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오늘의 역사
2021년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 취임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 한국 첫 환자 발생
2019년 12월부터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원인 불명의 폐렴. 이 때문에 우한 폐렴 등으로 불리기도 하다가 WTO에서 코로나 19로 명명했다
국내에서 첫 확진자는 중국 국적의 30대 여성으로 19일 우한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으며 입국장에서 고열 등 관련 증상을 보여 격리됐다.
이후 환자 발생이 늘어나다가 31번째 환자가 대구지역 신천지 예배에 참석하여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전파되었으며 4월 말 다소 진정되었다가 5월9일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하였으며 8월 10일 서울 사랑제일교회에서 환자가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잠시 주춤하다가 11월부터 3차 확산세가 발생하였으며, 2021년 6월 4차 대확산이 발생하였으며 2021년 11월1일 위드코로나를 발표하며 일상에 접근 하는가 하였지만 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났다
또한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확산되며 국내에서도 2021년12월1일 해외 다녀온 사람이 오미크론에 감염되었음을 확인 되었다
이후 확진자가 폭증하자 12월16일 부로 다시 거리두기 등 제한조치를 하였다
2022년4월18일부터 확진자 수가 10만명대 이하로 내려가서 거리두기 완화 조치로 영업시간 제한을 철폐 하였으며 5월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을 해제 했다
누적확진자는 2년 후인 2022년2월6일 100만명을 넘어서고 2월21일 200만명 2월28일 300만명 3월5일 400만명 3월9일 500만명 3월12일 600만명 3월15일 700만명 3월17일 800만명 3월21일 900만명 3월23일 1000만명이 넘었다
사망자는 2022년3월12일 1만명이 넘어 섰다
2023년1월18일 현재 확진자가 29898142명이며 사망자도 33057명이다
또한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사망자도 2341명이 넘었고
2022년2월18일 일일확진자가 10만명이 넘었으며 일일 확진자 최대인원은 2022년3월17일 621328명이 발생 하였다
2022년 7월16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도 5억6618만명이 넘었으며 사망자는 638만명이 넘었다
2022년3월13일은 한국에서 38만3651명이 신규 확진되어 확진자발생 세계 최다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세계 확진자(142만9691명) 중 26.8%였다.
2018년 IOC, 북한 평창겨울올림픽 참가 최종 승인
2018년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호텔에서 인질극 사망 29명 이상
2011년 대한민국 대법원이 조봉암 간첩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제44대 대통령 취임식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2009년 1월 20일 제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이날 미 의회 의사당 앞에 마련된 취임식장에서 부인 미셸이 들고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성경에 손을 얹은 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안내에 따라 대통령 선서를 함으로써 정식으로 취임했다.
이로써 그는 미국 역사가 시작된 지 232년만에, 그리고 미국이 대통령을 선출하기 시작한 지 219년만에 최초로 흑인 대통령으로 새로운 미국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취임식직전 기도문을 전한 페트릭 워렌 목사는 "인종이나 종교를 초원한 한 국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날 선서는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부터 했으며, 오바마의 선서는 이작 펄만(바이올린)과 요요마(첼로),앤서니 맥길(오보에), 가브리엘 몬테로(피아노) 등이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이번 취임식을 위해 특별히 편곡한 'Air and Simple Gift' 란 곡을 연주한 다음 이뤄졌다.
취임식이후 의사당에서 백악관에 이르는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에는 전통대로 취임식 퍼레이드가 이어졌으며,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거나 자랑스런 미국인들이 연도에 마련된 좌석에 가득찬 시민들의 환호속에 백악관까지 행진해갔다.
2009년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 6명 사망
2009년 1월 20일, 철거예정인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상가건물 옥상을 불법 점거해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40여 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농성 시작 하루만인 1월 20일 오전 5시30분쯤 전경 2개 중대 180여 명을 동원해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N빌딩을 포위한 뒤 ‘철수하지 않으면 강제 해산하겠다’는 내용의 경고 방송을 했다. 이어 오전 6시 45분쯤 대형 크레인으로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를 들어올려 건물 옥상에 투입했다.
