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창단은 40년대라고 하지만 부산사학의 맞수인 경남고와 부산상고에 비해 야구부의 활성화가 늦었던 부산고는 60년대 초중반 화려한 성적을 보이면서 그 역사를 시작합니다..
62년 투수 김소식의 활약으로 첫우승을 차지한 이래 이듬해의 장순조, 70년대 중반의 김철오 등으로 정통파에이스의 계보를 잇다가 71년.. 뒤에 롯데의 원년1루수로 활약하는 김정수가 당시의 에이스로 나서면서 팀 두번째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합니다...
하지만..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군산상고에게 3점차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9회말 통한의 역전패를 허용하면서 부산고는 한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군산상고를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하는 바로 그 게임입니다..
흔히 부산고 야구부의 본격적인 번성기를 양상문-김호근 배터리의 등장으로 기점을 삼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2년위인 경남고의 최동원을 의식해서 부산고에 자리잡았던 당대 최고의 두뇌파 양상문은 77년 대통령배 준우승에 이어 3학년인 78년 대통령배, 청룡기 2관왕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부산고를 부산야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해줍니다..
뒤를 이어 안창완이 김민호, 조성옥과 함께 79년 청룡기 우승으로 대회 2연패를 일궈내었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에이스들.. 즉 82년의 김종석.. 85년의 박동희.. 86년의 권영일.. 87년의 1년생 강상수 등은 부산고=전국최고투수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줍니다..
부산고 초강력마운드의 절정은 91-93년 염종석-손민한-주형광이 1년간격으로 배출되던 시기로 손민한은 진갑용과 배터리를 이뤄 대통령배의 우승과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엮어냈고.. 이때 함께 던진 주형광은 3학년인 93년 또다시 봉황기우승을 안겨주면서 모교의 전국대회 10번째의 우승을 기록하게 해줍니다..
물론 98년의 백차승도 전국 최고투수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야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우승까지는 가지 못했고.. 총 12회의 우승기록중 나머지 두번의 우승은 99년과 2000년 모두 백차승의 2년후배인 추신수의 어깨에서 만들어집니다..
부산고는 가히 최고에이스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통파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그 에이스들에게서 어김없이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단한가지 아쉬움은 4차례의 준우승에 그친 황금사자기 대회와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 선수들 리스트의 앞의 숫자는 졸업년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대졸입단은 학번, 고졸입단은 프로입단년도가 되겠습니다..
* 프로선수배출숫자인 56명은 괄호속의 이름들은 제외, 즉 입단여부와는 상관없이 프로경기에 출장한 선수들만을 셈한것이니 착오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