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씨가 2월 말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무실에서 남파 공작원 시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작은 빈틈에 자칫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침투 시 직면할 각종 돌발 상황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대응책을 반복해 실습했다. 신분 위장, 침투, 접선, 포섭, 지하당 건설, 무전 통신 등 공작 활동에 요구되는 필수사항부터 신분 노출 시 행동, 현지 물가를 고려한 하루 생활비 등 세세한 항목까지 챙겼다.
공작조가 세운 액션 플랜은 담당 지도원→과장→부부장 라인에서 단계별로 치열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됐다. 손글씨로 쓴 액션 플랜은 300여 쪽에 달했다.
장비가 지급됐다. 침투 복장, 총과 실탄, 수류탄, 공작금, 위조 신분증 등을 고무풍선에 하나씩 넣어 방수 포장을 마쳤다. 남파 D-Day만 남았다.
침투 장기화와 성적 욕구의 충돌
액션 플랜에 담기는 사항 중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여자 문제, 즉 성욕을 어떻게 자율적으로 통제할지다.
공작원들이 남한에 잠입하면 몇 개월씩 장기간 암약한다. 적구화(敵區化, 남한 사람 만들기) 교육에서 술집이나 사창가, 콘돔 사용법도 학습한다.
공작원도 인간이다. 자유분방한 남한 사회에 내려오면 성적 호기심이나 욕구를 참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유혹에 빠져 ‘외도’하는 경우를 대비한 액션 플랜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공작원들은 남파됐다가 복귀하면 반드시 신체검사를 한다. 남한에 침투했던 공작원 중 퇴폐업소나 집창촌에 갔다가 성병에 걸려 돌아온 사례가 이따금 들려왔다. 그들은 비난과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조용히 사라졌다.
부부장과 반주를 하면서 식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성적 충동을 어떻게 조절할지 어렵게 운을 뗐더니,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남한 현지에 가서 여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공작조)
조르게처럼 하면 되겠소.(부부장)
김동식은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였던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 ·1895~1944)의 명성을 알고 있었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조르게씨, 당신은 누구인가요?’(Qui êtes-vous, Monsieur Sorge?, 1961년 프랑스 등 합동 제작)를 본 적도 있었다.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 얼굴 사진을 넣은 영웅 기념우표(왼쪽). 사후 21년(1965년) 만에 발행됐다. 오른쪽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세워진 조르게 조각상. 중앙포토
‘스파이의 전설’ 조르게처럼 여성을 대하라
조르게는 독일 국적이었으나 공산주의에 심취해 소련으로 이주한 뒤 간첩으로 발탁됐다. 1932년 독일 신문의 특파원으로 위장,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 독일대사와 일본 권력층에 접근했다.
그러던 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9월에 들어서자 모스크바가 추풍낙엽의 위기에 처했다. 스탈린은 망설였다.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과 대치 중인 소련 극동군을 모스크바로 돌리고 싶었지만, 일본의 기습 침공이 두려웠다. 이때 조르게의 정보가 소련 정보부에 타전됐다.
일본군은 북방으로 진격하지 않는다.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로 남진한다.
스탈린은 극동군을 모스크바 방어에 투입했다. 독일군의 기세가 꺾이면서 퇴각했다. 소련은 기사회생했다.
조르게의 정보가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뒤집었다. 조르게는 독일 대사의 부인 등 고위급 인사 부인들과의 잠자리도 마다치 않는 등 여성들을 기밀 수집과 공작에 활용했다. 그는 44년 11월 일본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동식은 ‘조르게처럼 하라’는 부부장의 말을 이해했다. 공작원들이 임무 수행 과정 중 불가피하게 여성과 접촉할 경우 능동적으로 활용하되 빠져들지는 말라는 뜻이리라.
남포 출발, 4일 만에 서귀포 침투
1990년 5월 26일, D-Day가 왔다. 권중현-김동식 공작조는 평양 초대소를 떠나 남포항에서 ‘전투선박’이라고 불리는 공작선에 승선했다. 길이가 약 30m 정도 되는 철제 선박이었다. 내부에는 고도의 특수훈련을 받은 20여 명의 전투원과 무장 장비가 탑재되어 있었다. 장착된 고성능 엔진은 최고 40노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1999년 6월 해군 제주방어사령부가 제주항 제2부두에서 공개한 북한의 간첩 침투용 반잠수정. 연합뉴스
공작조는 중국 산둥반도를 거쳐 4일 만인 30일 새벽 제주도 남단 공해상에 도착했다. 이어 반잠수정에 옮겨 타고 잠수와 수영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제주도 서귀포시 보목동 해안에 상륙했다. 북한으로 복귀하는 전투원들에게 당부했다.