철거민들은 발 밑 도로에 있는 전경과 컨테이너에서 내린 특공대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옥상에 쌓아둔 20L들이 시너통 수십 개에 불이 붙어 폭발음과 함께 삽시간에 옥상이 불길에 휩싸였다. 철거민들이 옥상에 4m 높이로 세운 함석 망루는 무너졌고, 불길은 30여 분 만에 잡혔다.
이 화재로 경찰특공대 소속 김남훈(31) 경장과 이성수(50)·이상림(70)·양회성(55)·윤용헌(48)씨 등 철거민 5명이 사망했다.
앞서 철거민들은 N빌딩을 철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일 새벽 5시30분쯤 이 건물을 기습 점거했고,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건물내부로 진입하려는 건설사 용역직원과 경찰에 맞서 화염병 수십 개와 돌을 던졌다.
이에 경찰은 19일 오후 7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경찰청장 내정자)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경찰특공대를 보내달라는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의 요청에 따라 이튿날 새벽 철거민들을 강제 해산시키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김 청장이 특공대 투입을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용산 철거민 참사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파악을 지시했으며 민주당은 이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상황은 강경 진압에 의해 온 것으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삼성 특검:특검 수사팀은 윤형모 삼성화재해상보험 부사장과 이실 삼성전자 부사장 등 임원2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
2006년 순천만 우리나라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
2005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천안역까지 연장 개통되다.
2001년 조지 W 부시, 제43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
2001년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 사임-아로요 부통령, 대통령 승계
뇌물 수수 혐의로 퇴진 압력을 받아오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이 ‘피플 파워’에 밀려 2001년 1월 20일 마침내 사임했다. 이에따라 그동안 반(反) 에스트라다 운동을 이끌어온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부통령이 이날 신임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날 오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15만명의 시위군중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말라카냥 대통령궁을 향해 평화적 시위를 벌이자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국민통합과 질서회복을 위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변경창당(총재 김대중, 대표 서영훈)
김대중 대통령의 치사를 꿰뚫는 주제는 ‘총선 승리’였다. 4·13 총선이 “도약이냐, 좌절이냐의 기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다섯 가지 대국민 약속을 제시하면서 ‘총선에서 승리한다면’이라고 전제 조건을 달았다. 선거를 앞둔 집권 여당의 단골 메뉴인 ‘안정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총선 결과 여당의 안정 의석 확보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사불안, 외국투자 이탈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선대 위원장에는 이인제가 맡았다
행사장은 민주당 대의원과 참관인, 시민-사회단체 대표, 신 지식인 대표, 주한 외교사절 등 1만2000명으로 가득 메워졌다. 그러나 민주당 강령에서 내각제가 삭제된 데 반발, 자민련에서 김종필 명예총재와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이 모두 불참, 주최측은 외빈 소개를 생략했다.
이에 앞서 역도 경기장에서는 국민회의 전국 대의원회의가 열려 민주당과의 합당을 결의했다. 5000여명이 참석한 행사는 30분 동안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이어 열린 중앙당 후원회 총회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민주당에 이관할 것을 결의하면서 5분여 만에 끝났다.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 집권2기 취임
1997년 신창원, 부산교도소 탈옥
1996년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총선거, 자치정부 수반에 아라파트 당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역사적인 총선거가 1996년 1월 20일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및 가자지구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이번 총선에서는 1백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이 자치정부 수반 겸 자치회의 의장과 88명의 의원들을 선출했다.
수반 선거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무명의 여성운동가 등 2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나 88%의 압도적 지지로 아라파트 의장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 완결을 위임받은 자치정부 수반(대통령격)으로 당선됐다. 아라파트는 이날 실시된 자치정부 수반 선거결과 총 유효투표의 88.1%를 얻어 9.03%를 얻은 샤미아 할릴 후보를 누르고 자치정부 수반으로 당선됐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팔레스타인 총선의 성공적인 실시는 평화에 대한 지지를 표로 나타내 보인 것이라면서 환영했다.
