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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대통령 허재 스카우트 비화
1978년, 허재<187cm>는 농구 명문 용산 中學校 진학 '농구천재'서막이 시작된다. 용산中 농구팀에는 '유재학,전창진' 두 거목도 자리잡고 있었다. (유재학,전장진은 허재와 남다른 인연을 맺는다....두 사람의 인연은 뒷부분에 다시 쓰겠다.) 허재는 용산中 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용산高에 진학,고교대회를 석권하며 "天下統一" 高校 1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동기 '이민형190cm,한만성'과 용산 신화를 창조해 나간다. 득점력,개인기,스피드,드리블,어시스트,전술 이해력, 금상첨화 리바운드 능력까지 겸비하여 高校 무대 뿐만 아니라 전국에 천재의 탄생을 알린다. 高校 전국 대회를 제패하며 천하무적 용산高을 만들어 가던 허재가 高3이 되자 大學 팀,언론은 과연 허재가 고려大-연세大 중 ,어느 大學을 선택할지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3명의 열혈남아 "정봉섭-양문의-허재의 부친"은 새로운 역사를 꿈꾸고 있었다. 허재부친의 후추 인터뷰 中----- 부친:고집이 세고 승부욕도 대단하고, 그러고 또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그냥 뭐 물불을 안 가리고 쉬지 않고 계속 돌진하고... 목표를 위해 서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야. 그래서 원래 그 선수들은요,그 코치를 다 닮아가요.꼭 그래요. 정봉섭 중앙대 감독
허재 부친의 후추 인터뷰 中-----
부친:허재가 中學校 1학년 때부터야. 중大가 체육관이 없으니까, 용산高 체육관을 빌려서 써요.
매~일. 그러면 그 참~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오늘 날 그 위치에 오른 거야.
그 양반이 운동 세계에 있지 않고, 다른 세계에 있었어도 뭐가 됐을 거야.
용산 체육관은 용산이 주인이니까, 中學校가 먼저 하고, 용산高가 끝난 다음에 이제 大學이 연습
을 했는데. 빌려 쓰는 주제가, 나그네가 먼 저 할 순 없잔아. 겨울에는 그, 이쪽에 구멍탄 난로 하
나밖에 없는데, 그것도 무 슨 감독, 코치나 되야 좀 쬐지, 그런데도 꼬박 밖에서 앉아 있다가, 겨
울이면 4시 반, 5시만 되면 해가 져요. 그런데도 보통 뭐 8시, 9시 되어야 끝나쟌아,용산高 연습
이끝나는 ,그럼 그때부터 하는 거야, 기다렸다가. 그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을 그러니까,
그 양반 역시 '집념'이 대~단한 분이야.
뭐, 대단한 집념을 가진 사람 이야.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도 참고, 그~~ 나 정말
그런 사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봐.
<중략>중앙大學 보낼 때는 남들이 말이 많았지만, 허재하면 그때 연-고대 갈 거라고 120% 다 봤지.
그러나, 학교가 문제가 아니거든. 물론 中學校 1학년 때부터 내가 정봉섭 감독을 봐 왔을 때, '야~ 저 친구 정말 대단한 사람이 구나.'
소위 그래도 大學 코치라는 사람이, 중학교, 高校 코치한테 머리 숙여 가면서, 그 추운 겨울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 씩 기다
렸다가 애들을 가르치고, 이건 뭐 보통이 아니거든. 근데 실제 정감독은 허재 달라는 얘기는 안 했어.
안 하고 있다가 용산高 3학년 2학기 되니까, 얘기를 딱 하더라고.
군인 출신의 호탕한 허재부친, 大學무대 천하통일을 향한 진념의 승부사 정봉섭,
이 세사람에 의기투합으로 양대산맥 연-고大 뿐만 아니라 언론도 깜작 놀라게 된
다. 독재자 양문의 감독은 연-고大를 의식,허재를 중大로 보낸것에 보상으로 한
만성은 연세大, 이민형은 고려大로 진학 시킨다.
당시 고려大는 한기범-김유택의 막강 포스트에 허재가 가세하는 것을 절대 용납
할 수 없어 스카웃 전쟁을 불사했지만...
아시운 탄식........이민형 영입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나산시절 이민형>-부친의 영향으로 무조건 고大行을 결정
중앙大 정봉섭 감독은 자신의 명지高 감독시절 제자 한기범2m7,김유택197cm 그리고 강정수,천정열,이준호197cm를 영입하고 ....
농구 천재 허재 마저 스카우트. ! 화룡점정.!
드디어 大學무대 평정과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延世大-高麗大 타도와 中央大 전성시대 를 만들어 냈다.
유재학,전창진-허재의 인연은?
기아 자동차<아마>는 창단. 중앙 大-연세大 졸업생으로 신생팀을 창단한다.
