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만나는 예수 1966
Meeting Jesus Anew
나다나엘이 가룟유다를
만났을 때 그는 갈릴리
바다의 남쪽 끝에서 물고
기 말리는 사업에서 일자
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다나엘을 만나게
되었는데 무슨 이유로 나
다나엘이 가룟 유다를 추
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으
나 전 편에서 '재무능력'을
보고 추천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
습니다.
당시 가룟유다의 나이는
30세 였고 미혼이었습니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고 예수와 같은 나이
였지요. 그리고 유일하게
유대 출신이었고, 교육도
가장 많이 받은 축에 속하
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나이와
출신, 학력 등도 그저 무시
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하게 됩니다.
만일 가룟유다가 나이가 좀
적었어도 예수에 대한 태도
가 달랐지 않았을까 추측을
할 수 있고, 출신지역이 유
대가 아니라 같은 갈릴리
였다면 또 달랐을 수도 있다
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부도 차라리 남들보
다 적게했다면 쉽게 동료를
무시하거나 얕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지요.
당시 남쪽 유대지역 출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자들,
특히 사두개인이었던 부친
의 영향을 생각하면 갈릴리
출신을 차별하고 깔보는 의
식이 깊게 형성되어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
니다.
그렇게 가룟유다에게는 어떻
게 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었
던 여러가지 요소들이 도리어
그에게 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가문이나 출신, 학력, 신분 등
이 낫다고 해서 그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합
니다.
### Meeting Jesus Anew (1966)
When Nathanael met Judas Iscariot, Judas was seeking employment in the fish-drying business at the southern end of the Sea of Galilee. While the specific reasons for Nathanael's recommendation of Judas are not detailed, it is mentioned in a previous section that Nathanael recommended him based on his financial abilities.
At that time, Judas was 30 years old and unmarried. He was relatively older, the same age as Jesus, and the only Judean among the disciples. He was also one of the most educated among them.
This suggests that age, background, and education were not insignificant factors. If Judas had been younger, his attitude towards Jesus might have been different. If he had been from Galilee instead of Judea, his perspective might have been altered as well. Additionally, if he had received less education, he might not have been as prone to look down on his peers.
Considering that Judas was an elite from the southern Judean region and influenced by his Sadducee father, it is plausible that he held deep-seated prejudices against the Galilean disciples.
Thus, what could have been advantages for Judas—his background, education, and status—turned out to be detrimental. It becomes clear that superior lineage, background, and education are not inherently beneficial.
새롭게 만나는 예수 1967
Meeting Jesus Anew
지금처럼 온 나라를 어지럽
히고 있는 자들만 보아도
차라리 못배우고, 못났으면
나았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
로 들지요. 물론 그렇다고
무지와 저급함에 머물러 있
는 것이 결코 자랑이나 유익
이 될 수도 없는 것 또한 분
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환경이
나 출신, 학력, 재능, 성취 등
이 아니라 내면적 인격과 영
적인 속성, 순수하고 겸손한
태도와 자세, 진리에 대한 헌
신과 열정, 하나님에 대한 믿
음과 예수에 대한 사랑 등이
그 사람의 영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나와 설치고 있
는 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
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같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차 있
고 교만과 자랑으로 뻔뻔함
을 드러내며, 수준 낮은 인품
과 저급한 언행 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요.
그런데도 자기들은 그것이 무
슨 특권이나 멋인양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기대를 하
는 자들도 한 통속이라고 볼
수 밖에 없지요. 그런 저급하
고 불량한 자들이 함부로
진리를 외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가 하면, 또
무지한 추종자들이 '아멘'
하고 박수를 치는 꼴을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단면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보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공연
히 그런 자들에게 눈길을
줌으로 눈과 귀, 마음을 더
럽히지 않으려고 말이지요.
그래도 뉴스를 안 볼 수는
없으니 주로 헤드라인만
훓고 지나가는 식으로 세상
흐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의 삶과 말씀에
관한 공부를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오늘도
새벽 2시가 다가 오는데 피
곤한 줄 모르고 이렇게 공
부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룟유다에 대한 내용
이지만 여기서도 얻을 교훈
과 혜택이 마구 쏟아지고
있네요.
### Meeting Jesus Anew (1967)
Looking at those who are currently causing turmoil in the country, it makes one think that it might have been better if they were less educated and less capable. However, it is also clear that remaining ignorant and lowly is not something to be proud of or beneficial either.
What is important is not external factors such as environment, background, education, talent, or achievements, but internal character and spiritual attributes, pure and humble attitudes and dispositions, dedication and passion for the truth, faith in God, and love for Jesus. These are what determine a person's eternal life.
A clear fact that can be observed from those currently creating havoc in the world is that they are full of lies and hypocrisy, openly displaying arrogance and pride, and exhibiting low character and coarse behavior. Despite this, they do not even realize how shameful it is, acting as if these are privileges or cool attributes.
