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5-B코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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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에서도 다채롭고 신비로운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나는 제주도에 출장 갈 때면 공적인 일을 마무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를 더 머무르면서 올레길을 걷곤 한다.
이번에는 제주올레 15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1박2일 출장을 마치고서 15코스 종점인 고내포구로 이동했다.
고내포구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다. 포구 방파제에 나가 몰려오는 파도와 눈인사를 한다.
지난번 제주올레 16코스를 걸으며 만났던 포구라 주변풍경이 낯설지 않다.
미리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다.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할 사람은 많지 않은 듯했다.
고내포구 근처식당에서 혼자서 저녁을 먹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니 젊은 친구 한 명이 와 있다.
오늘 이곳에서 숙박할 남자는 나와 젊은 친구 둘이었다. 내 아들보다도 더 어린 친구지만 우리는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중인 준행이는 휴가기간 동안 제주도 여행을 왔단다.
“내일 여행계획은 어떻게 돼?”
“특별한 계획은 없고 근처 바다구경이나 하려고요.”
“나는 내일 올레길 걸을 텐데, 같이 갈까?”
“그러면 저도 좋지요.”
이렇게 하여 우리는 제주올레 15코스를 함께 걷기로 하였다. 문제는 날씨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자는데,
새벽부터 비바람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게 아닌가? 날이 밝아지면서 비는 그쳤지만 바람소리는 을씨년스럽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서 짐정리를 한다.
간단하게 배낭을 꾸린 후 나머지 짐은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두고 버스를 타고 제주올레 15코스 출발지인 한림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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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했던 날씨는 아침이 되자 영하의 날씨로 바뀌었고, 새벽의 비바람은 눈보라로 바뀌었다. 눈은 왔다 그치기를 반복하지만
바람만은 여전히 거세다. 15코스가 시작되는 한림항에 도착하자 포구에 수백 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폭풍주의보 때문에 바다에 나가지 못한 배들이다.
한림항은 제주도 서쪽 동중국해의 풍부한 어장에 근접하여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어업전진기지로 이용되었다.
2천 톤급 화물선의 입출항도 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큰 항구다.
그래서 한림항은 제주 서부권역 어선의 모항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피항지 기능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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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섬 하나가 떠 있는데, 바로 비양도다. 비양도는 한림읍에서 북서쪽으로 약 3km 지점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목종 5년(1002)에 분출한 화산섬으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에는 대나무 군락이 무성하여 죽도(竹島)라 불렀다. 섬 모양은 전체적으로 원형이다.
최고지점은 해발 114m의 분화구로 섬 북쪽에 솟아 있으며, 남쪽은 대체로 평탄하다.
해안선의 드나듦은 단조로우며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면적은 0.5㎢, 해안선길이는 3.15㎞이다.
비양도 연근해에서는 80여 종의 어류가 회유하며 각종 해조류가 풍부하다. 특히 옥돔·고등어·갈치·방어 등이 많이 잡히며,
자연산 소라·전복·해삼 등이 채취된다.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에 집중 분포한다. 한림항에서 비양도로 가는 배가 운항된다.
제주올레 15코스는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대합실 앞에서 시작된다.
도선대합실 앞에 있는 15코스를 알리는 간세에게 눈도장을 찍고서 해변길을 걷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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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항을 벗어나자 방파제 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거세게 몰려온다.
거센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닷가 바위에서는 흰갈매기떼가 유유자적하고 있다.
제주도의 가옥들이 거센 바람에 견디기 위해서 처마높이까지 높게 담을 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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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도로를 따라 걸으니 조그마한 대수포구에 닿는다.
대수포구에도 바람을 못이긴 소형어선들이 포구안쪽에 옹기종기 피신해있다.
대수포구에 서 있으니 비양도가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출렁거린다.
대수포구에서 수원리 마을길로 올라서니 남쪽으로 한림읍 건물들이 넓은 바다와 함께 바라보인다.
바다에는 비양도만 붕긋 솟아있을 뿐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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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수원리는 제주도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돌담과 낮은 처마를 한 가옥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과 함께 해온 팽나무 한 그루가 비바람을 견디며 예쁜 모양이 되었다. 마을주민들의 쉼터역할도 해준다.
마을주변은 비옥한 토질을 자랑하는 밭들이 형성되어 마을사람들은 바다와 밭을 오가며 일을 한다.
밭에는 겨울철이지만 월동 양배추가 활력을 잃지 않고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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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리 마을길을 지나서 제주올레 15코스는 내륙으로 통하는 A코스와 해변길을 따라가는 B코스로 나뉜다.
우리는 15-B코스를 택했다. ‘구름들’이라 불리는 이곳 들판은 구불구불 조각보 같은 모양을 한 제주도 다른 지역 밭들과 달리
반듯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있다. 사각형 모양의 밭에는 검은 현무암으로 밭담이 쌓여 있다.
밭이 반듯하니 밭 가운데를 지나는 밭길도 곡선이 아닌 직선이다.
