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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굿 자료의 연구현황과 전망
1. 들어가며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단장 김덕수씨는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 갈 뻔한 풍물놀이를 ‘사물놀이’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커다란 공적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다채로웠던 풍물굿은 단순화되어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다.
물론 단순화되었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일반 대중들에게는 쉽게 풍물굿이 다가 갈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채로운 풍물굿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대중들이 사물놀이의 단순성이
그 전부인양 착각하게 된다면 풍물굿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소원해 질 것이다.
또한 본디의 기능을 상실한 채 가락이나 기교 위주로 전승되고 있는 사물놀이가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장님이나 귀머거리로 만들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본고에서는 사물놀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풍물굿의 연구 자료를 보다 안정적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연구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몇 개의 기준을 두고 분류, 분석해 보겠다.
그 결과에 따라 집중 연구되어지고 있는 풍물굿과 그렇지 못한 풍물굿 각각에 대한 적절한 사례를 살피고
그 차이남을 알아보겠다. 그리고 후자에 대한 현실적인 방향성을 제기 해보고자 한다.
들어가기에 앞서 현황분석을 이해하기에 도움을 주고자 2장에서는 풍물굿의 개념과 현재의 판도 및 지역별 특색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겠다.
이어서 3장에서는 풍물굿 연구자료를 권역별, 지역별 등으로 세분하여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분석된 자료를 토대로
왜 그러한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그 근거와 사례를 검토해보겠다.
2. 풍물굿의 개념 및 판도
2.1 풍물굿의 개념
풍물굿은 농사일을 하던 우리네 조상들이 농기와 영기를 비롯하여 다섯 악기인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을 주로 치며,
민중들의 삶인 희․노․애․락을 다양하게 표현하여주는 노래, 춤, 재주 등과 극적 짜임을 맡는 잡색놀이 등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종합예술로서 공동체적인 놀이 형태를 말한다. 이는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민속놀이요,
그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체적인 염원을 집단적 신명으로 풀어내려는 집단의식에서 싹튼 놀이양식으로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진취적인 문화의 한 양식이다. 그럼 지금처럼 총체성을 띤 풍물의 형태는 언제 발생했을까?
그것은 “이앙법이 도입되고 공동노동이 일반화된 조선중기 이후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풍물이 공동 노동조직인 두레의 형성과 발전에 따라 같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두레공동체에서 힘든 노동을 즐겁고 활기찬 노동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놀이와 노동이 결합된 두레굿으로 형성되었으며
마을 전체의 크고 작은 일들과 결합하면서 마을굿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불교사찰의 재정이 어렵게 되자 절의 유지책으로 스님들이
여러 마을을 찾아 걸립(乞粒)을 하던 굿중패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형식과 기능면으로 발전한 사당패가 나타나면서
풍물이 전문 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렇게 민중의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던 풍물굿
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지배 정책인 겨레문화 없애기 정책으로 그 발전이 단절되었고,
대동굿적인 요소와 내용을 잃어버린 채 기능과 놀이만을 뽑아내어 풍물을 박재화 되어 버렸다.
일하는 민중의 문화인 풍물굿이 농민의 음악이란 뜻의 ‘농악’이란 말로 바뀌고 굳어진 것도 이때부터인데,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일본인 학자인 ‘吳請’의 『조선의 연중 행사』라는 책이다.
그동안 제기된 왔던 풍물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농민의 음악'이라 하여 풍물 대신 '농악'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해 왔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절한 용어이다.
첫째, '농악'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지배계층과 일본의 통치적 의도에 의해 민중적 대중성이 거세되어 버린 조작된 용어이다.
작위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현장에서는 농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굿, 굿물, 풍장, 풍물, 매구 등이 있는데
이들 용어는 각각 그 기능과 형태를 말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농악이라는 용어는 농사꾼이 하는 음악,
즉 농사일에만 쓰이는 음악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 물론 농악이 농경사회 속에서 산출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공동체가 존재하는 곳, 공동체적 심성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그 가치를 발휘하고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도 훌륭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악은 단지 음(音)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춤, 재담, 진풀이, 즉 놀이의식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종합적인 표현
매체로서의 개념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농악이라는 용어는 그것이 지닌 다양한 기능과 형태를 수렴하는 용어로는
부적합하며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농악이라는 용어 대신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인 ‘
풍물(風物)’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풍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부적한 점이 있다.
