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절
2015년 7월 5일 / 맥추감사절 / 신명기 16:9-12(참고 출 23:16, 잠 3:9-10, 시 50:22-23)
■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으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는 인간적으로 볼 때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헬렌 켈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받은 것이라곤 삼중(三重)의 고통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눈과 들을 수 없는 귀,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없는 것에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것과 자기가 받은 것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늘 속이 좋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자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 사모님은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이 개척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인 목사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하나님에 대한 원망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학대학 학장님을 만났는데, 학장님이 묻습니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목사님은 형편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이따가 집에 들어갈 때 노트를 한 권 사서 사모님에게 감사할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하지만 목사님이 방을 나가고 한참 뒤에 사모님은 문득 생각이 나서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한 두 줄씩 적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 힘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진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그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경이 감사할 것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에 ‘노랫말 연구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여기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가수 중에 슬픈 노래나, 비관적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일찍 죽거나, 끝이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수 남인수씨는 1962년에 ‘눈감아 드리오리’라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41세의 한창 나이에 그가 부른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 가수 이난영씨는 ‘목포의 눈물’을 불렀는데 그 가사처럼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 49세에 죽었습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가수 차중낙씨는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는데 찬 바람이 부는 1968년 가을, 29세의 나이에 뇌의 염증이 생겨서 낙엽 따라 가버렸습니다. / 가수 김정호씨는 ‘님’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가사가 ‘간다 간다 나는 간다’였는데, 그 가사처럼 33세의 젊은 나이에 정말 가버렸습니다.
반면 가수 송대관씨는 ‘쨍하고 해뜰 날’을 불렀는데 그 후 그는 인생이 역전되어 잘 산 적이 있습니다. 비록 가요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형편이 자신들이 부른 노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찬송을 입에 달고 산다면 우리의 형편이 어떻게 될 것입니까? 불평을 달고 산 사람은 불평으로 인생을 반면 감사찬송을 달고 산 사람은 감사한 일들이 많아 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6 이하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18절 이하에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고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 쉬지 않고 깨어 기도하는 생활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의 감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 감사절조차도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감사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 박사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척추암 3기였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스탠리 씨. 병이 다 나았나요?” “네, 보시다시피 이렇게 병이 다 나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병이 나았습니까? 좋은 의사를 만났나요? 아니면 특별한 치료법이라도 생겼나요?” “예! 저는 운 좋게도 아주 좋은 의사를 만났습니다. 또한 특별한 치료법을 적용 받기도 했구요.” “그래요? 그 의사는 누구고 어떤 치료 방법이었나요?” “예! 제 주치의는 하나님이셨고, 치료법은 ‘감사’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만 했습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암세포는 없어졌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미국의 정신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치료 보다는 소위 ‘감사 치유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감사한 일들은 무엇일까를 찾아내게 하고 감사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물치료보다도 이 감사 치유법이 훨씬 더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 치료법은 단지 정신과적인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탠리 탠’의 경우와 같이 육체의 질병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 한국교회는 대체로 1년에 2번씩 걸쳐서 특별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 하나는 가을에 드리는 추수감사절이고 또 하나는 오늘 특별히 감사주일로 예배를 드리는 맥추감사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감사하고, 쉬지 말고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감사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살다보면 불평하고 짜증내고 더 적극적으로 분내고 원수를 맺고 사는 시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1년 중 오늘을 특별히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크게 3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출 23:16 / 너희가 밭에 씨 뿌리고 애써 가꾸어 농사 지은 것 가운데에서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맥추절(오순절)을 지켜라. 또한 너희가 한 해 동안 애써 농사 지은 것을 연말에 거두어들이는 추수절(초막절, 장막절)을 지켜라.
❶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입니다. 애국에서 430년 간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건져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가 호락호락 모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놓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마지막 그 열 번째 재앙이 장자의 죽음인데, 그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에 발랐고 죽음의 신은 그 문설주의 피를 보고 넘어가 그 집은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그 피를 본 천사가 유월(踰越-넘어뛰었다)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뛰어 넘어가는 절기’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집에는 죽음의 신이 들어가서 장자를 죽이고 제일 먼저 난 짐승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애굽 백성들의 집에서는 통곡 소리가 났지만, 고센 땅에 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찬양이 넘쳤습니다. 이로 인해 바로 왕은 이스라엘을 풀어주었습니다.
