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3일 (수) 촬영.
아침에 순두부를 먹고 싶어 검색을 했더니 체인점인 "일품순두부"라는 식당이 괜찮다고 해서 찾아 갔다.
메뉴를 보니 순두부 종류만 10여개가 넘었다. 가격도 9,000원으로 착했다.
순두부를 시켰는데,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순두부찌게 없이도 밥 한그릇을 먹고도 남겠다.
게다가 밥은 돌솥 영양밥이었다. 제주 여행 중 가성비 대비, 가장 맛있고도 정갈한 식탁이었다.
오늘은 3박4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다. 돌아가기 전,
제주의 사찰 중 유일한 보물을 소유한 불탑사와 그 앞에 있는 원당사 그리고 368개나 된다는 제주의 오름 분화구에 세운
단 한 곳의 사찰인 문강사를 찾았다. 불탑사는 조계종, 원당사는 태고종, 문강사는 천태종 소속의 절이다.
3곳의 절이 모여 있는 이곳은 제주불교성지, 사찰순례길 -보시의 길 4구간(8.8km.총 거리l 42.9km)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좌측 담만 보이는 곳이 불탑사이고, 천왕문이 있는 오른쪽이 원당사이다. 원당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불탑사부터 들어 갔다.
불탑사 사천왕문.
불탑사 사천왕문에서 본 원당사.
사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을 그림으로 그려 모셨다.
원당사지.元堂寺址.
원제국시대 제주도의 3대 사찰의 하나였던 원당사(元堂寺) 터, 13세기 말엽 원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원나라 기황후(奇皇后)가 삼첩칠봉(三疊七峰)의 명당자리에 절을 지어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17세기 중엽까지 존속되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1914년 이곳에 불탑사가 재건되었다.
지금도 경내에 당시 세웠던 오층석탑이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현지 설명문 -
불탑사(당시 사찰명 원당사)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기황후가 1340년경 제2의 황후로 등극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때 쯤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조선시대 효종 4년까지 절이 유지되었으나 숙종 28년 배불정책으로 훼손되었다.
절이 헐리는 과정에서도 석탑만은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른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원나라 황제 순제(順帝)가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어느 날 한 스님이 나오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스님은 "북두의 명맥(命脈)이 비친 삼첩칠봉(三疊七峯)의 터를 찾아 절과 탑을 세우고 기도하면 태자를 얻을 것"
이라고 했다. 이에 순제가 천하를 샅샅이 살피다 마침내 영주(지금의 제주) 동북 해변에서 삼첩칠봉을 찾아 탑과 큰 사찰을 세우고
정성껏 기도를 드려 태자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탑사(당시 원당사)는 3차례 화재로 불에 탔으며, 1914년 안봉려관(安逢廬觀) 스님이 보수해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원당사에서
불탑사로 고쳤다. 그 후 제주 4,3사건의 혼란 속에 폐허가 된 불탑사를 고 이경호 스님이 재건하고 양일현 스님이 중창불사를 해
지금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불탑사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국내 유일의 오층석탑(보물 제1187호) 불교 문화재를 1점 보유하고있다. -현지 안내문 -
사천왕문과 범종각 사이에 있는 마당에 낙엽이 되어 떨어진 단풍이 쓸쓸해 보였다.
좌측에는 심검당이 있으며, 우측의 건물은 종각이다.
범종각.
심검당.
오층석탑 / 보물 제1187호.
현무암으로 쌓은 이 탑의 양식은 1층의 기단과 5층의 몸돌(屋身)이 심하게 좁아 특이하다.
또한 1층의 남쪽 면에 감실(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 있는 점도 독특하다.
기단 면석에는 뒷면을 제외한 3면 안상 내에 같은 크기와 형식의 귀꽃문(蓮峯)이 있다. - 현지 설명문 -
불탑사 오층석탑,佛塔寺 五層石塔 / 보물 제1187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제주특별자치도 내에 있는 유일한 불탑이다.
현무암으로 축조된 이 탑은 1층의 기단과 5층의 몸돌(屋身)이 심하게 좁아진 특이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각 층의 몸돌이나 지붕돌(屋蓋)은 단일석으로 되어 있다. 몸돌은 아무런 문양도 두지 않은 간략한 양식을 취하고 있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의 끝만 살짝 올려 마무리 되었다. 상륜부에는 근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보개(寶蓋)가 올려져 있다.
