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법정 스님
누구를 부를까
가까이는 부를 만한 이웃이 없고
멀리 있는 벗은 올 수가 없는데…
지난밤에는 열기(熱氣)에 떠
줄곧 헛소리를 친 듯한데
무슨 말을 했을까
앓을 때에야 새삼스레
혼자임을 느끼는가
성할 때에도 늘 혼자인 것을
또
열이 오르네
사지(四肢)에는 보오얗게
토우(土雨)가 내리고
가슴은 마냥 가파른 고갯길
이러다가 육신은
죽어가는 것이겠지…
바흐를 듣고 싶다
그중에도 ‘토카타와 후우가’ D단조를
장엄한 낙조(落照) 속에 묻히고 싶어
어둠은 싫다
초침 소리에 짓눌리는 어둠은 불이라도 환히 켜둘 것을
누구를 부를까
가까이는 부를 만한 이웃이 없고
멀리 있는 벗은 올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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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께서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느낀 감정을 노래한 이 시에서는
「혼자임을 느끼는가
성할 때에도 늘 혼자인 것을
이러다가 육신은
죽어가는 것이겠지...」
라는 구절을 통해 존재론적 고독의 밑그늘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또한
「바흐를 듣고 싶다
그중에도 ‘토카타와 후우가’ D단조를」
과 같은 구절을 통해 평소에 좋아한 클래식의 취향을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법정스님의 존재론적 고독감이 물씬 풍기는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종교를 뛰어넘어 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 두 분은
편지글을 통해 인간적인 교분도 나누셨지요!
두 종교의 가르침은 다르더라도
사회의 공동 선(善)을 추구하는 것은 같습니다
부처님의 자비심과
예수님의 헌신적 사랑은 속세(俗世)에서는 같은 길일 것입니다
두 분의 아름다운 편지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법정 스님께-
스님,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 던 스님,
시는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 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그리스도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 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늘처럼 못 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두고 지냈지요.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서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바다 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 하시는
물 미역도 많이 드릴 테니까요.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들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 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 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니다.
2월 중순,
스님의 조카 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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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희망은 깨어 있네' 중 일부-
- 초로(草露) 김성남 -
첫댓글 반갑고,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精誠이 깃든 作品 拜覽하고 갑니다.
恒常 즐거운 生活 속에 健康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