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눈뜰 때1권 지은이: 조창인 출판사: 제일미디어
프롤로그 그를 만난 것은 몇 해 전 가을이었다. 그는 남도의 C읍 한 자락에 있는 개인병원 원장이었고, 나는 월간 여성지의 기자였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대학병원 전공의 과정에 있는 L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나는 가벼 운 마음이었다. 술자리에 오르는 화제란 십중팔구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무 엇엔가 홀린 듯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결국에는 콧등이 싸해져, 너무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볼 륨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기억이 난다. 이튿날 나는 데스크에게 그를 취재하겠노라고 했다. 데스크의 태도는 시큰둥했다. 그러나 내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데스크는 바람이나 쐴 겸 다녀오라는 단서를 붙였다. 데스크의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울을 벗어날 즈음 호출기가 울려댔 다. “한번 역으로 가보는 거야. 조기자 생각은 어때요? 신선하고 괜찮을 것 같은데, 잘 좀 취재해 요. 이번 달 머리로 올릴 생각이니까.” 머릿기사니 신선이니,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취재를 거절했다. 낙담할 이유까진 없었다. 이미 그 정도의 거절에 단련되어 있던 터였다. 나흘 동안 C읍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차츰 기자와 취재원이라는 관계를 잊고 그의 이야기에 빠 져들고 말았다. ‘세상에는 참 아름다운 사랑도 있구나.’ C읍을 떠날 때 그는 다시 한 번 내게 다짐을 받고 싶어했다. 나는 웃고 말았지만 기사로 만들 생각은 이미 없었다. 데스크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일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후 나는 잡지사를 떠났고,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서늘한 밤 바람에 불현듯 가 슴이 막막해져 오면, 그가 보고 싶어졌다. 또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지곤 했 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열정에 이끌려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 기 그대로 옮길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고, 그리 되지도 않았다. 소설이라는 편리한 기교가 필요했 고 또 부득이 의지해야 할 때도 많았다. 도중에 그만둘까 하고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때마다 하나의 생각이 나를 부추겼다. 이 글이 부 디 사랑했지만 다 사랑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을 위한 자그마한 위로와 헌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소망이기도 할 테니까. ‘사랑했으나, 다 사랑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에게 드립니다.’ 그때가 언제였지? 내일이면 숱한 별들이 비치겠지 내일이면 너는 나를 찾아 울겠지 잠잠한 창 안을 엿보고 있겠지 끝내는 아스라이 반짝이는 곳으로 네 마음은 달아나겠지 환하게 두 눈에 눈물이 어리면 수천의 별, 하나같이 고요한 별들 태양들마냥 커다랗게 떨고 있는 모습, 네 눈에 비치겠지 H. 가로사의 <별의 노래> 1 4월은 가랑비가 내리고 5월은 튤립이 화사하게 피어난다네. 세준은 얼마 전에 익힌 스코틀랜드 민요의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이제 답답한 수술실을 벗어나 온통 튤립으로 가득 찬 에든버러의 들녘을 한껏 늑장을 부리며 거닐어볼 생각이었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며. 수술은 만족스러웠다. 사십대 중반의 금발 여인이었고 위암 중기였다. 만성 소화불량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종합 검진을 받았을 때는 이미 종양이 상당히 진행 된 상태였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1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50퍼센트를 밑돌았다. 그러나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이 근본 치료는 아니므로 수술에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위암의 경 우가 그랬다. 말기가 아니라면 일단 수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술 집도는 그가 맡았다. 근치적 절제 수술이었다. 위의 아래쪽 소만측 유문동부에서 발생한 종양을 제거한 후 십이지장 상부 2센티미터를 잘랐고, 주변의 국소임파절까지 놓치지 않았다. 골격화 절제 수술을 정교하게 해냈다. 총간동맥, 좌위동맥, 복강동맥간을 싸고 있는 임파절을 동맥이 드러나기까지 완전히 벗겼 다. 세계적인 외과의 번즈 박사는 시술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았고, 눈이 마주치자 ‘뷰티풀!’을 연발했다. 그때마다 그는 눈을 깜박여 답례를 표했다. 수술 행위에 아름답다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 제발 재발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일만 남았다. 환자인 금발의 여인도, 집도의인 그 자신도. 간호사가 수술복의 매듭을 풀고 있어 그는 부자연스러운 자세로서 있었다.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 듯 간호사는 여느 때보다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는 잠시 후의 기분 좋은 산책을 다시 떠올렸고 그때 등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3개월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학 온 압둘 뭐라고 하는 친구였다. 어떻게 의사가 됐 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형편없는 친구였다. “닥터 리, 전보가 왔습니다.” “내 친구에게서 온 걸거요. 파리에 세미나가 있어 참석했다가 에든버러로 온다고 했거든.” “그런 내용이 아닌데...” 압둘이 웅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간호사가 수술 모자의 매듭을 풀고 있었으므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한번 읽어봐요.” 압둘은 잠시 망설이더니 전보의 내용을 읽었다. 급히 귀국 바람. 서희 위독 -서울에서 재석 |
첫댓글 고맙습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ㅡ ^^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