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장의 급여 명세서가 있다. 받는 돈이 일십백천만… 769만원이다. 생수 배송기사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짤인데, 알바천국만 검색해 봐도 ‘월 740만원 이상’
‘1년 뒤 제네시스 삽니다’(?)라는 구인 글이 호기심을 마구 자극한다.
유튜브 댓글로 “생수 배달하면 한 달에 800만원 넘게 번다는데 정말인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송 일이 익숙하고 생수 물량을 많이 받아 간다면
월 800만원 넘게 벌 때도 있지만 이것저것 빠져나가는 비용이 많아
순이익은 그보다 적은데다 오래 하긴 힘든 일이라고 한다.
클릭 한두 번으로 이 묵직한 생수를 집 앞까지 배송받는 일이 보편화된 건 4~5년 전부터다.
생수만 배송하는 전담 기사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쯤.
생수 배달을 하려면 일단 쿠팡이나 CJ대한통운 같은 운송기업과 계약한 물류회사나
생수 전담 배송센터에 들어가야 한다.
주의할 건 생수 배달기사는 물류회사에 취업한 직장인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거다.
매달 일하는 만큼 매출이 생기지만, 배달에 드는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한 달 수입이 곧 순이익이 아닌 이유다.
먼저 수입을 계산해 보면 2L짜리 생수의 배송 단가는 1000원 안팎이다.
생수 배달에 익숙해져서 많은 물량을 소화할 경우 한 달에 5000~7000개를 배송할 수 있다는데,
대략 500~700만원 수입인 꼴이다. 이 악물고 배달할 경우 분명 월 800만원 넘게 가져갈 수 있다고 하는데,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월 소득이 세전 529만원인 세상에 분명 적지 않은 돈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생수 기사는 개인사업자인 만큼 초기 투자 비용이 발생한다는 거다.
그중 제일 큰 건 배송 트럭 마련에 드는 돈이다. 생수를 배달하기 위해 1톤 트럭이 필요한데,
신차나 중고차를 구매하거나 회사를 통해 빌리는 경우가 많다.
매달 수십 만원의 할부금이나 임차료가 나갈 수 있다.
한 달에 40~50만원 가량 나가는 기름값도 본인 부담이다.
이외에 알선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면 몇백만원의 소개비를 내야 하는 곳도 있다는데
이 정도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거 아닌가… 참고로 개인사업자다 보니 4대보험 보장이나
퇴직금, 연차휴가도 없다.
심지어 처음에 계산했던 500만원 이상 수입도 보장된 건 아니다.
배송 물량을 넉넉히 배정받지 못하거나 어려운 구역을 맡게 되면 벌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생수 매출도 계절을 타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수요가 줄어드는 11~12월 같은
비수기에는 수입이 꽤 깎인다.
내가 맡은 지역, 구역에 생수 물량이 많이 뜨지 않거나 동선이 험하다면 배송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있는 대단지 아파트는 수월한데, 개당 12㎏인 생수 6개짜리 묶음을 두세 팩씩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빌라촌에 가게 되는 경우엔 이런 중노동이 따로 없다. 말그대로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기 딱 좋다는 소리다. 게다가 주 6일 근무가 고정이라 쉬는 날도 거의 없다.
고생해서 번 돈이 병원비로 다 나간다는 소문이 근거가 없진 않다.
인생만큼 무거운 생수를 짊어지고 이 악문 채 배달을 하는 건 오직 밥벌이 때문이다.
빚 청산이나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뛰어든 가장이 많은 이유다.
현직 기사들은 생수 배달이 결코 쉽지 않으니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오라고 조언한다.
보통은 생수 배송을 바짝 해서 돈을 벌고 체력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일반 택배로 넘어가거나,
종잣돈으로 아예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 노동이라고 결코 알바처럼
만만히 보고 덤벼들 건 아닌 거다. 그러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우리가 마실 물을 배달해 주시는
생수 기사분들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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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골프장들이 늘어나는 골린이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많다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봐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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