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문화연구회>
2022년 3번째 답사
언제:3월 16일 수요일
장소:산청ㅡ남사예담촌, 단속사지, 남명 조식관련유적지(산천재, 남명 묘소, 덕천서원 ), 대원사, 정취암
회비:5만(결산없음)
참석자:이세희 이가경 (가나다순)+김성열(게스트)
회비잔액:125000원
《산청의 맑은 선비들 매화 향기로 피다》
봄은 설레는 계절입니다.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봄이 오면 여자들 가슴이 설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봄에 여자들 가슴만 설레일까요?
옛날에 선비들은 아직도 눈이 쌓인 산야를 노새에 짐 싣고 동자 앞세우고 매화를 찾아 나섰습니다.
탐매도探梅圖 또는 심매도尋梅道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선비들이 눈속에 매화를 찾으러 떠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마음만은 매화를 찾으러 서둘러 떠났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선비문화연구회에서도 봄을 마중하러 그리고 매화를 찾아서 길을 나섰습니다.
상촌 신흠선생은 매화는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않는다고 했습니다.
왠지 향기마자도 서늘하게 만드는 이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 땅의 선비는 남명 조식이 아닐까요?
그래서 남명을 그리고 남명의 매화를 만나러 먼길을 다녀왔습니다.
다소 무리하다 싶은 일정을 부지런히 소화했지만 아직도 그 향기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만족스러웠다는 이세희 선생님의 소감을 들었지만
솔직히 저는 넘치게 과분하고 과하게 행복한 답사여서 아직도 설레고 두근거립니다.
그 느낌을 글로 다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이 큽니다.
<남사예담촌>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남으로 남으로 계속 달립니다.
무주를 지나자 갑자기 마법이 펼쳐집니다.
공기도 다르고 햇살도 다르고 색도 다릅니다.
꽃들이 보이고 들 사이로 흐르는 실개천도 시내도 따스한 햇살이 어루만지고
희롱하는 듯 투명한 실핏줄들을 보여줍니다.
그 맑고 빛나는 실핏줄들이 나무를
그리고 풀들을 깨워 새싹을 돋게하고 꽃들을 피워냈나봅니다.
신기한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드디어 남사예담촌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
차 시동을 끄기도 전에 기와지붕위로 기지개를 켜는 멋진 회화나무에 끌려
꼰지발을 하고 담장에 기대어 감탄사와 함께 사진을 먼저 찍어봅니다.
사진은 여전히 실제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주차장 담장옆 그 집에서 첫번째 매화를 만났습니다.
수령150년의 남호정사 매화나무입니다.
이 집도 나무만큼의 역사를 가지고 있겠지요?
고목이라 뒤틀린 가지를 비집고 이렇게 피어있습니다.
처마밑에는 집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오랜 세월 이집을 지키고 가꾸며 함께 나이 들어갔을
머리 하얀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젊을 여인과 정겹게 봄나물을 다듬고 계십니다.
매화나무 아래는 찻집입니다.
돌아 나오려는데 강열하게 시선을 확 잡아 끄는 뭔가가 눈에 보입니다.
마굿간갤러리?
소나 말을 키웠을 이 곳을 별로 손대지도 않고 허물어지는 흙벽을 그대로 두고 탁자를 놓았습니다.
뭔가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시간이 되면 망설이지 않고 저 곳에서 차를 마실 것 같습니다.
햇볕 따뜻한 이 마당에서 마실까요?
맹물을 마셔도 향기에 취할 것 같습니다.
흙담에 머리를 살짝 얹은 기와지붕 대문을 지납니다.
남호정사에서 나와 차로를 끼고 걷습니다.
여전히 회화나무가 멋집니다.
바로 이 나무입니다.
서로 기대고 서서 부부회화나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씨고가의 사랑채 앞 담장옆에는 또 한 그루의 멋진 회화나무가 서 있습니다
주먹이 들어가는 큰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손을 넣고 빌면 아이를 낳는다는데 한 번 해볼걸 그랬습니다.
이건 부부회화나무의 뒷모습입니다.
이씨고가는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1700년경에 지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집을 지을 무렵에 이 나무도 함께 심었나봅니다.
이 나무의 수령이 300년이 넘습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이 동네 남사예담촌의 상징입니다.
곧게 뻗은 흙담길을 따라 걸으니 사양정사 앞입니다.
이 마을은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으니 예의를 잘 지켜야 되겠지요?
