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덕혜옹주》로 독자에게 큰 사랑을 받은 권비영 작가를 만났다. 대한제국 시기 황족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 작가는 그저 인연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맨 처음 그린 인물은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 그는 꽃바구니를 들고서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덕혜옹주의 묘소를 찾아간다. “무딘 글 실력이지만, 마마를 그리려고 합니다. 힘을 좀 주십시오.” 그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사흘 뒤에 옹주가 꿈에 나타난다. 그가 올린 꽃바구니를 들고서. 길몽이구나, 생각하고는 그때부터 백방으로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썼다. 그러고는 100만 독자를 얻는 ‘홈런’을 쳤다. 올 칠월 덕혜옹주의 오빠인 영친왕의 이야기인 《잃어버린 집》을 펴냈다. 두 권의 책은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거시적 역사 속에 꿈틀대던 개인의 인간애를 기억하시라.
-《덕혜옹주》(다산책방, 2009.), 《잃어버린 집》(특별한서재, 2023.) 두 권 모두 근현대를 배경으로 쓰셨네요. 가까운 역사이므로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치적인 면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어요. 물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복잡하지만, 덕혜옹주 한 사람에게 집중했어요. 대마도 여행을 갔다가 이즈하라 항에서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를 보고 덕혜옹주 얘기를 써야겠다, 했어요. 자료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당시 덕혜옹주는 역사책에도 명확히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었으니까요.”
-소설 《덕혜옹주》가 엄청나게 인기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정말 엄청났죠. 출판사에서도 놀랐고 저도 놀랐어요. 불에 기름이라도 부은 듯이 나갔으니 말이에요. 저도, 출판사도 믿지 못하겠더라고요(웃음).”
-영화에서는 덕혜옹주와 영친왕을 독립투사로 그렸던데요.
“대개 원작자가 내 원작에 손대지 말아라. 한다는데, 저는 좀 생각이 달랐어요. 책이 안 팔리면 나 하나만 망하면 되는데, 영화는 제작비도 많이 들고요. 감독에게 연락이 왔는데, 작품을 조금 고쳐도 괜찮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이미 만들었는데, 잔소리할 수도 없고요(웃음).”
-대한제국 이야기에 몰두하시는 듯해요.
“《덕혜옹주》를 쓴 기점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빠져들었어요. 사람들은 제 키가 작아서인지 외모까지 그 시대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말해요. 심지어 저보고 덕혜옹주가 현신한 듯하다고요(웃음). 문인들 모임에 가면, 제가 원로도, 신인도 아닌 중간 위치라서 소매 걷어붙이고 일해야 해요. 그런데 소설 알려지고 나서부터는 ‘마마님 오셨습니까’ 해요(웃음).”
-《잃어버린 집》의 화자가 영친왕의 죽은 아들 ‘이구’잖아요. 이 책은 《덕혜옹주》 발간하고 얼마 만에 나왔지요?
“2년 전에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인 《하란사》(특별한서재, 2021.)를 냈었고, 《잃어버린 집》은 《덕혜옹주》 발간하고 나서 14년쯤 되었어요. 사람들이 대한제국 얘기가 이걸로 마지막이냐고 물어요. 그럼, 제가 ‘아니야 한 편 더 쓸 거야’라고 말해요(웃음).”
-구상하신 작품이 있나요?
“이제까지는 왕가 이야기였다면, 일제 치하 민초 이야기를 쓰려고요. 강연 다니다 보면, 짐 보따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조상 얘기를 써달라고요. 우리 조상도 독립운동 하다 죽었는데, 유공자도 못 되었다며…. 어떤 사람은 대학 나온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집안에 빚을 지는 거라고도 하고요.”
-덕혜옹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낯선 타국으로 보내져요.
“덕혜옹주는 일본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해요. 일본은 조선 왕실의 씨를 말리게 하려는 목표가 있었겠죠. 일본인 남편은 화가이면서 영문학자로 다정다감한 편이었어요. 그는 귀족 계급이었지만, 일본이 패망하면서 재산을 다 빼앗기죠. 결국 그는 덕혜옹주와 헤어집니다. 덕혜는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결국 그녀는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해요. 제 생각에는 그 무렵에 옹주가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듯해요.”
‘다케유키는 고심 끝에 덕혜를 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잔인한 일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일도 하지 않고 그녀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 여력이 있다고 해도 마음에서 떠나보낸 여인을 온전히 간병하기는 어려웠다. 다케유키는 자신이 지쳤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무도 몰래 당분간만 덕혜를 입원시키자고 결심했다.’ -《덕혜옹주》 중에서
-김을한 기자가 덕혜옹주를 그곳에서 빼내 한국으로 데려왔죠?
“맞아요. 김을한 기자는 옹주의 정혼자였던 김장한의 형이었지요. 그가 아니었으면 덕혜옹주와 영친왕 모두 입국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황실 식구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는데, 박 대통령이 덕혜옹주가 누구냐고 그랬다잖아요.”
‘김을한은 한참을 울고 나서 옹주에 대한 예를 갖추어 큰절을 올렸다. 그러나 덕혜는 그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조금은 두려운 표정으로 발을 만지작거리며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다가 가만가만 비볐다. 그 손을 볼에 갖다 대었다. 그는 그 모습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덕혜옹주》 중에서
-일본 귀족학교에서 한 일본인 학생이 덕혜에게 ‘너는 왜 독립운동 안 하고 여기 있지?’라고 했다지요. 어쩌면 옹주에게 꽤 아픈 질문이었을 텐데요.
