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2일 (화) 촬영.
관음사의 일주문이다. 일주문에는 한라산 관음사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관음사.
제주시 한라산 동북쪽 기슭 산천단(山川檀)에서 3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관음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로 도내 약 40여개의 종단내 사찰을 관장하고 있다. 제주도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시기는
한반도에 귀속되기 전인 탐라국 시대 해로를 통해 남방불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음사는 불교전래 초기에 창건되어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바, 그 근거는 제주의 여러 가지 신화 , 전설,
민담에 관음사를 괴남절(제주 방언으로 관음사),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이라고 민간에 유포되어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구전에는 관음사가 고려 문종(1046~1083)에 창건되었다고 전해 진다. 조선 숙종 1702년
억불정책으로 인해 제주의 사찰들이 완전히 폐사되었고
이로부터 200년간 제주에는 불교와 사찰이 존재하지 읺았다고 한다.
1908년 10월 비구니 해월스님이 현재의 위치에 옛 관음사를 복원하므로 제주불교가 다시 재건되었다.
현재 관음사는 제주의 중심, 한라산의 심장으로 제주지역을 대표하는 기도 수행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제주도의 중요 관광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까지 양옆에 도열한 듯 삼나무들이 있고,
그 앞에 제주돌로 단을 쌓은 후,부처님들을 모셔 놓았다.
부처님이 모두 갓으 쓰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천왕문,天王門
이문은 사천왕문이라고 한다. 큰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게 되면
동서남북 하늘을 주재하는 천신들도 부처님을 받들어 공양하면서 부처님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을 사천왕이 옹호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처님께 경배하려면 천왕이 지키는 관문을
통과하여야 된다는 뜻에서 이곳에 사천왕문을 세운 것이다.
현재의 사천왕문은 1948년 4,3사태 관계로 불타버린 것을 1973년 이재은님의 화주로 김해정님이 시주하여
지은 것이다. -현지설명문-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천왕문을 통과해, 대웅전으로 가는 길. 이 길 양 옆에도 부처님들이 단 위에 모셔져 있다.
한라산 관음사 개산조 해월당 봉려관 스님 행적비.
봉려관 스님은 1865년 제주시 화북동에서 태어났다. 34세가 되는 1899년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받은 인연으로 출가,해월굴에서 6년여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았다. 이에 제주불교를 중흥코자 서원, 1907년
12월 전남 대흥사를 찾아 믿기 어려운 기적을 행함으로써, 청봉화상은 계사로 유장스님을 은사로
비구니계를 수계. 이듬해 1월 제주로 내려와 1908년 관음사를 창건, 개산조가 되었다.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을 중창 또는 창건하고 국내 대덕스님을 초청, 정범홍포에 매진하였다.
또한 범정사 무오항일항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936년 세수 71세 법납 37세로 입적하시니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봉려관 스님은 조선조 억불정책으로
인한 200여 년간의 무불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제주불교 중흥조요 , 선각자요, 애국자이시다.
해월당 봉려관 스님.
해월굴,海月窟.
이 토굴은 본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 스님이 1908년 10월부터 3년간 기도 정진한 토굴이다.
안봉려관 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의 선몽에 의하여 이곳을 제주불교 재건과 중흥을 위한 기본 도량으로 정하고
괌음사 창건 당시부터 3년간 이 토굴에서 기도 정진하였다. 안봉려관 스님은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이곳 관음사
도량이 앞으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유명한 성지가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지 안내문-
해월굴 내부의 모습.
해월굴에서 나와 대웅전으로... 길 양 편에는 여전히 불상들이 단 위에 모셔 있었다.
관음사 은행나무.
창건주 해월당 봉려관스님과 초대 주지 도월 정조스님께서 1911년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으셨는데
한 그루는 고사하고 남은 한 그루만이 웅장한 모습으로 관음사 도량을 지키고 있다.
지장전과 대웅전.
수각.水閣
삼성각, 三聖閣.
삼성각은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시는 전각으로
삼성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을 불교에서 흡수하여 생긴 신앙 형태 이다.
