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과 함께 떠나는 4박5일 섬여행 2011.7.15-7.19
신안군 팔금도-안좌도-박지도,반월도-암태도-추포도-자은도
이생진 시인은 문단에서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대표적 섬시인이다. 대표적이라는 말 보다는 단연 독보적인 분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이생진 시인 만큼 우리나라 섬들을 두루 돌아다니고 섬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5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무려 1,000개 이상의 섬을 돌아다녔다. 우리나라 섬 전체가 3,358개, 이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482개(2010.1월 국토해양부 공식 집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섬 섭렵이 아닐 수 없다. 다녀온 섬 개수가 그렇다는 것이지 여러번씩 다닌 섬이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하면 1,000개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정작 이생진 시인 본인은 몇 개 섬을 다녀왔느냐고 물으면 그걸 굳이 내세우려하지 않는다. 섬 숫자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마치 섬 방문 횟수를 실적올리기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다. 누구한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섬이 좋아 섬을 돌아다니는 섬 매니아. 이 시인은 섬처럼 조용하고 섬처럼 아름다운 분이다. 또 섬처럼 고독을 즐기면서 그 고독을 가슴 속 용광로에 녹여 시로 표현하는 분이다.
이생진 시인은 평생을 바다와 섬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고독’과 ‘섬의 고독’을 잇는 시를 써오셨다. 죽을 때까지 섬으로 떠나서 죽은 뒤에도 섬으로 남고 싶다는 그는 한마디로 ‘살아있는 섬’, ‘숨쉬는 섬’이다.
이생진 시인은 최근에도 <실미도, 꿩우는 소리>라는 이름의 섬 시집을 냈다. 이 시인은 그동안 <그리운 바다 성산포>, <바다에 오는 이유>, <섬에 오는 이유>, <섬마다 그리움이>, <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 <먼 섬에 가고싶다>, <하늘에 있는 섬>, <거문도>,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그 사람 내게로 오네>,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 <서귀포 칠십리길>, <우이도로 가야지>, <독도로 가는 길> 등 총 33권의 섬 중심 시집과, <시인과 갈매기>, <저 별도 이 섬에 올 거다> 등 시선집,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등 섬에 관한 시․수필집을 냈다.
지난 7월 중순. 어렵게 시간을 맞춰 이생진 시인과 함께 4박5일의 섬나들이를 떠났다. 이생진 시인이야 수시로 섬을 돌아다니는 분이라서 일상사처럼 가볍게 집을 나설 수 있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직장에 매달려있다보니 주말이나 연휴기간이 아닌 평일 여행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시인께서 함께 해 주신다니 필자로서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역시 늦깎기로 근년들어 섬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든 터여서 만사 젖혀놓고 취재 겸 과감히 여행일정을 잡았다. 필자의 경우 현재 몸담고 있는 월간 ‘오늘의 한국’ 잡지에 지난 5년간 매월 섬여행을 포함한 여행 및 산행기를 연재해오고 있기 때문에 취재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생진 시인과의 섬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4년 전 한국시인협회 주관의 울릉도 독도 여행을 함께 했고 최근에는 지난 3월 무의도 및 실미도 1박 2일도 함께 한 적이 있다. 본래 여행 및 산행을 좋아하는 필자가 늦게 섬여행 쪽으로 마음을 쏟기 시작한 것도 이 시인을 모시고 몇몇 섬을 돌아다니면서 이분의 섬에 대한 생각과 철학에 깊이 감동하고 공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뭇튼 이번 섬여행의 목적지는 신안군 관내 팔금도, 안좌도, 암태도, 자은도 등 네 개 섬 및 부속 섬들. 신안군은 별명이 ‘천사의 섬’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섬들로만 모아진 특이한 군이다. 신안군청 홈페이지를 보면 군내 섬 숫자가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로 되어 있다. 섬 숫자도 우연이지만 ‘천사의 섬’이라는 명칭 자체는 정말 멋진 이름인 것 같다. ‘천사(天使)들이 사는 섬’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고 뭔가 꿈과 그리움을 주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다니는 섬마다 선착장이나 버스정류장 등 곳곳에 ‘천사의 섬 XX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아침 7시 20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려 목포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리니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그 노래. 여기가 목포구나 하는 걸 확인해주는 것 같다. 역시 목포답다. 이생진 시인은 즉석에서 ‘목포는 항구다’라는 제목의 시 한수를 지으신다.
