고 아무에에 가서 내가 당신하고 이렇게 좀 이렇게 했는데 미안하다.
여러분 그 교회에서 그렇게 몇 명의 여 집사님이 종로의 계단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한 그룹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걸 4개월 동안 했대. 그러고 나서 이거 너무 좋다.
그다음에 시대의 소망을 하자. 그래서 시대의 소망을 2년을 했어.
그래서 그 모인 분들이 서로가 서로를 낮추고 용서를 구하고 가정도 교회도
이러면서 이 교회가 달라진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 교회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제가 좀 뒷부분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경험 예수님과 만난 경험을 하면서 이제 그들의 삶이 달라지고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오늘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라는 거죠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좌석이 못과 함께 오래 있으면 어떻게 되죠?
모도 자성이 생깁니다. 여러분 봉숭아 물들여 보셨죠? 어떻게 하니까 봉숭아 물이 손톱에 들어요.
찌워가지고 백반이라 그럽니까? 감아놓고 하루 이틀 지나잖아요.
여기 나영자라고 하는 시인이 염색이라고 하는 시를 썼습니다.
그냥 주님으로 푹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물감이 천에 물을 들이듯 주님으로 제가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 따로 있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 따로 있으며 깨달음과 실천이 따로가 아니라 주님의 삶이 내 몸에 베어버려서 그냥 사는 것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줄줄 외우지 못해도 조리 있게 진리를 변증하지 못해도 그냥 사는 것이 말씀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님으로 푹 물이 들어버리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 물이 들려면 어떻게 돼야 되죠? 가까이 있어야 되지.
여러분 봉숭아물 아무리 찌어서 손하고 한 1mm 정도 간격을 띄워봐야 이게 손톱에 물이 들겠는가
직접적으로 접촉해서 묶어놓아야 되지.
가까이 있어야 물이 들지.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재림 신자로 부르시고 제자로 부르시고 마지막 시대에 우리의 사명을 위해 부르신 첫 번째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그 예수님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는 사실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걸 점검하셔야 돼.
내가 교회 생활하면서 예수님 만나고 있는지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셔야 돼.
두 번째 부르심의 목적은 뭐라고요? 예수님을 전하게 하시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내 구원만 생각하고 있으면 내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여러분 그 샘플이 유대인입니다.
담을 쌓아버렸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부르심의 목적을 성취시킨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하고 함께 있을 때는 아니었고 물론 전도도 했지만 성령을 받은 이후라는 걸 여러분들은 기억하셔야 됩니다.
여기 빨간 글자 함께 읽겠습니다. 저희를 시작 저희를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해줄 거룩한 정열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일 시간에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증거하고 전하는 일을 막
나서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의 행동을 막았을 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여러분 사도행전에 일어났던 역사를 압니다.
여러분 여기 시대 소망 250페이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생명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생명뿐이다.
여러분 생명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생명뿐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생명이 없으면 오늘 다른 사람한테 생명은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시대에 살고 있으면 이 세상 시대에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세상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떤 제가 그때 연수원에 있을 때 한 번 저희 연수원에서 직원들이 이제 점심 식사 시간이 있어서 이렇게 연수원 길을 내려오는데
차가 막혀서 못 내려갔으면 연수원 그 길이 좁은데 한 번은 차가 이렇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아놓은 차가 그게 이렇게 풀려가지고 차가 그 밑에 있는 계곡에 빠져버렸어요.
그래가지고 그 레카 차가 와가지고 그 차를 이제 끄집어내는다고 길을 못 가게 막아가지고 우리는 한 30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물에 빠진 차를 끄집어내려면 그 빠진 차 크기만큼 이 견인차가 오면 끄집어낼까요 못 끄집어낼까요? 그럼 같이 빠져버려요.
