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 758 - 그의 편지
어딜 가도 외롭구나, 내 오랜 친구 민홍아. 누구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것, 다 내 잘못이다. 사는 일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나는 잘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에도 마음 턱 놓고 의탁할 곳이 없는 거겠지. 당분간 詩는 쓰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시인은 못 되는 사람이라는 것, 다만, 시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는 쓸쓸함이 온몸으로 몰려온다. 요즘은 노래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잘 듣지 않기 때문이고, 나는 직업 가수도 아니니 노래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노래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면 죽기 살기로 노래를 하러 다녔겠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 관리에도 실패했고, 돈벌이에도 성실하지 못했으니 돌이켜 볼수록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그저 적당히 망가지며 늙어가는 사람일 뿐. 다 내가 잘못 선택한 일이다. 하지만, 대체 인생에 어떤 희망이 있다는 것인가? 희망은 희망을 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데 난 별 희망이 없구나! 그저 생존본능만 남아있을 뿐. 그렇다고 너무 날 질타하진 말게나. 세상일이라는 게 억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잖은가. 게으르진 않았으므로 비교적 운이 좀 나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 살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다 내 잘못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다만, 지독한 적막감을 털어버리기가 힘들다. 그래도 친구야, 외롭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고 아직, 인생에 기대하는 바가 남아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엔 원래부터 고통이 있다기보다 집착이 고통을 만들고 있을 뿐이겠지만!
어제는 종일 낚시터에서 우산 속에 앉아있었다. 끊임없는 헛손질 하는 사이사이 간혹 올라오는 물고기의 저항, 낚시가 주는 손맛의 쾌감이지만, 물고기에게는 생사를 건 사투겠지. 잡았다 놓아주고 잡았다 놓아 주었을 뿐, 잡은 물고기를 들고 오지 않는 지는 오래 되었다. 잡는 것보다는 헛손질을 훨씬 더 많이 하면서, 끊임없이 헛손질한 내 인생을 생각했다. 그래, 헛손질만 하다 저무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면, 너는 또 날 질타하겠지. 왜 하필 부정적으로 생각을 몰고 가냐고 그것도 일종의 엄살이라고. 그래 자네 말대로 무수한 헛손질 뒤에 팽팽하게 끌려오는 물고기의 체온, 동물적 사냥본능에 끌려 나도 빗속에서 낚시를 던지고 있는 거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헛손질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을까?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 염려하진 말길 바란다. 그리고, 간혹 잊지 말고 연락 주길 바란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인다. M
망각은 없다(소나타) / 빠블로 네루다
혹시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난 그저 <우연히 그렇게 왔습니다> 정도로 대답할 밖에 없다.
돌들이 검게 물들이는 땅바닥이라든지,
흘러가다 스스로 파멸해 가는 강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밖에는 할 말이 없다.
내가 아는 거라곤 새들이 잃고 가는 사물들밖엔 없다.
뒤에 남기고 온 바다라든지 거기 울고 남아 있는 내 누이.
왜 그렇게 많은 지방들이 있는 걸까? 왜 하루는
또다른 하루와 합쳐지는 걸까? 왜 하나의 검은 밤이
입 속에 쌓여 있는 걸까? 왜 죽음이 이토록 많은가?
혹시 내게 어디서 온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저 부서진 사물들에게
물어봐야 된다,
너무나도 쓰라린 도구들과
흔히 썩어 있는 커다란 짐승들
그리고 고뇌에 가득한 내 심장과 이야기를 해 봐야 된다.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라지만 그것은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드는 두르스름한 비둘기도 아니다
그것은 눈물 젖은 얼굴들,
목구멍에 대고 있는 손가락,
그리고 잎사귀에서 무너져내리는 그런 것.
즉. 흘러간 하루가 남기는 어둠
우리의 슬픈 피를 먹고 살아간 하루.
여기 바로 오랭캐꽃이, 제비들이 있다,
여기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
꼬리 긴 달콤한 엽서에 나오는
시간과 감미로움이 산보하는 모든 것.
그러나 우린 그 이빨들이 있는 곳, 더 이상은 들어가지 말자,
침묵이 쌓아가는 껍질들을 더 씹지 말자,
왜냐하면 난 무어라 대답할 바를 모르니까:
정말 너무 많은 주검이 있다,
빨간 태양이 부셔놓은 하많은 뚝이 있다,
뱃전을 치는 수많은 머리들이 있다,
입맞춤을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손들이 있다,
그리고 정말이지 잊고 싶은 그 많은 것들이 있을 뿐.
비상 / 빠블로 네루다
내 손으로
높은 비상을 배운다:
하늘의 영광, 새가
대낮을 가로질러간다
흠 하나 없이, 말갛게, 말갛게.
파둥거리며 서녁을 지나
계단과 계단을 거쳐
벌거숭이 푸르름까지 오른다:
온 하늘이 그의 탑
그의 몸짓은 세상을 닦는다.
오랑캐빛 새는
공간의 장미 속에 피를 찾는다 할지라도
여기 그 구조가 있다:
비상 속의 새는 꽃과 화살
빛 속에서 그의 날개를
대기와 순수와 함께 만난다.
오 붓이여, 새의 날개여
나무를 위한 것이 아닌, 풀을 위한 것이 아닌,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닌,
사나운 지상도 땀에 젖은 공장도 아랑곳하지 않는,
오직 투명한 열매를 따러 달려가는 날개여!
갈매기, 물새가
눈 덮인 옷을 입고
높은 곳에서 춤출 때,
나는 거기 영원히 초대받은 손님처럼
너를 바라보며 서 있노라:
그 속력과 그 휴식
잠깐 쉬었다 눈처럼 재빨리 흩어지는,
너의 모습을 내가 따르고 있다.
너의 날개의 방황하는 몸짓이
네 마음 속 날개치는 사념과 똑같다.
먹구름 뜷고 가는 검은 독수리의
강철 같은 비상을 떠받는, 오, 바람이여!
영웅과 목 치는 반월도를 뒤로 하고
소리치며 달려가던 바람이여:
너는 하나의 철갑처럼
거센 비상의 접촉을 막고는
모든 것이 다시 푸르러질 때까지
온 하늘에 그 위협을 계속한다.
공중에 날리는 사랑의 노래
그건 제비들이 할 일
나이팅게일이 날리는 사랑의 소네트
화사한 까까뚜아 앵무새의 춤!
작은 산새들이 유리알 속을 날은다
마알간 에매랄드를 흔들며,
꿩이 이슬을 떨치며 날은다
시원스레 파란 영혼을 흩뜨리며,
나는 각각의 비상을 보며 날으는 법을 배웠다.
숲이나 바다, 산 속 좁은 계곡에서 날으는
이 순수의 스승들,
모래 위에 등 대고 누워
아니면 꿈 속에서 나는 날으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여기 남았다
뿌리에 붙어
땅에 붙어, 자석 같은 어머니에게 붙어,
나 스스로를 속이며
내가 나는 것은
오직 내 속에서뿐이다,
홀로, 어둠 속에서.
사물이 죽으면 다시 땅에 묻힌다,
인간의 발도 흙으로 되돌아간다,
오직 날개만 죽음을 피해 달아난다.
세상은 유리알 공간,
사랑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투명한 것,자명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믿으며 산다
한 번도 멈춘 일 없는 밝은 빛을.
내가 새에게서 배운 것은
목마른 희망이다
정확한 기대다, 비상의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