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칫하면
불행으로 인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맹목적인 사람은 관존민비,
선비 중심의 과거 유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에
고정 관념에서 과감하게 탈피를 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시각을 먼저 바꿔야 합니다.
현대의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의 우상은
위인전에 나오는 김 유신 장군, 을지 문덕, 세종대왕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이나 링컨도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따로 우상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겁니다.
왜냐 하면 요즘 청소년들의 우상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가수 아무개였다가
오늘은 탤런트 아무개로 바뀝니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정신적인 지주가 없고,
그때그때 유행 따라서 좋아하는 사람이 바뀝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대상도
역사적인 위인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한심스럽겠지만
TV에 자주 얼굴 내미는 가수나 탤런트들입니다.
더러는 홍통 영화배우이거나
미국의 영화배우 아무개입니다.
지금 길거리에 나다니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보십시오.
옷차림만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거의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닙니다.
예전에는 주로 여자들만 패션에 민감했는데
요즘은 남녀의 구별이 없습니다.
미용실에는 남자 손님들로 북적이고
이발소는 사라질 위기에 쳐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이른바 정보화 시대의 한 단면입니다.
정보화 시대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뒤쳐지면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현상은 오래갈 지도 모릅니다.
아마 더 거세질 것 같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 젊은이들이 살아갈 미래 역시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는
도저히 어림할 수 없는 현상들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의 낡은 가치관을 가지고
자녀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잘못하면
오히려 자녀에게
큰 불행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앞날을 자신의 의사로,
자신의 취향에 의해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섭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식들을 지니고 있으며
무서운 정도로 삶을 영위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결코 부모의 연장선에 있지 않고,
별개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일대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얘기 했듯이
맹목적인 사랑은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사랑은
어쩌면 맹목적인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맹목적이라는 말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눈이 먼 상태에서 행하는 일을 맹목적이라고 합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바르게 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자식의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돈으로라도 대학에 보내서 훌륭한 사람을 만들겠다는
이런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눈먼 사랑인 것입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옛 날에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토끼 한 마리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날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난데없이 토끼 한 마리가 무엇에 쫓기는지
힘껏 달려오더니만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었습니다.
이 뜻밖의 횡재에 마음이 들뜬 농부는
밭일도 제쳐놓고 그 토끼가 부딪힌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다른 토끼가 다시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불교의 업설業說을
이 수주대토와 같이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과거생의 업력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큰 재산을 물려 줄 수도 있고,
억대의 돈을 들여서 대학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곁으로 드러나는 도움은 가능하지만
자식이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부모의 힘으로 되는 것인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복업과 자신의 노력의 결과일 뿐입니다.
부정한 수단과 방법으로라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은
몸을 향기롭게 하기 위해
몸에 똥을 바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자신도 망치고 자식도 망치는 결과만 가져옵니다.
진실로 자식을 위한다면
자식들로 인하여 인과법을 믿게 하고
누구나 스스로의 복업에 의해 인생항로를 해쳐나간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들이 믿고 실천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 빈승이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오늘은 오늘 글을 만나신 인연으로
글 보신 이후로는 계묘년이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01월 23일 오전 05:49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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