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 염소
박태일
산에서 내려온 듯한 다섯
한 마리만 마구 어리다
둘레둘레 뒤웅뒤웅 엉덩이 뽐내며
새벽을 걸었을 가족
먼 태암 골짜기 따라 왔을까
청다관 등성일 탔을까
연집하 물가 수상시장 가까이
두 젖통 비비적거리며 선 채
아침을 오물거리는 염소들
주인은 자랑차게 젖을 낸다
오늘 여러 사람이 얻을 수 있으리라
페트병을 든 몇이 줄을 섰고
먼저 산 이는 젖을 내어 준 염소 앞에
여물을 놓고 돌아선다
주받는 게 사는 이치인데
따뜻한 젖을 베푼 염소와 이제
베풀기 위해 오물거리고 선
네 마리 모두 의젓한 낯빛이다
집안 우리에는 이들 웃대가 될 놈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아침 보시하고 돌아온 녀석들에게
등배를 두드려 주리라 수고했노라
이 아침 길 바쁜 수상시장 한 곁
어느 마을 염소 한 가족
홀쭉해진 두 젖을 늘인 채
먼저 짠 염소는 우두커니
시장 쪽 사람들을 본다.
—계간 《시와 시학》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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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 1954년 경남 합천 출생. 1980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그리운 주막』『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옥비의 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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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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