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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자
장코뱅 추천 4 조회 363 24.06.15 08:00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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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6.15 08:08

    첫댓글 베뢰아

    1. 데살로니가 서방40km 지점, 베르미우스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마게도냐의 도시이다. 오늘날의 지명은 베리아(Verria)이다. 베뢰아가 데살로니가처럼 상업 도시의 번성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장색 세공업과 농업, 석공업의 중심지로는 그 이름을 떨쳤다. A.D.51년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쫒겨난 후, 베뢰아로 들어가 베뢰아 회당에서 전도하였다(행17: 10,11).
    많은 베뢰아의 청중들은 말씀을 간절히 듣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때 많은 그리스인들도 신자가 되었는데. 그 가운데 소바더도 끼어 있었던 것 같다(20:4).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온 유대인들이 방해하고 선동하는 바람에 바울은 또다시 이 도시에서도 추방당하였다(17:13,14).
    2. 북부 수리아 알렢포 지방에 있는 도시. 수리아, 셀류키드 왕조의 시조인 '셀류쿠스 1세 니카토르'가 창설한 도시이다. 악한 대제사장 메넬라우스가 이곳에서 안티오쿠스 4세에게 피살당하였다(마카비 1서 13:3-8).

    출처: <GODpia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 24.06.15 10:13

    이단 베뢰아가 성경 지명과 행17:11의 신실한 성도들의 명성에 괜한 누를 끼치는 것 같습니다.

  • 24.06.15 15:50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6.15 09:16

    성경 해석의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다. 성경은 신앙적 진리의 최상의 기준이며, 모든 신앙의 논쟁을 종결짓는 최상의 재판관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이시다. …
    바울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을 그들의 특권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을 뿐 그들이 위탁 받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고 질타하지는 않았다. …
    다양한 종파들이 일어나 서로를 대적했지만 모두 동일한 성경을 소유했고, 그것을 서로를 견제하는 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에 훼손이나 삽입과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
    성경 해석의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다. 한 곳에서 간결하고 불확실하게 다루어진 내용이 다른 곳에서 좀 더 온전하고 분명하게 설명된다. 따라서 성경 본문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면 서로 관련 있는 성경 구절들을 비교해야 한다. …
    이성의 올바른 직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를 살피고, 다른 책들의 의미를 결정할 때 적용하는 규칙을 활용해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다. …
    모든 신앙의 논쟁을 종결짓는 최상의 재판관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뿐이시라는 조항은

  • 작성자 24.06.15 09:17

    교회가 신앙의 논쟁을 판단하는 무오한 재판관이라고 주장하는 교황주의를 논박한다. …
    교회와 성직자들은 성경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포함된 교리와 율법을 설명하고 강화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들의 권위는 사역을 위한 권위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그들의 해석과 결정은 인간의 양심에 대해 아무런 구속력도 가질 수 없다. …

    아래에 로버트 쇼 목사님의 웨민 해설 전부를 올립니다.

  • 24.06.15 10:46

    @장코뱅 아! 먼저 핵심 내용을 소개하신 것이군요. 너무나 합당하고 맞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 24.06.15 09:19

    웨민 1장 9항∙10항 해설

    이 조항들은 네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원어로 기록된 성경은 완전한 상태로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믿을 만하다. 둘째. 성경은 모든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셋째, 성경 해석의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다. 넷째, 성경은 신앙적 진리의 최상의 기준이며, 모든 신앙의 논쟁을 종결짓는 최상의 재판관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이시다.

    1. 구약성경은 갈대아어로 기록된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히브리어, 곧 하나님의 계시를 위탁 받은 유대인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갈대아어로 기록된 성경 구절은 예레미야 10장 11절, 다니엘 4장 2절-7장. 에스라 4-6장뿐이다.

    신약성경은 본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헬라어는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언어였다. 마태복음의 본래 언어는 논쟁의 대상이다. 과거에는 모두가 마태복음이 히브리어로 쓰였다는 데 동의했다. 현대의 비평가들 가운데도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과 학식이 비슷한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의 원어가 헬라어였다고 주장한다. 이 주제를 다룬 최근의 저술가들 가운데 몇몇은 마태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위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 작성자 24.06.15 09:20

    각각 기록한 두 개의 원본이 존재했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성경 저자들의 자필 원고는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보호를 통해 대대로 순수하게 보존되어 왔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 원본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많다.