물에 빠진 차든지 사람이든지 끄집어내려면 그것보다는 몇 배가 더 커야 끄집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똑
똑같은 세상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똑같이 휴대폰에 관심이 있고 똑같이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있고 똑같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데 관심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가 없는 것이지.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나면 이 시대에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침내 요한이 왜 다르게 먹고 다르게 마시고 왜 다르게 교육을 받았는가 하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상이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광야에서 그렇게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마찬가지인 것처럼 오늘 우리가 생명이 마음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여성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제가 sd36외국어 학원 직접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고 그 이후에 만난 분이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여학생은 자신이 30살이 넘어서는 30살 넘어서까지는 살 거라고 생각을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술을 먹어서 술 때문에 자기는 일찍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또 영어를 배우고 취직을 좋은 데 하려고 서울 본원에 영어를 배우러 왔습니다.
30살까지는 못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또 회사에 취직을 하려고 영어를 배우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렇게 왔어요. 근데 와서
처음으로 수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본 거예요.
여기 외국인 선교사들이었습니다. 너무 친절하고 뭐라뭐라 막 이야기하는데 못 알아듣겠고 그러니까 이제 웃음만 보고 그렇게 하다가 바로는 수업을 갔는데 이제 그 선교사 담임 선교사가
금요일 저녁에 있는 안식일이 시작되면서 있는 학원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소개를 한 것입니다.
그 학원생을 위한 선교 프로그램의 제목이 뭐냐 하면 프라이데이 나이트 클럽이에요.
근데 이 아가씨 영어를 잘 못했어요.
앞에 설명이나 어떤 부분은 안 들리고 딱 한 단어가 들어온 거예요.
나이트 클럽
우와 이
금요일에 여기도 불금이 있나 보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오라.
그러니까 이 아가씨가 나이트 클럽을 가는 복장을 하고 와요.
좀 놀아봤거든요. 근데 오니까 아무도 그런 복장이 아니에요.
당황했는데 그 여학생을
우리 선교사들이 잘 맞아줍니다. 너무 친절한 거기에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성경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딸이 돼요.
그리고 그 신앙이 너무 재미있고 그 감동적이어서 자기가 그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좀 도움이 되기 위해서 책을 하나를 써요.
그 책 제목이 프라이데이 나이트 클럽비
한번 보시면 재밌습니다. 이 책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30살 넘어서까지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술 술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술은 내 인생의 전부였고 술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것도 아주 우연히 술 없이도 기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는 게 지옥이 아니라 사는 게 하루하루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삶에서 보여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난 건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쓰고 이 책을 이제 쓰기 전에 또 미국에서 온 재미교포와 이렇게 연애를 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게 되고 나중에 결혼을 하는데 그 온 선교사가 신학과 출신이에요.
그래서 이분은 사모가 됐어요. 저는 사모가 된 다음에 만났어요.
이 책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그동안 완전히 잘못 살아왔구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가족을 미워하고 용서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악의 영향이었음을 알게 되었대.
그리고 나니 그들이 다시 보이게 되었대.
그들 또한 나처럼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 또한 나처럼 악에게 속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내가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움이나 용서하지 못하는 상태로부터 나오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 이런 것을 깨닫게 해준 성경이라는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갈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분 사람이 성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제일 먼저 솟아나는 것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해주고 싶은 술 없이도 사는 행복한 사람들 보고 내 인생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저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살고 있고 그런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자기 인생을 다시 돌아본 거죠.
그러면서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들도 나도 저렇게 살았는데 나도 저렇게 힘들고 저런 습관 속에 살았는데 그들이 잘못 살고 있고 잘못 방향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여러분 이게 정상인 거예요. 생명이 들어오면 생명이 없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까 이 교회 잠깐 소개해 드렸죠
여집사님 몇 분이 모여서 종로의 계단 읽고 시대의 소망 읽으면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모여서 뭐라고 했냐면 야 우리 교회 잘 안 나오는 사람은 방문 가자 목사님 없어도 이분들끼리 같습니다.
