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장 ------ 운명의 만남
비무 둘째 날!
첫날에 이어 둘째날의 열기도 남궁세가를 녹일 듯 뜨겁게 달아 올
랐다.
천하에서 한다는 무림고수들이 모인 대륙영웅비무대회였다.
그 중에서 첫날 육백명이 참가하여 그 중에서 오십명만 남은 대
격전이었으니, 둘째 날의 비무는 대부분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만
큼 비등한 비무를 벌렸다.
그만큼 강한 고수들만이 엄선되어 벌이는 비무였기 때문이다.
금천풍호. 정오가 될 때까지 그는 두 명의 상대와 비무를 벌였는
데 그들은 다음과 같았다.
혈영천마 장절궁!
대강이북을 횡횡하던 오십년 전의 거마!
혈영마공이란 극패마공으로 오십년전만 해도 살성으로 명성을 떨
치던 전대거마였다.
금천풍호는 그와 이백여 초를 겨룬 끝에 가까스로 반초 차이로 승
리를 하였다.
화산신검 사궁천!
화산파의 대표로 나온 젊은 기재!
매화십팔검이란 화산독문 검법으로 후기지수 중 세손가락 안에 꼽
는다는 일류고수.
백오십여 초를 겨룬 끝에야 가까스로 승리를 할수 있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랬을 뿐..... 기
실 금천풍호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비무에 임했기 때문에 그런 것
뿐이었다.
사실, 그는 단지 삼성의 공력만으로 이들을 상대했으며 중원칠절
중 절간의 칠십이조법 중 십이식만을 펼쳤을 뿐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혈영천마나 사공천은 일초도 견디지 못 하
고 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 때문에 두번째 비무가 완전히 끝나고 남은 팔인
중에 그가 끼어 있었으나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세인들은 단지 못 보던 신예고수가 나타났으려니 하였을 뿐 설마
하니 그가 최후의 승자가 될 만한 무공을 지녔으리라고는 아무도 생
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힘겹게 승리를 하고 내려올 때 남궁초량만이 의미 있
는 미소를 그에게 던졌을 뿐이었다.
* * *
밤이었다.
살오른 처녀의 풍만한 엉덩이같은 천공에서 은빛 월광을 뿌리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친 금천풍호는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남궁세가!
한 두번 걸어보는 것도 아니건만, 산책을 할 때마다 금천풍호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곳은 얼마나 넓은 것일까?
끝이 짐작조차 가지않는 드넓은 대지에, 수백수천을 헤아리는 고
루거각들이 치마꼬리를 맞대고 이어져 있으니......
(일개 무림세가의 건축이 이토록 어마어마 하다니......)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하나.
(나의 가문! 금천세가. 너무도 오래된 기억이기에 잘 생각이 나
지는 않지만...... 우리집의 규모도 결코 이보다 작지는 않았다.)
금천세가!
십오 년 전만 해도 천하제일가와 나란히 쌍벽을 이루던 위대한 무
림세가......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몰락하여 세인들의 노리에서조차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가문.
걸으면서 금천풍호는 조용히 천공을 우러러보았다.
(나의 가문! 반드시 내 손으로 부흥시킨다. 예전의 수배의 규모
로......)
중원에 처음 나왔을 때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십오 년 간을 친자식
처럼 길러준 중원칠절을 죽이고 떠난 단봉중옥에 대한 복수!
그리고 두 번째는 간접적으로 금천세가를 멸망시킨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천하제일가에 대한 복수!
결국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으나 그 목적은 복수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허나, 나는 복수 따위에 연연하지는 않겠다. 천하제일가에 대한
복수심을 버린지는 벌써 오래 전의 일! 나는 복수 대신 천하제일가
보다 더욱 본가를 크게 부흥시켜 자연스럽게 천하제일가에 복수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지하에 계신 부모님의 원한을 조금이
라도 갚을 수 있는 도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봉중옥에 대한 문제인가?
(단봉중옥. 그녀는 나 때문에 마성에 젖어 여마가 되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녀도 불쌍한 여인이다. 사랑을 배신당하고 멸문지화
까지 겹쳤으니..... 누구라도 그녀의 입장이 되었다면 그렇게 변하
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없을 것이다.)
금천풍호는 한편으로 단봉중옥에게 연민지정을 느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잠깐!"
옥음.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오장을 말쑥하게 다듬어 내리는 상쾌한
옥음이 바람같이 그의 고막을 울려온 것은......
금천풍호는 의아한 눈빛으로 음성이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
렸다.
순간, 그의 눈에 돌연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아름답다!)