목포는 항구다/이생진
장마 끝에
쓰러진 벼 포기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달아나는 내 얼굴이
논산
익산
나주의 논두렁에 박히니
여행이 부끄럽다
기차표에 찍힌 도착시간
열 시 40분
역에 내리자마자
‘목포는 항구다’
이난영의 눈물 섞인 목소리에
뿌리쳐도 따라오던 그 사람이
아직도 게 있을 거라는 그리움
나는 곧장 항구로 간다
목포에서 팔금도 등 4개섬을 가는 방법은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안좌도 읍동선착장이나 팔금도 백계선착장으로 가는 방법과,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암태도 오도선착장이나 팔금도 고산선착장으로 가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어느 방법이든 일단 섬에 도착하면 네 개 섬은 모두 연도교로 이어져 있어 여행하기 편리하다.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 안좌도까지 1시간 10분에 여객선요금은 4,700원(대인 기준).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소요시간 25분, 승객요금 3,000원. 목포여객선터미널 출발시간은 07:00, 13:00, 15:00 등 세 번 있는 반면, 송공선착장에서는 암태도 오도선착장과 팔금도 고산선착장 행이 교대로 거의 매시간 운항한다. 목포역에서 송공선착장까지는 버스로 1시간 가까이 가야되기 때문에 각 편마다 장단점이 있다. 자동차를 가지고 갈 경우에는 송공선착장을 이용하는 것이 요금도 싸고 편리하다. 차를 가지고 갈 경우 송공선착장 출발 카페리 요금은 13,000원이다.
필자 일행의 경우에는 자동차를 가져오지않았기 때문에 목포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팔금도 백계선착장으로 가는 13:00 출발 여객선을 탔다.
*2019년 4월 4일부터는 압해도와 암태도 간 7.2km의 천사대교 개통으로 여객선을 타지않고 자동차로 직접 암태도로 들어갈 수 있다. 암태도와 자은도-팔금도-안좌도-박지도-반월도는 이미 그 이전부터 연도교로 이어져 있다.
배 안에서 앞으로 4박5일간의 여행일정을 점검해 본다. 목포터미널에서 얻은 ‘신안여행’ 관광안내도 팜플렛을 펼치고 우선 섬 위치와 주요관광지 등을 살펴본다. 필자는 내려올 때 열차 내에서 이생진 시인께서 미리 준비해오신 6쪽에 달하는 섬 소개 글을 받아 읽어본 터라 섬 정보에 대해 조금은 파악을 했다. 이생진 시인은 이번에 방문하는 섬들도 전에 모두 다녀오신 곳들이다. 허니 선생님께서 필자를 안내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나이젊은 필자가 여행정보 및 일정 등 모든 준비를 해 와야 하는 데 거꾸로 돼서 죄송스럽기까지 하다.
어쨌든 이번 섬여행은 자유여행이다. 사전에 숙소 등 예약도 하지않고 무작정 출발했다. 특별한 방문지도 정한 바가 없다. 발 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현장에서 결정하기로 했다.섬에 가기로 약속한 후에도 ‘암태도인가 하는 섬’에 간다는 것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생진 시인께 묻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가고싶으신 곳 어디든지 섬이면 좋다는 식이었다. 이생진 시인은 워낙 섬을 많이 돌아다니신 분이기 때문에 섬여행에 관한 한 요령을 너무 잘 아신다. 처음에는 4박5일 섬을 돌아다니기 위해 렌트카라도 빌릴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단다. 섬 안에서 배시간에 맞춰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단다. 이번 여행에서는 손대기라고 하는 40대 초반의 젊은 후배도 함께 했다. 손대기 역시 여행등산을 즐겨하는 친구이다. 손대기는 우리일행과 목포에서 만나기 전 이미 섬 몇 개를 돌고 오는 길이란다. 선생님은 그를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자유인들의 자유로운 섬여행. 멋질 것 같다.
안좌도 읍동선착장을 거쳐 14: 24분 팔금도 백계선착장 도착. 백계선착장은 팔금도와 안좌도를 이어주는 신안제1교 다리밑에 위치해 있다. 두 섬 사이를 가르는 바닷길은 비금도, 우이도 등을 가는 주요 항해길이기도 하다.