근데 뭔가 성경을 가르치고 뭐 이렇게 할 재주는 없고 우리 잘할 수 있는 여러분 주부들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뭐예요? 반찬 만드는 거 그러면 우리 교회에 혹은 우리 주변에 혼자 사는 분들 어려운 분들 우리 반찬 만들어서 나누자.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반찬만 만들어서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교인들이었고 그다음에 이제 교인들을 넘어서서 주변에 있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방문 가자 그래서 가는 게 아니고 자기들이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 필요한 사람들을 조직해가지고 그냥 가는 게 아니고요.
또 남 집사님들 막 이렇게 또
섭외해가지고 기타 잘 치는 분이 있으면 기타 치는 분 섭외해가지고 가가지고 그냥 방문만 하고 오는 게 아니라 아프고 이런 분들이 있으면 음악회도 해주고 이분들이 그거 다 자발적으로 한 거예요.
여러분 나중에 이게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이렇게 하나 하면서 야 우리 교회에 법률을 좀 아는 사람이 있고 우리 교회 뭐 좀 있는 사람 이분들의 재능을 가지고 이 주의 마을에 어떤 역할을 하면 될까 이거 이제 하다가 나중에는 문화센터까지 만듭니다.
그래서 파랑새 샘터라고 하는 문화센터를 만들고 이걸 하면서 지역에 있는 농어촌 사람들까지 초청해가지고 아예 개원식을 합니다.
지금 그러면서 몇 사람이 모여서 정로회 계단 읽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생겨난 그 교회의 변화를 안식일에 이 교회에 여집사님들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이것이 자기들도 여기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게 어디 때문에 간 거예요?
종로 계단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뜨거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기들 눈에 안 보이는 것들 해야 될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가버린 거예요.
이건 성령이 인도하신 것이지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 마음속에 생명이 마음속에 있으면 그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마음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가 어렵죠 복음을 전하고 나누는 것은 어려운데
제가 학원에서 목회를 할 때 한 여학생을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생들은 수업을 듣고 30분 앞에 먼저 오거나 수업 끝나고 나서 30분 그러니까 딱 30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이 굉장히 타이트합니다.
근데 제가 뭔가 예수님 이야기를 좀 하려고 그러면 이 여학생은 남학생 자기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요.
시간은 30분인데
제가 한 마디 이야기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면 제 남자친구는요 이렇게 그래서 제가 성경 공부를 기껏 하면 15분밖에 못해.
15분은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어줘야 돼.
그래서 제가 그 남자친구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뭘 입고 다니고 어떤 얼굴 안 봐도 비디오였습니다.
근데 이 아가씨가 성경을 조금 조금 더 공부하면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결혼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집안에 왕래도 하고 그 남자친구 어머니도 알고 그렇게 다 친해서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결혼을 할 건데 그 장래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 예수 믿는 걸 정말로 싫어하는 거예요.
남자친구도 싫어하고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 알면서 남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제잘 되면서 남자친구 이야기하던 이 자매가 말이 없어요.
성경 공부하고 뭘 물어도 되고도 안 해.
저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 여학생이 예수님을 택할까 남자친구를 택할까 저는 믿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요
한 몇 주가 지나고 어느 날 와서 성경 공부를 하는데요 이 여학생이 펑펑 울어요.
펑펑 울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휴지 떼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 목사님 제가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 일어난 몇 가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구야
내가 이렇게 영어 배우러 갔는데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되는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근데 예수님이 이런 분이란다. 예수님 내가 참 좋은 분 같은데 우리 같이 성경 공부하고 같이 예수님 믿으면 어떨까 그 남자친구한테 진심으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 남자친구가 이런 지하에 거절을 했습니다.
또 상처를 받고 또 집에 와서 고민을 하는 거야.
맨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앞에 와서 펑펑 울면서 이야기하는 거 목사님 저는 가슴이 콩딱콩딱콩딱콩딱 뛰었어요.
이 아가씨가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할까? 근데 저는 이제부터 성경 공부 그만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 아가씨가 지금까지 해온 결과로 봐서 근데 이 아가씨 입에서 나온 말을 목사님
저 남자친구랑 헤어졌습니다. 저는 충격 받았습니다.
