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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약 20km 남진하면 매자봉(1,144m)이 있다. 이 봉에서 백두대간은 고성 방면(남동쪽) 향로봉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진다. 매자봉에서 대간을 벗어나 남쪽으로 가지를 치는 산줄기가 도솔지맥이다. 이 지맥은 도솔산(1,148m)을 거쳐 대암산(1,304m)에 이르러 남서향으로 방향을 튼다. 이 능선이 약 20km 거리에 이르러 빚어 놓은 산이 봉화산(烽火山·874.9m)이다.
봉화산을 지난 도솔지맥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명산(四明山·1,198.6m)~죽엽산(859m)~추곡령~종류산(811.1m)~부용산(882m)~오봉산(779m)~수리봉(656m)~우두산(133m)에 이르러 북한강과 소양강 합수점에서 끝을 맺는다.
봉화산은 사명산과 함께 소양호 북단을 에워싸고 있다. 지역을 좁혀 설명하면 양구읍 남쪽 남면에 속한다. 현재의 양구팔경(楊口八景)은 두타연(제1경), 펀치볼(제2경), 사명산(제3경), 광치계곡(제4경), 파서탕(제5경), 파로호(제6경), 후곡약수(제7경), 생태식물원(제8경)으로 정해져 있지만, 6·25 전쟁 전 양구를 대표하는 풍광으로 양남팔경(楊南八景)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봉화낙월(烽火落月)이다. 양구에서 볼 때 서산에 지는 일몰경(日沒景)과 함께 양구 남쪽으로 보이는 봉화산에서 뜨고 지는 달 풍경이 한 폭 그림과 같다는 뜻이다.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 정상에 조선 선조 37년(1604년)에 봉화대가 설치된 데서 유래되었다. 6·25전쟁 이후로 군부대 훈련장(사격장)이 자리해 일반인 출입이 쉽지 않았던 이 산이 2002년 이후 양구군이 설정한 우리나라 국토 정중앙 지점이 생기면서 부분적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었다. 최근에는 춘천 소양댐 선착장에서 공기부양선인 쾌룡호를 타고 양구 선착장에 하선하자마자 시작하는 등산로도 선보였다.
봉화산 정상 풍광이 일품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서릉으로 약 500m, 북동릉으로 약 200m 구간에는 시원한 초원이 펼쳐진다. 발 아래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소양호반 조망을 즐기며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주민들은 정상 초원지대를 두고 제주도 한라산 축소판이라 말하기도 한다. 정상 초원지대는 가을 억새산행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봉화산은 군사지역인 만큼 평일에는 사격장에서 훈련이 계속된다. 이 때문에 양구군과 관할부대에서는 평일에는 등산을 삼가고, 훈련이 없는 토·일·공휴일에 등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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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에서 남서쪽 870m봉(왼쪽) 방면으로 약 500m 길이로 이어지는 초원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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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가이드
봉화산 산행코스는 주능선을 경계로 정상 서쪽, 북사면, 북동릉에 개설되어 있다. 남쪽 사면은 소양호가 가로놓여 있어 등산로가 없다.
서쪽에서는 석현리 양구 선착장~서릉, 북사면에서는 심포리~870m봉 북서릉~서릉, 구암리 월남촌(구암리 4반)~봉화조경농장~북동릉, 도촌리 양구국토중앙천문대~국토 정중앙탑(휘몰이탑)~607.5m봉 북서릉~북동릉, 북동쪽에서는 양구터널(도리지고개 아래·일명 남면 원리터널)~도리지고개(양구터널 위), 두무리~도리지고개~북동릉을 경유해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들이 대표적이다. 이 코스들을 석현리부터 시계방향으로 소개한다.