❷ 맥추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별명이 많습니다. 맥추절(麥秋節), 칠칠절(七七節), 오순절(五旬節), 초실절(初實節)이라고도 합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 후 7주일에 지키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또 일곱에 일곱을 곱하면 49일 그 다음의 50일째 드리는 절기라고 해서 오순절입니다. 초실절이라 함은 새 땅에 들어가서 농사하여 거둔 곡식으로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라 하여 초실절입니다.
❸ 수장(收藏)절입니다. 장막절이라고도 하며 1년의 모든 농사를 다 마무리하여 저장을 마치고 드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이 절기를 추수감사절로 드립니다.
1. 맥추절의 유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50일째 되던 날, 시내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신 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우리가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3:16에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키라’는 말은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맥추절은 첫 곡식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감사절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절기입니다. 보리추수를 할 때 첫 단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을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레 23장).
▶ 맥추절은 첫 곡식에 대한 감사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인류를 대표해서 성도가 지킬 십계명을 받은 날이 바로 맥추절입니다. 우리나라 7월 17일은 제헌절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제정한 날입니다. 나라의 헌법을 공포한 제헌절은 그 나라가 독립국이라는 것은 증명하는 것처럼, 십계명을 하나님이 주신 것은 ‘너희는 나의 택한 천국 백성’임을 증명해 주는 귀한 절기입니다.
▶ 맥추절을 신약에서 주로 오순절이라 합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120여명의 성도가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아 베드로가 복음을 증거하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남으로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맥추절의 또 다른 이름이 ‘오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날, 즉 신약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12제자들과 함께 모인 120여명의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분부하셨습니다. 왜 예루살렘을 왜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❶ 예루살렘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장소입니다(대하 3:1). 창세기 22:2, 14절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곳은 구약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올라가던 모리아 산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이삭의 번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먼저 보여주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진리의 중심지로 신약교회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주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곳이며, 성령강림이 임하신 장소요 신약교회의 모체인 예루살렘의 교회가 탄생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❷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곳곳에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 / 그러면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다른 돕는 자를 너희에게 보내 너희와 영원히 같이 계시게 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 기도함으로 보혜사 성령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성령충만을 받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행 2:1-3 /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지 일곱 주간이 지난 오순절이었다. 신도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이 휘몰아오는 듯한 소리가 그들이 모여 있는 온 집안으로 울려 퍼졌다. 3) 그리고 불길이 혀처럼 갈라져 나타나서 각 사람 위에 머물렀다.).
2. 오늘 우리는 감사절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시 50:23 / 내게 감사제사 바치는 이는 나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이니 올바른 길 따라가는 그에게 하나님인 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리라.
감사란 무엇입니까? 감사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은혜를 주신 분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한문은 느낄 감(感)자에 사례할 사(謝)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은혜를 주신 분에게 사례하는 것을 말합니다.
1. 감사는 ‘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시 100:4 / 고마운 마음으로 주님의 성전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하면서 주님의 성전뜰로 나아가거라. 고마워라 주께 감사드려라. 주님을 찬양하여라(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에서 ‘그 문’은 하나님께서 계신 그 궁정의 문입니다. 승리가 있고 응답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9에서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에 들어가는 조건이 감사하므로 그 문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key를 사용하지 않고는 그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2.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 믿음이 식어지면 마음속에 무엇이 싹틉니까? 원망과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들은 감사의 싹을 자르는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며 삽니다. 믿음이 식어진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삽시다.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기뻐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믿음을 키우십시다.
3. 감사하는 마음은 ‘복 받은 마음’입니다. / 감사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아무나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 오래 전에 미국의 한 젊은이가 청년답지 않게 감사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감사가 살아지고 원망과 근심 속에 절망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늘 상 없는 다리 한쪽만 생각하며 살자니 앞날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이 지점이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사람은 없어진 다리에 집착합니다. 그러는 사이 남이 있는 다른 다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이 어느 날부터인가 눈이 뜨이면서 다리 하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없어진 다리 대신 남아있는 다리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 그 젊은이는 다리가 하나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고무다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청년은 남은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 다리를 가지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전도하다가 식인종 떼를 만났습니다. 식인종들이 백인선교사를 보더니 ‘야! 오늘은 맛있는 식사거리가 생겼다.’고 칼을 들고 달려듭니다. 이때 이 선교사가 고무다리를 한쪽을 던져 주면서 ‘이것부터 먹어라’고 했습니다. 식인종들이 고무다리를 아무리 씹어 봐야 씹히지 않습니다. 그때 추장이 소리치기를 ‘저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외치면서 손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식인종까지도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했다는 선교사화입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의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을 깨닫고 더욱 더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 마음을 누가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축복 받은 마음입니다.
