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으로 특정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고대 시대의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동정을 지켰다는 의미로 볼 때 독신을 지켰으며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생각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결국 한 평생을 동정을 유지하며 성적인 관계 즉 남녀관계 없이 청정한 삶을 살았으며 밝은 지혜와 후덕한 행을 겸비하였다고 해석이 가능한데 이 부분은 시기적으로 처음 바라문 법이 왕성한 시기로 보아야 할것 같으며 불교적으로 본다면 순수하고 완전한 법이 잘 유지된 정법시대의 수행자는 독신을 유지하였으나 말법시대가 되면서 나의 가사를 입고 아내를 거느리고 자식을 키운다는 대목이 나오는것을 보면 바라문의 초기 시대에는 독신의 삶을 유지하며 한 평생동안 청정한 삶을 살았으므로 상대적으로 세속에서 결혼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재가자와 일반인들의 공경과 공양의 대상이 되었다는 그러한 인연으로 이해하여야 할듯하다.
절 집에서도 일찍 출가하여 남녀의 성적인 경험이 없고 결혼 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스님을 동진출가자라고 히여 승가의 교육에 참으로 훌륭한 모범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문구가 이산 선사 스님의 발원문에 나오는데 일부를 옮겨보면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눈이 총명하고/ 말과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안들고/ 청정범행 닦고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라는 대목이 있는데 위의 바라문의 청정한 삶의 형태에 부합하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라와 시대가 다르고 부처님 가신지 오래되어서인지 어려서 출가한 사람은 출가 동기를 보면 살림은 어려운데 너무 식구가 많아 출가한 사람부터 배고파서 출가한 사람, 쌀밥 먹어보는게 소원이어 출가한 사람, 버려진 아이를 스님이 주워와서 출가한 경우 등 다양하니 그 스님들이 삶의 여정 수행을 보면 그렇게 청정하거나 지혜롭거나 후덕하지 못한데 그것은 선천적인 문제나 그 본인의 문제만이 아닌 시대적 불교 교육의 부재와 여러가지 인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하며 그 반대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소신 출가한 사람들이 청정한 삶에 대한 소신과 수행의 힘이 더 강함을 보았으니 어떤 사람의 개인을 두고 우열을 가린다는 의미가 아닌 여러 가지 인연의 복합적인 요소로 볼 때 청정한 삶 지혜롭고 후덕한 수행자로 거듭 난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게송의 표면적인 내용으로 보아 바라문의 이상적인 모습과 수행과 성취를 잘 표현해준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교수사 스님의 해설문 숫타 니파타 [바라문의 삶에 대한 경]2:7-289 - 더하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