그 아가씨가 지금까지 보여온 모습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아가씨에게 전부는 남자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랑이 들어온 거지요.
또 다른 사랑과 한동안 충돌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내 마음은 같이 하고 싶은데 근데 그 남자친구는 그걸 거절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울면서 예수님을 택하고 남자친구를 떠나는 걸 봤어요.
저는 그때 뭘 느꼈는가 하면 이 믿음 없는 목사가 느낀 게 뭐냐 하면
우리가 마음을 빼앗겨서 세상을 사랑하고 분명히 살아가지만 제대로 예수님 만나고 제대로 그분이 누군 줄 알면은 그 사람이 이길 수 없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근데 우리는 지리 짐작하는 거지. 야 저 사람 되겠나 저 사람 이거 하면 여러분 그건 우리 책임 아니에요
제가 이 문만 읽고 좀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무슨 정신이라고요? 전도의 정신이다.
거듭난 마음속에 제일 먼저 생기는 충동은 다른 사람들 또한 구주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충동이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기쁨이었다.
이제 이것을 그대의 일 그대의 기쁨으로 삼아라.
우리는 매일 새롭게 회심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계속 심장 속에 고동치게 함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속에 뭐가 고동치게 하라는 거예요? 예수 그 사랑의 심장이 계속 고동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만 이야기해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이 지갑이 잃은 거예요 버린 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두툼하니까 그래요
여러분 이런 거하고 버린 거의 차이가 뭐죠? 물건이 좋은 거예요.
여러분 이런 거 하고 버린 거는 차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찾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여러분 찾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건 버린 거예요.
찾는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그것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물건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애탕가탕하면서 그걸 찾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거는 잃은 거예요.
버린 게 아니고 여러분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버려진 사람들이라 그래요.
그럴까요? 여러분 세상에 어떤 사람들은 버릴 수 있습니다.
근데 단 한 분은 못 버려요. 누가? 예수
제가 이야기를 하고 마쳐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목사님 이거 하나만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이것 좀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서울 학원에서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수유에 살던 전 모 씨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 주치의가 병원 2개를 소개해 주면서 노년을 잘 마무리하십시오 그랬습니다.
하나는 수유리에 있는 병원이었고 조금 작은 병원이었고 하나는 36 서울병원이었어요.
그 담당 의사가 왜 두 번째 병원이 36서울병원이었는지는 몰라요.
아무도. 그러니까 수요에 사는 가족들이 당연히 우리 아버지 이제 서울대학병원에서 항암 치료하다가 치료를 못 받았으니까 나머지 인생은 수요에 사니까 수요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아버지 남편 입에서 나온 말이 나.
36 서울병원에 입원한 낳다. 아버지 왜요? 여보 왜 대답을 안 해요 그래서 가장이 우기니까 갔어요.
근데 그날 그 병원에 안내해 보는 한 장로님이 제가 목회하던 서울 영어학원 교회의 동생이었어요.
그분이 그날따라 환자들 입원한 명단을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쭉 보는데 전 누군가 나와 있은 것입니다.
이분 옛날에 우리 경북 울진에 살 때 형 친구인데 여러분 동명이인 많잖아요.
근데 그 병실 호수를 확인하고 찾아갑니다.
그러니까 가보니까 진짜 형 친구예요.
아니 형님 여기 어쩐 일입니까? 한 50년 만에 만난 거예요.
어릴 때 헤어져가 오십년 더 됐죠 이만저만해서 내가 이렇게 됐다라고.
근데 제가 저희 교회 장로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그 장로님이 그날 새벽에 맹장이 터져가지고 그 병원에 입원한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병원에서 만났어요. 이 병원에 입원하신 분은 경북 울진에서 어릴 때 유년반을 다녔어요.
성경학교도 하고 그 아이들도 가르치고
커서 근데 침대는 못 받고 집이 너무 가난해서 전체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 친구 둘이가 헤어진 거예요.
그 한 분은 서울 영화원 교회 장로님이신 거예요.