당과 수령을 위해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겠다고 전해 주시오.
북한에서 수립한 액션 플랜대로 작전에 돌입했다. 야밤에 서귀포시 KAL호텔 인근 묘지까지 행군했다. 주변의 소나무 밑에 입고 왔던 옷가지와 공작 장비를 파묻었다. 단파무전기 2대, 벨기에산 브라우닝 권총 2정과 실탄, 수류탄 4발, 야간투시경 1개 등이었다. 다른 공작조에 넘겨주기 위해 서울 수유동에 묻기로 한 5만 달러의 공작금도 따로 매몰했다. 내륙으로 반입할 여건이 되면 다시 파 갈 생각으로 약도를 그려서 품에 넣었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북한 무장 간첩의 무기. 성능이 좋은 해외 권총에 소음기를 장착한 뒤 반입했다. 김민상 기자
북한에서 배운 서울말, 의심 안 받아
남한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서귀포 시내 동명백화점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일정이 예정됐다. 철저한 적구화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남한은 난생처음이었다. 진짜 남한 사람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택시기사가 북한 억양이 섞인 말투를 알아챌까 두려웠다.
권중현은 적구화 교육을 받았지만, 북한 사투리가 억셌다. 김동식이 나서야 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같은 말을 되뇌며 연습했다. 택시에 올라 용기를 냈다.
동명백화점까지 가주세요.(김동식)
네.(택시기사)
그의 서울말이 통했다. 처음으로 현지인에게 건넨 그의 어투와 억양에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았다. 자신감이 붙었다. 서귀포 시내에서 음식점, 다방, 극장, 백화점을 거침없이 돌아다닌 뒤 여관에 투숙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2박3일 동안 서귀포에 체류하고, 내륙으로 잡입할 준비에 착수했다. 침투 때 가져온 무전기와 권총 등 공작 장비들을 휴대할 수 있을지 살폈다. 제주 여객선터미널 사정을 꼼꼼히 체크한 결과, 공작 장비의 반입은 포기했다. 갖고 있던 공작금 3만 달러만 가져가기로 했다.
여객선 편으로 목포에 간 뒤 다시 기차 편으로 서대전역을 거쳐 유성에 도착, 리베라호텔 근처의 ‘벌나비’ 하숙집에 여장을 풀었다. 남한에 침투한 지 10일이 지나자 남한의 환경과 문화에 익숙해졌다. 남파 목적 중 하나인 북악산과의 접선을 실행하기로 했다. 김동식은 북악산에게 공중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유성에서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북악산의 집에 찾아갔다. 표식물인 북악산의 반지를 확인했다. 접선은 성공이었다.
거물 여성 고정간첩 이선실과 접선
공작대호 북악산은 이선실이었다. 북한 노동당 서열 19위까지 오른 거물 여간첩이었다. 지난 10년간 남한에서 암약했지만, 그녀의 정체를 그때까지 남한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 그녀는 74세였다.
김동식 공작조가 접선하고 2년여 뒤인 1992년 10월 남한 사회가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그 배후의 인물로 이선실의 존재가 탄로 났다. ‘할머니 간첩’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녀가 남한을 탈출한 이후의 뒷북이었다.
1980년대 남파간첩 이선실이 국내에서 활동할 당시 모습. 채널A 캡쳐
김동식이 북한에서 받은 ‘이선실 파일’에는 그녀의 궤적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이선실은 1916년 11월 제주도 남단의 작은 섬 가파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화선(李花仙). 이선실은 80년 10월 개최된 노동당 대회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할 때 공개한 가명이다.