사양정사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크고 으리으리한 집인 것 같습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집으로 당시 귀한 건축자재였을 유리도 사용했다고 하는 걸 보니
당시 대단한 재력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이 집은 정제용 이라는 사람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종하가 선친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고합니다.
정제용은 정몽주의 후손이며 파리장서에 첫번째로 서명하시고
파리장서예 깊이 관여하신 면우 곽종석의 문인이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면우 곽종석 선생을 기리는 유적이 있으나
시간상 들러보지 못하고 이 멋지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선생의 높은 뜻을 잠시 기려봅니다.
집구경에 나섰습니다.
정갈한 한옥이란 표현에 딱 들어맞는 그런 집입니다.
담장너머 별채인 선명당도 정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그 선명당 옆에 이 마을에서 제일 늦게 핀다는 선명당매화인 정씨매가 연분홍 고운 꽃을 피웠습니다.
노란 히어리도 함께 피어봄소식을 전합니다.
사양정사의 소슬대문을 나서면 감나무 밭이 있습니다.
시골 농가의 여느감나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이 나무는 수령이 620년이 넘었습니다.
하즙의 손자 하연이 어머니에게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었다고 합니다. 감동입니다.
이 효자 감나무는 우리나라의 감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며
아직도 감이 열리고 산청 곶감을 만드는 반시의 조상나무격이라고 합니다.
감나무밭을 가로질러 원정구려로 갑니다.
산청 3대 매화중 하나인 원정매입니다.
원정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하즙의 시호입니다.
이 매화는 하즙河楫의 부모가 심어 수령이 670년이 넘었는데
원래의 나무는 2007년에 고사하고 뿌리에서 나온 후계목이 자라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무성하게 핀 꽃 때문인지 유난히 향기가 좋습니다.
덕분에 벌들의 합창이 끊이지 않습니다.
앞에서 그리고 또 옆에서 담아본 모습입니다.
《원정구려》
이 집의 당호입니다.
최씨고가로 가는 길입니다.
예담마을, 이름값 합니다.
담쟁이 잎 우거진 여름철도 예쁜데
치장없이 소박한 모습의 흙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예쁩니다.
나무 위에 앉은 까치가 낯선 손님을 반겨줍니다.
대문께에서 400년이나 살던 매화가 죽고 심은 후계목이라는데
이나무도 벌써 150년이나 살았다고 합니다.
온통 잘려나간 가지들이 아픕니다.
어렵사리 꽃을 피워낸 이 나무를 보고
"늙었어도 꽃은 피네 " 라고 이선생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옆에는 또 다른 후계목인 듯한 나무가 서 있는데 꽃송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청에는 시서유업이라는 글이 있는데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마당에서는 목련이 피고 있습니다.
동백꽃도 피어 있습니다.
설레던 꽃 구경도 이제는 시들해집니다.
역시 꽃구경도 식후경입니다.
이 동네 맛집인 예담원(055 972 5888)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문을 닫아 근처의 흙돼지 집에서 식사를 하며 잠시 바쁜 일정의 휴식을 가져봅니다.
저희는 시간이 없어 불고기로 먹었는데 해설사님이 생고기가 더 맛있다고 하십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니사재를 향합니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저 산이 니구산尼丘山입니다.
니구산은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의 동남쪽에 있는 산인데
공자의 어머니가 이 산에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다고 합니다.
남사예담촌의 산 이름도
동네를 가로지르는 하천(사수泗水,청계淸溪)의 이름도
다 공자의 고향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곳 니사재의 이름도
니구산과 사천에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하천 아래의 동네는 산청 그리고 하천 건너는 진주에 속했었다가
이제는 모두 산청에 편입되고 남사예담촌이라는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각기 다른 행정구역에 속해있을 때도 이 마을의 이름은 둘 다 사월리였다고 합니다
니사재에서 바라보는 니구산입니다.
니사재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니사재는 임꺽정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는 송월당 박호원의 재실입니다.
그런데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길에
당시 삼가현이던 합천에 있는 권율 장군에게로 가는 길에
박호원의 노비 집에서 하룻밤 묵어 갔다고 합니다.
박호원의 자손이 사는 집이 아닌 노비의 집이라면
아마도 그 집안의 외거 노비의 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 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1597년(정유년) 6월 1일 밤새 내리는 비에
잠자리도 편치 않아 밤새 뒤척였다고 하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80년 된 이 매화나무는 가지를 다 쳐내고 거의 밑둥만 남았습니다.