Those who place their hopes in such individuals are essentially complicit with them. When such lowly and unruly people brazenly shout about truth and call on God's name, and ignorant followers respond with "Amen" and applause, it shows a clear picture of how low humanity can fall.
So, I try not to pay attention to them as much as possible. I avoid looking at them to keep my eyes, ears, and heart from being polluted. Still, I cannot completely avoid the news, so I usually just skim through the headlines to grasp the flow of current events.
On the other hand, studying Jesus's life and teachings brings immense joy. It's almost 2 AM, yet I continue studying without feeling tired. Even though the subject is Judas Iscariot, there are still many lessons and benefits to be gained.
새롭게 만나는 예수 1968
Meeting Jesus Anew
이로 인해 다른 제자들은
예수를 볼 때 그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게 본 반면
가룟유다는 자주 불만을
품고 비판하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웠다는 것 때문에, 잘났
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하늘나라의 핵심적인 필
수 요건인 '어린아이의 순
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
이지요.
오히려 다른 제자들은
그리 잘난 것도 없고, 가
진 것이 없는 덕분에 예수
를 보는 눈이 한없이 순수
했고, 막힘 없는 존경심과
사랑의 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
고 이런 결핍 요소들을 권
장해서는 안되겠지만 격
려의 차원에서 볼 때 못
배운 것, 못 가진 것을 탓
하거나 그것으로 핑계를
삼지 말라는 것이지요.
만일 가룟유다가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의식을
성장시켰더라면 자신의
출신과 교육, 환경 등을
긍정적, 생산적으로 활용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차원 높은 의식과 지혜
로 발전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그의 어정쩡함이
교만과 남들에 대한 무시,
의심과 불만, 비판의식 등
만 키워서 자신을 해롭게
할 뿐 아니라 급기야는 자
신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요인으로 만들고 말았습니
다. 그것들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가룟유
다 자신이 그것들로 자신
을 망하게 하도록 허용했
고, 부추겼다고 할 수 있지요.
가룟유다는 머리가 결코
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잘 돌아갔고 날카
로운 의식을 가졌지요.
그러나 그는 '정직'하지
않았는데 특히 자신에게
진실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자신을 부당하게
대했고, 거짓과 교만한
자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말았던 것이지요.
### Meeting Jesus Anew (1968)
As a result, while the other disciples saw Jesus as wondrously beautiful, Judas Iscariot often harbored dissatisfaction and uttered critical remarks. His education and self-perceived superiority caused him to lose the essential quality of the Kingdom of Heaven—a pure heart like that of a child.
In contrast, the other disciples, having less education and fewer possessions, viewed Jesus with boundless purity and were able to maintain unimpeded respect and love for Him. Although these deficiencies should not be encouraged, from a motivational perspective, it suggests that one should not blame or use their lack of education and possessions as an excuse.
Had Judas properly learned and grown in consciousness, he could have utilized his background, education, and environment positively and productively. He could have developed a higher level of consciousness and wisdom.
However, his half-baked state fostered pride, disdain for others, suspicion, dissatisfaction, and a critical mindset. These not only harmed him but eventually led to his downfall. It was not these factors themselves that destroyed him but Judas's own allowance and encouragement of them.
Judas was not unintelligent; on the contrary, he was sharp and had a keen mind. Yet, he was not "honest," especially with himself. Consequently, he treated himself unjustly and drove himself toward becoming a deceitful and arrogant person.
새롭게 만나는 예수 1969
Meeting Jesus Anew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할
수록 남들을 의심하는 경
향을 드러냅니다. 마찬가
지로 자신을 존중할 줄 모
르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
람에게 비판적이되지요.
교만한 사람일수록 남들
을 깔보고, 부정적인 사람
일수록 모든 것을 어둡게
보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밖으로 향하는 태도가 사
실 자신 속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요소의 '투사'
인 셈이지요.
저도 스스로에게서 이런
부정적으로 치닫는 성향
이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깜짝놀라게 됩니다.
조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튀어 나오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을
숨길 수 없네요.
이 때문이라도 생각과 말
에 파숫군을 굳게 세우고
조심하려고 애를 쓰고 있
는데 '심은대로 거둔다'고
제가 심은 부정적인 의식
을 제가 처리하고 극복
해야 한다는 점은 각오하
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가
까운 가족, 즉 아내와 아
이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시간이
걸리고 에너지를 많이 써
야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괴로움과 불편은 감수할
수 밖에요.
이 때문에 한 때는 성령
충만을 받아서 한 번에
해결해 보려고도 시도했
지만 효과는 잠시 뿐 결국
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
을 깨닫고 부터는 더 이상
그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간구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밀진단과
분석, 그리고 자가치료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
지요. 분명히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는
것도 경험과 증거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끔찍
한 고통을 겪어야 하니
각오 단단히 해야 하고요.
