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학에서는
종교 개혁 주간 기념행사로
해마다 설교 대회를 한다.
학생들은 장래 목회자 후보생들이므로
설교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을
다른 어떤 것 보다 큰 자부심으로 삼는다.
먼저 설교 원고 심사를 거치고
원고가 합격된 학생들이
단상에서 설교를 하여 등위가 매겨진다.
1등을 한 학생에게는
장학금과 상품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목회 사역을 하는데
가장 좋은 경력으로 빛나게 된다.
먼저 우리 큰 애가
며칠동안 끙끙거리며
원고 작성에 들어 갔다.
매일 밤을 밝히며
원고를 수없이 교정하는 고된 작업 끝에
접수를 했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 큰 애는 깊은 허탈감을 맛보았다.
이번엔 막내가 도전을 했다.
우리는 원고를 작성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1차 원고 심사 합격자 명단에
동생의 이름이 올랐다고 형이 전화를 했다.
"어머니! 성웅이가 원고 심사에서 합격을 했어요!"
큰 애는 자기가 합격한 것보다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다.
형은 저녁마다 아우의 설교 연습을 도와 주고 있었다.
억양, 속도, 자세, 리듬, 시선, 호소력, 집중력...
드디어 설교 대회 날이 왔다.
나도 그 곳에 가겠다고 하니
아들이 내가 가면 더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냥 집에서 기도만 하기로 했다.
저녁 6시쯤 전화가 왔다.
큰 애의 전화다.
"어머니! 1등 이예요.
성웅이가 설교 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어머니!나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요."
형은 아우의 입상 소식을 전하며
너무 기뻐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럴때 나도 마음껏 좋아라 해도 되는 것인지...
"그래! 잘 했구나! 장하다.
이 모든 것이 네가 웅이를 잘 도와줘서 될 수 있었던거야."
"아니예요.
웅이가 완벽했어요.
저는 웅이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 할 수 있나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걸요.
웅이보다 내가 더 긴장이 되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 했어요.
동생이 상 탄 것을 자기가 탄 것 보다
더 기뻐하는 형의 마음!
나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음이므로
큰 아들의 아우 사랑하는 마음을
막내 아들의 1등상보다 더 기뻐하였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똑같이 기뻐 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는 울고 있는 사람과 같이 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몇 배 더 힘든 것은
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고스란히 나의 행복이 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고스란히 나의 성공이 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이 고스란히 나의 기쁨이 되는 것!
그것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형제 관계로는 그것이 어렵다.
" 이번에 남편이 회사에서 승진 했어요!."
성도가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그것은 조금도 가감없이 나의 기쁨이 된다.
" 딸 아이가 이화여대에 합격했어요!."
그 어머니의 기쁨이 똑같이 나에게 온다.
그러나 회사에서 퇴직 당한 다른 성도 앞에서
나는 다른 성도의 승진 소식을
마음껏 자랑하지 못한다.
자녀가 대학에 실패한 어머니 앞에서
다른 성도 자녀의 합격 축하를 크게 소리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라
성도와 성도,
형제와 형제
이웃과 이웃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의 불행을 더욱 크게 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더욱 비참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부유가 나의 가난을 더욱 곤핍하게 하는 관계이다.
내 친구중에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성품도 온유해서 교수님과 다른 학우들에게
사랑을 독차지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그 친구가
나에게 학기말 시험 범위를 묻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아주 엉뚱한 시험 범위를 가르쳐 준 일이 있다.
그 친구가 시험까지 잘 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본연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이것이 거짓 없는 사랑의 모습임을 가르쳐 주셨다.
인생의 반을 훨씬 넘게 살아온 지금.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즐거워하는 자들과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아직도 어려운 것은 왜일까?
그런면에서 큰 아들의 동생 사랑이
형제의 사랑을 넘어
부모의 사랑에 까지 도달한 것을 보며
나는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랑이
가장 하기 힘든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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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구제가 아니라 사귐이라고 말하는 유정옥씨. 그가 남편 이영도 목사와 함께 사역하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하나로교회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24시간 문이 열려 있다. -원대연기자
올해 봄 인천 인일여고 총동창회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은 한 동문이 올린 글 때문에 후끈 달아올랐다. 1월 10일부터 오른 그의 글은 하루 평균 조회수가 1000회를 넘어섰고 동문들은 글을 복사해 주변 사람들과 돌려가며 읽었다.
글쓴이는 유정옥씨(48).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하나로교회(02-978-3877)에서 남편 이영도 목사(58)의 목회 활동을 돕는 주부다.
유씨의 글은 남편이 1983년 사업에 실패한 뒤 기독교에 귀의해 목회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잔잔히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건 보통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1989년 7월 31일 서울 종로5가 로얄빌딩 12층에 교회를 열었을 때, 폐결핵과 가난에 시달리던 한 신자의 아들이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가 숨을 안 쉬어요.”
경기 성남시까지 달려간 유씨는 그 신자의 장례를 치르고 빈소를 지켰지만 망자의 친척은 보이지 않았다. 영안실 한구석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2학년 딸만 울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이 둘이었던 유씨는 이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이들의 부모가 될 수 있음을 오히려 감사드리며….
유씨 부부는 일부러 험한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처럼 보였다.
1987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사역할 곳을 찾던 부부는 서울 강남의 큰 교회를 마다하고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중증 장애인 교회를 택했다. 1988년 종로에서 교회를 할 때는 인근 노점상의 아이들 70여명을 무료로 맡아 탁아소를 운영했고, 상인들에게는 숭늉과 잠 잘 곳을 제공하는 쉼터를 열기도 했다.
1990년 개척을 시작한 하나로교회는 철거 이주민들과 장애인들이 많이 사는 중계동 시영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4층 건물의 지하층인 이 교회는 24시간 열려 있어 추위와 비를 피하거나 쉴 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든지 와서 머물 수 있다.
100명 남짓한 신자들 중 한 달에 10만원 이상 헌금하는 가정은 두 곳뿐이다. 헌금으로는 교회 운영조차 힘들다. 그러나 유씨는 “정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신다”며 웃었다. 교회 십자가 탑이 고장 나서 애를 태우면 전기공이 나타나서 몰래 고쳐주고 돌아가고, 돈이 모자라 안절부절못하면 누군가가 마지막 순간에 돈을 들고 왔다.
유씨는 자기 부부가 하는 일이 절대 구제활동은 아니라고 했다.
“사귐이지요. 서로 주고받는 나눔이고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심부름할 뿐입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유씨의 이야기에 감동받은 동문들이 글들을 책으로 묶자며 5월 한 달 동안 모금을 했다. 100여명이 866만원을 내서 지난달 말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크리스챤 서적)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입소문만으로 벌써 6000부가 나갔다.
유씨는 “아직도 이 세상에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보배롭고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