1996년 천호대로 4.5km 구간 버스중앙전용차로제 실시
1995년 미 국무부, 대북 경제 제재 완화조치 발표
1994년 국악의 해 선포식
1994년 한국은행, 새 10,000원권 지폐 발행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제42대 대통령에 취임
1993년 오드리 햅번 사망
`로마의 휴일`에서 청순한 모습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1993년 1월 20일 장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929년 3월 4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 은행가와 네덜란드 귀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헵번은 1951년 영화계에 데뷔, `로마의 휴일`(1953년)에서 깜찍한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할리우드의 요정`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헵번은 이후 `사브리나`(1954년) `전쟁과 평화`(1956년)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년) `마이 페어 레이디`(1964년) `어두워질 때까지`(1967년) 등을 통해 1950∼60년대 최고 인기여배우로 활약했다.
26편의 작품을 통해 티없이 맑고 순진한 여성상을 표출해 온 헵번은 1960년대 이후 이따금 단역으로 스크린에 모습을 비춘 것을 제외하고는 은막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1988년 유니세프의 친선대사 제의를 흔쾌히 수락해 인도적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특히 말년의 4년간을 국제아동기금 순회대사로 세계 각지를 돌며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아동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헌신적으로 전개,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1992년 9월 투병 중에도 헵번은 기아와 질병의 땅 소말리아를 직접 방문, 전세계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1991년 다국적군, 이라크 원자로 4기 파기
1990년 문성길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프로복싱 WBC슈퍼플라이급 4위에 올라있는 문성길이 1990년 1월20일 무역회관 특설링서 벌어진 경기에서 동급챔피언인 나나 코나두를 격렬한 경기 끝에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랐다. 문성길의 프로통산 전적은 22전 20승 2패로 20승 가운데 16번을 KO로 이겼다. 그가 한국 프로복싱 사상 경량급에서 가장 무서운 주먹을 가진 선수였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수치다.
이날 경기로 문성길이 한국복싱 사상 세번째로 2체급 석권의 위업을 달성했다. 첫번째는 WBA 밴텀급. 1988년 8월14일 태국의 카오코 갤럭시를 물리치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가 1989년 7월 9일의 3차 방어전에서 갤럭시에게 챔피언을 되돌려주었다. 문성길은 1993년 11월13일 멕시코의 호세루이스 부에노에게 10차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빼앗길 때까지 3년 10개월간 왕좌에 있었다.
1990년 소련군,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종교분규 진압으로 민간인 최소한 62명 사망
1989년 조지 부시, 미국 제41대 대통령 취임
1986년 북한의 경제회담 대표단. 적십자회담 대표단. 국회회담 대표단 성명
1986년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 첫 대미 수출 선적
1981년 이란, 미국인질 52명 석방
1979년 11월 4일 이란 회교 학생들에 의해 억류되었던 52명의 미국 인질들이 4백44일 만인 1981년 1월 20일, 레이건 대통령 취임직후 풀려났다. 미국과 이란간의 중개역할을 한 알제리 정부가 미국이 합의해 준 인질해방의 전제조건으로 이란의 동결자산 해제와 영국은행으로의 송금을 이란정부에 약속함으로써 극적으로 타결된 데 따른 것이었다.
또한 인질들의 이용가치가 없어진데다 對이라크전에 전념하기 위한 이란측의 계산도 작용했다. 석방된 인질전원은 알제리를 경유, 서독의 미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카터행정부는 인질구출을 위해 무력구출작전과 경제봉쇄 등을 단행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퇴임직전의 마지막협상에서 성공, 인질들을 돌려받았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제40대 대통령에 취임
1980년 카터 미국 대통령,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 촉구
1980년 민주사회당 창당(당수 고정훈)
1972년 『동국정운』 원본 전6권 발견(2월22일 국보 지정)
1972년 정부 전복을 기도한 간첩단 사건
1971년 주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 소련인 학자에 첫 비자 발급
1970년 브란트 서독 수상, 슈토프 동독 수상에게 양독회담 정식 제안
1969년 한글 전용을 반대한 충남대 유정기 교수 파면
1967년 정선선(정선∼증산간 24km) 철도 개통
1967년 만화영화 상영시작
1965년 존슨 미대통령 취임
1962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법 통과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법이 1962년 1월 20일 만들어졌다. 이 영화법의 주요 골자는 검열제도를 비롯 영화제작신고, 상영허가, 상영정지 또는 중지권 부여, 그리고 영화업의 허가제도 등 규제적 측면 위주였다.
