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상강을 지나고 입동을 앞 둔 시점이다. 가을도 이제 서서히 뒤안으로 사라
지려고 한다. 늦가을에 피는 대표적 가을꽃은 국화꽃이다. 늦가을이면 여기저기 우리 주변에서 국화꽃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집 아파트 입구에도 국화꽃이 활짝 피어 국화향을 음미할 수 있다. 가을엔 국화꽃
축제도 도처에서 열린다.
초목들은 대개 여름에 꽃을 피어내 가을에 씨를 영글어 종 보존의 씨를 남겨 그 사명을 다하는데, 국화꽃은
그 종 보존을 숙근(宿根)으로 하기에 씨를 남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꽃만을 화려하게 피어낸다. 국화는 다른
꽃들이 만발하는 봄이나 여름의 모든 계절을 참으며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 들어서야 그 인내와 지조를 상징
하듯 겨우 꽃을 피운다.
국화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화초로서 고결한 자태와 그 향기에 있어 백화의 으뜸으 로 여겨 왔으며,
오랜 재배 역사에 걸맞게 그 품종도 다종 다양화하고 또한 재배기술도 발전되어 대량 생산함으로써 누구에게
나 사랑받는 꽃으로 애호되고 있다. 그 종류만도 600여 가지가 넘으며 사람의 육안으로는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같은 국화도 종류가 다른 것도 있다. 동양권에서는 스탠다드(standard, 송이국, 중·대국)형 국화품종이
주류가 되고 서양에서는 스프레이(spray, 소국)형 품종이 주체가 되고 있으나 최근 동양에서도 스프레이형
국화가 증가 추세에 있다.
꽃은 노란색·흰색·빨간색·보라색 등 품종에 따라 다양하고 크기나 모양도 품종에 따라 다르다. 꽃의 지름에
따라 18cm 이상인 것을 대륜, 9cm 이상인 것을 중륜, 그 이하인 것을 소륜이라 하며 꽃잎의 형태에 따라 품종
을 분류하기도 한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일찍부터 사군자의 하나로 지칭되어 왔다. 뭇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여름에
피지 않고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홀로 피는 국화의 모습에서 한국의 선인들은 고고한 기품
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국화는 그 생태적 본성이 서쪽 방향을 향해 피어나기를 좋아하는 섭생 때문에 동쪽 울밑에 흔히 심는 것으로
되어 있어 동리가색(東籬佳色)이라는 별명이 생겼으며, 특히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전원시인이었던
도연명(陶淵明)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더욱 시인묵객들의 상탄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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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간유진의)
欲辨已忘言(옥변이망언)
(동쪽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따노라니 유연히 남산이 눈에 비쳐 오다.
산기운은 아침 저녁으로 아름다워 새는 서로 함께 날아든다.
이 사이에 자연의 도리가 있으니 하고자 하여도 말을 잊었노라.)
그래서 국화를 일컬어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한다. 주무숙(周茂叔)은 〈애련설(愛蓮說)〉에서 "국화지은일
자야(菊花之隱逸者也)"라고 하였다. 국화는 군자 가운데서도 '은둔하는 선비'의 이미지에 잘 부합되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국화를 노래한 신인묵객들이 많이 있다. 근래에도 문일평의 ‘호암전집’,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이광수의 ‘산국(山菊)’, 임인수의 ‘산국(山菊)’ 등 수많은시와 산문이 있다.
국화가 언제 한국에 전래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양화소록(養花
小錄)》에는 고려 충숙왕 때 중국의 천자가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국화
주를 가지고 높은 곳에 오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도 9월 9일에 민간에서 국화주를 담가 먹는 풍습이
있었다. 고려가요 〈동동(動動)〉 9월령에 "9월 9일에 아으 약이라, 먹논 황화(黃花) 고지 안해 드니 새셔가만 하예
라, 아으 동동다리"라고 하였으니, 중양절에 국화주를 담가 먹었고 그것을 약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고려시대에 이미 한국에도 국화가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재배된 국화는 일본으로까지 건너가 재배되어 일본 왕실의 상징이 되었으며, 현 일본 경찰 및 구 일본군
의 상징 역시 국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지만 한국 역시 오래 전부터 국화를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
나로 여겨 와서 벚꽃 만큼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 듯하다.
세계 각국에서 장례식 때 흰 국화를 바치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이 풍습은 오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에서
까지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개화기 이후에 서구의 그리스도교 문화가 들어옴에 따라 복식 등이 간소화 되고, 영전
에 꽃을 바치는 일이 생겼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흰 꽃이 국화밖에 없어 국화를 바쳤다고 한다.
국화꽃의 꽃말은 일반적으로 평화, 지혜, 절개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꽃의 색상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 가장 흔하
게 볼 수 있는 노란색 국화 꽃말은 실망, 짝사랑이고 흰색 국화꽃은 성실, 진실, 감사이다. 빨강색 국화의 꽃말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집 거실에도 국화그림이 걸려 있다. 만물이 시들고 퇴락해 가는 때에 홀로 피어나는 국화의 모습은 품위있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아름답게 피는 국화꽃을 보며 시니어도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열정적으로 인생이막을 활발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국화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의 인생도 국화 특히
흰색 국화의 꽃말처럼 ‘성실, 진실, 감사’를 품고 노년을 장식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즘이다.
첫댓글 우리 재돌이 카페에 국향이 만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