### Meeting Jesus Anew (1969)
The less honest one is with oneself, the more likely they are to doubt others. Similarly, those who do not respect themselves tend to be critical of others. Proud individuals often look down on others, and negative people tend to view everything in a pessimistic light.
These outward attitudes are projections of the negative elements within oneself. I am often startled to see such negative tendencies arise within myself.
Even though I try to be cautious, these tendencies still emerge, indicating that my troubled childhood cannot be hidden. Because of this, I make a conscious effort to guard my thoughts and words, knowing that I must deal with and overcome the negative mindset I have sown.
It saddens me that my family, especially my wife and children, may suffer from my behavior, but this is something I must work through. It takes time and energy, and I must endure the resulting difficulties and discomfort.
At one point, I attempted to resolve these issues by seeking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in a single transformative experience. However, the effect was temporary, and I realized that I must overcome these challenges through my own willpower and effort.
Now, I have redirected the time I used to spend praying for instant solutions towards thorough self-examination, analysis, and self-treatment. I have found through experience and evidence that this approach is much more effective. Of course, it requires enduring significant pain, so I must be prepared for that.
새롭게 만나는 예수 1970
Meeting Jesus Anew
지금도 가룟유다를 공부하
면서 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유익을 얻고 있
습니다. 가만 보니 제 속에
도 가룟유다가 가진 그런
못된 성향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그래도 진단이 되니 치료의
길도 보입니다. 예수의 성
품을 닮고자 애를 쓰고, 다
른 여러 제자들과 선배들로
부터 긍정적인 요소들을
배우고 함양하도록 노력하
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
으니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나마 큰 위로가 되고 다
행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늘 예수에 대한 믿음과 사
랑이 마음 깊은 속에서 불
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공부도 그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고요.
가룟유다에게서 발견되는
치명적인 결점은 바로 이
것이었지요. 예수에 대한
'사랑'말입니다. 그는 비록
예수를 믿기도 하고, 존경
하기도 하였을지 모르나
진심으로 '사랑'하는데까
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실패와 파멸
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
용하게 되었지요.
다른 제자들에게서는 여
러 부족한 점들이 많이
보였지만 그들은 한결같
이 예수를 '사랑'하였다고
평가받습니다.
믿음보다 사랑이 더 중요
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한
다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 오늘날 기독교에서
그렇게 '믿음'을 강조하는
데도 실패하는 자들이 많
이 나오는 것을 보면 믿음
을 넘어 '사랑'에까지 이르
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믿음'보다 '사랑'이
더 중요한데 오늘날 교회
에서 보이는 모습은 '믿음'
때문에 '사랑'을 희생시키
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
타나고 있음을 봅니다.
### Meeting Jesus Anew (1970)
Even now, while studying Judas Iscariot, I find it beneficial to reflect seriously on myself. I realize that I possess many of the same negative tendencies that Judas had. However, recognizing these traits allows me to see the path to healing. Striving to emulate Jesus's character and learning positive qualities from other disciples and predecessors is the only way forward, no matter how long it takes to resolve each issue.
One great comfort and blessing is that my faith and love for Jesus burn deeply within me. This study itself is motivated by that love.
The critical flaw in Judas Iscariot was his lack of "love" for Jesus. Although he may have believed in and respected Jesus, he never reached the point of truly "loving" Him. This was the decisive factor in his failure and downfall.
While the other disciples had many shortcomings, they were consistently recognized for their "love" for Jesus. This demonstrates that love is more important and plays a more critical role than faith.
In today's Christianity, despite the emphasis on "faith," many still fail. This suggests that they might not reach the level of "love." Clearly, "love" is more important than "faith," yet today's churches often sacrifice "love" in favor of "faith."
This observation shows that the emphasis on faith should not overshadow the necessity of love, as true spiritual growth and salvation are rooted in love for Jesus.
새롭게 만나는 예수 1971
Meeting Jesus Anew
온 세상을 대상으로 해도
마찬가지 현상이 발견되지
요. 종교와 사상, 이념 등
으로 인한 극한 대립은 모
두 '믿음'에서 발생하는 현
상들입니다.
각 자 다른 신과 다른 예식,
다른 교리, 다른 전통 때
문에 그에 대한 믿음을 버
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자매
다'라는 사랑의 복음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이렇게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며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자행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종교와
정치에서 뚜렷하게 드러나
는 실상이지요.
언젠가 예수의 복음, 사랑
에 기초한 하늘나라의 복음
이 믿음을 강조하는 교리를
극복하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사실상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과 부정을
보였지만 이들이 가룟유다
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예수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유란시아서는 증거합니다.