이 석탑은 1300년(충렬왕 26) 원나라 순황제가 황태자를 얻기 위하여 축조했다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원당사는 세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석탑만은 원형대로 남았다. - 현지 사천왕문 앞에 있는 설명문 -
1층의 남쪽 면에 있는 감실(불상을 모셔 두는 방)과 기단 면석에 있는 안상과 인상 안에 새긴 귀꽃문(蓮峯).
5층석탑을 우측으로 한바퀴 돌며 살펴 보았다. 석탑의 전면과 우측면이다.
5층석탑의 우측면.
5층석탑의 우측면과 후면.
요사채지.寮舍寨址
옛 원당사지로 발굴조사 결과 건물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독립 기초가 발굴되었다.
이에 따라 발굴된 요사채지의 형태로 기단석을 정비하고 잔디를 심었다.
금당지.金堂址.
옛 원당사지로 발굴조사 결과 건물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독립 기초 및 요사채지와 연결된 계단이 발굴되었다.
이에 따라 발굴된 대웅전지의 형태로 기단석을 정비하고 잔디를 심었다.
5층석탑의 후면.
5층석탑의 후면과 좌측면.
5층석탑의 후면과 좌측면이다. 좌측에 보이는 잔디가 있는 마당은 요사채지.寮舍寨址이다.
5층석탑의 좌측면.
불탑사의 배치도.
좌측에 종각이 있고 우츠에 심검당이 있다.
심검당.
대웅전 앞에서 본 모습. 사천왕문 뒤는 길 건너에 있는 원당사의 모습이다.
불탑사 대웅전의 내부, 아침 예불을 드리는 것은 아니고, 행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비구니 스님이다.
석가모니불 좌우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대웅전 좌측에 모신 미륵불.
사찰의 왼편에 있는 공덕비 군.
오른쪽 건물은 요사채이다.
앞의 건물은 심검당, 불탑사를 나와서
건너편의 원당사로 들어 갔다. 원당사라는 편액이 걸린 사천왕문은 잠겨 있어, 옆의 문을 이용해야 한다.
원당사로 들어서면 좌측에 극락전이 있고, 그 앞에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극락전과 관세음보살.
전면에는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내부 모습.
대웅전 앞에서 본 경내 모습. 좌측의 건물이 요사채이다.
대웅전 우측에는 감귤밭이 있다.
감귤밭.
감규밭에서 본 대웅전.
대웅전의 뒷 뜰. 대웅전의 뒤가 이렇게 넓은 곳은 처음 본다.
관세음보살상.
극락전.
극락전.
극락전에서 본 불탑사 사천왕문.
대웅전과 요사채.
요사채 앞에 있는 입간판 내용.
4. 3 피해사찰 - 원당사.
원당사는 제주4.3사건으로 1949년 11월 삼양리 마을로 소개되었다.
당시 건물 중 대웅전은 신도 중에 경찰이 있어서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56년에야 피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자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 후 소개되었던 부처님과 탱화 등을 모시고 돌아와 대웅전과 객실을 보수하고 재건하였다.
절 밖. 불탑사 위 주차장에 있는 원당사의 공덕비 군.
공덕비군 옆에 있는 산담.
원당사를 나와 약 300m 쯤 위에 있는 문강사로 왔다. 문강사는 오름의 분화구에 세운 유일한 절이다.
오름부터 오르기 시작했으나, 다음 일정을 생각해서 오르기를 생략하기로 했다.
분화구에 곳에 절이 있다. 제일 움푹한 곳에는 연못도 있었다.
대한불교 천태종 문강사.
도향당과 관음전.
도향당과 관음전 사이로 가면
영문각과 대웅보전이 있다.
영문각.
내부에는 칠성과 산신의 탱화와 석가모니불이 모셔 있다.
영문각 앞을 지키고 있는 서수.
대웅보전.
불단에는 좌로부터 상월원각대조사,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극락보전과 7층 탑.
첫댓글 불탑사, 원당사. 문강사. 각 각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종단의 절들 제주도 여행가면 참배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제주도 여행시 관음사 약천사 외에
산방사 기원정사 천왕사 존자암 그외 이름도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몇 곳의 사찰들, 참배드렸는데
가까이 꼭 한 절집 같은 곳도 서너 사찰이 있는 곳도 있지요
어느 때인가 하루에 4 절을
점심도 굶고 다녀와서 몸살을 앓은적도 있었습니다.
불탑사가 비구니스님 도량이라 역시 정갈하네여
순부두백반 엄청난 가지수에 돌솥밥에 최고의
가성비 식사이네요 침이 넘어갑니다
덕분에 감사히 성지순례 합니다_()_
너무 고맙게 방에세 순례 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