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랬만에 무등산을 산행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가벼운 트래킹이나 둘레길을 걷고 있었고
가까이 살면서도 무등산 산행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오늘은 모처럼 홀가분하게 홀로 정상 산행을 하고
막걸리 라도 한사발 해야겠다.
1) 언제: 2024 년1월14일
(2) 어디 : 무등산 인왕봉
(3) 코스 : 증심사 - 장불재 - 서석대 - 인왕봉- 꼬막재 - 주차장,
(4) 거리 : 15km (5시간30분).
뜨거운 물과 사과 하나를 배낭에 담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증심사 입구로 나갔다. 예전에 무등산행를 할 때 보다 한시간 가량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등산객은 드물다. 8시 증심사 상가 지역을 지나면서 남성용 아이젠과 컵라면 한개를 사서 산행을 시작한다. 증심교에 이르러 코스를 결정해야 하는데 증심사와 당산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증심사 위 당산나무가 보고 싶었다.
당산나무 나이는 500살! 그러고 보면 이 당산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 임진년(1,592년)보다도 더 빠른셈 이다. 당산나무는 긴 세월 동안 광주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임진왜란과 조선왕조 500년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과 6.25등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힘 없는 민초들의 기도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까운 사연들의 위로가 되면서 500년을 살아 온 나무이다.증심사 계곡에서는 큰 사건이 있었다.1,977년 발생한 무등산 타잔 박흥숙사건이다.그는 영리하고 똑똑한 젊은이 였으나 가난 때문에 열쇄공으로 살면서 독학으로 사법고시 공부를 하고 틈틈히 체력를 단련하여 몸이 날렵하고 의지가 단단한 청년이였다.그해 어느날 이곳 무허가 판자촌 마을을 철거하러 온 철거반원들과 충돌하여 철거반원 4명을 사제 총과 망치로 살해한 사건이다.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무허가 마을들를 철거하면서 충분한 설득과 준비 없이 무작정 철거를 진행하다가 생긴 안타까운 사건이였다. 또한 광주는 1980년 5.18 민주항쟁이 있었는데 이런 큰 사건들을 격는 동안에도 묵도하고 서 있었으며 무등산에 오르는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쉼터를 내어 주고 시민들의 아픔을 지켜 본 큰 당산나무이다.
1월 낙엽은 떨어지고 잔가지 앙상한 당산나무를 올려다 보는데 그래도 당당한 모습이다. 당산나무 주변에는 몇년전까지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상가가 있었다.그때 산행을 하고 내려 오면서 마신 막걸리 한잔은 참으로 맛난 음료였다. 2007년 어느날 노무현대통령(제16대 2003~2008년)께서 재임중에 무등산을 오르시다 이곳에서 파전 한접시에 막걸리를 마시고 산행을 하셨었다.그후 무등산은 2013년에 2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다. 그리고 당산나무 주변의 마을은 철거가 되거나 저 아래 상가지역으로 이사를 해서 지금은 번거롭지 않다.
나는 중머리재를 지나 장불재에 오르고 쉼 없이 서석대에 오른다.산 정상부에 오르니 맑았던 하늘에 바람이 불고 어느새 하얀 구름이 서석대를 덥고 인왕봉과 천왕봉까지 감싸 버렸다.겨울산 다운 모습이다.예전에는 서석대(1,100m)까지만 등정이 허용 되었지만 지금은 인왕봉(1,1167m)까지 오를 수 있어서 인왕봉으로 향했다.무등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있어서 천왕봉은 상시 개방을 하지 않는다. 어느새 인왕봉 주변에 안개가 몰려와 멀리 조망을 못하는 것이 조금은 서운했지만 감수하고 하산을 했다.
하산은 중봉을 거쳐 동화사 터를 지나 꼬막재까지 쉼 없이 내려와 컵라면을 조리해서 먹으며 5시간만에 재대로 휴식을 했다. 그리고 상가지역으로 내려가 시끌벅적한 식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두어잔 마셨더니 부러울것 없이 행복하다.가끔은 오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산행을 하고 큰 산 기운을 받으며 적당하게 음주를 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 가는 노년의 인생을 살고 싶다. 오늘 무등산행은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고 기분좋은 일요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