영화법으로 1965년 이만희 감독은 `7인의 여포로`로 용공혐의를 받아 입건된 바 있으며,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성인영화라 할 수 있는 `춘몽`(1965년 제작, 유현목 감독, 신성일-박수정 주연)은 적나라한 정사 장면으로 유현목 감독이 외설죄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969년 박종호 감독의 `벽 속의 여자`, 신상옥 감독의 `내시` 역시 외설 혐의로 검찰에 입건됐다.
그러다 1996년 10월 4일, 영화법에 대해 위헌제청 및 헌법소원 등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와 관련된 내용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따라 영화진흥법이 개정(1997.10.11 시행)되었고, 그동안 영화 사전심의를 감독했던 공연윤리위원회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강화된 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 바뀌었으며 영화심의도 삭제나 수정하는 조치를 금지하고 등급분류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60년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조국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물으십시오” 1961년 1월20일,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취임연설을 통해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국민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비전을 제시했다. 국민시인 프로스트도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신정부 출범을 축하했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날은 희망의 날이었다. 2개월 반 전 43세 케네디와 47세 닉슨의 대결이 박빙의 선거전이었음을 상기하면 통합의 날이기도 했다.
아일랜드계에 북부출신, 더구나 가톨릭이라는 약점을 안고 선거전에 뛰어든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 정신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더구나 영화배우 재클린을 아내로 맞아 이미 매스컴의 스타로 부상한 상태였다. 이에 반해 닉슨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보수층이 뒤를 떠받치고 있었지만 눌변이었다.
미 대통령 선거 사상 처음 실시된 TV토론은 두 사람의 정책비교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케네디를 위한 자리가 됐다. 자신만만한 태도와 젊음 그리고 세련된 외모와 달변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었지만, 닉슨은 오히려 케네디의 젊음과 경험부족을 탓하며 스스로 표를 깎아내리는 우를 범한다. 결과는 케네디의 승리. 하지만 닉슨보다 11만표 정도 많았을 뿐이다.
1960년 소련, 태평양 로켓 실험 성공
1955년 울릉도 폭설 150.9cm(남한 극최심신적설) 교통 완전 두절
1954년 중앙우체국 업무 개시
1954년 반공포로 2만2천여명, 유엔군쪽으로 전향
1954년 반공포로 7700여명, 인도군 포로수용소에서 모두 석방
1953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 취임
1952년 정규 4년제 육군사관학교 첫 입교
1949년 미국 트루먼대통령, 미개발국 원조계획 제창
1947년 입법의원, 신탁통치 반대안 가결
1944년 한국학생, 일본학병으로 동원 개시
1942년 나치, 유태인 대량학살 결정
1942년 반제회의
1942년 1월 20일 아침, 독일 베를린 근교 반제가에서 나치의 차관급 인사 13명이 조찬회동을 가졌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유대인 절멸'이 안건으로 상정된 회의였던, 이른바 '반제회의'가 열린 것이다.
회의는 국가보위부 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초대로 이루어졌다. 하이드리히와 친위대 소속의 아돌프 아이히만까지 포함해 모두 15명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안이 결정됐다. 회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고, 이의제기와 토론도 없는 회의였다.
반제회의 이전에도 강제수용소에서는 독가스가 사용되고 있었으기 때문에 반제회의 이후로 홀로코스트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반제회의 이후로 '유대인 절멸'이 나치의 공식적인 뜻으로 확인되었고 대량학살이 죄의식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회의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도 반제회의는 독일 교과서에 명기돼 독일인들의 참회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1939년 낙랑 고분이 발견됨
1938년 평양 근교 고구려 고분 보존 조치 착수
1936년 에드워드 8세 영국왕 즉위
1925년 일본, 소련과 국교조약 조인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우리 토산품의 생산과 사용을 장려하고 우리 기업을 성장시켜 민족독립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조선물산장려회가 1923년 1월20일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에서 창립됐다.
