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사례: 상처를 기억하는 몸
1)프로그램 적용
[발견]
D는 40대 후반의 전문직 여성이다.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고 싶어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D는 몸이 너무 마르고 어깨가 많이 굽어 있었다.
처음 신체 이완을 하고 바디 스캔을 하는 동안 D는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몸이 떨렸지만 당겨지자 편안해졌고 몸이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신체 각 부위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떠오르는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짓는데 '구불구불, 둥글둥글, 뻗어감, 불안함, 기대감, 복잡함, 새로움'이란 단어들이 떠올랐고 '부드러움과 떨림이 감지되고 불안함과 떨림이 느껴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두려워 매번 반복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는 자신을 다시 생각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픈 마음을 표현해 보았다'라고 했다.
[직면]
이 그림 앞에서 조각상을 만들어 보라고 하자 D는 팔이 나뭇가지인듯 팔을 들고 나무처럼 섰다. 그러고는 조금 뒤 움직여 보라고 하자 두 팔을 올리고 선 상태에서 손만 움직였다. 마치 커다란 나무에 나뭇잎만 천천히 팔랑거리듯. 한참 후에 팔을 조금 자유롭게 그러나 상하로만 움직였다. 발은 한 발자국도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동작과 움직임을 다할 때까지 그러고 있다가 잠시 기지개를 켜듯 하더니 종이에 다가가 '편안함, 설렘'이라 적었다. 나는 그림과 새로운 단어들이 어울리도록 충분히 움직여 보라고 했다. D는 한참을 그림만 응시하면서 서 있다가 아주 천천히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올려 잡았다가 다시 아주 천천히 내려놓았다.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었다. 다시 두 팔을 잡고 앞으로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그리고 다시 부동자세. 나는 걱정이 되어 뒤에 있다가 옆으로 가보았다. 눈을 꼭 감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가슴께에 꽉 쥐고 있었다. 감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뒤로 물러났다.
D는 한참을 두 손을 가슴께 그러안고 서 있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다시 일어나서 두 팔을 위로 올리고 마치 나뭇잎이 팔랑이듯 팔목 부위만 움직이는 동작을 계속했다. 다리도 몸통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팔만 사용했다. 그렇게 조금 움직이더니 팔짱을 끼었다기보다 양쪽 어깨와 팔꿈치 중간쯤을 꼭 그러안고 그림을 붙인 벽 앞뒤를 계속 오갔다. 다른 사람들이 모든 동작을 마칠 때까지 계속 그렇게 앞뒤로 오가다가 가만히 그림을 응시했다. 그러다 조금씩 뒷걸음질 쳐서 나오다가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는데 손으로 목을 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서성이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나는 시간도 너무 많이 흘렀고, D의 상태가 걱정되어 괜찮은지, 계속하고 싶은지, 다음 시간에 계속해도 되겠는지 물어보았다. 괜찮다고 다음에 하자고 해서 자리로 같이 왔다.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D는 처음 조각상 동작에서 몸이 딱딱해짐과 불안을 느꼈고, 낯선 경험으로 불안하지만 기대도 되었다고 했다. 동작을 이어가면서는 몸이 떨리고 편안함과 불안감 두려움을 느꼈고, 무엇인가 감춰진 '나'가 소용돌이에 빠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편안함, 설레임'이란 단어를 추가했는데 이 단어들은 '조각상은 떨리고 딱딱함을 느끼게 했는데 동작을 취하고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뭔지 모르는 불안함이 다시 느껴졌다'라고 한다. D는 편안함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D는 자신의 동작과 움직임에 대해 "다가가고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천천히 갈팡질팡하며 걸음. 가슴속에 뭉쳐져 있는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한다"라고 하면서 해소의 동작을 찾지 못했는데 "내 안에 감춰진 무언가가 너무 똘똘 뭉쳐 있어 접근만 시도했다"라고 한다. 그리고 잠시 앉아 있다가 다음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구불구불한 선들의 꼬임, 복잡함'을 나타내는 "복잡하고 똘똘 감춰진 나"이다. 이 두 번째 그림을 앞에 붙이고 동작과 움직임으로 표현하라고 하자 D는 두 팔을 가슴에 그러안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조금 움직여서 작은 원을 그리다가 점차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거의 10여 분을 그러다가 그림을 떼어내서 자리로 돌아왔다. 지쳐서 못하겠다고 한다. 무엇에 지치냐고 묻자 "내가 왜 이러고 살지? 라고 생각하는 것에 지쳤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살면 좋겠다. 그림을 보고 동작을 하면서 '아픔과 통증이 그리고 지치고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지난 일들 이 떠오르면서 그때의 아픔들이 가슴속에 똘똘 엉켜 내 몸을 돌아다니는 것 같아 힘들다.' 또한 '내 아픔을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또 올리다 보니 이것들이 뒤엉켜버렸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잘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D가 자리에서 빙빙 돈 것은 자신의 강박적 사고와 행동이 일정 패턴을 못 벗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흑백논리의 강박적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불안감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리면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늘 불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잘 알고 있으나 그 사고와 행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D는 잘 알고 있는 것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증상이 이차적 이익을 위한 발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여기서 지금, 이 순간의 기분과 감정들을 다시 이미지로 표현해 보자고 했다.