양구선착장~도솔지맥(서릉)~심포리 갈림길~정상〈약 6km·4시간 안팎 소요〉
구 검문소 위에서 동쪽 계류를 건너간 남서쪽 방면은 소양호 호안길이다. 호안길 오른쪽 아래로는 호수 건너 선착장이 건너다보인다. 호안길이 끝나고 북동쪽 가파른 지그재그 길은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바위지대인 545m봉을 지난 이후로는 아름드리 노송군락 지대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오른쪽 노송군락 사이로는 소양호 건너 계명산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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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현리 양구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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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리 갈림길을 지난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나오는 870m봉을 넘어 첫 번째 헬기장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는 완만하다. 길 양쪽으로는 밧줄 난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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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선착장-(약 250m)→구 검문소-(약 150m)→봉화산 등산로 안내판(나무다리 건너에 국토 정중앙점 9.76km→, 봉화산 정상 5.66km→, 구암리 8.2km→ 푯말)-(푯말 오른쪽〔남쪽〕 사면 길로 13분 후 동쪽으로 꺾어 2분)→송림 휴식처(통나무벤치 2개)-(동쪽 오르막 사면 길로 4분)→지능선 위 묵묘 1기-(북쪽 사면 길로 7분)→휴식장소(통나무벤치 2개)-(지그재그 사면 길로 7분)→서릉 위 휴식처(통나무벤치 2개)-(3분)→푯말(↑봉화산 정상 4.78km)-(지그재그 사면 길로 10분)→서릉 휴식처(봉화산 정상 4.54km 푯말)-(12분)→휴식처(통나무벤치 4개)-(11분)→노송 암봉(↑봉화산 정상 3.94km, 석현리 선착장 1.72km↓ 푯말)-(노송군락 아래 서릉으로 23분)→푯말(↑봉화산 정상 3.58km, 석현리 선착장 2.08km↓)-(3분)→휴식처(통나무벤치 6개)-(32분)→626.2m봉(삼각점 양구 464, 2007 복구)-(6분)→사거리 안부(옛 고개 흔적. ↑봉화산 정상 2.16km, 석현리 선착장 3.5km↓ 푯말)-(30분)→노송바위지대-(7~8분)→764m봉-(←봉화산 정상 1.44km 푯말)-(7분)→심포리 갈림길(←심포리 2.24km, ↑봉화산 정상 1.12km, 석현리선착장 4.54km↓ 푯말, 벤치 6개)-(30분)→870m봉-(5분)→헬기장-(6~7분)→두 번째 헬기장-(6~7분)→봉화산 정상(봉화대).
심포리~870m봉 북서릉~도솔지맥(서릉)~정상〈약 5.5km·3시간30분 안팎 소요〉
심포리는 백마촌으로도 불린다. 1952년 휴전을 앞두고 피아간에 고지쟁탈전이 치열할 때인 5, 6월 필리핀군 19대대 전투단은 철원~평강~금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공군과 맞붙었다. 필리핀군은 철원 인근 갈화골 에리에 고지에서 2개 연대 규모의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중공군 500여 명을 사살한 후 에리에 고지를 탈환했다고 한다. 당시 이 고지전에는 전 필리핀 대통령을 지낸 라모스도 소대장으로 전투를 참여했었다. 이후 필리핀군 19대대는 1953년 7월 백석산과 크리스마스고지 전투에도 참가했다. 같은 해 7월 휴전 후 이곳 심포리에 주둔하게 된 필리핀군은 1954년 4월까지 주둔 중 폐허가 된 심포리마을 재건에도 참여했다. 당시 필리핀군 19대대 전투단을 기리기 위해 마을이름을 백마촌으로 불렀다고 한다. 현재 마을회관 옆에 당시에 건립된 백마촌 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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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구 검문소 북쪽 봉화산 등산로 입구 등산로 안내판. 2 심포리 마을회관에서 약 25분 거리인 공터 초원에서 남으로 본 정상 (왼쪽 구름속)과 서릉(오른쪽). 3 870m봉을 지난 헬기장에서 올려다본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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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m봉 북서릉은 전체적으로 완만하다. 하단부는 송림, 상단부는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상단부에서 서릉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지대는 완만한 지그재그 사면길이다.