회의가 길어져 23일에 다시 모인 발기인들은 다가오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옷과 음식, 일용품 등에서 조선물산을 사용하기로 결의하고, ‘남자는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를 입을 것’ ‘음식은 소금ㆍ설탕ㆍ과일 등을 빼고 조선물산을 사용할 것’ 등을 행동지침으로 결정했다.
물산장려운동은 서울보다 평양에서 먼저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1920년 7월에 발기모임을 가진 후 1922년 6월20일에 조만식을 회장으로 한 물산장려회가 창립됐다. 창립초기에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조선일보ㆍ동아일보의 계속된 보도와 조선청년연합회가 현상모집한 표어가 크게 기여했다. ‘내 살림은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 등의 표어가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켜, 길거리에서는 ‘물산장려’를 외쳐댔고 학교에서는 국산교복 착용운동이 일어났다. 기생들까지 동참했다.
그러나 이를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일제의 탄압과, 토산품값 급등으로 기업과 상인들만 살찌우고 일반 서민들은 더욱 궁핍해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도 나타났다.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회주의자들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활향상과는 무관하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1937년∼1940년 경에 해체됐다.
1919년 문예동인지 `신천지` 창간
1917년 안곽 `조선문법` 간행
1906년 독일 사회민주당, 베를린에서 시위
1906년 일제, 우리나라의 외교관ㆍ공사ㆍ영사제를 폐지시킴
1904년 고종 황제 대한제국의 영세중립 선언
1900년 존 러스킨 사망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이 1900년 1월 20일 사망했다. 런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캘빈주의자인 모친의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모친의 종교적인 신심으로 그는 한때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려 했으나 부친의 예술적 취향에 영향받아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이듬해 낭만파 풍경화가인 터너를 옹호한 `근대 화가론`(1843)이 큰 성공을 거두자, 평론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평론에서 `훌륭한 예술이란 자연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이후 그의 미학적 토대가 되었다. 삶의 후반기에는 경제와 사회문제로도 활동영역을 넓혀 전통적인 경제학을 비판하고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주창했다. `예술의 정치경제학`(1857) `최후의 사람에게`(1860) 등은 사회개혁에 대한 그의 관심을 표명한 작품이었다. 이상론에 머물지 않고 현실속에서도 사회개혁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부친의 유산을 희사해 `성 조지조합`을 설립했다.
왕성한 저술과 사회활동으로 건강을 헤쳐 1878년에는 정신이상을 일으켜 사망할 때까지 자주 착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와중에 저술한 미완의 자서전 `지나간 일마저`(1889)는 그의 저서 중 가장 뛰어난 명문으로 평가받았다.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시 YMCA 체육관에서 최초의 농구경기 개막
1890년 전국 호구수 1,569,642호 인구 6,510,955명 (조선 고종 26)
1881년 통리기무아문(군국기밀과 일반 정치를 총괄, 총리대신) 설치(고종 17)
1857년 흙의 화가 밀레, 사망 (1814. 10. 4 출생)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가 1875년 1월 20일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에서 세상과 작별했다. 61세였다. 노르망디의 그레빌에서 태어난 밀레는 셀부르와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한 뒤 1837년 파리로 이주해 들라로슈에게 사사했다.
35세인 18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의 삶과 자연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 시절에 루소, 코로 등과 친교를 맺고, 빈곤과 싸우면서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경험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바르비종파는 19세기 중엽 바르비종을 중심으로 활동한 풍경화가들을 지칭한다. 밀레, 루소, 코로, 뒤프레, 트루아용 등의 화가가 대표적이다. 만년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1868년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
1841년 영국, 아편전쟁 승리 대가로 홍콩 할양
1783년 영국, 베르사유조약 체결로 프랑스·에스파냐와 강화 맺음
1775년 프랑스 물리학자 앙드레 앙페르 출생 (1836. 6. 10 사망)
1628년 아일랜드 정치가 헨리 크롬웰 출생
1265년 영국하원 개원 1314년 고려의 대학자 이제현, 원나라에 설치한 만권당에 들어가 학문을 배움
B331년 알렉산드리아 건설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