‘풍물’이라 했을 때 보통 굿물(악기)을 지칭하여 혼동되는 단점이 있으며, 현장에서 그만큼 널리 쓰이고 다양하게 쓰이는
'굿'이라는 용어보다 보다 종합적인 개념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 현장에서 쓰여져 내려오는 의미들을 종합해 볼 때
굿이라는 용어는 공동체 성원들의 마음을 모아(의식), 공동의 관심사를 민주적으로 해결하고(논의),
그 원만한 협의의 결과를 만족하며 노는(놀이) 총체성을 가진 삶의 한 체계라는 넓은 뜻이 있으며,
그 외에도 좁은 뜻으로 삶의 여러 부분에서 다양하게 쓰여지고 있다. 우리의 문화(양식)라는 것은 총체적 삶의 체계와 전혀 분리해 낼 수 없다.
우리는 일제 통치기간 동안 습득되어진 공동체 삶과 부단히 우리를 유리시키려는 개인주의적 서양 장르의 편견을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다.
그러한 조각조각의 시선들을 과감히 청산해 버리고 보다 종합적인 삶의 체계건설의 시작으로 모든 문화들을 삶과 연관시켜 내야 하는데
이러한 의지의 노력과 부합되는 용어가 ‘굿’이라는 종합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이 굿은 자칫 무굿이라는 뜻으로만
좁게 인식되어져서 혼동을 줄 소지가 많기 때문에 '풍물이 주가 되는 굿'이라는 개념으로 '풍물굿'이라는 용어가 우리가
사용해야할 정확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인용된 문장만 농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외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풍물굿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2.2 풍물굿의 판도 및 지역별 특색
2.2.1 풍물굿의 판도
풍물굿의 판도는 지역적 특성을 존중하되 현재 남아 있는 풍물굿의 분포를 살펴서 구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일종의 풍물굿 지역권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풍물굿의 지역적 분포와 변이는 다양하고,
또 이를 일컫는 용어나 관례는 이미 굳어져 있어서 쉽사리 규정짓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각 지역마다 여러 풍물굿들이 존재하는데 그 편성은 지역에 따라 크게 웃다리 풍물굿과(경기,충청)
아랫다리 풍물굿(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같은 관용적 구분 방식은 퍽 유용할 것 같이 보인다.
자신의 지역을 중심으로 놓고 다른 지역을 일컫기에 그러한 용례는 재고를 요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웃다리와 아랫다리로 말하는 것은 남사당패의 구분법인데 이 용어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구분법은 웃다리는 경기․충청도 일대를 지칭하고, 아랫다리는 영․호남을 지칭하고자 마련된 것인데 웃다리만을 강조해서
사용한 구분법이므로 아랫다리의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하여 부담스러운 것이라 말 할 수 있겠다.
지역적인 명칭인 행정구역식 명명에도 동의할 수 없다. 경기․충청농악, 전라도 농악, 경상도 농악, 강원도 농악이 곧 그것이다.
이러한 명칭은 얼핏보면 타당하리라 여겨지나 사실은 전혀 외연만 같지 내포는 다르기 일쑤이다.
예컨대 전라도 풍물굿이라고 말해도 좌도 풍물굿과 우도 풍물굿으로 크게 대분류되기에 전라도로 함축하기에는
적지 않은 무리가 따른다. 그와는 다르게 구체적인 지명을 들어서 명명하는 방식은 다소 존중할 만한 견해가 있다. 평택풍물굿, 필봉풍물굿, 진주․삼천포12차풍물굿 등은 행정구역식 명명이지만 지역적 특성을 한껏 드높이고 있어서 바람직한 분류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미세하게 분류하고 나면 풍물굿의 판도를 아는 데에는 아무런 의의가 없다.
따라서 풍물굿의 판도를 분류하는 데에 가장 요긴한 방법은 실상분류와 편의분류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실상분류는 지역적 특징을 미세하게 나누는 방식이고 편의 분류는 지역적 특성을 대지역으로 나누어 편의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다.
미세하게 나눌 때에는 실상분류로 하고, 거시적으로 나눌 때에는 편의 분류로 가는 것이 마땅하다.
편의 분류에서 실상분류까지 가게 되면 크게 분류하는 데서 작게 분류하는 것으로 가는 것이고 실상분류에서 편의 분류로 가게
되면 미시적인 데서 거시적인 데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토대삼은 김헌선의 풍물굿 판도는 아래와 같다.