구름들이 끝나는 지점에는 조그마한 습지가 있어 철지난 갈대가 하늘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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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를 지나 다시 해변도로를 만난다. 한림읍 귀덕리 해변이다. 바다에서는 역시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온다.
도로 아래 해변 바위에 내려가니 파도가 금방이라도 덮쳐버릴 것 같은 기세다.
눈발은 그쳤지만 잔뜩 흐린 날씨가 언제 눈보라 치는 날씨로 바뀔지 모르겠다.
올레길을 처음 걸어본다는 준행이에게 말 모양의 간세며, 순방향의 청색 화살표와 역방향의 노랑색 화살표 등도 설명해준다.
갈림길에는 방향표시가 되어 있고, 전봇대나 나뭇가지에 제주올레 청색과 노랑색 리본이 달려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한참을 가도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거야.
그럴 때는 리본이나 표지기를 만날 때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해.”
“이제 혼자서도 올레길을 걸을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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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걷는다. 평소에 젊은이들과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렇게 젊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니 내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다.
“걸으면서 하는 여행은 여유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젊은 사람답지 않게 걷기여행을 좋아하는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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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제주도 해변과 마찬가지로 해안도로변에서는 민가를 비롯하여 리조트며 게스트하우스,
펜션 같은 시설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해변에는 해운사라는 작은 절도 있어 대웅전 앞에서 반배를 한다.
길을 걷다가 책방이 있어 들러보았으나 문이 닫혀있다. 이곳 귀덕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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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해변 곳곳에 팔각정자들이 자리하여 마을사람들이나 길손들에게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방
파제로 쌓아놓은 해안도로 옆 벽에는 벽화를 산뜻하게 그려놓아 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제주한수풀해녀학교 앞쪽 바다 위 데크 다리에 마련된 구쟁기휴식처에 앉아 잠시 한숨을 돌린다.
제주도에서는 소라를 ‘구쟁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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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해녀 조각상도 해변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해변마을인 귀덕리를 지나는데 ‘제주한수풀해녀학교’가 눈길을 끈다.
바닷가에 자리를 잡은 한수풀해녀학교는 해녀들의 고령화와 어족자원의 고갈, 작업여건의 어려움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해녀문화를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주민자치 특성화사업으로 2007년도부터 시작된 이곳 해녀학교에서는 한림읍 귀덕2리 잠수회 소속해녀들이
강사가 되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녀양성교육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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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해안도로를 덮쳐버릴 것만 같은 파도는 더 이상 낭만의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성난’ 파도다.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성난 파도에 해변의 가옥들도, 돌담도 꼼짝 못하고 숨죽인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갈매기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다 바닷가에 앉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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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날씨는 눈보라로 변하여 걷기가 불편할 정도다. 커피 한 잔 생각이 났다.
마침 카페가 있어 들어갔더니 코카콜라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는 ‘콜라카페’다.
습관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려는데, 다른 카페에서는 맛볼 수 없는 ‘COFFEE & COKE’를 권한다.
물론 젊은 준행이는 주저없이 ‘COFFEE & COKE’를 주문한다. 나도 주문을 변경하여 이 가게의 주메뉴를 시킨다.
카페 앞쪽으로 4차선 서일주도로가 지나고 있어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온다.
애월쪽 여행시 젊은이들이 많이 들리는 코스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겠다.
주문한 콜라커피를 마셔보니 콜라에 에스프레소를 브렌딩하여 콜라맛과 커피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우리는 콜라커피와 함께 추위를 피하면서 여유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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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나오니 주변 해안에 ‘영등할망 신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영등할망 신화에 나오는
영등할망과 영등하르방, 영등대왕의 조각상이 서 있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1일 복덕개포구를 통해
제주에 왔다가 영등바람을 뿌리고 2월 15일에 제주를 떠나는 바람의 신이다.
영등할망이 가져온 바람은 겨울과 봄 사이에 제주에 불어오는 북서계절풍이다.
영등나라는 지구의 북쪽 끝 시베리아에 있는데, 여기엔 추위와 함께 온갖 바람의 씨를 만드는 영등하르방이 산다.
영등하르방은 2월 초하루 남방국 제주도를 찾아가는 영등할망의 바람주머니에 오곡의 씨앗과 봄 꽃씨를 담아주는 신이다.
영등대왕은 영등할망이 영등바람을 뿌리며 제주의 새봄을 준비하는 동안 영등나라의 긴 겨울을 지키는 외로운 대왕이다.
이처럼 영등할망 신화는 영등할망이 영등하르방이 준비해준 봄바람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제주도의 봄을 가져다준다는 신화다.
영등할망이 찾아오는 시기에 이곳 귀덕리를 비롯하여 제주시 칠머리당에서도 영등제를 지낸다.
특히 칠머리당 영등제는 제주도에서 행하는 가장 큰 굿의 하나라고 한다.
용천수가 나오는 샘물 옆에는 영등할망의 딸 조각상도 있다.
영등할망이 딸과 함께 제주에 오면 풍요로운 해가 되고, 성깔이 나쁜 며느리를 데려오면 흉작이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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