정봉섭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영입했고 한기범,강정수,유재학,정덕화,추일승,천정열등 창단 멤버로 그 뒤 김유택~허재~강동희~김영만~
조동기등 중앙大 출신들을 차례로 영입한다.(중앙大 마피아라 불림)
<허재~강동희5~김영만6~김유택14~한기범15>
정봉섭 감독 사퇴 후 ,방열 감독<前 현대전자 감독>은 제 2대 감독으로 취임한다. 하지만 잘나가던 기아와 허재는 한동한 떠들석한 사건
에 휘말린다. 실업대회에서 우승, 오래동안 무릎부상으로 고생하던 한기범의 활약이 돋보여 ,당연히 기아 선수들은 한기범 선수가 MVP 수상자로 선정 될거라 생각했지만 유재학선수가 MVP로 선정되자 팀 내부에서 큰 동요가 일었났다.
연大 출신 방열감독이 學校 후배인 유재학을 추천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대회는 지금도 감독의 추천이 MVP선정 주요 포인트>
이 일로 인해 다음 대회의 성적이 부진했고 언론에서는 허재가 주동한 파업,중大
~연大 파벌로 팀내 불화 등을 떠들어 댔고,후에 방열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해임.
물론 과대 포장된 허재 죽이기로 나중에 밝혀짐..
허재는 인터뷰에서 우승회식때 분의기가 좋지 않았을 뿐인데 언론에서 크게 확
대해석 한거라고..당시 허재 죽이기 고사 작전에 대표적인 사건중 하나.....
이 일로 인해 아주 긴 시간 허재-유재학-방열 이 세람이 인구에 회자 되었다.
유재학은 천재 가드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치명적인 무릅부상으로 실업무대에서
은퇴, 연세대 코치로 가게된다.
*언론에 미움을 받은 스타들의 일방적인 형태의 가십성 기사의 피해자들은 ->
차범근 죽이기-허재 죽이기- 고종수 죽이기 작전은 언제 한번 블로그에 담겠다.
전창진 용산中,高~고려大~삼성전자
출신으로 허재와 각별한 사이로 삼성 주무시절, 허재 영입의 홍의병이 되었다.
98년 5월,허재는 기아시절 최인선 감독과 극심한 불화로 삼성으로부터 입단 교섭을 받았다.
파격적인 조건에 새로운 마음으로 농구를 해보고 싶었던 허재는 삼성 이적은 거의 현실화되는 듯
했다. 그러나 삼성이 연세大 최희암 감독을 사령탑으로 내정하면서 허재를 포기했다.
선수들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스타일의 최감독은 허 재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
문제는 최감독이 연大 측의 만류와 김수환선수 파문으로 삼성行 포기,삼성만 손해....
(연세大 중퇴하고 현대 입단한 김수환 선수가 다시 복학 ,대학경기에 출장한 사건으로 인해 농구
연맹은 최희암감독을 1년 자격정지. 김수환을 부정선수로 처리함.)
허재는 결국 나래로 이적했고,전창진도 나래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재회,두 사람은 원주TG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천하의 명장 정봉섭-방열-보다 허재를 잘 컨트롤하여 전창진 감독은 나래~삼보~원주 TG~동부 팀명과 상관없이 우승의 대업을 이루어
낸다. <초 대형 스타 김주성의 합류도.!~>
나래시절 허재와 신기성
강동희와 이상민의 대결
문경은 스카우트 비화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회장이 직접 지시한 연세大 '문경은 영입'건으로 현대전자 농구단은 비상사
태.... 어느 누가 거역할 것 인가?
불가능은 없는 도전의 화신 ! 불굴의 역군! 王회장의 王命을....그러나 현대관계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최희암 연大 감독은 현대전자 농구단 창단멤버로 은퇴 후 현대건설에서 근무,문경은 영입
을 낙관했고,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 았다.
문경은 역시 현대行의 거부감이 없어, 당시 언론도 현대전자行 확정 보도가 난 터였다
하지만,문경은의 진로는 엉뚱한 방향에서 누구도 예측못한 김대의로 인해 달라지기 시작햇다.
한양大 출신 가드로 삼성전자의 기대주로 평가 받던 김대의는 무릎부상으로 2번에 수술과 재활을
해야 했다. 다른 팀과 달리 삼성전자는 수술지원,완벽한 재활,좋은 훈련시설 등으로 문경은은 크게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문경은 스스로 현대行보다는 삼성行을 선호 스카우트 시장에 지각변
동이 일어난다.
(중앙大 김승기도 문경은과 같은 마음으로 삼성行을 선호 입단했고, 1년 후 절칠한 1年 후배 양경민<용산高~중大직계 후배>의 삼성行
을 권유,설득,입단시킴) 아이러니하게도 문경은,김승기,양경민은 프로화 이후 삼성으로부터 버림 받는다.