선착장에는 팔금면과 삼층석탑을 소개하는 다이아몬드 형의 안내판이 보인다. 팔금면은 팔금도, 매도 등 여러개의 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여덟마리의 새의 지명이 있다고 해서 ‘팔금’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팔금도 문화유적으로는 특히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유명하다.
선착장에 섬과 섬 사이를 오고가는 공영버스 두대가 대기하고 있다. 이중 팔금도 면사무소 소재지인 읍리를 거쳐 동북끝단에 위치한 고산선착장까지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기사에게 민박집 소개를 부탁하니 고산선착장에 2개소가 있다고 한다. 고산선착장에서 하차, 동백횟집이라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민박집 조망이 좋다. 좌측은 선착장, 정면 바로 앞에는 조그만 섬이 보인다. 민박집 주인 오미심 씨(여)에게 섬이름을 물으니 ‘거사섬’이란다. 이름이 특이하다. 오후 썰물 때라 바다 속살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 작은 쪽배 몇척이 갯벌 위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갯벌 중간에는 거사섬으로 건너가는 낮은 제방이 보인다. 바다로 열리는 갯벌 입구에는 대나무발 모양의 김양식장도 보인다.
거사섬은 전에는 13가구가 사는 유인도였는데 7-8년 전 신안군에서 가구당 2천만원씩 주고 퇴거시키고 현재는 염소방목장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오미심 씨는 거사섬 역시 서울사람 개인소유라고 귀띔한다. 심지어 마을뒷산인 ‘고산’도 서울사람 소유라고 얘기해준다.
이생진 선생님은 섬 산책을 나가시고 필자는 혼자 민박집 뒷산인 ‘고산’을 올랐다. 팔금도의 산으로는 채일봉(158m)과 금당산(130m), 그리고 해발 141m의 고산이 있다. 이들 산은 낮은 산이지만 금당산을 제외하고는 등산로가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동네야산이니 어느 정도 길이 나 있겠지 하고 도전해 본다. 동네 젊은이의 설명대로 고산리마을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 본다. 진짜 그렇다. 동네 산인데도 등산로가 전혀 보이지않는 밀림이다. 길도 없는 숲을 20분쯤 헤치고 오르니 바위가 나타나고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고산마을과 갯벌, 그리고 거사섬 전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와 하고 혼자 탄성을 지른다. 섬산행의 맛이 바로 이것이다. 역시 섬에서는 산에 올라야 섬 전체가 보이고 섬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마을 들머리에서 40분 쯤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작은 공터와 함께 삼각점표시가 박혀있다. 정상에서 팔금도의 경관을 즐긴 후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니 흐미하게 길이 보인다. 내려가다보니 날머리는 민박집 바로 뒷길이다. 하산길 끝머리에서 다시 길이 없어진다. 민박집을 바라보고 억지로 풀숲을 헤치고 나와 1시간 남짓의 가벼운 산행을 마무리했다.
둘째날. 새벽 4시반경 잠이 깼다. 이생진 선생님은 벌써 새벽산책을 나가셨다. 필자도 일어나 선착장 쪽으로 나가봤다. 만조와 간조의 차가 엄청나다. 어젯밤 걸어서 건넜던 거사섬노두길은 이미 길이 사라지고 물이 출렁이는 바다로 변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침 6시 경이 되니 물이 많이 빠졌다. 이생진 선생님은 물이 빠지자마자 거사섬을 건너가셨다. 폐가 마을을 보기 위해서다. 필자는 일출사진 찍는다고 선착장을 떠나지못했다. 바다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섬에서 맞는 일출광경. 황홀하다. 또 새날이 밝아왔다.
아침식사 후 바로 백계선착장 행 버스를 탔다. 그곳에서 안좌도행 버스를 탈 심산이다. 백계선착장에서 일단 신안제일교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다. 다리 위에서 안좌 읍동선착장과 백계선착장을 내려다 본다. 섬과 섬 사이의 해협같은 뱃길이 아름답다. 비금도 방향으로 가는 쾌속선이 연이어 들어온다.
