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뭔가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다 찾은 것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결심하게 된 동기는 모친이 십여년 이전부터 보행이 불가능해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인정신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요양인정 3등급 이상 받고 가족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재가요양보호를 할 경우 정부에서 월 소정의 금액을 지급한다는 정보를 주위 사람으로부터 주워들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수혜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사회복지가 많이 확대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면 교육원 수강을 필수적으로 수료하여야 하고, 4주간의 이론과 실기교육을 이수하고 노인요양을 시행하고 있는 전문병원이나 센터에 1주간 실습을 하고, 1주는 재가요양이라고 해서 각 가정에 파견되어 실습을 마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시험을 패스해야 자격증을 취득하게 됩니다. 총 6주간의 과정이 그리 만만치는 않습니다.
나름대로 단단히 작정을 하고 태릉역 부근의 ‘태릉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달려가 등록을 위한 상담을 합니다. 60대 후반의 교양미 있고 곱게 늙으신 사무장님이 등록에 도움을 줍니다. 나중에 강사로부터 들은 얘기로 사무장님은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간도 떼어주고 콩팥도 떼어준 휴머니티가 가득한 박애정신의 선도자임을 알게 됩니다. 존경스런 분입니다. 인터넷에 ‘아름다운 이사람 변길자’를 치면 나옵니다. 친절한 안내에 따라 거금 56만원을 지불하고 2011년 5월 9일부터 6월 3일까지 토·일요일을 뺀 4주간의 이론과 실기교육에 들어갑니다.
강사진은 50대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 수간호사 4명과 장애인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강사로 구성되어 강의가 진행됩니다. 30대 초반부터 4,5십대의 여성 5명과 같이 교육을 받게 됩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 저녁 6시까지 꼬박 강의가 진행됩니다. 아주 빡센 커리큘럼입니다.
50명 정도 사이즈의 강의실에 6명밖에 안되니 대학원 수업과 같습니다. 강의실내에는 침상에 마네킹의 모의 환자가 누워있습니다. 지팡이, 휠체어, 의자 좌변기, 목욕도구, 혈압계 등등 실습장비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남성은 저 혼자로 청일점입니다. 청일점도 청일점 나름입니다. 원래 언변이 없는데다 낯도 가리고, 재미있게 가지고 놀 캐릭터도 못되니 별로 재미는 없었을 겁니다. 점점 낯을 익히면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강의 중 간간이 이어지는 여자들의 수다에 점점 재미를 느끼며 빠져들다 가끔 꼽사리도 끼어봅니다.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기소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백두대간 두 번의 종주는 어디서나 꺼내 놓으면 자랑거리가 됩니다. 산에 대한 질문이 마구 쏟아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등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음이 보편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에 대해 박사인양 뻥도 쳐가면서 말을 섞습니다.
세상이 좁다는 것은 여기서도 확인이 됩니다. 남자 강사가 매주 화요일 목욕봉사를 하는데 그 대상자가 인근의 유명 사립대 K교수로 법과대학원장도 역임하고 전도가 유망한 분인데 근래 루게릭병으로 판명되었고 침상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와상상태로 생활하고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 대학이 ○대가 혹시 아닌가? 그 교수가 혹시 김○○교수 아닌가? 되물으니 어떻게 아시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나의 전직이 자연스레 알려지게 됩니다. 전직에 대한 네임밸류로 존경스런 눈빛을 받습니다.
예전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지금도 분필잡고 있을 겁니다. 강사가 던지는 질문에 항상 일등으로 정답을 말합니다. 여자들이 이해가 부족한 내용은 저한테 물어오면 논리정연하게 친절히 알려줍니다.
노인들의 영양섭취, 질환별 대처 및 요양방법,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정리 등등 이론교육과 휠체어 이동방법, 침상에서의 보살핌 및 신체이동 방법에서부터 귀저기 갈아주기, 목욕시켜주기, 신체활동 지원방법 등등 실기교육을 이래저래 4주간의 과정을 마칩니다.
다음주 5일간은 배우고 익힌 교육을 노인전문요양원에 파견되어 실습을 실행하여야 합니다. 이 과정을 빼면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노인전문요양원 관계자로부터 실습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시험을 치룰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됩니다. 어떻게 이 과정을 마칠 수 있나하는 심적인 압박이 강하게 누릅니다. 닥치면 해내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달래봅니다.
6월 6일 아침 북한산 자락에서 멀지않은 강북구 수유동 주택지에 자리 잡은 ‘강북노인전문요양원’에 재취업해서 첫 출근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섭니다. 요양원의 간호사로부터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일 등등 안내를 받고 4층 병동에 배정을 받습니다.