풍물굿의 판도 안성풍물굿
웃다리풍물굿
김제풍물굿
예천풍물굿
진주풍물굿
위의 판도는 김헌선씨가 생각하기에 이름난 풍물전승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다. 이에 본인이 조사한 자료에 근거하여 몇 지역을 더 추가 시키고자 한다.
-추가지역
(문화재 관리국,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제 13책 -농악, 풍어제, 민요편』, 1982)
:호남좌도풍물굿
금산, 장수, 전주, 남원, 순창, 곡성, 구례, 화순, 승주
:호남우도풍물굿
익산, 옥구, 부안, 정읍, 고창, 영광, 장성, 함평, 나주, 광주, 장흥, 강진, 영암, 무안
(김택규외 2명, 『한국의 농악 :영남편』, 수서원, 1997)
:영남풍물굿
함양, 산청, 진주․삼천포, 울산, 양산, 동래, 부산
(권희덕, 『농악교본』, 세일사, 1995)
:괴산농악, 공주농악, 북한의 농악(황해 장연농악, 함남 북청돈돌라리농악, 등등)
(기타)
웃다리풍물 : 이천, 청원, 이천, 양주, 원주, 홍성, 단양, 제천, 음성, 천안, 대전, 논산
영동풍물 : 고성, 원주, 횡성, 춘천, 강릉, 삼척, 평창
영남풍물 : 밀양백중, 마산, 통영, 김천, 밀양, 진해
호남좌도풍물 : 화순한천, 여천백초, 무주, 진안중평, 장수, 광양, 보성, 여수
호남우도풍물 : 진도소포, 군산, 김제, 전주, 목포
2.2.2 풍물굿의 지역적 특색
해방 후부터 진행된 전국규모의 농악대회에 의해 지역의 굿이 생멸하고 섞이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그로인해 굿의 정확한 특성을 밝혀내기란 어려운 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연행되는 굿을 중심으로 특성을 파악해 보겠다.
(가) 경기,충청풍물굿
경기농악은 경기도를 비롯하여 충청도 그리고 강원도의 영서지방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풍물로서 멀리는 황해도나 평안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평택·안성·이천·양주·원주·홍성·단양·제천·음성·천안·대전·부여·논산 등에서 연행된다. 경기·충청풍물굿을 웃다리풍물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이 같은 용어는 남사당패의 구분법으로 아랫다리풍물, 즉 삼남지방의 풍물에 대해 스스로 높여 부른 말이다. 경기풍물굿은 대개 마을굿이 없고, 마당밟이와 두레풍물이 있다. 특히, 걸립풍물이 발달하여 연예적인 놀이가 많다. 안성은 전문 연예집단인 남사당패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걸립연예적 풍물이 경기농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충청권도 이 영향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채상소고를 하고, 잡색으로 볼 수 있는 무동의 수가 많다. 무동놀이와 채상소고놀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무동은 어린아이를 쓰는 편이다. 무동놀이중에 깨끼춤과 무동타기 등은 유명하다. 타지역에 비해 북이 약하고 쇳소리가 발달하였다. 채상놀이가 풍물놀이의 중심의 위치에 있고, 가락이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길가락은 사물놀이화 되어 유명한 가락이 되었고, 당산벌림 대목의 놀이는 판굿의 백미이다.
충청도 풍물굿은 경기 풍물굿과 비슷하나 마을굿인 당산굿을 연행하며, 호남좌도풍물굿과 비슷한 점도 있다. 무동은 어른이 대개 하며 무동들의 단체춤인 나부 춤이 특이하다.