다리 끝에 이르니 안좌면이라고 쓰여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좌면 중심마을인 읍동까지는 그리 멀지않은 것 같다. 걸어갈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데 트럭 한 대가 다가온다. 손을 들어 마을까지 편승을 부탁하니 흔쾌히 수락한다. 역시 섬 인심이 아직은 좋다. 막상 차로 달려보니 걸어서 갔더라면 제법 시간이 걸릴 거리이다. 트럭을 타게 돼 운이 좋았다.
읍동 마을은 제법 번화하다. 안좌도는 우리가 돌아다닐 4개섬 중 제일 큰 섬이다.
읍동 낚시민박에 짐을 풀고 바로 김환기 화가 생가를 찾았다. 김환기 화가(1913-1974)는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 중 한분으로 우리나라 전통미를 현대화시키는 데 기여한 분으로 평가되는 분이다.
홍익미술대학 초대학장, 한국미술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생가는 아담한 기와집으로 안채는 ㄱ자형이다. 섬 마을에 이정도의 기와집이라면 생활이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집안인 듯 하다. 김환기 생가는 중요민속자료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 작품활동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다.
생가 옆에는 2009년 김환기 국제미술제전에 참여하여 3주간 안좌도 현장에서 창작활동을 펼친 독일작가 8명의 손자취를 새긴 대리석 빛깔의 조형물도 보인다.
안좌초등학교 앞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자옆 연못에는 연꽃들이 만개해 있다. 이생진 시인께서는 어디를 가든 틈만 있으면 즉석에서 시를 쓰신다. 선생님은 시인일 뿐 아니라 화가이시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즉석에서 언제나 그림도 그리신다. 길가 시멘트난간 그늘에 앉아 뭔가를 쓰고 계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필자도 선생님의 나이가 됐을 때 선생님처럼 여행을 즐기면서 열심히 시를 쓰고 열심히 그림도 그릴 수 있을까? 존경스럽다. 이곳 안좌도에서는 무슨 시상들이 떠올랐을까. 머지않아 또 안좌-팔금-암태-자은도에 관한 아름다운 시집이 나오겠지. 그 시들이 궁금하다.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시집. 그 멋진 시집이 또 기다려진다.
점심식사 후 박지도로 향했다. 안좌도 두리마을과 박지도 간은 '퍼플교', 박지도와 반월도 간은 '소망의다리'로 이어져 있다. 평범하게 세워진 다리가 아니라 직선과 곡선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조화시키고 중간에 아치형 오르내림, 사각쉼터, 육각쉼터, 팔각쉼터, 낚싯터 등 다양한 용도로 설계한 명품다리이다.
두리-박지도 구간 547m, 박지도-반월도 구간 915m로 이어진 이들 다리는 두리선착장에서 바라보면 역 ‘ㄱ’ 자여서 전체다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곳 역시 썰물 때는 갯벌이 드러나는 ‘모세의 기적’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지도와 반월도 사이의 바닷길. 이곳에는 박지도 암자에 사는 젊은 남자스님과 반월도 암자에 사는 젊은 비구니스님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중노두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박지섬 암자에는 젊은 스님 한분이, 반월섬 암자에는 젊은 비구니 한분이 살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박지섬 스님은 멀리 아른거리는 자태만 보고 반월섬 비구니를 사모했다. 그러나 들물이면 바닷물이 가로막고 썰물이면 허벅지까지 빠지는 갯벌이 가로막아 오갈수가 없었다. 서로는 망태에 돌을 담아 부어나갔다. 그러기를 여러해, 둘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어느날 드디어 갯벌 한가운데서 만날 수 있었다. 둘은 서로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너무 먼 곳까지 들어온 둘은 갑자기 불어나는 바닷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서로 부등켜안은 채 물 속으로 잠겨갔다. 다시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돌무더기 길만 이어져 있을 뿐 스님도 비구니도 보이지않았다”
박지섬 입구에는 쉴 수 있는 정자와 함께 등산로와 산책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박지섬의 해안선 길이 4.6km, 산 높이 해발 130m 정도의 낮은 산이다. 산이름은 ‘박지당산’이라 부른다. 산 정상에서 매년 음력 정월보름에 소 한 마리를 잡아 당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중 박지당산 2km, 해안산책로 2km가 등산 및 산책로로 개발되어 있다.
