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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막이슈 스크랩 기타 고려 복식을 입은 원나라 명나라 왕실과 귀족, 그때의 한류 고려양
roux 추천 0 조회 1,362 20.06.30 02:27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http://lnn0909.blog.me/80189444871

 

원글 출처는 위의 링크...

 

 

 

 

위 그림은 명나라 시기의 그림입니다.
처음 보면 누구나가 느끼지만 여자들이 입은 복식이 한복과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원래의 중국 복식은 저러한 모습과 꽤 차이가 많이 납니다.
 
아래는 중국의 전통적인 여자 기본 복식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여성 복식은 치마를 윗옷 위에 입으며, 치마의 실루엣 또한 약간 끌리는 1자 형입니다.
하지만 원나라 시기에 갑자기 전통적인 중국옷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A자형 치마에 저고리를 바깥에 입는 옷이 등장합니다.
원나라 복식의 유풍인건가..?하면

 

 

 

 

위의 사진은 원나라당시 몽골의 전통 복식입니다.
하지만 원나라, 몽골 여성들의 복식은 맨위의 그림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오히려 한복에 훨씬 가까운 모습이죠.

 

 

 

 

한국은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해서 A자형 실루엣이었습니다. 또한 저고리를 바지나 치마 위에 입죠.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고구려 벽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당시 중국의 기록들이 몇개 있습니다.
 

 

 


 
아래는 [속자치통감 제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에 기재된 글입니다.
 
《??治通? 卷二百一十四 元?三十二》??:“后亦多畜高?美人,大臣有?者,?以此?之,京??官?人,必得高?女然后?名家。
自至正以?,?中?事使令,大半高?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高?,?世若狂。”
 
"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원나라로 공녀로 간 여자들 중에는 황후까지 된 자도 있었으며 많은 수가 시녀로, 궁녀로, 귀족의 첩으로 갔으며,
이들이 가지고 간 고려의 문화는 명나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숙원잡기]의 기록에는,
《菽???》::“?尾裙始于朝??,流入京?……于是无?无?,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老万公安冬夏不?……。
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으며......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식이 날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또 [만포필기]에는, 《寓圃??》:"?裙之制,以?尾?成,系于?衣之?。?肥者一裙,瘦削者或二三,使外衣之?,?若一?。",
 
치마를 넓히는 제도는, 말꼬리를 옷안에 엮어서 만든다. 몸을 비대하게 만든 하나의 치마로, 마른사람은 혹 두개 세개를 입는다.
옷을 바깥으로 넓게 퍼지게 만드는데 쓰는데, 우산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미군이라면 치마에 살을 대어 부풀리는 것으로 한국복식에서 유래됐으며
한국 복식은 궁내, 궁외, 귀천을 넘어 중국의 남자 복식에까지도 넘어가게 됩니다.

 

실제로는 이런 모습입니다.
송나라에서 고려에 사신으로 온 서긍이 말한 고려여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치마도 이러한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겉치마안에 속바지, 속치마, 살을 받쳐 부풀려서 항아리 모양, 피라미드 모양을 만듭니다.

 


 

 

 

 

 

맨위의 그림은 이러한 '고려양'이 최고로 유행하던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고 온 세상이 미친것 처럼 고려문화를 모방하던 때였으니
당시의 중국옷이 한복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이렇게 원나라 시기부터 명나라 중기까지 한국복식은 중국에서 유행을 했고 꽤 깊숙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중국에서도 위의 모습과 같은 옷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복식을 가리켜 중국 정통에 맞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사스럽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금지령이 내려지며 꽤 빠른 시간내에 사그라든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그림 참조]
 
(유행은 어디까지나 유행일 뿐이죠... 이것과 관련해서 당시의 기록이 있는데 기록에서 전하길
'아버지가 말하길 수십년 전에는 치마안을 말꼬리로 받쳐서 빵빵하게 만드는 것이 유행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우스웠다.
조선공사자가 왔을때 보니 허리아래에 항아리를 안은 것 같고, 가는 모습을 보니 포복한것 같다...'고 되어있습니다.
일명 앉아도 선 것 같고, 서도 앉은 것 같은 그 모습을 표현한 거죠..
또한 남자 복식도 허리아래를 부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항상 쌍방향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엄청나게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했다는 느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여러 중국의 고문헌에서 고려양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대장금옷은 중국을 베낀 짝퉁이다..!"는 등의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고 있죠.. 실제로 정반대인 것은 모릅니다..
 
지금와서 원나라, 명나라 시기의 고려양을 생각해보면 근래의 한국문화의 인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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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0.06.30 02:28

    첫댓글 출처 신생카페 아니고 블로그임
    문제시 좋게 알려줘

  • 20.06.30 02:39

    흥미롭다

  • 20.06.30 05:55

    한복 넘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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