4.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이는 마음’입니다. / 확실히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감사하는 곳에는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스펄전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것이고 /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가, 차도 있다는 것이고 /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 온 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 모임을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 나에게 불만을 토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래도 내게 친구로 가까이 있음이 아니던가요?
모든 일에 원망 불평 하지 아니하고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5. 감사의 조건은 ‘찾아 만드는 사람의 것’입니다. / 저절로 내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를 바라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감사는 점점 가난해지고 결국엔 아무 것도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감사는 감사할 조건을 찾습니다. 그렇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부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뜻도 그런 것입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다 말하는 것인데, 눈물 날 일에 어떻게 감사하고, 가슴 아픈 일에 어찌 감사할 마음이 생겨나겠습니까? 그러나 그럴지라도 실패한 그 자리에서 감사할 일을 더듬어 찾으라는 말씀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방울이 감사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디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 복음성가에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란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의 배경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곡가 김석균 씨는 뇌성마비 장애자 한 자매와 여러 해 교제했습니다. 한번은 그 자매로부터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습니다.
뇌성마비로 고생하면서도 가난한 데다 부모님이 믿지 않아서 너무 힘이 들었답니다. 어느 날 힘들어 많이 울며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자기에게 “딸아 네 모습이 너무 아름답구나.” 하시더랍니다.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몰랐답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야단을 맞고 한참을 울다가 보니 그래도 엄마가 밥상을 차려놓고 나갔더랍니다. 엄마의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답니다. “하나님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도 해 드리지 못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찬밥이라도 차려주셨어요. 나는 엄마에게 옷 한 벌도 못해드렸는데 엄마는 이렇게 발가벗지 않게 해 주셨어요. 그 은혜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세요...”
이 편지를 받고 감동해서 위로의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를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입니다.
♬ 1절 :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뒷편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2절 :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후렴>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고난으로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 안에 숨겨진 은혜를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감사하십시오.
6. 감사는 또 감사를 낳습니다. / 감사는 감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감사엔 약속이 있고, 감사는 또 감사를 낳습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심는 자는 분명히 감사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나 불평을 심는 사람은 불평을 거두게 하십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영적인 법칙입니다.
혹 청천 벼락같은 절망의 선포를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열심히 일했는데 퇴직을 당했습니까? 기도하면서 시작했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절망의 그늘에서 한없이 울었습니까? 그럴지라도 믿음만은 빼앗기지 마십시오. 믿음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며, 믿음 안에서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반면 믿음 안에 흐르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요, 좌절은 좌절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성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허락하셨으니 분명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 어느 날 한 직원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만 공장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공장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하고, 사장은 잿더미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그의 아내가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울고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길로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강대상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지난 6년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톱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이제 남은 것은 다 타버린 공장뿐입니다. 이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남편은 잿더미 위에서 울고 아내는 성전에서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울면서 기도하던 아내는 문득 “그래도 감사하지, 남편이 살아 있는 것도 감사하고, 우리가 가족이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 …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절망할 이유가 뭐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장이 불 탄 것도 감사합니다!”며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집에 남아 있던 돈을 챙겨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공장이 불탔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회 성도들과 친지와 주위 분들이 여기저기서 모금을 해주어 다시 공장을 크게 짓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교회에 출석하면서 집사가 되었고, 새 공장에서 사업이 잘 되어 직원이 수백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차량봉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인승 승합차를 구입하여 매 예배시간마다 교인들을 태우고 다녔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축복에 축복을 주셔서 좋은 집도 장만하고 공장도 날로 번창하여 ‘삼양가구사’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더욱 넘치게 받게 된 것입니다. 위기에 빠졌을 때 슬퍼하고 절망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비참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울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울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동안 은혜를 받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복과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3. 감사절을 지킬 때 주어지는 복이 무엇입니까?
출 23:25 /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겨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에게 먹을 양식과 너희가 마실 물 걱정을 하지 않도록 복을 내리리라.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리라.