충무공이 밤새 내리는 빗속에서 매화나무를 보고 위안을 얻었다는데 그 때 그 나무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후계목이라고 하니 다시 보게 됩니다.
장군이 이 곳에 들렀을 때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니사재 건물 옆으로 바위 언덕 아래에 연못이 있습니다.
배롱나무꽃이 피면 참 멋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저 배롱나무엔 연리지가 참 많습니다.
충무공께서 잠 못 이루시던 그 밤
이 바위언덕에 당시의 소회를 적은 글귀를 남기셨으면
오늘 이 곳에선 우리는 얼마나 감동스러울까 잠시 이기적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니사재 처마 아래로 멀리 니구산이 보입니다.
이 곳에서는 니구산도 사수도 잘 보입니다.
그래서 니사재인가 봅니다.
자목련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담장 너머로는 남사예담촌이 내려다 보입니다.
저 출입문이 없다면 마루에 앉으면 남사예담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 것 같습니다.
(산청군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이런 모습으로 보일까요?
남학정에서 보면 또 어떤 모습일까요?
남사예담촌에는 니동서원도 있고 유림독립기념관도 있습니다.
면우 곽종석과 파리장서 관련 시설입니다.
배움과 그 배움의 실천을 강조하신 남명의 모습이 곽종석에게서 보입니다.
그래서 산청의 매화는 그 향기마저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남명매와 정당매는 힘들어서 생략합니다.
혹 기력이 되어 쓰게 되면 올리겠습니다.
보고 싶은 남명매 감동이었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천왕산도 바라보며 산천대축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워하던 단속사지
아름다운 탑들과 당간지주 그리고 암문까지 잘 보았습니다.
정당매도 야매도 대원사의 매화도 제게는 모두가 감동이었습니다.
좋은 답사 이끌어 주신 이세희 선생님, 종일 운전해주신 김성열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 *** ***
이세희
제가 알고있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가경 서울64
@이세희(천안)
ㅎㅎ
그럴리가요^^
지종석
답사 후기의 정석! 후속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니사재 배롱나무를 보답으로....
이가경 서울64
@지종석
ㅎ
니사재는 배롱나무가 정답이죠?^^
錦輪 최윤희
후기를 보며
남도의 봄볕에 샤워한듯
오늘 우중충한 아침에
상쾌함 맘껏 드링킹!
감사합니다.
심혈을 기울이신 후기
잘 키핑하겠습니다.
이가경 서울64
@최윤희
함께하셨으면 좋았을텐데요
많이 아쉬웠습니다
좋아서 더요^^
김금복
남사예담촌이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지요?
산청 근방은 언제가도 돌아올때는 급하지 않는 넉넉한 마음이 되더군요.
부부나무도 여전하네요.
이가경 서울64
@김금복
네
가장은 모르겠고 아름다움은 맞는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산청 좋아합니다^^
김금복
@이가경 서울64
예전엔 그랬슈 ㅎㅎ
이가경 서울64
@김금복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요
가본곳이 많지않아서요^^
김영섭
덕분에 남사마을을 다시 한번 구경 잘 했습니다.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의 고향이 인접한 산청군 산청읍이어서
몇 번 가보았지만 때를 맞추지 못했었는데, 직접보는 느낌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다음 가보실 분을 위해서 참고가 될까해서 말씀드리면
남학정에서 마을 전체를 보고 쭉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서 보면
이 마을의 생성 ·유지되어온 풍수지리에 관한 이야기도 양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식당을 소개드리면
고려말 문익점선생님께서 목화씨를 가져오셔서 시배한
시배지 인근에 목화식당의 자연산추어탕이 일미입니다.
생초어탕 ·산청지리산 흑돼지· 들뫼나물과 함께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가경 서울64
@김영섭
감사합니다
전에 목화시배지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좀 심하게 멀지요?
양한모
2017년3월20일 산청지역
답사때가 생각납니다.
2017년3월9일 사전답사를위해
원주에서 6시간을 차를
타고 같다왔던 그 때가
아련히 그려지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가경 서울64
@양한모
6시간
대단합니다
그런 열정
부럽습니다
錦輪 최윤희
@양한모
5년 전 얘기네요.
6시간 길도 거뜬히 다녀오셨다니 대단하세요.
오늘의 문지회가 있기까지
선배님들의 열정 덕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