같이 교육을 받은 30대 초의 젊은 여성과 4층 병동에 배치됩니다. 4층 엘리베이터 문을 열자 향기롭지 않은 퀴퀴한 냄새가 코의 점막을 자극합니다. 고정 근무자인 여자 요양보호사 2명이 신병 맞듯이 집나간 며느리 돌아 온 듯이 반갑게 화색을 지으며 맞이합니다. 남자 요양보호사 실습생의 희소성과 남자라는 이름 때문에 제일 힘든 병동에 배정되었습니다. 모두 80대가 넘은 중증 치매환자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는 병동입니다.
6개의 요양실이 있고 각 요양실에는 침상이 3∼4개씩으로 총 19분의 어르신이 계십니다. 모두 침상에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와상상태의 1급 요양 중증치매환자들입니다. 그중 7분은 자력으로 음식섭취도 불가능하여 L튜브를 식도에 삽입하여 매끼 영양분을 공급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욕창부위 건드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몇몇분은 손에 장갑을 끼우고 침상난간에 붙들어 매어놓았습니다. 휠체어도 탈 수 없는 분이 거의 대부분으로 하루 종일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 상태입니다. 과연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전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요양보호사 지시에 의해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노인 분들이라 각 침상 밑에는 각질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요양실 및 복도를 돌며 침상 밑 구석구석까지 진공청소기로 깨끗이 빨아들입니다. 다음에는 대걸레로 파리가 미끄러워 앉지 못할 정도로 바닥에 윤을 냅니다. 9시부터 시작한 청소가 11시 가까이 돼서 끝을 맺습니다. 이방 저방 돌며 침상상태 및 노인 분들의 불편한 상태가 없는지 확인을 하고 거들어 줍니다.
11시 40분이 되자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 내려가 점심을 마치고 빨리 올라와서 환자들의 점심식사 거들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식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원위치해서 각 침상마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침상각도를 조절해 놓습니다. 12시에 음식을 담은 커다란 철제 식사함이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배식이 됩니다. 식판에다 죽과 국을 담아 자력으로 식사를 하실 수 없는 환자를 도와줍니다. 저는 84세 남자 어르신의 식사도움을 맡았습니다. 하루 종일 한 방향으로 무릎과 이마를 맞대고 옆으로 새우처럼 구부러져 누워계시는 할아버지입니다. 억지로 자세를 곧추세우고 죽을 떠 넣어 드리면 식사 턱받이에 흘리는게 반입니다. 실명을 하신 분으로 가끔가다 손을 내저어 식판을 건드려 엎지를 뻔도 합니다. 식사 도중에 자꾸 자세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져 식사를 거드는데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초짜라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겨우 식사 수발을 마치고 식판의 잔반을 정리해 식사함케이스에 정돈합니다. 식사를 마친 식사함케이스를 지하식당에 가지고 내려가 식당아주머니에게 인계하고 행주로 뒤정리까지 깨끗이 합니다.
오후 1시분터 2시까지는 휴식시간이 주어집니다. 4층 테라스에 나가 북한산의 바람을 맞습니다. 십여년전에 끊은 담배 한 대가 절로 땡깁니다. 백운대와 인수봉을 올려다보니 백운대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저 위 능선에는 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행을 즐기고 인수봉에는 록클라이머들이 다닥다닥 붙어 암벽등반의 쾌감을 느끼겠지---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오니 요양보호사가 첫날부터 군기를 잡으려고 그러는지 테라스가 지저분하니 물청소를 깨끗이 하라는 분부입니다. 초등학교때 청소한 기억밖에 없는데 아줌마들이 머리 희끗한 육순인 사람한테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역시 신도 모르고 있는 학교 있을 때가 최고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회는 냉정합니다. 누가 대신해 줄 일도 아니고 하니 물동이의 물을 쫙쫙 끼얹고 빗자루로 흙물을 열심히 씻어 내립니다. 동기생인 젊은 여성 동지는 똥오줌귀저기 갈아주랴 배변을 잘못한 어르신을 좌식 목욕의자에 앉히고 목욕을 시키는데 지원을 하는 등 정신없습니다.
오후에 요양원의 과장이라하는 30대 후반의 높은 분이 위생감사를 한다며 이곳 저곳 하얀장갑으로 흝으며 지나갑니다. 하얀장갑이 흝을때마다 검은장갑으로 변합니다. 괜히 요양보호사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같이 대동한 사회복지사 여성이 저한테 “선생님이 모두 청소하셨죠? 너무 수고가 많으세요.”한다. “아닙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한테 걸레 갔다 주고 빨아다 준일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입에 발린 말을 합니다. 위생감사 과장의 흡족치 않은 표정에 요양보호사로부터 또 하나의 오더를 받습니다. 수세미에 락스를 발라 2개 화장실의 타일 홈에 낀 곰팡이를 제거하랍니다. 홈을 아무리 문질러도 검은 곰팡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야 우리집 화장실에 끼인 검은 것이 곰팡이 였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점심과 저녁 중간쯤 간식타임이 주어집니다. 간식 수발도 하고 이방 저방 돌면서 어르신들의 상태도 확인해 봅니다.