해방 전부터 공산주의에 빠진 이선실은 해방 후 김달삼(1923~50)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했다. 김달삼은 남조선로동당(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장 겸 유격대 사령관으로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하고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이 지명한 노동당 남조선 총책 이선실
그 후 부산으로 옮긴 이선실은 남로당에 가입해 여맹(여성동맹) 간부로 있다가 북한으로 도주했다. 이후 김일성에게 “조국통일사업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는 탄원서를 올리고 공작원에 뛰어들었다. 70년대 일본에 잠입한 그녀는 남한의 전주 출신 재일교포 ‘신순녀’를 북송한 뒤 자신의 신분을 신순녀로 둔갑시키고 호적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합법적인' 신분 세탁을 통한 침투 루트 개발은 북한의 대남 공작 사상 전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공적이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이선실은 79년 북한에서 김일성을 접견했다. 김일성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치하하며 지시했다.
동무는 앞으로 남조선에 들어가 조선노동당 남조선지역 총책임자로 활동하시오. 남조선에 장기적으로 잠복해 혁명의 지지자·동조자를 확보하시오.
이듬해인 80년 봄, 이선실은 남한 당국의 영주 귀국 허가를 받고 남한에 당당하게 침투했다. 남한에서 암약 중이던 그해 10월에는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고, 8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선출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남파간첩 이선실. 중앙포토
김동식 공작조는 이선실이 신분 세탁한 ‘신순녀’의 고향 전주에서 취직 때문에 올라온 조카들로 위장했다. 이선실이 살던 집의 빈방을 쓰면서 북한에서 하달받은 작전에 착수했다. 김동식은 이선실의 첫 인상을 ‘남북 간첩전쟁’ 취재팀에게 털어놨다.
함께 살면서 곁에서 본 이선실은 상당히 머리가 좋고 자존심과 함께 고집이 유달리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내가 10년 동안 해놓은 것이 없어 (북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했지요.
백암산은 김부겸…포섭에 실패
이선실 접선에 이어 백암산 접촉에 나설 차례였다. 이선실이 “전취(戰取)했다”고 보고한 백암산은 당시 33세 정치인이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이하 존칭 생략)였다. 1970~80년대 시국 사건에 연루돼 대학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던 운동권 출신으로 이선실이 접근하던 시기에는 정계에 입문한 상태였다. 김동식 공작조가 이선실에게 요청했다.
김부겸을 만나 당신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고, 북한에서 당 연락원이 왔으니 만나보라고 권유해 주세요.
이선실은 김부겸을 만났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다. 김동식이 취재팀을 만나 전한 전말은 다음과 같다.
이선실은 김부겸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로 꽤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부겸에게 ‘평양에서 손님이 왔다. 만나 보시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김부겸은 ‘할머니(이선실)가 과거 빨치산 활동하신 분 정도로 알고 있었지 북한에서 파견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다. (평양에서 온 공작조를) 안 만나겠다’고 했다. 이후 이선실이 김부겸을 두 차례 더 만났으나 설득하지 못했다.
이선실의 어설픈 공작은 실패로 끝났다. “이선실이 포섭한 백암산 김부겸을 접촉해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은 이선실의 과장된 보고에 기초한 것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선실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북한 권력층에 허위 정보를 올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2011년 펴낸 『나는 민주당이다』 책 표지. 남파간첩 이선실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또 다른 운동권 인물 H, K 접근
김부겸은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2011년)에서 이선실과의 악연을 해명했다.
1988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진보정치연합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나는 장모님과 알고 지낸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그 할머니가 수표로 500만원을 두고 갔다고 했다. 일단 은행에 예금했다. 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혁명 이야기를 꺼냈다. 일정한 선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앞으로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라며 야멸찰 정도로 축객을 선언했다. 그 후 나는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3년이 흐른 뒤에 간첩단 사건이 터졌고, 핵심 인물로 발표된 북한 공작원이 바로 이선실, 내가 아는 신씨 할머니였던 것이다. 모골이 송연했다.
김부겸은 1993년 이선실이 간첩인 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고 만난 혐의(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구속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부겸 포섭 무산은 타격이 컸다. 기필코 만회해야 한다. 김동식 공작조는 2차 공작에 나서기로 결단했다. 이선실과 김부겸 접촉 외에 또 다른 운동권 인물 H와 K를 포섭하라는 밀명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다. 후퇴는 없다.
〈매수 수요일 연재, 5월 29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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