현대는 아비규환...연세大와 최감독,부친과 담판을 지려했지만 문경은의 선택과 고집에 결국 삼성行 결정..
(물론 삼성은 엄청난 대우를 ???)
<문경은의 경기를 관전하고 영입을 지시한 故 정주영회장>
후일담으로 故정주영 회장은 크게 진노했다고... 문경은이 다른 팀도 아니고 삼성전자라니.......
문경은의 번복으로 더욱 더 충격을 받았다.!이충희의 대만 진출,이원우의 노쇠화,이문규,박종천,이장수,박수교 등의 은퇴로 인한 공백
과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현대로서는 더욱더 절망적인 사건이었다.
거기다 1年前, 정재근193cm선수가 현대전자 입단이 기정 사실화 되었지만 SBS 창단으로 "닭 쫒던 개 지붕쳐다 보는 신세"가 된것도 서
러운데......
(정재근 자신도 현대를 가고 싶어했지만 ..SBS는 당시 APT 거래설 까지 있었다. 계약금으로 )최희암 감독은 그 이후로 이상민과 서장훈은 꼭 현대에 보내겠다 다짐을 한것 같다.
이상민은 일찌감치 현대行을 결정 지었고 서장훈은 정재근 케이스로 걸려, 진로 창단팀에 지명되자 아예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오성식 스카우트 파동
<영원한 라이벌 박한-최희암>
중앙大는 정봉섭이란 최고의 철두철미한 지략가를 영입 大學농구를 제패하며 승승장구를 하고 있을때 ......................... 연세大는 최희암이란 최고의 야심만만한
휘고 高~연세大~현대전자 출신으로 선수 시절부터 투지와 근성으로 자신의 작은키<178cm>를 극복한 사람이다.
주전 경쟁에 밀려 은퇴, 현대건설의 중동에 모래바람을 맞으며 와신상담 중 연세大 코치가 공석 중인 것을 알고 미련없이 사표 를 쓰고 코
치로 부임한 야심가이다.
감독으로 승격후 그의 청사진은 첫번째 "독재 권력" 중앙大 타도! ,둘째 "영원한 라이벌 고려大 말살! 이 두 목표를 갖는다.
최씨 고집에 옥니,곱쓸머리,안경 이런 사람에게는 덤비지 말라는 속설이 있는데 최희암은 이 모든 점을 다 갖춘 사람이다.
연大 사령탑으로 승진 후 절치부심 서서히 힘을 키우고 유도훈, 최병식, 강양택을 차례로 입학시키며 서서히 진검승부를 준비 했고, 88
학 번 정재근,이상범, 89학번 허재의 부활이란 오성식,90학번 문경은,김재훈의 입학으로 중앙大에게 드디어 대항했고. 그중 오성식은 최희암-연세大의 대항마 였다.
오성식이 누군가?
<현주엽을 마크하는 표필상을 봐라보는 오성식>
부산 중앙高 시절 스카우트 랭키 1위로 전쟁끝에 영입한 선수다. 大學 1학년때 대표팀의 부름을 받은 그다.
최감독의 기대주를 넘어 중大 ,고大 타도와 말살에 대항마로 연大의 포인트 가드였다.
환상적인 볼핸들링과 드리블,송곳같은 패싱력,전체 판을 뒤집을수있는 재치와 대담함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부상과 진로 문제로 최희암 감독과 돌아올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다.(오성식의 배신이 이상민의 탄생으로 이어지지만...)
당시 삼성,현대는 양대산맥 고~연大 지원금을 지원했고 그 돈은 빈약한 팀운영
비에 보태지고, 가장 중요한 선수 스카웃비로 쓰이게 된다.
이로 인해 최희암 감독은 오성식을 삼성전자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지원비를 받은이상 선수를 줘야하는 관행과 선례)
그러나 오성식은 정재근,표필상2m ,양형석196cm,남경원,박수호 가 주축인
SBS行을 선언..일대 큰 파장을 일으킨다. 최희암,삼성의 분노는 ......
<양형석은 정봉섭 감독이 대형 포인트 가드로 만들어 보겠다고 한 선수다. >
오성식은 큰 착각은 한다? 물론 당시에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평생 직장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SBS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맛을 것 같다고 ...
변명일수도 있게지만...아이러니하게도 프로화 이후 오성식은 SBS에게 보기좋게 팽 당한다...
學校와 최희암 감독은 노발대발~~ 오성식과 결별을 선언한다................
조동욱195cm,오세웅,김진 노쇠화, SBS-기아의 창단으로 선수 수급에 차질을 빗던 삼성전자 역시 큰 반발,분기탱천!