관음사 설문대 할망 소원돌.
관음사는 우리나라 명산으로 알려진 삼신산(백두산, 금강산, 한라산)의 하나인 한라산 650m 고지 동북쪽 중산
간에 위치한 울창한 자연림속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최남단 관음성지이다.
1908년 해월당 안봉려관 스님이 우주적 모성의 화신(化神)인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관음사'를 창건하여 '설문대
할망'의 바다보다 깊고,산보다 높은 자비를 베푸는 제주 근대불교의 모태인 관음성지로 자리 잡았다.
불기 2562(2018)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관음사에서는 제주도의 돌문화 토속신앙을 계승하고 개인의
안녕을 위하여 "관음사 설문대 할망 소원돌"을 복원하였다.
기도방법.
먼저 합장 반배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할망돌을 두손으로 감싸 쓰다듬으면서 할망의 온기를 느낀 후 5cm가량
들어올려 할망돌의 무게를 느껴보고 제자리에 다시 놓아주세요.
다시 합장 반배하고 소원을 빌고 돌할망에게 자신의 이름, 주소, 생년월일을 말하고 다시 한 번 돌을 들어 올려
보세요.이때 돌이 무거워 들리지 않거나 잡아 당기는 힘이 강하게 느껴지면 소원이 이루어질 징조입니다.
그러나, 가볍게 느껴지거나 미끄러진다면 정성이 부족한 것이니 염원을 모아 다시 찾아오셔서 기도를
올려보세요.할망돌은 정성껏 기도드리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미륵대불,彌勒大佛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뒤 56억 7천만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님이다. 미륵불의 세계인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행을 닦아 공덕을 쌓거나, 절을 세워
설법하거나, 탑과 사리를 공양하며 부처님의 법신으 생각하는 등의 공덕을 지어야 한다. 관음사의 미륵불은
2006년에 제주도민의 풍요로움과 안락을 기원하고 자비심을 닦아서
미륵불의 국토에 나도록 하자는 의미로서 조성되었다.
약사여래불.
미륵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
절의 뒤에 있는 관음굴.
내부의 모습이다.
사리탑,舍利塔.
이 사리탑은 1987년 6월 티베트 법왕 달라이라마 스승의 후신(後身)인 링 린포체 존자로부터 사리 6과를
기증받아 사리탑을 세워 모시게 되었는데, 봉안불사 작업 중 1과가 늘어나서 현재는 모두 7과가 모셔져 있다.
사리탑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통해 얻은 사리를 여덟나라가 나누어 가지면서 각기 탑을 세워 부처님처럼 모신것에서 유래되었다.
부도탑 군.
일주문 왼편에 있는 대형 석불,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석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4. 3 피해사찰 - 관음사.
관음사는 제주 4,3사건 당시 무장대 도당 사령부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1949년 1월 4일 토벌대는 한라산
공습을 실시하였고 이때부터 관음사 일대는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격전지가 되었다. 관음사를 접수한 토벌대는
1949년 2월 12일 관음사 대웅전을 비롯한 7채의 모든 전각에 불을 질러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주지 오이화 스님이 토벌대의 고문후유증으로 병사하였다.
사찰음식 체험관.
첫댓글 워낙 사진 내공이 깊으신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관음사 사진에 역시 최고이심을 인정합니다.
6년전 처음 관음사 참배시 감동 감격 흥분,
두 번째 참배 때는 차분하게 부처님께 예경드리며,
불사하신 분들께 경이로움이 느껴졌지요.
그리고 연이어 세 번 참배드렸으나
늘 아쉬움이 남아 언젠가 오래 머물며 참배드리고 싶습니다.
약천사가 좋으냐 관음사가 좋으냐?,,,
중생들의 분별심!
제주도를 몇 차례 여행하면서도 관음사 약천사와
인연이 뒤늦음도 인연따라였으니
감사할 뿐이었지요
자상하고 섬세하게 올려주신 관음사 연혁과
영상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