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청춘들의 작가였던 폴 오스터가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0권 이상의 책을 펴냈으며, 1980년대와 90년대 컬트와 같은 인기를 끌었던 작가다. 특히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실존주의 소설을 주로 써 유럽에서 록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알려져 있다.
고인이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 자택에서 폐암 합병증으로 숨을 거둔 사실을 친구이자 동료 작가인 재키 라이덴이 확인해줬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두 번째 부인이자 작가인 시리 허스트베트는 남편이 암에 걸린 사실을 공표했다.
유대인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오스터는 나중에 컬럼비아 대학에 진학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했다. 대학 졸업 후 프랑스에서 4년을 지냈는데 그곳에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 쓰기 시작한 소설이 '고독의 발명'(1982)였다. 부자 관계는 그의 작품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주제였다.
작가로서 궤도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뉴욕 3부작'(1987)이었다. 네 명의 사립탐정 주인공 이름을 블루, 브라운, 블랙, 화이트로 설정해 느와르 장르를 철학적으로 비튼 것이 젊은이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다.
팀북투'를 비롯해 수천권의 책을 유증받은 고아 대학생의 오디세이를 그린 '달의 궁전'(1989), 폭탄을 만들다 자살한 친구의 죽음을 조사하는 작가를 소재로 한 '리바이어던'(1992), '동행(Timbuktu, 1999), 무성영화 스타가 의문스럽게 실종된 것을 추적하는 전기작가를 그린 '환상의 책'(2002) 등이 있다.
오스터는 예리한 대담으로도 찬사를 이끌었다. 그의 책은 40개 언어 이상으로 옮겨졌다. 여기에 더해 영화를 무척 좋아해 영화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브루클린 담배가게를 배경으로 철학적 사색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했던 하비 케이틀과 윌리엄 허트 주연, 웨인 왕 연출의 '스모크'(1995) 각본을 집필했다. 영화의 매력에 /빠져든 고인은 케이틀을 다시 앞세워 후속작 '블루 인 페이스'(2017)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
86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4321'은 아치 퍼거슨이란 흔한 인물을 통해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평단으로부터 좋지 않은 리뷰를 받기도 했지만 작가 본인은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바움가르트너'를 발표하는 등 거의 매년 신작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글쓰기를 자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6시간씩 글을 썼으며 컴퓨터를 두려워해 만년필로 쓰거나 오래묵은 타자기를 사용했다.
지난해 오스터는 사진작가인 사위 스펜서 오스트란더와 함께 미국 사회의 총기 폭력 병폐를 조망한 책 'Bloodbath Nation'을 발간했다. 30군데에 이르는 무차별 총격 사건 현장을 흑백 사진으로 고발했고 오스터가 글을 곁들였다.
참척의 슬픔으로 얼룩진 말년이었다. 10개월 밖에 안된 손녀 루디가 헤로인으로 목숨을 잃었고, 열달 뒤 아들 다니엘이 루디의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을 법정에서 인정하고 약물 과다로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한 번도 아들과 손녀의 죽음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국내의 한 독자는 '그는 내게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 도스토예프스키, 필립 로스, 장 그르니에 정도와 함께 가장 중요한 내 청춘의 작가였다. 필립 로스는 나의 아기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 폴 오스터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내가 청춘 시절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하던 작가들은 이 세상에 거의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