이 일로 인해 오성식은 연세大 4학년 때 1년 선수 자격정지을 당하고 그후 상무 제대 후 SBS 입단이 허용되었다.
스카웃 파동 이후 오성식은 예전의 천재적인 기량을 볼수 없었고 프로화 이후 부상과 용병에 빌려 은퇴해야만 했다.
강동희 스카우트
중앙大에 갈 이유도 없었고, 내가 뛸 자리도 없었다.-강동희
천재 가드들의 산실 송도高 (유희형,김동광,이충희,정덕화,서동철,홍사붕,신기성,김승현)의 강동희는 단 한번도 중大行을 생각치 않
았다. 하지만,정봉섭 중大 감독은 강동희를 오래동안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정감독은 포스트 허재를 대신할 선수로 강동희를 지목 중앙大 전성기를 계속 이끌어나갈 생각을 했고, 1차적으로 송도高 농구의 아버지이
자 정신적 지주인
故 전규삼 감독의 설득을 시작했다. 전규삼 할아버지와 합의를 끝내고 중앙大行을 선포한다.
강동희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를 않아지만 전규삼 할아버지에게 중앙大 말고 다른 學校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가 내 제자가 아니라
는 할아버지의 한마디 말에 중앙大로 마음을 굳혔다고 후일 밝힌다.<송도高 제자들은 故 전규삼 감독을 할아버지라 말하고 존경했다.>
연-고大는 파격적인 거액의 스카웃비를 제시하며 상당한 공을 들여 강동희가 중앙大를 선택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봉섭감독은 송도高 를 중앙大로 초청해 합숙하며 더욱 가까이서 눈여겨보았고 강동희를 스카우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동희에게 농구화와 농구용품들을 선물했고 어머님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연-고大와 처절한 전쟁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중앙大로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다.
제 2차 강동희 스카우트 전쟁
중앙大 4학년때 실업팀 진로 문제로 다시 언론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두 전자업계 라이벌이자 실업팀 양대 산맥 삼성-현대는 기아 왕조에 강동희가 가세한다는 생각
에 치을 떨었고 강동희 스카웃에 속된 말로 목슴을 건다는 신념으로 전쟁에 가세한다.
거액의 스카우트액과 평생 지위 보장을 내세우며 강동희와 가족들에게 공세 뿐만아니라 ,모 구
단은 APT 6채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시하며 영입하려 했지만 ,중앙大 선배들이 차례대로 입단해
계속 팀플레이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정봉섭,허재 입김도 크게 작용.... 결국 기아行...
삼성-현대 고위층은 거액+ 제시함에도 불구 강동희를 놓친것과 언론의 발표된 엄청난 스카웃비 보도 때문에 크게 격분했다고........
강동희의 가세로 기아 왕조는 드디어 완벽하게 완성되어 天下統一
<농구 대잔치 우승>
김영만 스카우트 비화
마산高 시절 센타로 이미 두각을 나타내던 김영만193cm은 고려大가 미리 입도선매 어느 大
學도 그에게 다가가지를 못했다.하지만 김영만의 의리로 인해 스카웃 시장이 또 한차례 이
변이 일어난다.고려大 박한 감독은 김영만이 마산高에서는 센터이지만 고大진학 후 포지션
을 포워드로 변경하면 크게 대성할거라 믿었고 제일 먼저 김영만 아버지와 입학 합의를 본
상태였다.신문에도 보도가 된 상태였고 김영만 자신도 고大 입학을 원한터라.........
하지만 김영만은 의리에 살고 죽는 뜨거운 피를 가진 남자였다......
<당시 마산高에는 그의 동기가 6명이었다. 김영만과 함께 동기 4명은 고려大에 진학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2명이 문제였다. 여기에서 그는 고민을 하게 된다. “만약
내가 고대를 가지 않는다면 모두 大學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도 모르게 이런 고민을
하던 그는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중앙大로 갈 의사를 밝히게 된다. 그의 집안과 이
미 안심하고 있던 고려大는 발칵 뒤집어졌다. 大學 관계자들이 마산高로 급히 내려와 學校
를 들쑤셔놓은 것은 물론이고 아버지도 감독을 만나 ‘도대체 내 아들을 어떻게 유혹했냐’며
한바탕난리를 치렀다. 그는 잠깐동안 도피 아닌 도피 생활을 해야했다. 결국 실리 보다 의리
를 택한 김영만은 중앙大의 유니폼을 입게된다--고大 포기, 중大입학 기사 내용>
언감생심 고려大行이 결정된 김영만이...행운의 주인공 정봉섭 감독은 한통의 전화<김영만의 조건>를 받고 단숨에 마산으로 직행 ..김영만을 황급히 품에 안는다. 로또 1등? 물론 나머지 6명의 깍두기들도 덤으로....