“일본 학생은 옹주를 화장실에 가둬놓고 괴롭히고 그랬대요. 아마 그때부터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딸 정혜마저도 엄마를 부정하잖아요. 나는 조선의 황족이 아니라, 일본인의 딸이다, 라고요. 하지만 영친왕의 아내 마사코(이방자)는 영친왕과 덕혜옹주를 정성껏 보살폈지요.”
‘덕혜의 보온병을 손으로 슬쩍 밀어 넘어뜨린 때도 있었다. 보온병에 들어 있던 뜨거운 물이 쿨럭쿨럭 흘러 바닥을 적셨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복순이 놀라서 교실로 들어오려 했지만 덕혜는 복순을 나가게 하고는 직접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았다. 장난을 친 학생들은 덕혜가 수돗가에 가서 물을 마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덕혜는 그날 종일 단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다. 덕혜는 집에서 가져온 보온병의 물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마시지 않았다. 그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결국 덕혜는 화장실에서 집단구타를 당했다.’ -《덕혜옹주》 중에서
-‘잃어버린 집’이라는 제목은 중의적 의미겠지요?
“상징적 제목이지요. 개인으로 보면 영친왕과 이구의 집이 없어졌고, 넓게 보면 대한제국이 없어졌지요. 동경의 아카사카 궁에서 영친왕, 덕혜옹주가 살다가 아들 이구가 태어났어요. 궁은 지금 카페로 운영 중이에요. 젊은 직원에게 여기에 누가 살았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그는 고개를 젓더니 주방에서 누군가가 써준 메모를 가지고 나와요. 이왕(李王)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아마 나이 든 사람이 적어 주었겠지요.”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일본인과 결혼했어요. 서로 얼마나 조심스럽고 어려웠을까요.
“일본의 황족이었던 마사코는 어쩌면 속죄하는 기분으로 살지 않았을까 해요. 그녀는 한국에서 지내면서 평소 남편과 구상해 온 사회봉사를 시작해요. 장애인시설인 명휘원과 특수학교인 자혜학교를 설립해서 모금 활동을 하고 자수와 그림을 판매하는 등 힘들게 꾸려갔다죠.”
‘나는 지배국의 황족이다. 내가 너그러워져야 한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잃어버린 집》 중에서
-덕혜옹주, 영친왕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겠어요.
“제가 책 쓸 때는 거의 미쳤었다고 보면 될 거예요(웃음). 덕혜옹주를 알다 보니 영친왕, 의친왕까지 알게 되었지요. 영친왕이 유럽 여행할 때 노트에 적어 놓은 게 있어요. 영친왕의 말은 그걸 참고했어요. 물론 저는 덕혜옹주와 영친왕을 안쓰럽게 보지만, 또 어떤 이들은 무능한 왕실이라고, 누릴 것 다 누렸다고 비판하기도 하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앓고 있는 병은 다름 아닌 그리움이었다. 절절했다. 겉으로는 화려한 향연과 만찬, 이어지는 연회로 즐거운 듯 보이지만 이은의 속마음엔 언제나 울음이 꽉 차 있었다. 아바마마의 용안이 꿈마다 나타나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은 차질 없이 계속되었다. 힘을 잃어버린 나라의 황태자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집》 중에서
-소설에서 이분법적으로 누구를 지나치게 비난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관이나 이런 건 시대에 따라 달리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고, 또 가해 의식이 있는 일본에서는 더 그럴 수 있지요. 생각해 보면, 왕족들만 그런 생활을 한 게 아니에요. 징용 간 조선인들 가운데 일본 여자와 결혼한 이들이 많다고 해요. 그들의 가계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섞여 있고요. 정치인들은 자기 이념에 따라 누군가를, 어떤 상황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도 없어요.”
‘타고난 운명에 반기를 들 수 있다면 나도 어머니를 따라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제발 우리를 흔들지 말아요. 평범하게 살도록 내버려 둬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욕심일 뿐이었다. 물살에 내던져진 나뭇잎은 저 스스로 운명에 대항할 힘이 없다.’ -《잃어버린 집》 중에서
-복순이라는 캐릭터는 만드신 건가요?
“사실 복순이라는 인물을 만들기 전에, 덕혜옹주 모셨던 상궁들을 찾아다녔어요. 대개 돌아가셨거나, 너무 연로해서 치매에 걸리거나 요양원에 계시더라고요. 그중 한 분이 인천에 계신다고 해요. 전화를 아무리 해도 안 돼서 결국 못 만나고, 마사코를 도왔던 봉사자를 만났어요. 그분 말씀이 마사코는 늘 덕혜옹주를 곁에 두고 있었대요. 옹주가 사탕을 좋아했다고요.”
-기억에 남는 팬이 있겠지요?
“복순이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스스로 자해하는 장면이 있어요. 언젠가 초등학생이 사인받으러 왔어요. 그 애를 보니, 더럭 그 장면이 떠오르잖아요. 덕혜옹주는 동화로도 나와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너 왜 이걸 읽었니? 동화책을 읽어야지’ 했어요. 그러니까 그 애가 ‘동화책은 싱거워서 별로고요, 이걸 읽어야 해요’ 하는 거예요(웃음).
그는 글을 쓸 때 역사적 사실을 쓰고 행간을 남겨 놓는단다. 그 사이에 작가적 상상력을 채워 넣은 뒤, 그다음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고. 그가 소설에서 그려낸 덕혜옹주와 남편 소 다케유키, 영친왕과 그의 아내 마사코, 영친왕의 아들 이구와 그의 아내 줄리아 등 인물들은 다만 서로를 사랑하며 아파한다. 그야말로 작가는 역사 사이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숨겨진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문학인 신문/ 강수연 기자
첫댓글 소개글을 보니 꼭 보아야겠군요...
회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