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52 - 외로움에 대해
외로움이란 혼자라는 인식에서 오는 느낌, 즉,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발생하는 고독감을 말할 것이다.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필자에게 때때로 사람들은 필자 주변에 사람이 많아 보이는지 뭐가 외롭냐고? 혹은,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이라고 질책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딴은 그들의 말이 옳다. 아마 나의 외로움이 일종의 엄살로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거부감으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자주 고백하는 외로움이란, 필자의 졸시집에 해설을 붙여준 유한근 교수가 지적했듯이 어떤 실연에서 오는 혹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오는 그런 외로움을 이르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아직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외롭다’라는 말을 쓸 뿐이다. 그러니까 필자의 외로움은 생래적(生來的) 외로움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된 외로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도 필자의 외로움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필자가 시 속에서 천착하고 있는 것은 결코 극복 되지 않는 유한자(有限者)로 느끼는, 작고하신 김현승 시인이 평생 천착했던 절대고독과 그 뿌리가 닿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또 특정 종교를 들먹이며 무수한 명언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는 하지만 필자의 내면에서 일종의 혐오감이 스멀거린다. 왜냐하면, 어떤 고립이나 피해가 올 경우 이들은 거의 이성을 잃고 자기방어에 급급하거나 일종의 포기에 가까운 도피의 변명으로 읽혀지곤 했기 때문이다.
왜 구태여 유한자를 인식하고 사느냐고? 때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인데 구태여 그걸 생각하며 괴롭게 사느냐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더 외로워진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유한자이다. 그리고 결코 단독자로서의 개체를 허물어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극복하고 싶다. 이것도 일종의 욕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필자가 이 욕심을 버린다면,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는 삶에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물론 개인마다 생각과 느낌의 강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앞에 언급했듯이 우린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이 죽음을 극복하거나, 수용하는 일은 그 개인의 선택에 속할 것이고, 필자에겐 이것이 종교의 존재 이유의 하나로 읽힌다. 사람들은 유한자로서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하거나 체험할 때 종교적 구원에 마음을 돌리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더 천착해 보고 싶다. 이를 오만이라고 질타한다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죽음에 앞에서 필자는 누구보다 두렵다. 다만 끊임없는 실망과 상처로 돌아오는 무상한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필자의 외로움은 필자에겐 일종의 희망이다. 왜냐하면, 외롭다는 것은 아직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스트너 씨, 긍정은 어디에 있나요? / 에리히 캐스트너
여러분은 계속 내게 편지를 보냅니다.
굵은 밑줄을 그어 이렇게 말씀하시죠:
"캐스트너 씨 긍정은 어디에 있나요?"
그래요, 긍정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여전히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소파의 빈자리를 내어 줍니다.
여러분은 현명하면서도 용감한 태도에
익숙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마른 빵에 바를 바셀린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경건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천국이 새롭게 열린다!"
여러분은 고통에 설탕을 뿌립니다.
그러고는 설탕으로 고통이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심장 앞에 발코니를 세웁니다.
그러고는 발버둥치는 영혼을 굴복시킵니다.
인류는 파괴되고 있습니다.
집도 국가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이 상황을 근사한 은율에 맞춰 시 짓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잘 버텨 주리라 생각하나요?
나는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속이지 않을 겁니다.
시대는 암울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거짓말로 속이지 않습니다.
거짓말 장사를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원가로 물건을 내놓지요.
온몸에 햇빛을 쪼이고
근심은 종이에 싸서 버리세요!
어서 하세요. 서둘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근심은 여러분보다 더 커질 겁니다.
이 시대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곧 매장될 겁니다.
동쪽에서는 벌써 관을 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즐길 작정인가요------?
묘지는 유원지가 아닙니다.
대포가 꽃피는 나라를 아시나요? / 에리히 캐스트너
대포가 꽃피는 나라를 아시나요?
모른다고요? 곧 알게 될 겁니다!
그곳에는 병영 같은 사무실에서
거만하고 당당한 표정을 한 지배인들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넥타이 밑에 상병들이 다는 단추를 붙이고
다닙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선 철모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얼굴은 있지만 머리는 없습니다.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은 더 많은 병사를 번식합니다.
그곳에서는 상관이 무언가를 원하면
--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바로 그의 직업입니다 --,
먼저 사람들의 판단력이 굳어지고 그다음에는 아예 멈춥니다.
우로 봐! 누워서 굴러!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작은 박차를 달고
가르마를 탄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곳에서는 민간인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주둥이를 닥치는 자만이 승진합니다.
그 나라를 아시나요? 행복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 나라는 행복한 곳일 수도 있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논과 밭, 석탄, 철, 돌이 있고
근면과 힘 그리고 다른 멋진 것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가끔 맑은 정신과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
니다!
그리고 참된 영웅도 있지요. 아주 드물지만 말입니다.
그곳에서 두 남자 중 하나는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
니다.
그 아이는 납으로 만든 장난감 병정을 가지고 놀지요.
그곳에서는 자유가 자라지 않습니다. 자유는 설익은 채 남아 있습
니다.
사람들이 짓는 건 언제나 병영이 됩니다.
대포가 꽃피는 나라를 아시나요?
모른다고요? 곧 알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