(나) 강원도(영동)풍물굿
강원도 풍물굿은 영서와 영동으로 지역적인 구분을 하고 있는데, 영서풍물은 경기풍물과 비슷하고 영동풍물은 강원도 풍물의 토속적인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영동풍물은 동해안쪽에 인접한 영남지역과 뒤로 함경도 지방에까지 영향을 주어왔던 것이다. 원주·횡성·춘성·강릉·삼척·평창 등지에서 연행되고 있다. 마을굿으로 당굿은 별로 하지 않으며 지신밟기가 성행했다. 달맞이굿, 다리밟기, 김매기풍물, 단오날 대관령 성황제 등에서 풍물이 연행되고, 배굿으로 풍어제와 관계되는 진대백이굿이 특이하다. 모습으로 타 지역과 구분되는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 방망이 상모이다. 쇠꾼들은 종이상모를 벙거지에 달고 징, 장구, 큰북, 소고 등은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방망이처럼 생긴 것을 상모에 달아 쓴다. 짧고 굵은 초리를 단 상모도 특이한데 대개 법고잽이들이 사용한다. 무동들은 고깔을 쓰는데, 고깔의 수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가락은 단조롭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힘이 있고 단순한 가락으로 많은 농사풀이 모의 동작을 하게 된다. 농사풀이는 농사일의 모습들을 치배들이 역할을 맡아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놀이화한 것이고, 이러한 행동이 하나의 주술의 형태를 띠어 생산력 증대의 효과를 보기 위한 유감 주술적 놀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단체가 농사풀이를 하며 두레풍물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강원도풍물굿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다) 경상도(영남)풍물굿
경상도 풍물은 크게 경북풍물과 경남풍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동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영동풍물의 모습과 비슷해지고 서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호남좌도 풍물굿과 유사해 진다. 진주·삼천포·마산·통영·김천·밀양·부산·양산·진해 등지에서 연행된다. 경상도 풍물은 지신밟기가 고형으로 잘 보존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전원이 고깔을 쓰기도 하고 전립을 쓰기도 한다. 대개 전립을 쓰고 종이 부포나 긴 초리가 있는 채상모를 한다. 경상도 풍물굿은 가락이 빠르고 힘차며 채상소고 놀이가 잘 발달되어있다. 버꾸잽이라 불리는 이들의 자반뒤집기는 유명하다. 군법적인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어 역동적이고 일사분란한 진풀이를 보여준다.
(라) 호남좌도풍물굿
전라도 동부지역의 풍물굿을 말한다. 금산·무주·진안·장수·임실·남원·곡성·화순·광양·보성 등에서 연행된다. 같은 좌도 지역에서도 남쪽과 북쪽, 내륙과 해안지역에 따라 연행 방식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내용은 당산제와 마당밟기, 매굿, 기굿, 두레굿, 걸궁굿, 판굿, 노디고사굿 등이 있다. 쇠와 장구가 중심으로 연주하고 북이 약하다. 특히 쇠가락 중심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가락이 힘차고 빠른 편이다. 모든 치배들이 부들 상모를 써서 군법을 과시하는 편이고, 곳에 따라서는 고깔을 쓰기도 한다. 부들상모는 개꼬리 상모라 하여 진자에 바로 실로 두루미나 칠면조 등의 털을 단 상모를 말한다. 이러한 부들상모는 뻣상모에 비해 원형적인 모습을 갖춘 것으로 좌도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상쇠, 부쇠가 번갈아 쇠를 치는 짝드름도 유명하다. 가락은 일채부터 칠채까지의 채굿이 잘 보존되어 있고 갠지갱가락과 영산가락이 유명하다. 싸잽이라고도 하는 휘모리가 발달하여 거의 모든 굿의 마지막에 있어서 휘몰아 마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렇듯 맺고 푸는 기교가 뛰어나고 연극적인 놀이도 특이하다.
(마) 호남우도풍물굿
전라도 서쪽 평야지역의 풍물굿을 말한다. 익산·군산·정읍·김제·부안·전주·나주·함평·영암·장흥·목포 등에서 연행된다. 내용상으로 당산제, 마당밟기, 두레풍물, 걸궁굿 등이 있다. 쇠와 장구가 중요한 치배가 되며 뒷치배인 잡색이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쇠꾼들은 뻣상부포를 사용하며 나머지 치배는 대개 고깔을 쓴다. 고깔소고의 인원이 많은 편이다. 창부의 어사화는 우도풍물굿의 특징중 하나이다. 쇠가락이 대체로 느린 편이고, 장구가락이 화려하고 설장구가 유명하다. 판굿과 복장도 가장 화려한 축에 든다. 가락 중에는 질굿가락이 유명하며, 가장 어려운 풍물가락의 하나이다. 양산도가 있고 삼채가락의 내는 장단이 가장 발달되어 있다. 가락의 내어 달아 맺는 구조도 뛰어난 풍물굿이다.
