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 문화원 향토사연구소의 유적지 답사에 참가하여 기장군 죽성 등에 다녀오다,
죽성의 이름은 여러개이다, 두모포성, 기장왜성, 죽성 등이다,
두모포성은 고려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이다,
기장왜성은 두모포성 부근에 임진왜란 시에 일본군이 축성하고 정유재란 때 보축한 것이다,
죽성은 행정구역인 죽성리에 있는 성이라는 것 같고, 왜성의 둘레에 대나무가 많은 것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성의 규모 등은 울산의 학성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고, 서생포 왜성보다는 작아 보인다,
한적(?)한 곳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비가 덜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가자 20여 명이 너나 할 것 없이 한일 관계에 대하여, 국방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성의 규모와 구조 등에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축성에 동원된 수만 명의 우리 선조들의 고통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어느 참가자의 말에 동감하고, 사명대사의 기록에 남아있다는 왜성 내의 우리 부녀자들의 참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덧붙여 몇년 전 영남 3 루의 하나라고 하는 태화루의 복원에 일부가 반대한 사유가 백성의 고혈의 결과인 양반네들의 놀이터를 굳이 다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단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처럼 임금 살포와 경제살리기라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답사 주제가 '관방체계에 대한 이해'로 되어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봉수대의 배치와 관련하여 울산 남부와 부산 북부의 해변 봉수대 몇 곳을 둘러 보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상황 전달에 약 10여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알았다, 과거의 군사 통신 체계가 상당히 잘 짜여져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서생 원자력 발전소 구내에 있는 봉수대도 어려운 절차를 거쳐 구경하였다,
기장의 한 봉수대는 특정 집단의 이해와 관련되어 원형이 남아있지 않고 너무 높아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가 보지 못했다,
오늘날 국방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는 시점에 이번 답사는 의미 있어 보이고, 유적이 특정집단에 의하여 고의로 파괴되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고싶다, 그리고 기장 왜성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으로 보였다,
기장읍성 안에 주로 구한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여러 송덕비 중에 쇠로 만들어진 철비 몇 개를 보았다, 석비가 아닌 철비를 처음 보아 신기하였다, 기장의 옛 이름이 "차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양산의 구명이 차성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기장왜성 아래 바닷가에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안내문이 있었다, 광해군 시대,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고위 관료의 비위와 관련된 상소 사건으로 그곳에 6 년간 유배되었다고 한다, 고산 선생은 유배시절 산 위에 올라 각종 약초를 채취하여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어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선생도 그러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과거 선비들은 경전만을 공부한 것이 아니고 다병면에 능했던 모양이다,
울산 대공원의 동쪽에 있는 "감나무진 사거리"의 이름에 어찌하여 "진"이라는 말이 있는지 그곳을 지나다닐 때마자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감나무가 많았던 동네였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었다,
바다에서 대략 십여 리는 떨어져 지금은 내륙이 되어 있는 그곳이 옛날에는 바닷가로 진의 한자가 '물가 진'이라는 것이다, 지금 감나무진 사거리 부근, 개운포하고는 상당히 먼 그곳에 개운초등학교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기장 죽성리 바닷가 산책길에서 휴일나들이 나온 많은 젊은이들에 섞여 일군의 중늙은이들이 뻥튀기 과자를 먹고 길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2016년 3월 13일
첫댓글 이선생님 기장군 죽성의 답사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여가를 아름답게 즐기시는 모습 정말 보기 좋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