제 2차 김영만 스타우트 비화
중앙大 졸업반, 빅2 김영만,양경민193cm 이 두선수의 진로도 큰 관심 거리였다.두 선수다 모두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선택햇다. 양경민은 삼성전자로 ,김영만은 현대전자로 입장을 밝힌 상태였다.
여기서 잠깐, 왜 중앙大 패밀리 기아는 빅2에게 무관심했을까?
일단 기아는 센터 문제로 골머리 ....
기아왕조의 기둥인 한기범-김유택의 노쇠화,한양大 리바운드왕 조현일197cm의 무릎 부상,조동기198cm의 빈약한 몸싸움...
그 외 반해 김영만-양경민 자리야 허재-정덕화-강정수-정희조-추일승-천정열-이훈재191cm-고졸 루키 권종오190cm등으로
풍성해 오히려 센타 보강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유재학,정덕화 이후 처음으로 연세大 출신 박승일2m을 영입.(기아는 눈독을 들인 중大 안병익198cm의 SBS行으로 더 다급해짐>
물론 기아도 득점력 뿐만 아니라 수비력도 뛰어난 김영만에게 관심을 갖고 추파를 던진건 사실이지만 현대전자의 물량공세에 한발 물러난 상태였다. 단 정봉섭감독의 기아 선호도,김영만선수 취향<중大 의리>을 적적히 이용,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양경민은 이미 삼성行 도장을 찍은 상태였고..
<삼성전자의 레전드 故 김현준 광신상고~연세대~삼성전자>
이런 문제로 인해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양경민을 손쉽게 영입,김현준182cm,문경은과 더불어 막강 3점슛 라인을 형성했고...
박상관2m1-이창수196cm-서대성195cm-김윤호192cm-강을준191cm-강양택190cm-김진187cm-손영기188cm-김대의183cm-김승
기182cm -노기석187cm-서동철182cm 조합으로 기아-연대 타도를 준비했다.
<현대전자의 레전드 신선우:당시 아시아 최고의 센터군림 ! 1982년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의 금메달을 이끌었다.치명적인 무릎부상으로 인해 28세 젊은 나이에 은퇴! 용산고~연세대~현대전자>
반면,현대전자는 정경호2m5 영입 높이를 보강,슈퍼스타 이상민 안착으로 팀의 공격력 극대화를 꿈꾸며,조성원180cm-임근배
187cm-이익수2m3-김재훈194cm-최병식193cm-김종석193cm--유도훈178cm-김지홍187cm-김광은193cm-임달식184cm- 백전노장
이원우187cm-이지승 188cm-강인태184cm-이영주183cm를 내세워 기아-연대 타도를 준비한다.
현대전자는 김영만 영입으로 기세등등 할 태세에 또 다시 의외에 문제로 또 다시 대어를 놓치고 대성통곡......
졸업을 앞두고 대표팀에 선발된 김영만은 청운의 꿈을 품었지만 당시 정광석
대표팀 감독이 국제대회에서 자신을
홀대 출장을 시키지 않자 이에 격분...현대전자行을 포기, 선배들이 있는 기아 자동차를 선택하게 된다.
정광석 감독은 바로 현대전자 감독이기에... 어허 통재라....김영만은 기아行을 선택 ,김유택의 은퇴로 '허동택 '트리오에서 '허동
만 '트리오를 형성 마지막 기아 왕조의 황태자로 자리잡는다 .
참고로 기업은행도 더 이상의 패배를 참을수 없어 꾸준한 노력으로 알찬 선수 영입을 한다.
타 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포워드진 백전노장 이민현190cm-이민형190cm-최철권180cm-김상식182cm-김현국188cm-장일188cm
센터진은 박상욱2m-신춘범197cm--이병률196cm-장창곤195cm-김도명190cm
가드진은 최명도181cm-김영주180cm-박세홍180cm-노장 김영선-재간둥이 단신가드 정재섭 까지.....
<감독은 강호석~김동광>
또한 산업은행은 팀의 리더 장철수와 정인교를 앞세우고 강병수194cm-박권우190cm-이재호-장윤섭-박희성등이 활약했다.
<감독은 서상철~최명룡>
한국은행은 장신 名슈터 오동근과 김재득,양중철 선수가 활약,비운의 슈터 오동근은 시대와 팀을 잘못만나 대표팀이나 언론에 주목
을 받지 못한 선수.당시 신동파 이후 최고에 장신190cm 선수로 최약체 한국은행의 마지막 보류였다.
공격에서는 가드였지만 수비에서는 센터 역할까지 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아쉽게도 프로화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은행,한국은행,산업은행 해체가 되어 너무 아쉽다.