이 그림은 비난받을까 봐 자신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후회하는 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세션 내내 이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이 주는 불안, 그로 인한 강박적 사고와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무한 반복적 대화를 어딘가에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개입을 했다. 그림을 들고 D와 함께 구석으로 갔다. 두 개의 그림 중 찢어버리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자 둘 다 찢어버리고 싶다고 해서 찢어보라고 했다.
머뭇거리던 D는 아주 조심스레 종이를 찢는다. 아니 종이를 찢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좀 더 힘껏 찢어보라 했지만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찢었다. 아주 한참이 걸려서 겨우 다 찢었다. 조각들을 모아 하늘에 날려보라 했지만 역시 머뭇머뭇하며 찢어진 종이 쪼가리조차 제대로 날리질 못했다. 조각들을 모아 바닥에 던져보라고 하자 살살 뿌려댔다.
나는 조각들을 모아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보라 했지만, 전혀 힘이 실리질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종이를 찢고 던지는 동작이 감정적으로는 후련함과 편안함을 주었고, 표현하지 못했던 상처를 겉으로 표현하게 되어 좋았다고 한다. 이는 상처에서 해방되어 나 자신을 찾아가려는 시도이며 상처 도려내기처럼 생각된다고 했다.
내가 종잇조각들을 모아 눈싸움하듯 D에게 힘껏 던지기를 반복하자 D의 던지기에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던지면서 요즘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묻자 업무 부담이 과중한데도 거절을 못 해서 생기는 많은 일이 힘들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 했지만 아무 말도 못한다. 나는 '너무 일이 많아 힘들어서 못하겠어요'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라 했고, D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왜 일을 못하겠느냐고 묻자 '너무 힘들어요'라고 또 속삭였고, '뭐가 힘드냐'고 하자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대답했다. 나는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D는 "나 좀 놔둬!!"라고 말하며 종잇조각들을 허공에 한참 던졌다. 실컷 던지고 소리 지르더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멈추고 나를 바라보다가 바닥을 청소하려고 하기에 놔두고 앉으라고 했다. 종이를 주면서 지금의 몸의 상태와 기분이나 느낌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내가 종잇조각들을 모아 눈싸움하듯 D에게 힘껏 던지기를 반복하자 D의 던지기에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던지면서 요즘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묻자 업무 부담이 과중한데도 거절을 못 해서 생기는 많은 일이 힘들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 했지만 아무 말도 못한다. 나는 '너무 일이 많아 힘들어서 못하겠어요'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라 했고, D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왜 일을 못하겠느냐고 묻자 '너무 힘들어요'라고 또 속삭였고, '뭐가 힘드냐'고 하자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대답했다. 나는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D는 "나 좀 놔둬!!"라고 말하며 종잇조각들을 허공에 한참 던졌다. 실컷 던지고 소리 지르더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멈추고 나를 바라보다가 바닥을 청소하려고 하기에 놔두고 앉으라고 했다. 종이를 주면서 지금의 몸의 상태와 기분이나 느낌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처음으로 구불거리거나 꼬이지 않은 선이 나왔다. '선, 편안함, 후련함, 평온'이라 쓰고 '잠깐의 평온해진 마음'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복잡하게 얽혀서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상처를 마음속에서 꺼내 도려내는 시도가 잠시나마 평온함을 준 것 같다고 한다. 잠깐이 어떤 의미냐고 묻자 지금은 평온하지만, 곧 불안이 반복될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고 한다. 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하던 강박적 사고와 행동 패턴을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의 평안함이 오래가지 않고 또 다른 무엇으로 바뀌리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D는 직면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마주했고 이 질문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D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가진 문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 라고 생각하는 것에 지쳤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살면 좋겠다.
복잡하게 얽혀서 자신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상처를 마음속에서 꺼내 도려내는 시도가 잠시나마 평온함을 준 것 같다고 한다. 잠깐이 어떤 의미냐고 묻자 지금은 평온하지만, 곧 불안이 반복될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고 한다. 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하던 강박적 사고와 행동 패턴을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의 평안함이 오래가지 않고 또 다른 무엇으로 바뀌리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D는 직면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마주했고 이 질문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D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가진 문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 라고 생각하는 것에 지쳤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살면 좋겠다.