    구약성경의 순수성은 오늘날의 히브리어 성경이 초기 번역본들, 특히 「70인경」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하나님이 유대인 통치자들과 교사들이 그릇된 교리를 전했다고 책망하신 적은 있어도 성경을 오염시켰다고 나무라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도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바울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을 그들의 특권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을 뿐 그들이 위탁 받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고 질타하지는 않았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처음부터 큰 반목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어느 쪽이든 성경을 훼손했다면 즉각 그 사실을 지적하고 나섰을 테니 이 또한 구약성경이 온전히 보존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한편 신약성경이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누구든 신약성경을 훼손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

  • 작성자 24.06.15 09:20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본들이 신속하게 퍼져 나갔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곳의 언어로 곧바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자신들의 저서에 수많은 신약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했다. 다양한 종파들이 일어나 서로를 대적했지만 모두 동일한 성경을 소유했고, 그것을 서로를 견제하는 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에 훼손이나 삽입과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물론 고대의 많은 사본을 비교해 보면 구절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필사자들이 이따금 저지른 부주의와 실수로 인해 발생한 것일 뿐 그런 차이가 신자의 믿음과 위로를 해치는 경우는 일체 없다.

    2. 성경은 처음에 기록될 당시 일반 대중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경이 각 나라의 자국어로 번역되어 모든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섭리하셨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일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고, 성경을 무분별하게 읽는 것이 위험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런 입장을 거부한다. 성경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달리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사용하는

  • 작성자 24.06.15 09:21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셨다(요 5:39). 일반 신자들은 성경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 교사들의 교리를 시험해야 한다(행 17:11). 그러려면 성경이 모든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사도들은 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종종 「70인경」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3. 성경 해석의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다. 한 곳에서 간결하고 불확실하게 다루어진 내용이 다른 곳에서 좀 더 온전하고 분명하게 설명된다. 따라서 성경 본문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면 서로 관련 있는 성경 구절들을 비교해야 한다. 특정한 본문만을 토대로 의미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원리나 거룩한 진리의 전체적인 대의'에 부합하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신앙고백의 작성자들은 성경 본문의 의미가 여러 가지가 아니고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경에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는 성경 구절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예언은 처음에는 유대 민족에게, 그다음에는 교회와 천국에 적용되는 등 중복적 성취를 거치고, 어떤 구절은 다른 구절을 대표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 작성자 24.06.15 09:22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성령이 의도하신 전체적인 한 가지 의미를 완성할 뿐이다. 성경은 명확하고, 진리는 서로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갖거나 하나의 의미가 또 다른 의미에 종속되는 경우는 절대 없다.

    4. 성경이 신앙적 진리의 최상의 기준이라는 조항은 이성으로 게시된 교리를 판단해야 하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소시니우스주의를 논박한다. 신앙의 문제와 관련해 이성을 활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계시의 내용을 논의하고, 스스로의 잣대로 그것을 시험해 승인과 거부, 동의와 반대를 결정하는 것은 이성의 직무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성으로 '이것은 계시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계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독립된 증거를 통해 입증되지 않으면 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진 것이라고 해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이성의 올바른 직무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를 살피고, 다른 책들의 의미를 결정할 때 적용하는 규칙을 활용해 그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사전 작업이 끝나면, 즉 모든 의구심과 반대 의견이 해결되면 계시를

  • 작성자 24.06.15 09:22

    대하는 온당한 태도는 오직 믿음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성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시키고, 그 무한한 지혜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모든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이성의 온당한 역할이다."