사활을 건 현주엽 스카우트
박한 감독은 전년도 피비린내나는 서장훈 스카웃 전쟁에서 대패한 후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망연자실에게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그는 연세大 복수를 맹세했고, 고려大 명예회복을 위
해 초대형 슈퍼 유망주 현주엽 선수를 잡기위해 동분서주 한다.
高校 랭킹 1~2~4등인 전희철,김병철,박준영을 영입 이후 팀을 재정비한 박한과 고려大는
바로 서장훈의 1년 후배 매직히포 현주엽196cm 영입을 위해 일전을 준비...서장훈에 이어 현
주엽까지 연세大로 진학한다면 4年 내내 높이와 힘에 밀리는 형국을 상상조차 하기 싫은,차
라리 죽는게 낳다고 생각한 박한은 운명을 건 스카웃을 위한 전의를 불태운다.
이미 휘문高 시절 서장훈-현주엽-박준영195cm-석주일190cm 멤버로 전국 高校 대회를 제패 한 것을 보았기에 더더욱 포기할수
없었다. 휘문高 7번 우승:춘계연맹전(1990,1991년), 대통령기(1992년), 쌍용기(현 고大총장기,1992년), 종별선수권대회(1990~1992
년) 등 7번의 우승
<고려大 농구부의 大父 박한>
(참고로 서장훈-현주엽의 휘문高를 그나마 대등하게 상대한 팀은 전희철-우지원을 앞세운 경복高와 홀로 고군분투하던 김병
철의 용산高 그리고 유일하게 1992년 모대회에서 휘문고를 격파한 박훈근-김수환-추승균-박규현의 부산중앙高 >
전년도 서장훈 부친이 고大 출신이라 손쉽게 영입 할거라 믿었고,거액의 스카웃비 제시,심지어 서의 부친의 골프 가방까지 들고
다니는 굴욕을 참으며 애를 써건만, 스카우트 싸움에서 대패 이후 ......와신상담 칼을 갈던 박한은 현주엽 스카우트는 자신의
자존심과 고려대의 사활을 건 전쟁이었다.
언론도 연일 현주엽의 스카웃 항로를 예의 주시하며 양대산맥 두 라이벌 大學의 스카웃 전쟁을 연일 보도한다.
<서장훈~문경은~김훈~우지원~석주일>
반면 운명의 라이벌 최희암과 연세大는 고려大 보다는 더 여유가 있었다. 포워드 라인의 자원이 워낙 풍부했기 때문이다.
우지원192cm-문경은190cm-김훈190cm-석주일190cm-신석187cm ,거기다 입학이 확정된 대형 포워드 김택훈196cm 그리고 高校무
대에서 유일하게 현주엽에게 밀리지않고 매치업한 김수환191cm의 영입으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일전을 준비한다.
<리바운드 볼 경합중인 현주엽-서장훈>
박감독은 현주엽 스카웃 전쟁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전을 준비 일단 현주엽 부친의 고려大 출신인점,大學 농구의 연세大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점,서-현의 라이벌 의식,거액 스카웃비등으로 부친,학교를 설득한다.
덤으로 휘문고 동기 전준배,김창수도 받는 조건도 제시...
박한 인터뷰 中
-- 스카우트가 가장 힘들었던 선수는 누굽니까.
<캘리포니아 특급 박재헌>
『최근들어선 , 현주엽이었어요. 그 선수들을 데려올 땐 아예 안방에 드러눕다시피해 부모들의 허락을 받았죠.』.
박한 감독은 오월동주인 서장훈과 현주엽이 라이벌 의식이 대단하고 주먹다짐까지 한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주엽에게 만약 연大에 진학한다면 서장훈의 가려 너는 두각을 나타나지 못할거라 설득한다.
결국 현주엽은 고려大 行이 결정 되었고 더불어 송도특급 신기성 ,캘리포니아 특급 박재헌2m 영입으로 고大의 사기는 욱일승천!
하지만 농구대잔치에서 번번히 서장훈,이상민,문경은,우지원,김훈을 내세운 연大에 무릎을 끊는다.
박한 감독의 연세大 복수와 말살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규섭198cm-이정래 재학 시절 드디어 연세大를 완파한다.
방성윤의 등장으로 다시 전세가 역전 됬지만,......
박한 감독이 고려大 체육부장으로 승진이후 임정면,정광석,이충희,진효준 감독등이 사령탑을 거쳐갔지만,연大 타도가 쉽지는 않았고 ,
올해 임정명 감독 재부임 이후 大學무대에서 우승을 하며 선전을 하고 있다.
실제로 현주엽은 大學 졸업 전까지 절대로 서장훈에게 兄이란 소리를 하지 않았고 ,서장훈은 대표시절 연세大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현주엽에게 과일이라도 갖다주면 불같이 화를 냈다고...
sk입단전, 현주엽은 서장훈 보다 연봉을 더 받기를 원했고 드래프트장에 나오지도 않았다.