1.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려 주리라!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은 양식과 물입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2. 너희 중에 병을 제하여 주리라! 건강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가정에 있는 질병을 제하고, 내 속에 있는 질병을 제하고, 언제나 강한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도록 축복해 주시리라! 아기를 소원해도 얻지 못한 이들에게 잉태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지만, 일반적으로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강하게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4. 지경이 넓어지는 복을 받게 됩니다.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출 34:24),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출 23:31)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가나안의 경계를 말씀해 주신 것인데,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겠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맥추절을 지키면 가나안의 넓은 지경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5. 안전하게 보호해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 주시겠다’(출 34:24)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경을 넓혀 주시는 복도 중요하지만, 그 지경을 원수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를 받는 복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4. 맥추절은 ‘계속’의 의미가 있습니다.
맥추절은 7주간 동안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단 한번으로, 한번의 형식을 차림으로, 한번의 예배로 끝나는 절기가 아니라 7주간 동안이나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에서 새로운 맥추절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맥추절은 단 한번의 어떤 행위로 끝나는 절기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계속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첫 열매의 신앙’도 계속되어야 하고, ‘감사의 생활’도 계속되어야 하고, ‘헌신의 자세’도 계속되어야 하며, ‘봉사의 마음’도 변지 않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이 계속되는 절기가 바로 맥추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끈질기게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들에게 임하는 복도 계속되어야 하고, 교회의 부흥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감사를 계속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매일의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스펄젼은 40세 이후부터 관절염의 일종인 통풍 때문에 몹시 시달린 사람입니다. 지금처럼 아스피린이나 혹은 진통제가 발달해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통풍 때문에 기동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믿음이 좋은 교회 신자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에 스펄젼이 대답하기를 “예, 감사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이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자는 조용하지만 그러나 무게 있는 말로 이렇게 스펄젼 목사에게 충고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몸이 아플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스펄젼은 참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고 합니다.
▣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성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성공입니까? 권세를 누렸다고 성공입니까? 그럴 수가 있겠지요. 일시적인 것이지만… . 그보다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또 감사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느냐?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메타라고 생각합니다.
■ 여유가 있는 어느 여 집사님이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갈아입고 보니 구두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두가 집에 많이 있지만 구두를 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구두점을 돌아 다녀도 맘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맘에 드는 구두가 없지?” 투덜거리면서 서울역 광장을 지나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양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휠체어에 의지한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찬양을 부릅니다. 유심히 보았더니 그 사람은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리가 없어서, 신발을 신을 수도 없는 저 사람은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나는 구두가 맘에 안 든다고 그 많은 구두를 놔두고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다니 ... 진짜 한심한 사람이 바로 나로구나.” 그래서 구두를 사려고 했던 돈을 그 사람에게 모두 주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도 찬양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왜 요즘 크리스천들에게는 감사와 감격스러운 마음이 별로 없을까요? 못 가져서 그럴까요? 가난해서 그런가요? 옛날에 비하면 요즈음 크리스천들은 많은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이 없고, 기쁨이 적고, 행복한 마음이 적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에 하나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소중한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마음과 행복이란 적은 것을 갖고도, 자족(自足)할 줄 아는데 있습니다.
빌 4:11 / 내 처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딤전 6:6 / 진정한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만일 그대가 지금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대는 이미 부자입니다(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면을 다시 되새겨 보는 맥추감사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언제나 기도에 힘쓰라), 범사에 감사하라(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잔소리인 것 같지만 되새겨 보는 입장에서 여러분이나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날 이후」라는 글에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은혜를 베푼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 지상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시는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지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한 술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거의 폐인이 되고 손발이 심히 떨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제여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소?”라고 물었습니다. 술주정꾼은 예수님을 가만히 보더니 “나를 고쳐 준 분이군요.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당신이 건강한 다리로 고쳐주셨지요. 절름발이일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 대로 살아갔는데 두 발로 뛰면서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은 없고 하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습니다.” 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상념(想念) 속에서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한 불량자가 선창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오?”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전에 앞을 못 보던 소경이었을 때 당신은 진흙을 발라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고 온 세상이 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눈을 뜨고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화풀이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고 흐느껴 울었습니다(임복만의 저서,「착각 속에 사는 삶」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절음발이가 두 발로 뛸 수만 있다면 거지처럼 얻어먹을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까? 직장이 문제입니까? 시각장애인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세상 돌아가는 꼴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화풀이할 일입니까? 은혜를 잊어버리면, 그 첫 감격을 망각하면 이렇게 타락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 중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요 8:11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리고 베데스다 못가에서 병 고침을 받았던 38년 동안 병을 앓던 사람이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 5:14 /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병으로 고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