지난날의 아픔들이 가슴속에 똘똘 엉켜 내 몸을 돌아다니는 것 같아 힘든데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내 안에 쌓아놓다가 보니 이것들이 뒤엉켜버렸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 지나치게 잘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더욱 힘든 것은 늘 도돌이표로 되돌아오는 대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다. '내가 왜 이러지!‘
D는 해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직면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직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D는 조금이라도 해소가 이뤄지면 바로 "잠깐, 잠시나마" 이루어진 것이라고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해소를 심화시키거나 확장하려는 의사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떤 신념이 모든 변화를 부정하게 만들거나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강박증이 어떤 이차적 이득을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연구자는 D가 자주 쓰던 말들 즉, '지난날의 일들, 가슴속에 똘똘 엉켜, 내 아픔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또 올려 뒤엉킨, 감춰진 나' 이런 말들이 과거의 어떤 기억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는 현상들 즉 해소하는 신체 동작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D는 '찾지 못하겠다. 내 안에 감춰진 무언가가 너무 똘똘 뭉쳐져 있어 접근만 시도'하다 말았다고 했다. "가슴속에 뭉쳐져서 내 몸을 돌아다니며 나를 공격하는 것 같은 감춰진 나 자체가 쌓여 있는 상처인가"라 고 질문을 했다. D는 "강박 같은 것들이 그런 상처들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연구자는 "상처의 내용이 뭔지 혹시 알고 있어요?" "가족관계보다는 외부 사람들과의 갈등 같은 것?" "상처와 연관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떤 것이에요?" "음...초등학교 때 친하던 친구가 어느 순간 저를 멀리 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음…. 또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벌을 주셨는데…. 친구한테 장난쳤다고…. 벽에 두고 문으로 가두어 버리셨어요…. 그래서 어두운 게 무서워요. 그래서 소극적인 아이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드러나지 않는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소한 것에 너무 예민해서 비난을 많이 받는다고 이야기도 하고 자신이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난 것일까 걱정이나 고민이 든다는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7살 무렵 발생했던 트라우마틱한 사고에 대한 기억을 그야말로 갑자기 풀어 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하면서 울기 시작해서 이야기를 마치고도 쉽게 울음을 그치질 못했다. 점점 등이 굽고 어깨가 안으로 모였다. 시간이 좀 흐르고 진정이 된 후 그 이야기를 할 때 몸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냐고 물었고 가슴 언저리에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야기할 때 어깨가 많이 안으로 굽어지는 것이 보인다고, 평소에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데 혹시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느껴지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그냥 떨린다고 대답했다. 혹시 지금 그림을 그릴 수 있겠냐고 묻자 망설였다. 무엇이든 외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그림과 몸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는데 사고 당시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이때 어떻게 하고 싶었어요?" "도망가고 싶었어요."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들이 이것과 연관된 것들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몸 안을 돌아다니며 괴롭히던 것들이 없는 자신을 원했지만 잘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강박증 같은 것들이 싫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않는 게 싫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안 되는 내가 미워요? 불쌍하진 않아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어요. 넌 왜 그러니? 그것밖에 안 되니? 내가 무엇을 못 했을 때,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해도 딛고 일어서야지…. 그런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해요." "저한테는 그 말들이 그 사건 당시 아무것도 못한 그 어린아이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니. 이런 게 아니라…."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죠...생각나면 눌러 놓고 지우려 하고 올라오면 누르고...그렇게 살려고 애썼겠어요." "네...지금 생각하면 그때 거기에 가지 말걸...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하죠. 너무 어리니까." "지금도 어떤 상황이 돼서 누군가 미우면 겉으로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내 속으로만 막 그 사람한테 얘기해요. 그게 너무 익숙해요…. 그래서 얘기해 보세요 그러면 얘기가 안 나와요...저 자신에게만 끊임없이 얘기해요. 그게 너무 익숙해요..."
우리는 다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몸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림을 몸으로 표현해 볼 수 있겠는지 물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움직임을 시작해 보면 무엇인가가 나올 것이고 그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하자 그러겠다고 했다. D는 그림을 벽에 붙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구석에 가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우는 듯하다가 돌아 일어나서 벽 모서리에 얼굴을 묻고 서 있더니 주저앉아 그림 있는 곳까지 무릎걸음으로 가는데 눈을 감은 채로 얼굴은 계속 벽에 붙어 있다.