이 친구 소식을 알기 위해서 확 찾아도 그땐 휴대폰이나 뭐 있는 시절이 아니니까 그렇게 늘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동생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형님 그 암흑에 형 여기 입원해 있습니다.
자기도 입원해 있었으니까 만난 거지.
그 장로님이 그렇게 물었습니다. 친구야 나 너 정말 찾고 싶었대.
너 어떻게 여기 와 있느냐 이 모습으로.
여러분 이 전 모 씨가 그 어릴 때 그렇게 떠나서 방황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살다가 병을 얻어가지고 돌아갈 시쯤 되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서울대학병원에서 치료가 안 된다는 걸 들었는데 그 담당 주체 의사 입에서 병원 2개를 추천하는데 하나는 수요에 있는 병원이고 하나는 36서울병원인 거예요.
왜 그 담당 의사가 36 서울병원을 추천하는지 자기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때 36서울병원이라는 말을 딱 듣자 뭐가 생각나는 거예요.
내가 어릴 때 경북 울진에서 그렇게 안식일날 교회에 가서 성경학교도 참석하고 아이들도 그렇게 지도하고 했던 그때가 있었는데 그 생각이 난 거예요.
그러면서 이분은 가족들한테 말을 하지 않고 나 죽어도 36서울병원에 가서 죽겠다 이렇게 하고 간 거예요.
여러분 그때
그 친구 동생인 장로님이 왜 그날따라 병원에 입원한 명단을 보고 싶었으며 똑같은 이름이 형 친구라도 동명이인이면 확인하면 끝인데 왜 그 병실에 찾아갔고 왜 자기 친형은 그 맹장 터져갖고 또 그날 그 병원에서 만났고 여러분 이 세계가 영고파 일어났다 이 말이지 이 장로님이 그렇게 친구한테 말했습니다.
친구야 나 너 정말 보고 싶었지만 이런 모습으로 병원에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대.
그런데
가만히 섭리를 보다 보니까 하나님이 너를 정말로 붙드시고 너 인생을 지금까지 붙들고 인도해 오신 것 같다.
너를 그냥 떠나보내지 아니하고 하나님 안에 다시 돌아오도록.
왜 그 의사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입에서 삼육서울병원이 나와서 너가 여기에 오게 되었고 이렇게 만났다.
너가 치료는 받아서 생명이 회복이 못 될지라도 이 예수님 꼭 다시 받아들이고 잠들면 좋겠다.
여러분 그래서 거북이 거기서 침례받고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아내와 그 딸들은 저하고 성경 공부를 해서 제가 침례를 줬습니다.
여러분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람의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신다.
뭐 하라고요? 돌아오라고 해. 돌아오라고 해.
성령의 음성 여러분 이 마음을 우리가 알 때 이분의 마음을 깨달을 때 이분과 협력하게 된다는 것이지.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누구? 구원을 위해서 내 구원을 위해서 보내사 전도도 하며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시려고 내 구원이 중요하고 그 사람의 구원도 중요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나를 부르셨다는 것.
이 부르심의 목적이 그냥 이론으로는 되지 않고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쳐다보고
또 바라보고 내 마음속에 그렇게 성령이 임하시고 능력이 주어질 때 그 목적이 성취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중요한 질문 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첫 번째 시작. 나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첫 번째 두 번째 읽습니다.
시작. 남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여러분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늘 내가 내 구원을 위해 뭘 하고 있나 오늘 내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뭘 하고 있나 이걸 계속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함께 나누어 받은 사람이고 자기 구원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왜 재림 신자로 하나님 앞에 부름받았는지 이유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왜 이 한적한 곳에 장막회에 와야 했는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소그룹을 하든, 안식일, 학교를 참석하든, 예배에 참석하든 모든 시간들을 통하여 예수와 함께 있는 예수님만 나는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바람과 같이 역사하여서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시는 예수님의 마음, 그 심장이 저희의 심장이 되게 하셔서 잃어버린 자를 찾고 있는 그 마음을 저희가 전달받아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저희가 작은 역할이나마 감당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