등산로 표시를 따라 15분 쯤 울창한 숲길을 오르면 시야가 트이면서 바다건너 반월섬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월섬의 중심은 어깨산이다. 천사의 다리에서 볼 때는 반월섬 산 봉우리가 하나였는데 이곳에서 보니 봉우리가 두 개 나란히 올라온 쌍봉산이다. 이름이 ‘어깨산’인 이유를 이곳에 올라와서 보니 알겠다.
박지도 해안길 및 박지당산 트레킹 만 할 경우에는 약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안좌도 두리마을에서 퍼플교-박지선착장-박지해안길-기바위정상-소망의 다리-반월도 천사공원-반월당 숲-절골재-만호정-어깨산 정상-돌탑-딸당-천사공원-두리마을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두 섬 종주 트레킹코스는 약 9.6km, 3시간 반 정도(휴식시간 포함) 소요된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읍동마을 뒤 ‘안산’에도 올라가 봤다. 정상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제법 가파른 시멘트길이다. 정상에는 KT중계소가 세워져 있다. 읍동마을과 선착장 쪽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좋은 곳이다.
셋째날, 아침 일찍 선착장에 나가봤다. 선착장 가는 길은 김환기 화백의 그림과 조작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문화의 길다.
김환기 화백이 태어난 곳이라 읍동마을 곳곳은 온통 김화백의 그림벽화들이 즐비하다. 읍동마을에서 선착장에 이르는 길가에는 김환기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선착장화장실, 매표소는 물론 물류창고까지 김환기 대표작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읍동마을 중심부도 마찬가지다. 학교 운동장 계단, 개인집 담벽, 교회 담벽 등에 김 화백의 대표작들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고 심지어는 김화백이 외국에서 보낸 엽서편지 친필도 벽화형태로 새겨져 있다. 온동네가 그림이 있는 문화거리로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아침식사 후 택시로 백계선착장까지 가서 암태도 행 버스에 올랐다. 팔금도를 지나 중앙대교를 건너 면사무소 동네에서 내렸다. 뒤로 소작인항쟁기념탑이 보인다.
1920년대 일제치하에서 일어났던 암태도 소작쟁의는 농민투쟁 최초의 전국 단위 소작쟁의에 불씨를 지폈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1924년 일제의 비호를 받고있던 지주들이 소작료를 칠팔할까지 올려받아 소작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서태석와 박복영 씨를 중심으로 한 암태도 소작회가 분연히 일어나 불납과 파작동맹으로 맞섰고 목포까지 나가 거리행진을 하고 검찰청을 점거하는 등 격렬하게 대항, 결국 소작료를 사할로 내리는 대승리를 거둔 사건이다.
암태도는 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있다 하여 암태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약 600년 전 최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안좌도를 비롯, 이곳 섬들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논밭이 많아 막상 섬 안쪽만 돌아다니다보면 섬같지가 않다. 마치 육지의 어느 농촌에 와 있는 느낌이다. 암태도 역시 중앙부는 평지로 농경지가 대부분이며 곳곳에 염전이 보이기도 한다.
암태도에는 등산하기에 좋은 산도 몇 개 있다. 최고봉은 승봉산(355m)이며, 이밖에도 큰봉산(233m), 박달산(199m), 추봉(159m) 등이 솟아 있다.
암태도에 가면 추포도를 꼭 건너가 볼 것을 권한다. 암태도와 추포도를 이어주는 추포노두길과 추포해수욕장, 염전 등이 유명하다. 노두길은 물이 빠졌을 때 두 섬 사이를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든 돌다리이다. 현재는 그 옆에 시멘트도로가 만들어져 자동차로 건너갈 수 있도록 하였다. 노두길의 운치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시멘트도로라 해도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건너갈 수가 없다.