모두 다른 세계의 정신을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생각하시는 정신세계가 제 각각입니다. 뜻이 통하지 않는 외계어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가운데 시간이 흐릅니다. 단말마와 같이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 끝없이 반복되는 단편적인 언어들이 이어집니다. 101세의 최고 고령자인 할머니는 깨어 있을 경우에는 항상 “어쩌라구! 아리 아리 아라리가 났구나!”라는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에 리듬과 강약을 주어 스크레치난 레코드판 돌아가듯이 반복되어 이어집니다. 맞은편 침상의 93세 할머니가 조금 정신이 돌아 왔는지 듣다 못해 “시끄러 할망구야! 가서 대굴팍을 줘 박기 전에 닥쳐.”하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게 까불지마.”하여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다른 요양실에서는 한 할머니가 자기가 배설한 변을 가지고 경단을 빚어 침상 식탁에 올려놓습니다. 옆 침상에서 뚫어지게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한 덩어리만 꿔줘, 좀 있다 갚아줄게.”하신다. 이런 변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백합실 6호에서는 서너 음절의 고성과 침상 식탁을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병동 전체에 울려 퍼지는 고성입니다. 결국은 손에 낀 옥가락지가 깨지고 맙니다.
오후 4시경이면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말끔한 옷차림의 점잖으신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곱게 늙으신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무언의 대화가 눈빛으로 이어집니다. 황혼의 애틋한 부부애를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충일에 자녀와 며느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잠시 찾아 왔었는데 형식적인 면담과 빨리 일어서서 가려는 기색이 역력하였음을 보았습니다. 역시 늙어서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는 부부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할아버지의 지극정성에 감복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눕니다. 54년도에 육군사관학교에 계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사는 곳이 그곳입니다.”하면서 어렸을때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당시의 한천과 먹골 봉화산 일대의 배밭단지, 중랑교에서 육사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등의 당시의 지역 형세가 흑백필름으로 떠올려 지며 공감합니다. 연륜에 따른 해박한 삶의 지식과 사회의 병폐에 대한 비판 등을 토로하시는 할아버지의 견해에 머리 끄덕임으로 추임새를 맞춥니다. 할머니가 미간을 찡그리시며 할아버지 손을 잡아끌면서 대화는 중단됩니다.
환갑은 지나 보이는 따님은 매일 12시쯤 찾아옵니다. 86세의 할머니를 스카프로 곱게 머리치장을 마치고 휠체어로 1층 면회실로 모십니다. 따님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를 합니다. 그날그날의 일상생활을 조분조분 할머니에게 얘기하시며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여 드립니다. 다정다감스럽게 보살펴 드리는 늙으신 따님을 보면서 웬만한 아들보다 훨씬 낳다고 생각합니다.
그럭저럭 6월 6일부터 6월 10일까지 5일간의 실습기간이 끝나는 날입니다. 출근하자마자 진공청소기 돌리고 대걸레질 하고, 테라스 대청소 2회 실시하고, 화장실 곰팡이 벗기고, 매일 점심과 저녁 식사 그리고 간식 수발하고, 마친 식사 뒷정리하여 주방에 옮겨 잔반처리하고, 침상 정리하고, 욕창 방지를 위해 수시로 체위변경 도와주고, 요양보호사 눈치 살피고 등 반복적인 일과를 수행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7월 9일 필기시험입니다. 결전의 날에 대비해 문제집을 좀 들쳐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마전선이 북상하여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가 방송됩니다. 무더운 한 여름이 시작 되려는가 봅니다. 장마비와 함께 삶의 애달픔도 시원스레 씻겨 내려갔으면 합니다.
이곳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충과 애환도 많이 보고 느꼈습니다. 사명감과 봉사정신 없이는 해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내 가족같이 돌봐드리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사회복지가 많이 확대되고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택이 밀접한 지역에 시설이 있다 보니 환경도 좋지 않고 주민의 눈치에 밖에 바람도 쏘이기가 어려워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더 안락한 자연환경 속에서 바람도 쐬고 햇빛도 받으면서 요양할 수 있는 지역에 시설이 있었으면 심신의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생명력의 강인함과 본능적인 연명의 끈질김을 보았습니다. 중증 치매환자들의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그 나름대로의 삶은 있으리라 봅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자연의 순리에 맡겨야 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한 연명에 그친다면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일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2박 3일간의 지리산종주 여행을 떠납니다. 2011년 6월 11일 22:45 용산에서 구례구로 가는 열차표를 꺼내 봅니다. 모든 잡념을 날려 버리고 삶을 재충전하여 돌아올 것입니다.
첫댓글 어려운 결심 하셨네요 꼭 합격하여 슈바이쳐 같은 값진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