그 순간 그는 무엇을 보았는지 굳은 듯 전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여인.
아니 소녀.
은가루처럼 쏟아지는 달빛을 받아서인가?
교교한 월광 아래 서 있는 소녀의 피부는 더욱 희어 보이고 먼 산
을 그대로 옮겨 붙힌 듯한 선연한 아미에 유월의 햇살처럼 맑디 맑
은 이마에 꽃잎 같은 입술.
게다가 타는 듯한 홍의궁장에 가려진 섬연한 굴곡의 몸매라니......
오오! 월궁의 항아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왔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눈 앞의 미소녀가 이토록 아름다울수 없을 것이다.
누가 지금 이 미소녀를 보고 속세의 여인이라고 하겠는가?
금천풍호.
그는 생애에 세 여인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는 바로 단봉중옥이었으며, 두 번째는 봉황곡의 봉황신녀 설
난지......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음월이다.
그녀들은 제각기 독특한 미색으로 다투어 핀 꽃들이다.
설난지가 차갑고 고고한 미인이라면, 음월은 얼굴보다는 사내를
자극하는 늘씸한 교구가 유난히 돋보이는 미녀.
(허나, 이 여인은 설난지와 음월의 얼굴과 몸매를 합친 것보다도
뛰어나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단봉중옥과 비교를 할수가 있다고나 할까?
단봉중옥은 과거 강북제일미로 불리던 절세미녀다.
헌데 그녀와 머금가는 절세미녀를 이런 한적한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때,
"......!"
미소녀는 그를 불러 세워 놓고는 잠시 금천풍호의 얼굴을 뚫어지
게 바라보더니, 문득 실망에 가득한 표정을 눈에 가득 떠올렸다.
"아니군요...... 제가 찾던 사람이 아니예요...... 언뜻 보아서
는 옥대공자와 똑같아서......"
순간, 금천풍호의 동공에 언뜻 섬전 같은 기광이 스쳐 지나갔다.
옥대공자------!
이것은 바로 천하제일가의 대공자인 옥천군을 가리키는 말이 아
니고 무엇이랴!
언젠가 금천풍호도 단봉중옥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단봉중옥의 약혼자였으며, 저 비극적인 단봉세가의 멸망이 없었
다면 두 사람은 지극한 사랑 끝에 지금쯤 결혼을 하고 있을 것이라
는......
헌데 이 여인도 옥천군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더우기 여인의 태도로 보아 옥천군을 지극히 사랑하는 있는 듯하
지 않는가?
그때 미소녀는 돌연 정색을 하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했다.
"죄송하게 됐군요......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았어요. 그럼......"
그녀는 조용히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
이번에는 금천풍호가 미소녀를 불러 세웠다.
"......!"
미소녀는 돌아서며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제게 물어볼 일이 있나요? 저는 분명히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
고 사과를 드렸는데......"
금천풍호는 담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손을 설레설레 저었다.
"하하! 그 때문이 아니오. 소저, 단지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 소
저에게 몇 마디 물어보려고 하는 것이오."
"제게 물어볼 말이 계시다고요?"
"후후! 그렇소."
"......!"
"소저께서는 조금 전에 소생을 보고 옥대공자라고 했었는데......
그 사람은 혹시 천하제일가의 대공자가 아닌지......?"
순간 미소녀의 안색이 약간 기이하게 변했다.
"공자께서는 그 분을 뵌 적이 있나요......?"
말.
소녀의 말은 곧 그녀가 찾던 사람이 옥천군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직감한 금천풍호는 미소를 떠올리며 물
었다.
"정말 내 모습이 옥천군과 비슷하다는 말씀이오?"
"그래요...... 모습은 물론 풍기는 기도까지 매우 흡사해요......
저는 조금 전에 공자를 보고 그 분인 줄 착각을 했으니까요."
"후후! 그렇다면 누가 더 잘 생겼소? 소저가 보기에는 말이오."
"글쎄요...... 두 사람의 용모를 가지고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겠
지만 공자께서 조금 더 잘 생......"
말을 하다말고 그녀는 돌연 안색을 붉히며 짐짓 싸늘한 음성을
흘렸다.
"제게 그런 쓸데없는 말을 물으시려고 했다면은 저는 이만 돌아
가겠어요......"
이어 그녀는 정말로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자 금천풍호는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말했다.
"후후! 닮았다기에 하는 말이었소. 결코 소저를 놀리거나 하는
뜻은 없었으나 결례가 되었다면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겠소."
순간 미소녀의 눈빛이 잘게 흔들리며 야릇한 눈빛을 발했다.
(이상한 사람이야!)