우리 일행도 일부러 추포도에 있는 민박집을 잡았다. 추포해수욕장 입구 민박집인데 특히 방이 넓고 이층구조로 되어 있어 좋았다. 택시기사에게 물어 예약해준 집이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필자는 바로 승봉산 등산에 나섰다. 추포노두길을 건너자 마자 좌측으로 승봉산이 보인다. 수곡리마을을 지나 임도고갯길을 30분 정도 오르면 등산로 입구이다. 고갯마루에는 쉴 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임도고갯마루에서 약 1.1 km, 1시간 20분 정도 능선길을 오르면 승봉산 정상(355.5m)이다. 비록 높이가 삼백미터 대라고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섬 산들은 바로 바다에서 치솟아 오른 봉우리이기 때문에 육지산 600m 이상에 버금간다고 봐야 무리가 없다. 능선길 중간에는 로프와 철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는 암릉길도 있어 산행재미를 더한다.
중간 암릉에서부터 좌우로 바다조망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뒤쪽 임도고개 건너에는 큰봉산, 우측으로 수곡리마을과 추포도가 내려다 보이고, 좌로는 자은도로 건너가는 은암대교와 두봉산도 보인다. 추포도 섬 모양이 긴 장대같은 일자형이다. 섬이 의외로 길다. 우리가 머물 민박집은 가운데 쯤에 위치해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으로 멀리 안좌도, 팔금도가 보이고 우측은 추포도는 물론 도초도, 비금도까지 보인다. 좌측으로는 오도선착장 방향으로 박달산도 내려다보이고, 자은도 두봉산(363.8m)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두봉산은 4개 섬산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내일은 자은도에서 두봉산도 올라가봐야지 하고 다짐한다.
정상에서 날머리인 암태중학교까지 거리는 2.7km. 하산길 중간에는 기암괴석이 꽃처럼 피어있는 만물상도 있고 부처손군락리도 만난다. 정상에서 약 1시간 20분 쯤 걸려 날머리인 암태중학교에 도착. 승봉산 산행은 수곡마을부터 총 3시간 10분 정도 소요됐다.
오늘 한낮기온은 32도 내외. 땀이 비오듯 흘렀다. 이열치열의 카타르시스다. 암태중 앞 슈퍼에서 이생진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레쓰비 냉커피 세잔을 연거푸 마시고 숨을 돌렸다.
“지금 이순간/나는 누구와 있어야 하나/혼자 있는 것이/가장 건전하다/(중략)/Let's Be/자판기에서 꺼내는 현실/현실은 그것으로 족하다/(중략)/부담없는 현실이 최고다”. 이생진 선생님의 시 '레쓰비'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수곡리에서 노만사를 거쳐 수곡임도 고갯마루에 이르는 큰봉산을 연계하면 4-5시간 정도의 멋진 산행코스가 될 것 같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잠시 쉰 후 마을 한 바퀴 돌아봤다.
추포도에는 추엽마을과 포도마을이 있다. 추포해수욕장 소나무숲길로 추엽마을 쪽을 향했다. 암태초교 추포분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운동장 잔디가 아름다운 교정이다. 이곳 학생은 총 7명. 선생님은 3명이란다. 관리인도 1명. 그래도 학교는 필요하다. 단 1명의 학생이라도 불가피할 땐 있어야 되는 게 학교다.
학교를 지나 추엽마을 입구에 이르니 수백년은 된 듯한 팽나무 한그루가 눈에 띤다. 기묘하게 휘어진 가지들, 하트모양의 가지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고목나무 아래에는 폐가 한 채가 동무하고 있다. 고목과 폐가 한 채. 뭔가 이야기가 될 것 같은 테마다. 사진은 이야기가 있어야 좋다. 요즘 필자는 나무사진에 관심이 많다. 카메라를 계속 눌러댄다.
추엽리는 20여채가 들어선 아담한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고사리밭도 보이고 파란 벼논도 아름답다. 구부러진 논길로 어린이 한명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다. 목가적인 풍경이다.
저녁식사 후 염전을 돌아봤다. 신안 암태 추포염전. 김대식 씨가 주인이다. 부인 심해숙 씨는 추포리 이장님이란다. 석양무렵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두 부부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염전 물 아래로 두사람 모습이 선명하게 비친다. 거꾸로 비치는 반영사진이 환상적이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수박도 내온다. 수박을 먹으면서 소금 만드는 법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추엽마을 팽나무 얘기를 하니 포도마을에는 더 큰 느티나무가 있다고 알려준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서둘러 느티나무 보러 간다. 염전에서 5분 정도 가니 마을 중심부에 거대한 나무 한그루 마을을 지키고 있다. 400년 이상된 느티나무다.