그림 바로 밑에서 잠시 머물다가 계속 무릎걸음으로 손은 벽을 더듬으며 옆으로 가다가 일어나서 벽을 등지고 다시 왔던 방향으로 한참을 더듬어 가다가 벽을 보고 다시 그림 쪽으로 더듬으며 온다. 그러다가 멈춰 서더니 벽을 밀기 시작했다. 벽을 밀다가 주먹으로 치기도 하면서 6분 정도를 계속 밀어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멈추고는 어색한 듯,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동작을 마치고 나면, 그 동작이 감정적인 무엇을 남기면 늘 어색해한다. 아마 동작에서 야기된 감정들을 느끼거나 머무르거나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의 소화불량 때문일 것이다. 이 동작의 의미는 '자신의 마음속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과거 상처들을 거부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해소를 하고 싶었으나 거부하고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과 의문들이 뒤엉키며 해소되지 못하고 꼬이는 것 같아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속 혼란에 지쳐 해소가 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 그림을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없애버리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없애버릴까를 고민하다가 덮어버릴 것을 찾기 시작했다. 종이로 덮으려다가 찰흙으로 덮어버리기로 했다. 도와드릴까요? 물었더니 혼자 하겠다고 대답했다. 열심히 덮어버리고 제목을 '아픈 기억과의 이별'이라 했다. "이별 잘할 수 있겠어요?" 했더니 "네"라고 대답한다. "이별을 방해하는 것이 혹시 생길 수도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저 아닐까요" 한다. "선생님의 무엇이요?" "글쎄요...아픈 기억을 꼭꼭 마음 속에 감춰두고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강박적인 행동들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지만...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내가 방해한다는 거라 말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자신이 자신의 평화를 방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는 듯했다.
"선생님은 작업으로 잠시 평화로워지면 바로 뒤에 잠시, 잠깐 동안의 평화라는 말을 잘 붙이는데 보통은 이러한 평화를 발견하면 이를 유지하려 하는데 선생님은 너무 좀 당연하게 이것은 잠깐의 것이고 나는 다시 혼란스러워질 거라고 믿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어요. 약간 무의식적 신념 같기도 하고…. 선생님은 영원히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그런 신념이나 생각 이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제 질문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너무 변하는 게 없어서 확실해서요" "변화를 본인이 원치 않는 것은 아닐 텐데 너무 표정이 확신에 차 보여서 제가 좀 혼란스러워서요…. 자기도 모르게 드는 생각일 수도 있고…. 그건 본인도 알 수 없을 테고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내가 변화되면 그런 나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내가 충분히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내가 변하면 나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그건 그때 닥쳐서 생각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맞는 말인데 거기서 불안감이 또 생기거든요. 내가 그게(변화) 닥쳤을 때까지 생각을 안 해야 한다는 게...아무것도 내가 할 수 없다는 게 두려운 거죠." "아.. 그 변화의 날이 몇 월 며칠 몇 시에 갑자기 오나요?" "그건 아니죠." 또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몸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D를 일으켜 세우고 양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아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동작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갑자기 자신이 변한 것 같아 통제가 안 돼서 두렵고 불안하냐"고 질문했다.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손의 감촉, 움직이는 다리, 몸의 움직임들이 느껴지나? 통제가 되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의 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상상할 수 없는 내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일 것"이라고 공감해 주었다.
변화한다는 것이 외계에서 툭 떨어진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연결된 나, 내 몸으로 존재의 연속성 속에 존재하는 나, 나를 바라보고 통제할 수 있는 지금, 여기의 나, 그 매 순간의 내가 쌓여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일 뿐, 내가 어디서 변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편지 쓰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안에 감춰진 D야!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반복된 시계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한심하다 여겨 스스로 일을 찾아 헤매고 있어. 마음을 좀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어. 완벽하지 않으니 조금씩 실수도 할 수 있고 놓치고 갈 때도 있는 거야. 넌 너 자신에게 너무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니?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어. 지나치게 생각하다 보면 현재를 소홀하게 보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미래도 좋지 않을 거야. 현재의 너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생각 속에 갇혀 있는 네 자신에게서 벗어나 보려고 노력해보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려놓도록 해보자.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변화를 두려워만 하지 말자. 한 걸음씩 달라지려고 노력해보자. 그러다 보면 달라져 있는 네가 서 있을 거야. 넌 할 수 있어!
본 세션들은 예정대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D의 변화를 위한 여정은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만남은 집단이고 프로그램도 끝나지만 차후 계속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제안했으나 D는 거절했다.
<심신 통합예술치료의 치유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 민주원 용인대학교 대학원 예술치료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