복색에 관해서는 근래에 들어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통의 발달이 공간적 거리를 축소시켜 놓아 다른 지역에 관련된 풍물굿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게끔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는 풍물굿이 그 지역에서만 연행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 혹은 자체적 노력에 따라 상설무대에 등장해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지역간 교류는 지역 풍물굿의 발전의지에 따라 타 지역의 풍물굿을 차용하거나 차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남좌도 풍물굿의 하나인 임실필봉풍물굿의 치배구성은 기존에 없었던 채상소고를 불러 들여왔다. 특이할만한 사실은 채상소고의 도입으로 풍물굿 전체가락에 있어서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흐름은 지역 풍물굿이 보다 다채로워 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 볼 수 있겠으나 각기 개성적 특성을 지니고 있던 지역 풍물굿이 획일화 될 수도 있는 부정적 요소 또한 간과할 수 없겠다.
3. 풍물굿 자료의 연구현황 : 국회도서관 석․박사 학위논문을 중심으로
-검색어 : 농악(1~50), 풍물(51~105)
3.1 전체자료 분포
3.1.1 풍물굿 연구 - (49건)
1권오성, 2김행덕, 3정의영, 6이효빈, 7김정헌, 8조귀남, 9최종희, 12조여일, 14김혜경, 15길석근, 16박은영, 18이정노, 19주성숙, 20고전금, 22이상신, 23이은아, 24민병상, 26김은영, 28정은면, 30한미경, 33元敞國, 34金璟汝, 37,류창열, 38권선오, 39전경옥, 40金鉉淑, 41김지영, 42안혜영, 43이경희, 44오세란, 45곽정숙, 46閔敬淑, 47金玉姬, 48최태열, 49吳承喜, 50成宰亨, 54한성수, 58조은영, 61양향진, 72송철식, 77조상훈, 80이현동, 87양진성, 90이영배, 94宇佐美陽子, 97李鍾振, 98정은영, 104박정미, 105金鶴柱
3.1.2 사물놀이 연구-(5건)
10박문기, 32지희경, 36김대균, 81서형석, 82이재화
3.1.3 교육적 활용연구-(26건)
4강선이, 17송장섭, 25윤재덕, 27권진미, 51신미경, 52민미식, 55고경주, 59김승희, 60김용호, 62김미경, 64이연호, 65동근정, 67김소희, 68고보윤, 70김정희, 71이우영, 73문현숙, 74정은화, 75박천수, 78김정우, 83이강호, 91이정희, 92김현숙, 93안충환, 99남소이, 101김영선
3.1.4 남사당 연구(2건)
5함범택, 88유영렬
3.1.5 기타(19건)
11오상민, 13조진형, 21신미섭, 29김영아, 31李永煥, 35김한기, 53김선태, 63남성진, 66박행주, 69육성천, 76이좌형, 79이명기, 84손우승, 85윤승모, 86김진숙, 89김삼태, 95이희숙, 96양근수, 102권두현
<표-1>
3.2 풍물굿자료 분포(49건)
3.2.1 굿중심 연구(30건)
7김정헌, 8조귀남, 9최종희, 12조여일, 14김혜경, 18이정노, 19주성숙, 22이상신, 24민병상, 26김은영, 30한미경, 33元敞國, 34金璟汝, 37류창열, 38권선오, 39전경옥, 40金鉉淑, 41김지영, 42안혜영, 43이경희, 50成宰亨, 58조은영, 61양향진, 72송철식, 80이현동, 87양진성, 90이영배, 94宇佐美陽子, 97李鍾振, 98정은영
3.2.2 가락중심 연구(8건)
웃다리 풍물굿 7채 가락-(1권오성, 2김행덕)
호남좌도 풍물굿-판굿 가락-(15길석근)
-영산 가락-(54한성수, 105金鶴柱)
호남우도 풍물굿-풍물가락연구-(77조상훈), 소고가락연구(6이효빈)
영남 풍물굿-(35김한기)
3.2.3 진풀이중심 연구(3건)
청원풍물굿-(28정은면)