    모든 신앙의 논쟁을 종결짓는 최상의 재판관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뿐이시라는 조항은 교회가 신앙의 논쟁을 판단하는 무오한 재판관이라고 주장하는 교황주의를 논박한다. 무오한 권위가 교황이나 교회 회의, 또는 그 둘 다에 있는지에 관해서는 교황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무오한 재판관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교황도, 교회 회의도 신앙의 논쟁을 판단하는 최상의 재판관이 될 자격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종종 서로를 질시하며 모순된 주장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교회와 성직자들은 성경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포함된 교리와 율법을 설명하고 강화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들의 권위는 사역을 위한 권위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그들의 해석과 결정은 인간의 양심에 대해 아무런 구속력도 가질 수 없다.

  • 작성자 24.06.15 09:23

    교회 회의의 결정, 고대 저술가들의 견해, 인간의 교리들은 모두 이 규칙에 의해 시험되어야 하며, 모든 신앙의 논쟁도 이 규칙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사 8:20. 마 22:29).

    로버트 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pp.39~42.

  • 24.06.15 10:58

    @장코뱅 목사, 교회, 교회 회의, 인간의 교리는 모두 성경에 의해 검증받고 지배받아야 합니다. 상세힌 설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24.06.15 12:02

    @장코뱅 성경의 최종 권위에 대해서 로버트 쇼 목사가 아주 좋은 해설을 달아 주었네요. 정말 유용하고 구구절절 가려운 데를 쏙쏙 긁어주는 느낌입니다.

  • 24.06.15 16:08

    @코람데오 네, 공감합니다. 읽고 크게 공부가 됩니다.

  • 작성자 24.06.15 11:19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고,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시기심을 갖지 않고 성경을 상고했다는 점이 신사적인 특성입니다.
    ------------------------------

    17:10-15 베뢰아에 간 바울과 실라.
    17:1-7의 전형적인 사태가 베뢰아에서도 재현되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던 점’은 예외였다. 그들이 신사적이었던 것은 모두가 바울과 실라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시기심으로 행동하지 않고 '바울의 강론이 과연 그러한가 알기 위해 성경을 상고한' 까닭이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뿌려진 말씀은 열매를 맺었다. 1

    13절.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반대자들은 베뢰아까지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 인물인 바울을 떠나보내도록 하였다. 실라와 디모데는 잠시 베뢰아에 더 머물렀다.

    <IVP 성경주석: 사도행전>, "사도행전 17장".

  • 24.06.15 11:06

    이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있을 것 같고요. 묵상 본문에 나오는 공동번역이 이 정황을 잘 나타낸 갓 같습니다.

  • 24.06.15 11:13

    행17:11 베뢰아 사람들에게서 햔대 한국교인들이 본 받을 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좋은 묵상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24.06.15 11:17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 24.06.15 11:18

    상고하다

    자세히 참고하여 상세히 검토하다.

    <GODpia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 작성자 24.06.15 11:28

    바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은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적어도 바울 일행에 대해 적의(適意)를 나타내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

    <뉴호크마 주석: 신약>, “사도행전 17장”

    <17:10-15> 데살로니가에서의 소동을 뒤로하고 그곳을 조용히 떠난 바울 일행은 베뢰아에 당도한다. 베뢰아에서는 그 시민들의 문화적 포용력과 종교에 대한 비독선적 태도로 인해 복음 사역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17:10 밤에 형제들이> 읍장들이 보석금을 받고 조건부적으로 야손의 일행을 석방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 체류는 양측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야손이 읍장들에게 끌려갔을 때 아마 바울일행은 데살로니가의 어느 비밀장소에 숨어 있었을 것이고 낮보다는 다소 안전한 밤이 되어서야 소수의 새로운 개심자들의 길 안내로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베뢰아>. 데살로니가 남서쪽 약 80km지점, 마게도냐 평원 남쪽 올림푸스 산맥 기슭의 조그마한 언덕에 위치했다. 당시 이 도시에는 많은 인구가 살고 있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 작성자 24.06.15 11:29