넷째날, 새벽 5시 반경 염전에 다시 갔다. 어제 못다 한 염전 얘기도 더 듣고 사진찍어주겠다는 약속도 했기 때문이다. 아침의 반영사진은 또 색다른 감이 있다. 물 아래 비치는 붉은 일출광경, 그리고 그 속에서 염전작업을 하는 두 젊은 부부의 모습. 마치 밀레의 그림 ‘만종’같은 풍경이다. 이생진 선생님은 염전에서도 틈 있을 때마다 뭔가 쓰고 그리신다. 소금밭에 관한 시를 쓰고 계실까 아니면 밀레의 ‘만종’ 그림처럼 묵묵히 허리굽혀 일하고 있는 두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계실까?
아침식사 후 추포해변에서 사진 몇장 찍고 택시를 불러 소작인항쟁기념탑 앞으로 갔다. 추포도까지는 버스노선이 없고 자은도에 갈려면 다시 암태면사무소앞에서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어제 승봉산 산행중 내려다 보았던 은암대교를 건너 면사무가 있는 구영리에 도착, 바로 분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분계해수욕장은 구영리에서 4.5km거리로 버스가 간다.
분계해수욕장은 백길해수욕장과 함께 자은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경치가 좋다. 해변에는 수백년된 노송숲이 장관이다. 몇몇 노송은 뿌리줄기가 땅위로 나와 있어 기둥처럼 받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노송 중에는 ‘여인송’이라 이름붙여진 소나무 한그루가 특히 인상적이다. 여인이 맨몸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소나무에서 거꾸로 떨어져 죽은 여인이 여인송으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다.
분계해수욕장 좌측에는 소뿔을 닮은 ‘우각도’ 섬이 보이고, 해변 끝 우측에는 응암산이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응암산은 자은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해발 122m의 산으로 매가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매바우산’이라고도 부른다. 산신령들이 사는 신령스러운 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분계해변은 산책로도 좋다. 해수욕장 중앙에서 응암산을 돌아오는 2.1km 산책로와, 우각도 방향의 700m 소나무 숲 산책로도 절경이다. 분계해수욕장에는 정숙민박가든이라는 민박집이 있다.
분계에서 나와 다시 자은도의 대표적 해수욕장이라고 소문나 있는 백길해수욕장도 돌아봤다. 백길해변 역시 구영리로부터는 4.5km 떨어져 있는 해변이다. 은암대교에서 가까운 곳이다.
백길해수욕장은 중앙의 머리모양을 중심으로 양쪽에 3km가 넘는 해안이 펼쳐져 있고 해안 양끝에는 어깨모양의 언덕에 각각 직녀성과 견우성이라는 전망대가 있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중앙 머리부분 언덕에는 ‘프로포즈전망대’가 있어 밀물(헤어짐)과 썰물(만남)에 의해 직녀성에서 견우성 전망대로 이어져 사랑이 맺어진다는 테마도 조성되어 있다. 전망대 언덕에는 원추리꽃이 집단적으로 자생하여 ‘원추리해변(Lily Beach)’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 백길해수욕장에는 또 ‘솔바람산책로’라고 이름붙여진 4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코스로도 좋다.
직녀성 전망대 우측에는 면전해수욕장이 보인다. 백길해수욕장에서 불과 250m 거리. 활모양의 긴 해안선이 장관이다.
구영리 중심에 위치한 민박집(은실민박)에 짐을 풀고 오후에는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민박집을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잠시 오수를 즐기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한다. 선생님은 이곳에서도 노트북을 펴놓고 계속 글을 쓰고 계신다. 책상이 없는 민박집, 그러나 걱정할 게 없다. T.V.대의 설합을 빼내 뒤집어 놓으니 훌륭한 노트북받침대가 된다. 아마 로빈손 크루소도 무인도에서 그랬을 것이다. 무슨 재료든 궁리하면 편리한 생활도구가 되고 주위의 대자연은 먹을꺼리가 됐을 것이다. 섬여행을 많이 해본 이생진 선생님은 어디에 가시든 이처럼 주변의 평범한 물건들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요령을 터득하신 것 같다.
