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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화이팅팅팅!!
이십 대의 연애 추억 / 노마드 / 20240302
내가 사는 곳에서 15분 걸으면 바닷가가 나온다. 요즘 시쳇말로 ‘바세권’에 산다. 바다를 좋아하는 것 못지않게 집도 좋아하는 집순이라 근처에 살면서도 자주 누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횟수로 5년 째 살게 된 올해부터 (거의) 매일 바닷가를 산책한다. 역시 새해는 결심하기 좋은 시기다. 한 시간 정도 바닷가를 거닐면,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좋고 잡생각을 비워내 머릿속도 가벼워져 상쾌하다. 바닷가에는 뛰는 사람, 걷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요즘들어 관광객도 엄청나게 몰린다. 또 바닷가 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 바로 버스킹 공연을 하는 이들이다. 길게 늘어진 바닷가를 걷다 보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버스킹하는 팀들이 꼭 두세 팀은 보인다. 보통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기에 버스킹에 굳이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가끔 왜 저렇게 사람이 많지? 싶을 때는 한쪽 이어폰을 살짝 빼고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귀기울여보기는 하지만.
하루는 첫 번째로 맞닥뜨린 버스킹 팀의 노래가 이어폰 음악을 너머 뚜렷하게 들렸다. 남성 두 명이 애절한 감성을 섞어 발라드를 부르고 있었다. 얼핏 듣기에도 꽤 잘 불렀다. 그렇다고 걸음을 멈추진 않았고 계속 산책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지나친 후에도 그들의 노래를 계속 떠올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감성은 내가 이십 대 때 자주 들었던 2000년대 감성 발라드와 비슷했다. 들었을 때 바로 메모해뒀어야 했는데, 금세 잊어버리는 바람에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쉽다. 아무튼 그들의 노래는 내가 이십 대 때 즐겨듣던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를 떠올리게 했다. 브라운아이드소울, 바이브, 먼데이키즈나 버즈 등. 지금처럼 반복되는 후렴구가 있어 중독성이 있지는 않지만, 노랫말 하나하나에 사연이 숨쉬어 마치 시나 에세이 같은 노래들이 많았다. 영화에 버금가는 슬픈 사연 가득한 뮤직비디오도 감성을 적시는 데 한몫했다. 그 시절의 음악들이 나에겐 한국 가요 전성기였다.
한국 가요, 그 중에서도 발라드 전성기던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 P가 생각난다. 내가 전문대를 졸업하고 갓 사회초년생이 된 스물세 살 때, 그는 일년 전쯤 군대를 제대한 스물네 살 대학생이었다. 내가 디자이너로 일하던 외국어학원에서 저녁에 영어회화 수업을 함께 들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좋아하는 걸 티낼 만큼 참 많이 좋아했던 친구였다. 아직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싸이월드로 소통하던 때라 서로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카카오톡 대신 네이트온 메신저로 채팅했다. 내 친한 친구와 나와 친했던 대학동기 오빠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소개했고, 사귄 후 1년 쯤 후였나, 그가 미국의 이모집에 6개월 정도 가 있을 때도 메일로, 스카이프로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모든 연애를 통틀어 유일하게 그만이 나를 ‘애기야(애깅, 애킹으로 더 자주 불렀지만)’라는 호칭으로 불렀고, 그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의 어머니까지 뵈었다. 싸울 때면 내가 야, 야 거리기도 했고, 그럼에도 매일 연락하고 자주 보며 뜨겁게 연애했다.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지만 결국 내 마음이 식어 두 번째로 헤어졌을 땐, 그의 어머니가 내게 연락해오기도 했다.
P와는 노래방 데이트를 자주 했다. P가 노래부르는 걸 좋아했고, 또 잘 불렀다. 낮고 허스키한 보이스가 베이스라 발라드가 제법 잘 어울렸다. 자기 말로는 원래는 못 불렀는데, 독학해서 잘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전공은 경제학이고 취미는 주식이던 P는, 요리보고 저리봐도 예체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컬 레슨을 받을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도대체 어떻게 노래를 배웠을까. 그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뽐내기를 좋아했다. 내게도 자주 불러주던 노래가 있었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루아흐’. 피아노 반주가 잔잔하게 깔리며 ‘참 많이 어렸죠...’로 시작하는 가사가 듣는 사람으로하여금 감성을 자극한다. (그 당시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멤버, 나얼의 목소리는 발라드를 총애하는 뭇 20대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믿어요.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어깨를 적시는 비도 그대임을’이라는 가삿말에서 볼 수 있듯 ‘루아흐’는 고대히브리어로 ‘영, 호흡’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특히 ‘대기, 바람’이라는 뜻이 있다고도 한다. 이 노래의 절정은 1절과 2절 후에 나오는 마지막 부분이다. P는 감정을 잡고 끝내주는 보컬로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이 되면 옆에 있는 내 손을 잡으며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노래를 이어갔다.
‘잡아주세요 내 손을 잡아주세요 안아주세요 내 맘을 안아주세요’.
지금 떠올려보면 손발이 오글거리며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땐 참 로맨틱했다. 여자친구 앞에서 자신이 잘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한껏 매력을 뽐내던 P의 모습은 그 시절의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나에게는 원빈, 정우성과도 같았다.
나는 반환점을 돌아 다시 돌아오는 길에 버스킹하던 팀을 다시 만났다.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들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P와 닮아 보였다. 만약 그때에도 버스킹이 유행이었다면 P도 제법 인기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명인 줄 알았던 팀은 이제 네 명이 되어 한 소절씩 돌아가며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르고 있었다. 요즘 노래, 특히 한국 가요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지만 길가를 오며가며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발라드라 아예 생소하진 않았다. 노래는 몰라도 최선을 다해 노랫말에 감정을 입히는 목소리는 꽤 듣기 좋았다. 나는 잠시 앉아 그들의 노래를 더 듣고 가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지금 떠올려보면 P와 헤어진 후에도 몇 번의 연애를 더 했지만 헤어지고 나서는 빠르게 기억 속으로 사라졌는데, P가 들려줬던, 꽤 자주 부르던 ‘루아흐’와 몇 개의 다른 노래만큼은 시간이 한참 흘러서도 단번에 떠오르고 멜로디도 흥얼거릴 수 있었다. 다른 X들보다 P가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역시 음악의 힘인건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P와의 연애는, 내가 미래의 그 어떤 걱정도 없이 순수하게, 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마지막 연애이지 않았을까. 노래를 부르는 그들 앞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놓여있고 그 옆에 팁박스도 있다. 갑자기 팁을 넣고 싶었으나 수중에 현금이 없었다. 그러나 팁박스 앞에는 친절하게도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고, 나는 스마트폰의 은행앱을 켜 1만원을 송금했다. 오랜만에 순수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버스킹 팀에게 고마움을 한껏 담아서.
첫댓글 노마드 글을 읽으며 연애 때 일들이 새록 새록 떠오르네요. 음악은 그 시기의 순간들을 갑자기 떠오르게 만들어 기쁘게도 당황스럽게도 하는 것 같아요. 옛 연애 시절 이별 하며 차안에 흘렀던 슬픈 노래들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조금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이별을 했더라면 조금은 더 덜 슬펐을까 ..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맞네요.. 연애는 진짜 음악과 떼려야뗄 수 없는 기억이네요 ! ㅎㅎ 잘 읽어줘서 고마워요,ㅎㅎ 좀이따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