호남좌우도 풍물굿-(47金玉姬)
풍물진법의 전개과정과 연행원리-(84손우승)
3.2.4 춤사위 연구(14건)
정읍풍물굿-(44오세란)
청주풍물굿-(44오세란)
경북풍물굿-(45곽정숙)
임실풍물굿-(48최태열)
이리풍물굿-(48최태열)
평택풍물굿-(104박정미)
(소고 춤사위)
필봉풍물굿-(20고전금)
고창풍물굿-(23이은아)
비산풍물굿-(26김은영)
정읍풍물굿-(44오세란)
청주풍물굿-(44오세란)
경기풍물굿-(46閔敬淑)
호남우도 풍물굿-(49吳承喜)
(설장구 춤사위)
호남우도 풍물굿-(16박은영)
3.2.5 연희연구-(1건)
호남좌도 풍물굿-(3정의영)
<표-2>
3.3 권역별 연구자료 분포(54건)
(가)경기․충청(12건)
: 1권오성, 2김행덕, 19주성숙, 22이상신, 24,민병상 28정은면, 30한미경, 37류창열, 44오세란 46閔敬淑, 58조은영, 98정은연
(나)강원도(영동)(3건)
: 8조귀남, 43이경희, 72송철식
(다)경상도(영남)(6건)
: 9최종희, 14김혜경, 26김은영, 34金璟汝, 38권선오, 45곽정숙
(라)호남좌도(21건)
: 3정의영, 7김전헌, 12조여일, 15길석근, 18이정노, 20고전금, 33元敞國 ,40金鉉淑, 41김지영, 47金玉姬, 48최태열, 50成宰亨, 54한성수, 58조은영, 61양향진, 87양진성, 90이영배, 94宇佐美陽子, 97李鍾振, 103元敞國, 105金鶴柱
(마)호남우도(12건)
: 6이효빈, 16박은영, 18이정노, 33元敞國, 39권선오, 42안혜영, 44오세한, 47金玉姬, 48최태열, 50成宰亨, 77조상훈, 87양진성
<표-3>
3.4 지역별 연구자료 분포(30지역 中 59건 )
(가-1)대전-(1권오성, 2김행덕)
대전-웃다리-(30한미경, 37류창열, 58조은영, 98조은영)
(가-2)안성-(2김행덕)
(가-3)평택-(2김행덕, 104박정미)
(가-4)청원-(28정은면)
(가-5)청주-(44오세란)
청주-지동-(30한미경)
(가-6)파주금산-(19주성숙, 24민병상, 80이현동)
(나-1)철원토성-(8조귀남)
(나-2)금릉빗내-(45곽정숙)
(나-3)강릉-(43이경희)
(나-4)삼척-(43이경희)
(나-5)고성-(43이경희)
(나-6)함안화천-(72송철식)
(다-1)진주․삼천포12차-(9최종희)
(다-2)대구-비산-(26권은영, 35김한기)
대구-고산-(45곽정숙)
(다-3)청도차산-(34金璟汝, 35김한기, 38권선오)
(다-4)예천통명-(45곽정숙)
(라-1)임실필봉-(3정의영, 18이정노, 20고전금, 33元敞國, 41김지영, 48최태열, 54한성수, 58조은영, 87양진성, 90이영배, 94宇佐美陽子, 97李鍾振)
(라-2)진안중평-(3정의영, 15길석근, 54한성수)
(라-3)남원-(7김정헌, 54한성수)
(라-4)남원-삼동-(12조여일)
(라-5)금산-(54한성수)
(라-6)광양-(61양향진)
(라-7)고흥-(94宇佐美陽子)
(마-1)정읍-(6이효빈, 44오세란, 87양진성)
(마-2)이리-(18이정노, 33李永煥, 39전경옥, 48최태열)
(마-3)고창-(23이은아)
(마-4)영광-(77조상훈)
<표-4>
3.5 지역별 비교연구(15건)
(가)대전웃다리_청주지동-(30한미경)
(가-라)대전웃다리_임실필봉-(58조은영)
(가-마)청주_정읍-(44오세란)
(나)강릉_삼척_고성-(43이경희)
(나-다)금릉빗내_청도차산-(31李永煥)
(나-다)금릉빗내_예천통명_고산-(45곽정숙)
(다)청도차산_대구비산-(35김한기)
(라)금산_진안_필봉_남원-(54한성수)
(라)임실_고흥-(94宇佐美陽子)
(라-마)임실_정읍-(87양진성)
(라-마)임실필봉_진안중평-(3정의영),
임실필봉_이리-(18이정노, 33李永煥, 48최태열, 103元敞國)
4. 풍물굿 자료 연구의 편차와 사례
앞의 분석결과를 볼 때 풍물굿에 관한 기존의 조사연구는 대개 널리 알려진 풍물전승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경향이 있어 연구 자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비교적 덜 알려진 지역을 조사지로 택할 필요가 있다.