오후 4시 무렵 버스를 타고 무작정 섬을 돌아보고싶다. 버스기사에게 어느 쪽으로 가는 버스냐고 물으니 암태면 오도선착장까지 간단다. 잘 됐다. 내일 오도선착장에서 출발할까 아니면 팔금도 백계선착장에서 출발할까 아직 정하지못했는데 이참에 먼저 답사를 해보기로 하자. 오도선착장내려 구경 좀 하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버스기사에게 다음 버스 시간을 물으니 이 버스가 막차란다.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다시 구영리로 돌아왔다. 허지만 손해본 것 같지않은 약 1시간 가까이의 섬 드라이브였다. 물론 버스요금은 2,000원. 왕복요금이다.
저녁은 마을 제일 오래된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때웠다. 섬마을 짜장면이라 별 기대를 하지않았는데 별미였다. 선생님도 짜장면이 맛있다고 맞장구쳐주신다. 이곳 중국집 사장은 개인택시영업도 하신단다. 기분이 좋아 아예 중국집 주인에게 내일 오도선착장 가는 택시를 부탁하고 마을 팽나무쉼터로 향했다. 파출소 옆에 있는 이 팽나무 역시 수백년된 거목이다. 조금 앉아있으니 바로 앞 민박집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건다. 동네 이야기, 민박집 동향 등, 아주머니 수다에 자은도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다섯째날, 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다섯시 반에 두봉산 산행을 위해 민박집을 나섰다.
구영리에서 두봉산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다. 저수지 좌측 무선기지국을 오른 후 상제봉(225M)을 거쳐 정상을 오르는 방법과, 저수지 우측삼거리 오솔길을 찾아 대율재숲길로 정상에 오르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 후자에 비해 한 시간 쯤 더 잡아야 된다. 필자는 시간관계상 짧은 코스인 대율재 코스를 택했다.
저수지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소요시간은 약 1시간 45분 정도. 초입 숲능선을 지나면 중간부터는 암릉길이다. 양쪽은 까마득한 바위낭떠러지. 아슬아슬한 바위능선을 타야한다. 다행이 절벽 구간마다 철난간이나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바위능선 좌우로 내려다보는 조망은 한마디로 절경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환타스틱이라고나 할까. 마치 호수위 연꽃을 띄워놓은 듯 섬들이 바다위에 꽃으로 피어 있다. 필자가 이번에 돌아본 4개섬산 중 두봉산 산세와 조망이 가장 빼어난 것 같다. 두봉산은 역시 이번 섬 산행의 백미였다.
하산길도 계속 가파르다. 철난간을 잡거나 로프줄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정상에서 40분 쯤 내려오면 도명사. 도명사에는 스님 한분이 산사를 지키신다. 스님으로부터 물 한잔 얻어먹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봉산 산행을 마무리했다. 총 소요시간 2시간 반 정도 소요.
이제 자은도를 떠날 시간. 여객선 출항시간은 11시다. 여객선은 자주 있지만 매번 버스가 선착장까지 가지는 않는단다. 12시 배를 위한 버스는 있는데 12시 배를 타면 시간이 늦다. 목포에서 KTX 출발시간이 2시이기 때문이다. 할수없이 어제 부탁해놓은 중국집 사장 택시를 타고 암태도 오도선착장을 향했다.
오도선착장에 조금 일찍 도착. 좌측 산허리를 도는 ‘오솔길’산책길에 나섰다.
이곳 오솔길은 옛날 선조들이 지게지고 나무하러 다니던 길이다. 총 16개 코스인 오솔길의 주요테마는 1913년 일제시대 건축된 등대를 찾아가는 길을 주요소재로 조성됐으며, 숲길 곳곳에 방죽, 맷돌바위, 거북바위, 70년대 방공호, 마삭줄군락지, 만물상, 해돋이바위 등 다양한 볼꺼리도 있다. 16코스 전체 탐방거리는 3km, 1시간 정도의 산책길이다.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25분 걸려 압해도 송공선착장 도착, 다시 송공선착장에서 버스로 목포역까지 가서 이번 섬여행을 마무리했다.(2019년 4월 4일부터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암태도-압해도 간 7.2km의 '천사대교' 개통으로 암태도 오도선착장-압해도 승공선착장 간 여객선이 없어졌음) (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