학조리 사거리-(약 200m)→심포리 마을회관-(6~7분)→필리핀군 전투전적비-(13분)→다리-(약 100m)→둥근바위(진회색)-(왼쪽 초원지대로 약 40m)→봉화산 종합안내판-(오른쪽 숲속 지능선길〔870m봉 북서릉〕로 15분)→ㅓ자 삼거리(왼쪽 계류 방면 출입금지)-(10분)→국기게양대(오래된 쇠기둥)-(35분)→군부대 경고판 삼거리-(약 50m)→오른쪽 사면길 시작-(사면 길로 약 10분)→심포리 갈림길(←봉화산 정상 1.12km, ↓심포리 2.24km, 석현리선착장 4.54km→ 푯말). 이후 왼쪽 서릉(도솔지맥)을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월남촌~봉화조경농장~북동릉(도솔지맥)~정상〈약 3km·2시간 안팎 소요〉
행정지명이 구암리 4반인 월남촌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월남전 참전부대 중 하나인 백마부대가 주둔했던 마을이다. 당시 이 마을에는 참전을 앞둔 하사관 이상 군인들이 집단촌을 이루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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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월남촌(구암리 4반) 등산로 입구 안내푯말. 2 정상 직전 동봉에서 서쪽으로 본 정상(왼쪽). 3 송전탑에서 남으로 본 구암리 갈림길 안부(왼쪽)와 정상(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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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촌 코스는 봉화산 등산로 중 정상까지 거리가 가장 짧다. 중간에 약수터가 있고, 월남촌을 기점으로 정상까지 3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다. 이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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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촌(구암리 4반) 삼거리(봉화산 등산로→, 국토정중앙천문대 5.94km→, 석현리 구 검문소 8.2km→ 푯말)-(남쪽 오르막길로 12분)→ㅓ자 삼거리(←봉화산 정상 2.54km 푯말·봉화산 종합안내판)-(왼쪽으로 약 100m)→ㅏ자 삼거리(봉화산 정상 2.38km→ 푯말)-(4~5분)→연못 왼쪽 삼거리(←정상 2.2km 푯말)-(왼쪽 계곡길로 약 150m)→낮은 지능선 안부(정상 2.06km→ 푯말)-(오른쪽 돌계단 능선길로 약 80m)→Y자 삼거리-(오른쪽 길로 1분)→통나무다리(지계곡) 건너 오른쪽 사면 길로 3분)→남쪽 방면 지능선 길 진입-(8분)→송전탑-(오른쪽 사면 길로 2분)→지계곡 삼거리(←정상 1.58km 푯말)-(왼쪽 계곡으로 8~9분)→왼쪽 사면 길 진입-(3~4분)→지능선 휴식처(통나무벤치 2개)-(지그재그 사면 길로 약 20분)→북동릉(도솔지맥) 구암리 갈림길(←국토 정중앙점 3.44km, ↓구암리 1.88km, 봉화산 정상 0.66km→ 푯말)-(오른쪽 북동릉으로 약 25분)→정상 전위봉(동봉·바위지대)-(5분)→봉화산 정상(삼각점 인제 25, 1985 재설).
양구 국토정중앙 휘모리탑_독도를 최동단으로 하는 정중앙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의〈땅의 눈물 땅의 희망〉이란 책에는 우리나라의 정중앙은 태극적 위치로 봐서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 경계를 이루는 화악산(1,468m)이라 했다. 화악산은 백두산과 한라산, 중강진과 여수, 삭주와 울산을 있는 3개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 교차지점은 우리나라 경위도 상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위 38°선과 동경 127°30′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또 가평군에는 옛날 큰 홍수 때 단군이 피난을 왔다가 이곳에 묻혔다는 설화가 전해져 이곳이 한반도의 정중앙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화악산 정상을 우리나라 중앙을 뜻하는 중봉(中峰)이라 부르기도 했다.
양구군은 2002년부터 가장 설득력 있는 조건을 갖춘 우리나라 국토 정중앙지점 찾기에 나섰다. 우리나라 영토의 동서남북 네 극지점을 기준으로 한 중앙위선(38°03′37.5″N)과 중앙경선(128°02′02.5″E)이 교차되는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 48번지에 국토정중앙점을 찍고, 이를 알리는 표지석과 휘모리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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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양구군은 2005년 일본이 교활하게 독도 문제를 터뜨리면서 양구군은 우리나라 극동(경북 울릉군 독도 동단·동경 131°52′20″)인 독도를 기준으로 국토정중앙을 설정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구군이 설정한 국토정중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극동인 독도 동단에서 수직으로 시계방향으로 극남(제주도 서귀포시 마라도 남단·북위 33°06′40″)에서 수평~극서(평북 용천군 용천면 마안도 서단·동경124°11′45″)에서 수직~극북(함북 온성군 유포면 북단·북위 43°00′35″)에서 수평으로 선을 그은 직사각형 안에 포함되는 우리나라 정중앙이 양구군 남면 도촌리가 된다.
국토정중앙을 기리는 탑 이름 휘모리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넘어지는 팽이의 역동성에 미래지향적 상징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이 탑은 음양오행 원리의 상징언어인 팔괘·삼태극과 우리 전통 농악놀이 상모의 생동적 형상을 조형적으로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