따라서 이제 '교리 중심'의
믿음 종교에서 '진리 중심'
의 사랑 종교로 넘어갈 때
가 되었음을 자각하고 새로
운 의식으로 바꿀 때가 왔습
니다.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고, '새롭게 태어남'이
라 표현할 만한 그런 '의식
혁명'의 시기가 온 것이지요.
그것을 주도하고 문을 열어
주는 계시가 바로 유란시아
서요, 그가 전하는 '예수의
복음' 즉 '하늘나라의 복음'
이라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
버지요. 모든 사람은 하나
님의 자녀다. 그리고 서로
는 모두 형제자매다. 따라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협력하고 돕는 삶을 살아서
하늘 아버지의 자녀됨의
증거를 나타내고 각 자는
아버지의 완전하심에 이르
도록 최선을 다해 힘쓰라'
여기에는 '교리'나 '전통'
'예식' '경전' '조직' '사제'
'건물' 등이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로 하지도
않지요.
### Meeting Jesus Anew (1971)
The same phenomenon can be observed globally. Extreme conflicts arising from religion, ideology, and beliefs stem from "faith." People cling to their different gods, rituals, doctrines, and traditions, unable to let go of their respective beliefs.
As a result, the gospel of love—“All people are God's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fails to overcome these divisions. Faith causes people to hate, conflict with, and even kill one another, which is starkly evident in today's religious and political arenas.
I am confident that one day the gospel of Jesus, based on love, will overcome doctrines that emphasize faith. The Urantia Book testifies that although all the disciples showed betrayal and denial similar to Judas Iscariot, their crucial difference was their "love for Jesus."
Thus, it is time to move from a "doctrine-centered" faith religion to a "truth-centered" love religion. This represents a revolutionary shift, akin to being "born anew," signaling an era of "consciousness revolution." I believe the Urantia Book and its message of Jesus' gospel—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spearhead this change.
"God is the Father of all people. All people are God's children. Therefore, everyone is brothers and sisters. Thus, live a life of respect, love, cooperation, and help, showing evidence of being God's children and striving to achieve the perfection of the Father."
This message excludes and does not need "doctrine," "tradition," "rituals," "scriptures," "organizations," "priests," or "buildings."
새롭게 만나는 예수 1972
Meeting Jesus Anew
안드레는 가룟 유다의 재무
능력을 보고 그를 '회계'로
임명하였습니다.
그에게 아주 적합한 직무
였고 그는 이 맡겨진 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아
주 효과적으로 성실하게
이 임무를 잘 수행하였습
니다. 악한 생각을 스스
로 싹을 틔워 미혹에 빠
지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가룟유다는 예수에 대해서
보편적인 호감과 존경심은
가졌으나 그가 '사랑'에까지
빠지도록 할 만한 어떤 특
별한 요소를 예수에게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 되었지요. 아무리
미운 요소들이 많아도 사
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
든 것을 극복해낼 수 있다
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형편없는 자식이라도 부모
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을 감당해 내고 또
감당할 마음을 낼 수 있지요.
그러나 다른 좋은 요소들이
아무리 많아도 '사랑'이 빠
지게 되면 그 관계는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
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룟
유다는 자신의 출신과 학력
등으로 교만한 마음을 품었
고 예수에 대해서도 쉽게
비판할 만한 요소를 발견하
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조정
해 두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가 비겁해
보였고, 자신의 권위와 능
력을 주장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자신이 존경하여 따
르던 세례요한과 비교할
때 이 점은 더 두드러졌고,
세례요한이 옥에 갇혔음에
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
는 모습에서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오해를 심
고 말았지요. 그리고 이런
그릇된 판단과 편견, 무시
등은 그로 하여금 점점 예
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
고 말았습니다.
### Meeting Jesus Anew (1972)
Andrew appointed Judas Iscariot as the "treasurer" due to his financial abilities. This role was very suitable for him, and he demonstrated excellent talent and carried out his duties effectively and faithfully until he allowed wicked thoughts to take root and lead him astray.
Judas had general affection and respect for Jesus but did not find any special element in Jesus that would lead him to "love" Him. This lack of love became a fatal flaw for Judas. We know well that, despite many negative aspects, a loving heart can overcome everything.
Even if a child is troublesome, parents can endure and overcome everything with a heart full of love. However, no matter how many good elements are present, if "love" is missing, the relationship will eventually collapse.
As mentioned earlier, Judas harbored pride due to his background and education and adjusted his heart to easily find critical aspects of Jesus. This led him to see Jesus as cowardly and fearful of asserting His authority and power.
This perception was especially pronounced when comparing Jesus to John the Baptist, whom Judas respected and followed. When John the Baptist was imprisoned, Judas misunderstood Jesus's lack of action as cowardice and irresponsibility. These false judgments, prejudices, and disregard increasingly prevented Judas from loving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