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을 잃어버린 사나이
김기림
시월 고개가 절반을 넘어갈 때가 되면 과수원을 생업으로 하는 이 작은 동리는 갑자기 분주해진다.
사나이들은 헌 옷을 털어 입고 괭이를 둘러메고 과일 밭으로 나간다. 아낙네들은 그들의 남편들과 오라버니들이 따 주는 과일 광주리를 머리 위에 올려 놓고 바쁘게 달음질친다.
금년에 겨우 다섯 살을 먹은 금순이까지 대야에 그 골보다도 더 큰 명월(배의 품종 중 하나)을 네 개나 담아 이고서 어머니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는, 배나무에 걸터앉은 할아버지의 입술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무르녹은 익은 과일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향기가 사람들의 코를 찌른다.
이윽고 열 간이 넘는 지하실 움 속에는 가지각색 과일들이 구석구석마다 산더미같이 쌓인다.
이윽고 우리들은 아낙들이 끓여 주는 뜨거운 국물로 종일토록 얼어붙은 배 속을 녹인 후 우리들의 충실한 동무인 황소 목덜미에 과일 궤를 담뿍 실은 수레를 메워 가지고 이곳에서 십 리 밖에 있는 정거장으로 밤차 시간에 맞도록 바쁘게 수레를 몬다.
(중략)
어느덧 벌판 위에는 어둠이 두텁게 잠긴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촉촉한 바람이 얼굴 위를 씻고 달아난다.
침묵한 산들은 어둠의 저쪽에서 커다란 몸뚱이를 웅크리고 주저앉아서 별들의 숨은 노래를 도적질해 듣고 있나 보다. 그 어느 시절에는 황혼이 되면 나는 언덕 위로 뛰어올라 가기도 했다. 날아오는 별들과 더 가까이 가서 이야기나 하려는 것처럼. 그렇지만 지금 수없는 작은 별들은 은하수를 건너서 더 멀리멀리 날아가지 않는가. 우주의 비밀을 감춘 별들의 노래는 지극히 먼 어둠의 저쪽에서 아마도 작은 천사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나 보다. 그것들은 지금의 내게는 아주 먼 곳에 있다.
덜그렁- 덜그렁-덜그렁
수레바퀴가 첫 얼음을 맞은 굳은 땅을 깨물 적마다 금속성의 지치벅 소리가 땅에서 인다.
지금 수레는 넓은 들을 꿰뚫고 굴러간다. 그 위에서 나의 눈은 별들을 하나씩 둘씩 잃어버리면서 내게서 멀어져 가는 그들의 긴 꼬리를 따라간다.
일찍이 청춘이라고 하는 특권이 나에게 아름다운 저 별들을 쫓아가는 환상의 날개를 주었다. 그렇지만 자금 그 날개는 시들어졌다. 나는 지금 나의 젊은 하늘을 찬란하게 꾸미던 뭇 별들을 잃어버린 대신에 대지 위에 무슨 발판을 찾고 있다. - 긴 불행과 고난 뒤에 돌아오는 ‘열매를 거두는 기쁨’. 봄이 오면 우리들은 들에 씨를 뿌릴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우리는 우리들의 땀과 기름으로 기른 열매를 거둘 것이다. 어둠의 저쪽에 잠기는 긴 기적 소리 – 국경행 최종 열차가 아마 저편 역을 떠나나 보다.
더 높은 데로 더 높은 데로 날아만 가는 별들 – 나는 그것들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슴에 밤을 안고 굴러가는 수레에 몸을 맡긴다.
작가소개: 김기림(金起林, 1907년 4월 5일 ~ 1950년 6월 25일 납북)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본명은 김인손(金仁孫, 아명(兒名)은 金寅孫)이 며, 편석촌(片石村)이라는 아호를 사용하였다.
생애
함경북도 학성에서 출생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후 일본의 니혼 대학 영문학과 중퇴를 거쳐 도호쿠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학사 학위 취득하였다. 귀국하여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를 지내면서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또한 같은 신문에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를 발표하며 문학평론에도 뛰어들었다. 1933년 이상, 이효석, 조용만, 박태원 등과 함께 구인회를 결성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6년에는 첫 시집 《기상도》를 발표하였다.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 경성중학교(鏡成中學校)의 영어 교사로 부임했으며, 영어 과목이 폐지되자 수학을 가르쳤다. 당시 제자로 시인 김규동이 있다.
1945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나, 다음 해 소련이 점령한 북한 지역으로부터 월남하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즈음에 탈퇴하였다. 중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강사로 일하다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었고, 신문화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고,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시기는 불명이다.
1990년 6월 9일에 동료 시인 김광균, 구상 등이 주도하여 모교인 보성고등학교에 김기림을 기린 시비를 세웠다.
문학 세계
T. S. 엘리엇에게서 영향받아 주지주의 이미지즘 시를 주로 썼다. 동시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기교주의를 비판하며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전체시'의 창작을 주장하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자신의 이론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흩어져 있을 뿐 시적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그런 결점들은 찿복되었다. 평론 면에서는 영미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도입하여 한국 시문학계의 한 전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감상: 대학때 졸업 논문으로 김기림의 장시 <기상도>를 중심으로 모더니즘 시인의 시어에 대한 분석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에게 그의 <바다와 나비>, <연륜>이라는 시를 가르치면서도 김기림 시인의 수필을 읽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별들을 잃어버린 사나이>를 읽으면서 왜 교수님께서 시작을 하기 전에 좋은 수필을 써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시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고 실어 나르는 노동을 하고 있는데도 이 수필에서는 노동의 버거움보다는 별을 바라 보면서 젊은 시절 가졌던 꿈을 잊지 못하는 시인의 내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시인의 상황이기만 한 것이 아닌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공감이 컸습니다.
‘침묵한 산들은 어둠의 저쪽에서 커다란 몸뚱이를 웅크리고 주저앉아서 별들의 숨은 노래를 도적질해 듣고 있나 보다.’
‘ 수레바퀴가 첫 얼음을 맞은 굳은 땅을 깨물 적마다 금속성의 지치벅 소리가 땅에서 인다.’
이런 문장을 다루는 창의적이고 신선한 표현들에서는 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진솔하고 정성이 담뿍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되어 같이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첫댓글 이렇게 아름다운 수필이 있었군요. 전문을 찾아서 다시 읽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