두사람의 라이벌의식은 서장훈이 아침훈련에 참가하지 않자 현주엽도 아침훈련을 거부, 안준호 감독은 무척 난처해함.
두사람의 조합은 호흡에 불일치로 결국은 현주엽이 먼저 떠남........
<휘문고 시절 현주엽 덩크> <양대산맥 고-연대의 천재 가드 대결 신기성-이상민>
전희철
<김유택과 이민형> <김재훈과 현주엽> <강동희-유도훈>
조성원
캥거루 슈터~4쿼터의 사나이~플레이오프의 사나이~챔피언 결정전 의 사나이 란 별명을 들었던 천하의 조성원.. 그러나 과거 홍익中 시절에는 기량은 별볼일 없었고 어느 高校도 스카웃 제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팀 동료의 덕을 업고 깍두기로 홍대부高로 간 신히 진학하게 된다. 高校입학 후 엄청난 훈련과 노력으로 高3이되자 박한 고려大 감독의 스카우트 리스트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후배 이상민,노기석 등과 홍익사대부高를 강팀으로 이끌었다. 당시 이들을 지도한 감독은 열혈남아 박성근감독이다. (홍대부高~명지高~성균관大감독 역임)-과거 운동하기 싫은 高3 선수에게 성大로 보내겠다고 하면 죽기살기로 운동을 한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자신은 고大行으로 윤곽이 잡혀지만 高校 입학에 도 움을 줬던 친구들에게는 정작 어느 大學에서도 제의가 없어서 大學 진학 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성원과 그의 어머니는 명지大 진성호 감독이 친구2명을 받아주겠다는 제의에 고大行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명大行을 결정한다. 中3때 진빛을 高3때 결초보은 한다. 개인적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당시 좋은 재능을 지녔음에도 고大 로 진학 벤치를 달구었던 선수가 너무 많아, 신장과 수비력에 약점을 지닌 조성원에게는 전화의복.. 명지大시절 조성훈,정재헌194cm,윤제한193cm 등 과 맹활약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린다. 大學 졸업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고 명문팀의 제의가 없었 지만 문경은이 현대行을 포기하고 삼성전자로 입단하자 문경은에 대안으로 현대전자로 결정되었다. 이후 이상민~추승균과 환상의 호흡을 이룬다. 현대~LG~SK~KCC 큰 명성을 떨치며 06시즌 은퇴 후 국민은행(女)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김재훈-추승균-이상민-조성원> 하승진 스카우트 전쟁
최장신 센터 삼일상高 하승진이 高3이 되자 大學농구의 양대산맥 고려大~연세大는 또 한판의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하승진 아버지 하동기씨는 인터뷰: 고려大와 연세大 등 두 學校로부터 입학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 다.두 學校 모두 승진이가 입학한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더라도 NBA 진출에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는 만큼 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승진이가 속한 學校 등 주변과 상의해 승진이의 NBA 진출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곳을 선택할 것이다.승진이가 내년 6월 NBA 드래프트에 참여하더라도 올해말부터 내년 6월까지 훈 련 공백이 생기는 만큼 大學에 적을 두는게 낫다고 생각한다.아들의 특정 大學 입학을 조건으로 금품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에 가장 적극적인 이충희 감독은 하승진이 고려大로 입학할 경우한 게임을 출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NBA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적극 지원할것이라며 그 동안 연大-중앙大의 당한 설움을 갚게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高2 때 부터 하승진 영입에 공을 들였고 농구 동문들까지 후원금을 내 스카우트비를 마련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괌 전지훈련까지 포기하고 국내에 남은 이충희 감독은 자신의 운명을 건 도박을 건다.
반면 김남기 연세大감독도 행동을 개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하동기에게 하승진의 NBA 진출을 보장하는 각서를 전달~ 각서 내용은 하승진이 NBA 진출을 원할 때는 언제든지 보내주고, 국내 대회 출전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맡긴다고... 그리고 삼일상高 동료들 입학,은퇴후 연大코치직 보장을 내세웠다.