이제 임실필봉굿의 사례를 예로 들어 타지역 풍물굿 발전에 참고 될만한 긍정적 요소를 찾아 보겠다. 임실필봉굿을 선정한 이유는 가장 많은 연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가 풍부하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본 필자가 현재 이지역의 풍물굿을 오래도록 직접 체험하고 있었기에 그 전모를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례풍물굿의 사례를 들어 풍물굿 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소를 찾아보겠다.
4.1 임실필봉굿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선정된 5개의 풍물굿 중 가장 나중에 선정된 ‘중요무형문화재 11-마 호 임실필봉풍물굿’은 현재 풍물굿을 치고 있는 전국 대학생의 약 70%가 전수받고 있을 만큼의 위치에 서 있다. 이러한 임실필봉굿이 체계를 갖추고, 걸궁을 나갈 정도의 수준 있는 음악성을 갖추게 된 시기는 박학삼 상쇠 때인 1913년 부터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필봉 마을에서 세시행사와 결속된 굿판이 성행했고, 마을 창고에 풍장을 따로 관리하며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이때까지의 임실필봉굿은 공동체 사회의 세시풍속과 생활문화 일반에 결속되어 공동체를 더 결속시켜주는 구실을 하였다. 그러던 것이 박학삼 상쇠를 초빙하여 마을 상쇠로 모시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마을 주민은 박학삼을 굿 선생으로서 경제적 대접을 하며 농한기의 사랑방에서 체계적 풍물교육을 받게 되면서 전문적인 연희능력을 기르게 된다.
박학삼 상쇠 다음으로는 송주호가 상쇠를 이어받았다. 상쇠춤으로 뛰어난 면모를 보였던 송주호는 나이가 연로한 이유로 1959년 당시 18세의 양순용에게 상쇠를 넘겨주었다. 양순용이 상쇠를 받으면서 임실필봉굿은 중흥기에 접어들었다.
현재의 임실필봉굿의 원형은 박학삼 상쇠 이전의 고형과 박학삼 상쇠제의 굿이 결합된 형태의 굿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집대성하여 완전한 마을굿의 체계를 갖춘 것은 양순용 상쇠에 이르러서 이다. 곧 임실필봉굿이 오늘날과 같은 체계와 예술적 수준을 겸비하게 된 데는 양순용의 좌도굿 정리작업과 정형화 작업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양순용 상쇠는 1941년 전북 임실군 필봉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박학삼 상쇠가 초대되기 전까지 필봉리에서 상쇠를 맡아했다고 한다. 양순용이 풍물굿을 치기 시작한 것은 14세때부터 박학삼 상쇠 밑에서 끝쇠를 치기 시작한 것이며 18세가 되던 해에 임실필봉굿의 상쇠가 되었다. 사람들은 ‘애기상쇠’라고 불렀고, 그 기능이 뛰어나 걸궁굿 상쇠로 초빙 받기 시작했으며 20세가 되던 해에는 순창 동계에 거주하는 김문숙에게 부포놀음 전수를 받았다.
1977년 국립극장 ‘호남풍물굿발표회’공연 때 신기남 등 우도지역 명인들과 함께 발표회를 가졌는데 이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쇠를 맡았다. 양순용에 의하면 그때만해도 우도굿과 좌도굿은 공통점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1978년 전주 대사슴놀이에서 장원을 하고, 1980년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역시 풍물굿 부문 장원을 하는 등 각종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같은 해에는 직접 ‘호남좌도 임실필봉굿 발표회’를 열어 학계와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1982년에는 남원 삼동굿의 상쇠로 초청받아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0년 초부터 대학생을 위주로 한 전수가 있었지만 1980년부터 전수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995년 타계하기 전까지 문하생이 4만 여명에 이르렀다. 그는 1985년 더 이상 좁은 필봉마을에서는 교육생들을 수용할 수 없어 다른 교육장소를 찾아 남원으로 이사하였다.
양순용은 남원으로 이사한 뒤 남원에서도 사회 각계각층에 풍물패를 조직하여 장려하였다. 그의 헌신적인 전통문화 전승교육 활동 끝에 임실 필봉굿은 1988년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11-마 호로 지정되었고, 자신은 보유자로 지정받아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 1995년 55세로 타계하였고, 그 이후는 그의 아들 양진성이 상쇠를 맡고 있다.
