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라면서 여성이 90%…선택적 분노?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03.28 06:12
우발적 범죄에 노출된 일상, 불안에 떠는 시민들
'묻지마 범죄' 공포가 번지고 있다. 최근 도심에서 특별한 이유나 원한 관계없이 불특정 상대를 향해 폭력 등을 행사하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특히 가해자들의 분노 대상이 주로 여성·노인 등 상대적 약자들이라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묻지마 범죄는 일주일 새 3건이나 발생했다. 지난 25일 부산 사상구 모 대학교 인근 카페 2층에서 이모군(19)이 공부하던 대학생의 옆구리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군과 피해자 A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이군은 '누구든 걸리면 죽이겠다'며 거리를 돌아다니다 카페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날 서울에서도 흉기 난동 사건이 터졌다. 홍모씨(53)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가 "죽이겠다"며 흉기로 주인 B씨를 위협했다. 두 사람 역시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부동산을 나선 홍씨는 초등학교 인근에서 만취 상태로 난동을 부리고 흉기를 휘둘렀다. 출동한 경찰은 홍씨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맞아 부상을 입었다.
경남에선 폐지를 줍던 70대 노인을 묻지마 폭행한 남성 C씨(53)가 특수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C씨는 지난 22일 진주시 상봉동 한 도로에서 D씨(73)의 멱살을 잡으며 다리와 허리를 수차례 폭행했다. C씨는 30여분간 폐지 줍는 D를 따라 다니며 시비를 걸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도 아무런 이유 없이 모르는 사람을 폭행한 '묻지마 범죄'였다.
묻지마 범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해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거제 살인 사건'도 묻지마 범죄였다. 지난해 10월 박모씨(21)는 경남 거제시 한 선착장 길가에서 이유 없이 50대 여성을 수십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당시 박씨는 피해자가 숨졌는지 관찰하고 도로 한가운데로 끌고가 하의를 모두 벗겨 유기하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박씨는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일상을 위협하는 묻지마 범죄가 계속되며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대학생 김모씨(23)는 "부산에서 대학생이 흉기에 찔린 사건을 보고 정말 무서웠다. 내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더 무섭다. 이제 카페도 마음 놓고 못 가게 생겼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더욱 크다. 묻지마 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나며 여성 자신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최근 1년간 묻지마 범죄 관련 언론 보도 확인 결과,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90%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직장인 김모씨(29)는 "'묻지마' 범죄라고 이름 붙는 것도 웃기다. 자기 보다 약한 상대인 여자만 골라서 때리고 죽이는데 묻지마는 무슨 묻지마냐. 가해자들의 분노가 여성 상대로만 발휘되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꼬집었다.
묻지마 범죄는 지난 5년 새 250건 이상 발생하는 등 증가 추세다. 전체 살인사건에서 우발적 동기로 살인을 저지르는 비중도 높게 나타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914명의 살인범 가운데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357명(39%)으로 조사됐다.
'묻지마 범죄' 공포가 확산하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대대적인 치안 강화를 원한다'는 글을 올린 청원인은 "국민이 안전해야 국가가 안전해지고, 국가가 안전해야 국민이 웃을 수 있다. 길을 걷는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 특성상 예측이 불가능해 예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 연관성이 없어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상당히 크게 발생한다. 정신질환적 요소가 범죄 동기가 되기 때문에 범행 장소도 특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장소에서의 묻지마 범죄를 원천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면 지능형 CCTV를 확충해 예방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32710234578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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