이충희와 고大는 천청병력의 소리를 듣게된다. 하승진 본인의 선택으로 연大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평상시 서장훈을 존경하 고 김동우를 좋아했고, 大學 최강 연세大에서 뛰고 쉽다는 생각을 해온터...이일로 인해 이충희 고大감독은 동문들의 비난을 들 어야 했고 다음해 해임을 당하고 만다.개인적으로 코치진 교체로 어수선한 분의기-선수들의 패백의식이 강해져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안암동 고大를 재건 하겠다던 이충희 감독이기에..더욱더 가슴이 아펐다. 고려大는 하승진에게 올인하는 바람에 차재영193cm만 건져 스카우트를 망쳤고.연세大도 마찬가지였다. 진정한 승자는 중大! 두 양댁산맥이 하승진에 집착하며 정신을 팔고있을때 장일감독은 성실한 포워드 윤호영198cm,장신가드 강병현193cm을 영입 ..중앙大 전성시대를 다시한번 이끌어 낸다. 방성윤 스카우트
내가 원래 그런식으로 스카우트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꼭 필요한 포지션 랭키 1위만 스카웃 하는 편이고 양보할때는 양보하고 그러다 보니 나를 졸<卒>로 보더라고 그래서 인정사정 보지않고 스카웃했지..사석에서 최희암 감독의 말이다. 01학번 스카우트 전쟁에서 전 포지션 랭킹1,2권 선수들을 쌀쓸이 하게된 배경은 이런 이유였다. 슈퍼 최대어 방성윤196cm- 김종완2m2 -진상원195cm-이상준193cm- 최승태191cm- 이정석185cm-김경렬까지... (진상원은 유명한 진준택감독<前고려증권>의 아들이고 휘문高 시절 방성윤과 전국대회를 제패햇다.)
우짜든 방성윤은 고려大와 치열한 전쟁을 할거라 예상했지만 최희암의 지략으로 싱거운 한판승... 허재와 현주엽의 장점을 가진 선수라 평가되어 양교는 高2때 부터 방성윤에게 깊은 관심과 구애를 하고있었다. 제16회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5년만에 우승을 이끈 슈퍼 에이스 방성윤은 연세大로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했다. 휘문高는 高校 첫 대회 후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순진한 고大측이 진짜로 기다리고 있는 사이 대회기간중 연大측이 부모의 허락까지 받아내며 미리 손을 써 개가를 올렸다.
약조만 믿고 기다림을 실천한 임정명 고大 감독은 하늘을 보며 자신의 순진함을 한탄을 했고 수많은 전쟁을 겪어본 최희암 감독 은 속전속결의 진행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랭킹 2위 대형가드 정상헌191cm의 영입전을 양보하는 척 하며 고大에게 넘겨 준다. 그러면서 고大行이 소문난 진상원을 영입하고......(고大측은 엄청 분노 ...그뒤 미친듯이 중복된 선수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자충수를 두게된다.) 또한 목소리 크고 싸움꾼 기질이 다분한 진념의 승부사 성균관大 박성근 감독
박성근 감독은 성大로 진로가 결정난 이후에 최승태의 배신~연大의 룰 위배와 매너가 드럽다며 분기탱천하자 ,최희암 감독 도 좀 미안한 구석이 있어 용산高 출신 정현준을 성대로 보내준다. 이후 최승태는 사죄했고 박감독도 미소로 화답... 고려大 역시 아픔을 뒤로 한채 초대형 가드 정상헌
고大 농구스타일이 싫다며 ..주유소로 간 정상헌의 이탈로 큰 아픔을 겪는다. 高校시절 내가 본 정상헌은 정말 대단했는데. 大學감독들도 방성윤보다는 정상헌의 성장세를 더 기대하고 두려워 했다.역대 고大감독들인 임정면,정광석,이충희까지 그를 키 우려 노력했지만...이탈과 회유..복귀와 잠적..또다시 회유와 복귀를 반복하다 사라져 잊혀지나 했지만, 다행히 05시즌 김진 동양 감독은 그의 천재적인 기량을 아쉬워 몇년간 운둥을 안한 100kg 가드를 지명..화제가 되기도. 동양~ 모비스에서 살을 빼고 결혼도 하고 지금은 상무에서 활약중이다.<고려大의 빠삐용은 야구의 이상훈,농구의 정상헌 이둘은 전설이다.> 결초보은 명지대 진학
하승진이 가장 좋아한 김동우
방성윤
하씨는 하승진이 다닐 大學校를 정하는 것보다 NBA 진출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고 입학 조건이었다. 덤벼봐
<휘문고 시절 방성윤>
<01학번 새내기 최승태, 이정석, 진상원>
이 점찍은 최승태까지 영입 득의만만... 비난은 잠시 영입으로 인해 4년은 행복하다는 스카우트 시장의 속설을 되씹으며 ....
영입으로 복수를 다짐하지만 ..
문제 해결책은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에서 4강에 들면 동료들이 大學에 진학할수 있어 열심히 뛰어지만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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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이구 눈아파!!!!!!!!!!!!
ㅋㅋㅋ
문경은 비화는 왜 삭제했니?
귀찮아서 한번에 다 올릴려구요 ㅋㅋㅋ
나만 옆이 짤리나..? ㅋㅋ
밑에 bar를 왔다갔다 하시면 보입니다 ㅋㅋㅋ
아 너무 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