양순용의 업적은 마을에서 일종의 문화관습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었던 것을 내용별, 형태별로 하나도 유실됨 없이 보존, 전승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필봉주민을 풍물패로 조직하여 단련시키고, 7개의 굿 종류마다의 특색과 절차 및 음악적 내용을 완벽히 한 것, 마지막으로 교육체계의 안과 밖을 확고히 다져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매년 3천명에 이르는 전수생이 임실필봉굿 전수를 받고 있다.
4.2 구례풍물굿
1982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당시 호남좌도풍물굿의 한 지역으로 구례풍물굿이 아직까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구례풍물굿은 그 이름만 존재할 뿐 사실상 사라지기 직전에 놓여 있다.
현재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는 구례풍물굿은 임실필봉굿과는 달리 기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이 구심점을 이루어 주도해 나가기가 힘들다. 물론 대개 풍물굿패 내부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상쇠이지만 상쇠마저도 1996년 즈음에 갑작스레 운명하셨다고 한다. 또한 같은 좌도지역의 필봉풍물굿이나 남원풍물굿, 고창풍물굿이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자 상대적으로 구례풍물굿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금의 전수 환경은 아주 열악하다. 사실 마을회관정도의 전수관도 있고 예전에 구례풍물굿을 체험했던 어르신들도 몇 분 계신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전수받을만한 젊은 사람들의 부재는 그것을 부활시키는데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례풍물굿을 살리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도 은연중 있지만 외부자본 없이는 그 한계 또한 명백해진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향후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흐른 뒤의 구례풍물굿은 자생적 부활이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 그사이에 그나마 구례풍물굿의 원형을 알고 계시는 몇 분의 어르신들마저 운명하신다면 그것은 영원히 사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단 이러한 사례는 이것에만 그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정책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 원형을 보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자생적 부활이 이상적인 형태일 테지만 그것은 지금 현시점에서는 실현 불가능 해보인다. 발달된 채록기나 영상기기 등을 사용하여 한시라도 빨리 굿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최선책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적극적인 모습은 아직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5. 나가며
이제 연구자료 현황에 대한 간단한 요약으로 본고를 마무리하겠다. 먼저 권역별로는 강원도(영동)지역과 경상도(영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세 지역은 대체로 고른 편차가 보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풍물굿이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인 농경지역의 많고 적음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우려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풍물굿의 지역적 연구 자료의 편차는 꽤나 우려할 만 하다. 필봉풍물굿의 연구 자료는 단연 독보적이며 정읍풍물굿, 이리풍물굿, 진안중평풍물굿 등의 자료들은 비록 그 수는 많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발전이 예상되는 바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연구 자료가 단 한건도 없는 풍물굿들에 대해서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학풍물패와 사회풍물패 활동을 하는 필자가 몸으로 느껴본 바로는 전국의 풍물굿은 이제 사물놀이와 임실필봉굿 이라는 두개의 틀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찍이 논두렁이나 마을의 큰 마당에서 놀아지던 우리네의 소박한 두드림이 폭발적인 인기와 호응을 얻으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분명 사물놀이이다. 문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고 시대의 요청에 부합되어 엄청난 영예를 누리고 있는 이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소중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디의 기능을 상실한 채 가락이나 기교 위주로 전승되다 보니 적지 않은 역기능이나 부작용을 간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실필봉굿은 풍물굿의 연회적인 측면과 시대가 원하는 화려함의 상징인 채상치배를 가락의 변화마저 감수한 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는 풍물굿 연구를 통해 가락 또한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보존회의 노력이 전국 최고의 풍물굿 전수생들을 길러냈는지도 모른다.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그것을 보존하고 전승시키려는 필봉풍물굿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풍물굿의 균형 있는 발전의 측면에서 본 몇몇의 풍물굿들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던지 원형을 끝까지 고수하든지 간에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해 나가는 풍물굿 외에 구례풍물굿처럼 자생력이 부족한 지역에 관한 자료들은 최소한 보존은 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나마 각 지역 마을굿의 원형을 알고 있는 해당 마을의 어르신들이 숨쉬고 계시는 이때에 절실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어쨌든 임실풍물굿과 사물놀이 이 둘이 나아가는 것만큼 나머지 풍물굿들도 발전하고 그와 더불어 자료연구와 보존 및 계승도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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