    <17:11 더 신사적이어서> '더 신사적'의 헬라어'유게네스'는 비교급의 형태로서 가문이 좋은', '출신이 좋은', '고귀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베뢰아 사람들이 모두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이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편견 없이 객관적 자세를 나타내 보였고 또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간절한 마음으로>(파세스 프로뒤미아스). '프로뒤미아스'는 '열심히', '자진해서', '준비된' 등의 뜻이며 '파세스'는 '모든' 이란 뜻으로 베뢰아 사람들은 모든 준비된 마음과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열심을 다하여 말씀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말씀은 준비된 마음 밭에 떨어졌을 때 좋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마 13:3-8).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상고하다'의 헬라어 '아나크리노'는 자세하게 골라내다', '체를 쳐서 가려내다', '탐색하다', '조사하다'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는 종종 사법적 심문(審問)과 관계되어 사용되었으나 여기서는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열심을 다해 구약성경을 자세히 읽고 살펴 그 본의를 다시금 잘 새겼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구약성경을 통하여 얻은 지식과 헬라의 철학사상,

  • 작성자 24.06.15 11:29

    그리고 그들의 생활체험 등을 바탕으로 바울의 설교를 깊이 비교 검토하여 복음을 진리로서 받아들였을 것이다.

    <17:12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 상류사회에 속해있으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미쳤던 헬라인들을 가리킨다. 그 중에는 유대교로 개종했던 이방인들과 이교도를 믿던 사람들도 다소 있었을 것이다. 복음은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별 없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보여주는 구절이다(롬 1:16). 한편 바울의 아시아 여행에 동반했던 부로의 아들 '소바더'도(20:4) 이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 소동케하거늘>. 베뢰아에서의 선교활동의 소식이 데살로니가의 사악한 유대인들의 귀에 들어가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베뢰아까지 달려왔다. 이들은 똑같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켰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이 소동의 무리에 베뢰아 사람들이 가담하였다는 언급이 없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는 바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은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적어도 바울 일행에 대해 적의(適意)를 나타내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 24.06.15 16:18

    @장코뱅 뉴호크마 주석의 내용도 상세하네요. 잘 읽고 참고합니다.

  • 24.06.15 14:34

    성경해석을 제멋대로 할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성경 교사들과 학자들이 치열한 논쟁을 거쳐서 확립한 교리와 저서들, 다수의 회중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채택된 내용들을 잘 살펴보고 안다면 이단 사설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음을 잘 알려주셨네요.
    우리가 궁금해하는 많은 성경의 내용들이 있는데, 웨민 1장 9, 10항에서 이미 말했듯이 성경 안에 답이 있다고 믿고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좋은 습관을 초신자 단계에서부터 잘 들일 수 있도록 교회 리더들이 신경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이단들은 이제까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성령께서 나에게(교주, 창시자) 보여주시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지위를 자신에게로 슬쩍 옮겨가는 수법으로 찬탈이 시작됩니다. 추종자들이 늘어나면 나중에는 자신을 사도로, 메시아로, 성령으로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더군요. 처음부터 그들은 자신을 상당히 절대적인 존재로 믿게 합니다. 특별한 경험과 능력, 은사, 힘이 있음을 과시하죠. 사기꾼들이 처음에 돈이 많다고 자랑하고 과장하는 것처럼...

  • 작성자 24.06.15 13:12

    이단 중 목사제도를 유지하는 곳이 있고: 베뢰아, 구원파 등. 아예 보혜사나 예수를 사칭하는 이단들이 있는데: 신촌쥐, 박태선. 교주든 이단 목사든 거의 대다수가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국어 교육 등 일반 교육마저도 못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자의적 해석, 국어적으로 막무가내 어거지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 24.06.15 16:28

    @장코뱅 네, 매우 공감합니다.

  • 24.06.15 13:04

    남이 가진 능력과 재력 등을 부러워하고 탐하다가 사기꾼에게 당하고 이단자들에게 영혼이 낚이지 말고, 처음부터 소박하고 단순하게, 규모 있게,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겠죠.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하고, 성경 교사들의 좋은 책을 겸하여 읽어나가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나가야겠습니다. 요즘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24.06.15 13:07

    매우 좋은 분별과 미숙한 분들에게 좋은 경계를 주는 훌륭한 내용의 댓글입니다.

  • 24.06.15 16:36

    @장코뱅 공감합니다.

  • 24.06.17 17:35

    좋은 묵상을 읽고 은혜와 깨달음을 함께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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