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들
2024.04.14.(부활절제3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느라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자기들에게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녁 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남겨 두고 떠나가셨다. (마태 16:1-4)
들어가는 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복음서에서 좋게 평가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유대의 신앙 전통과 체제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저항하면서 피 흘렸던 유대인들을 헛된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로 구성된 유대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전통과 민족을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겐 보이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헤롯 대왕은 정통 유대인들에게 마땅치 않은 자였습니다.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의 지배를 인정하면서 그 힘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가혹한 처벌도 서슴지 않았지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보기에 그는 유대 전통을 보존하고 더 이상의 유대인들의 희생을 방지하는 유능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들은 헤롯을 통해 힘이 갖는 유용성과 효율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헤롯은 죽고 헤롯의 자녀들이 분봉왕으로 등장하자 이들은 힘에 의해 유지되던 질서가 불안해졌음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메시야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등장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등장한다는 자칭 그리스도들의 주장과 과격한 행동은 사회의 질서에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예수님 역시 저들이 보기엔 그러한 불안을 조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들은 힘에 의해 유지되던 사회적 균형이 깨질듯 한 상황에서, 그 불안을 가중시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안정감을 느끼게 했던 헤롯 대왕보다 더 큰 힘이 예수에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그들의 궁금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추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은 사람들을 흩어 보내고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온 예수님을 은밀히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그들 사이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진지했습니다. 싸움은 구경꾼이 있어야 합니다. 은밀한 가운데 그들은 예수님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거래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힘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기꺼이 큰 힘이라면 따를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헤롯 대왕이 보여주었던 정도의 힘을 예수님이 보여준다면 나약한 헤롯의 자녀들 대신, 예수님을 따를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힘도 보여준다는 소문도 들은 터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자기들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1)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로마의 힘을 능가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진 힘이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임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전통을 이어받아 온 자신들에게 그 능력을 가지고 온 자를 알아보게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징’만 분명히 보여준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구하는 하늘의 ‘표징’ 대신 하늘의 ‘모습’으로 대답하십니다.
모습(appearance)과 표징(sign)
저녁에 지는 하늘이 붉은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일은 맑겠다고 해석합니다. 아침에 동터오는 하늘이 흐릿하니 붉은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날씨가 흐릴 것 같다며 정반대의 해석을 합니다. 사실 저녁과 아침 하늘의 모습은 작은 차이 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붉은 하늘이 저녁에는 어둠을 동반했다면, 아침에는 흐림을 동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누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해석의 차이는 모습이 아니라 시간 때문입니다. 거의 같은 하늘의 붉은 모습이 전혀 다른 예측을 부르는 것은 그 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맑거나 흐릴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표징은, 하늘이 붉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가 저녁인지 혹은 아침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을 분별하지 못하느냐?”(3) 이는 곧 이런 뜻입니다. ‘너희는 하늘의 모습(appearance)은 해석하지만, 시간이 알려주는 사인(sign)은 해석하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힘을 가지고 하늘 위에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하나의 드러난 ‘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천둥 번개를 몰고 오는 기상 이변을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말과 병거를 탄 수 많은 병사들이 하늘 위에 나타나는 것을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힘을 가늠할 수 있는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때가 찼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어떤 기적의 모습들도 다가온 ‘하나님 나라’의 표징(sign)이 될 수 없습니다. 불치의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신체 장애인들이 멀쩡해지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나지 않았던가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시대에 대한 ‘표징’을 먼저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표징’이 아닌 ‘모습’과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남겨진 사람들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수많은 표징들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그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기적(miraculous)으로서의 표징은 하나의 놀라운 모습이자 현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들은 힘의 상징으로서의 표징을 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이 가져온 하나님 나라는 힘에 의해 구현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보고 들은 수많은 표징들을 보면서도 표징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보여준 표징들을 모습이나 현상들로 이해되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요구하는 표징은 예수에게는 하나의 모습이나 현상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은 그들을 남겨둔 채 떠나서 사라지십니다.(Jesus left them and went away) 그들은 분명 예수님을 따라나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시대의 표징은 해석하지 못한 채, 의미 없는 그저 놀라운 모습만을 요구했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한 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표징으로 보지 못하는 그들은 남겨질 것입니다.
그들은 남겨진 채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서기 70년대, 이스라엘이 완전히 무너진 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로 이루어졌던 유대의 지도층, 사두개인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서기 30년 경, 요나의 표징만을 남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남겨지고 예수님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사라져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그들 앞에 놓인 유일한 문제는 예수님과 같이 갈 것인가, 아니면 남겨진 채 사라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표징’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인가요?
나가는 말
오늘날 구원의 임박함을 보고 예수님의 표징들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여전히 기적과도 같은 모습과 현상을 찾고 있다면, 그들은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한낱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시대의 ‘표징’을 분별할 수 있는 청년들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힘의 모습을 잘도 찾습니다. 권력을 쫓는 사람들은 권력의 그림자만 보고서도 그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리며 자신의 영혼까지도 바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차지한 자신들의 시대가 곧 사라진다는 것은 애써 외면합니다. 권력을 잡았다가 물러난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권력은 짧다.’ 권력이 갖는 환상만을 쫓았던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들이 힘을 과시하던 시대는 짧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세상 속에 남겨집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에서 힘을 잃은 그들은 노인에 불과하며,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릴 뿐입니다. 시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시대는 우리에게 표징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갔던 이들을 봅시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어디에서 보았을까요? 하늘의 놀라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요청에 연대의 정과 사랑으로 응답하는 예수님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표징이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표징을 읽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