어찌 보면 장난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또
어찌보면 명문대가의 귀공자처럼 품위 있고 정중하게 보이니 그녀로
서는 정신이 혼란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때, 금천풍호가 문득 정색을 하며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저는 바로 남궁세가의 작은 주인인
남궁소저 같소만은......?"
순간 미소녀의 얼굴에 해연히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어마! 공자께서는 언제 저를 보신 적이 있나요?"
금천풍호는 순간 미소를 떠올리며,
"역시 내 추측이 맞았구료......"
"......!"
"사실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한 여인들의 숫자가 매우 적소. 게다
가 그들은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여인들이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꿀 줄 모르는 불쌍한 존재들...... 그래서 나는 이 남궁세가 안에
소저처럼 아름다운 가인이 있다면 반드시 남궁소저라고 생각을 했
던 것이오."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오는 찬사!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서 싫어하는 여인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여인은 진짜 추물이어서 마음 속으로 늘 심한 열
등감을 지니고 사는 불쌍한 여인일 것이다.
그렇다.
눈 앞의 절색의 미소녀는 틀림없는 남궁소소였던 것이다.
남궁소소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를 피워 올렸다.
"호호! 이제 보니 여인을 칭찬하시는 언변에도 꽤 능숙하시군요.."
"후후! 특별히 신경을 써 본적은 없소. 헌데 소저께서 그렇게 들
었다니 소생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방면으로 소질이 있는 모양이오."
미소녀는 그런 금천풍호를 빤히 주시하더니 눈빛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공자께서도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하신 분이신가요?"
"후후! 구경삼아 나왔을 뿐이오......"
"그럼...... 아직까지 탈락을 하지 않았나요......?"
"후후! 운이 좋았을 뿐이오......"
순간 남궁소소의 눈가에 강렬한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놀랍군요...... 공자께서 일신에 그토록 훌륭한 절기를 가지고
계셨을 줄을......"
이어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낯빛을 차갑게 굳히며 냉랭한 음
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공자께서는 이번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
리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금천풍호는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후후! 무엇 때문이오? 소저."
"이번 비무대회의 우승자는 틀림없이 죽게 되기 때문이예요."
순간 금천풍호의 눈이 짐짓 커졌다.
"그게 정말이오?"
"그래요......"
"누구한테 죽게 된다는 말이오? 나는 이번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바로 절세미녀인 남궁소소를 얻을 수 있다고 들었거늘......"
"그것은......"
남궁소소는 말을 하려다가 문득 꽃잎 같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금천풍호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오늘밤 공자와 우연이기는 하지만 저와 만난 인연을 생
각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예요..... 그러니 공자께서는 그렇게 알
고 행동하는 것이 좋으실 거예요......"
이어 그녀는 돌연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정말이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라졌기에 금천풍호도 그
저 어떨떨한 기분이었다.
(여자란...... 금방 간이라도 빼줄듯이 화사하게 웃다가..... 그
렇게 금방 토라져서 가다니...... 대체 여자란 어떻게 대해야 좋단
말인가?)
오오! 여인!
그 변화무쌍하고 골치아픈 존재여......
헌데, 이번 대륙영웅비무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죽게 된다니..
이 무슨 기분 나쁜 말인가?
사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금천풍호로서는 이번 비무대
회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고 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이번 기회에 무림인들의 얼굴을 많이 익혀두고 또 실
전의 경험을 많이 쌓아두려고 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난 이틀간의 비무에서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초
식을 시험해 보는 것으로 만족을 했던 것이다.
헌데, 지금 남궁소소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불현듯 가슴으로
부터 불같은 호기가 치밀어 올랐다.
본래부터가 남이 안 된다던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기를
쓰고 대드는 성격의 소유자가 바로 그가 아니던가?
(좋다. 이렇게 되면 생각을 달리 하겠다. 후후, 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나를 죽이려는지 궁금해지는군......!)
일!
이상한 인연에서 이상하게 꼬여드는데......
과연......?
* * *
운명의 날은 밝아왔다.
전 중원의 시선이 대륙영웅비무대회에 집중된 이 날......
설렘 속에 지낸 밤이었기에 지난밤은 그렇게 더디게 느껴졌을
것이고...... 특히 남궁세가에 찾아와 직접 대륙영웅비무대회에 참
가했던 무림인들은 아예 밤잠까지 설쳐댈 지경이었다.
허나, 한 사람.
그는 해가 중천에 떠올라 방안을 환히 물들일 때까지 늦잠을 잤
으며 태연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비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천하에서 이렇듯 배짱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단 하나.
그렇다.
바로 금천풍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