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참으로 한국의 호세아였습니다. 부인을 앉혀 놓고 무식한 그녀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글을 배우시오. 글을 배워 성경으로 벗을 삼으시오. 성경 못 보면 외로워 못 삽니다.” 이대부터 그녀는 한글을 배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경을 벗으로 삼고 살았고, 마음을 고치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년에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 깊은 산 속에서 살 때에도 끝까지 따라다녔고, 남편처럼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딴 생각을 버리시오. 당신은 욕심이 많으니 도회지에서는 살 수 없고 이 산속에서만 살아야 합니다.”라고 했던 남편의 권고를 따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편의 무덤을 3년 동안 지키면서 혼자 살았습니다. 3년간이나 그 쓸쓸한 산중에 홀로 살면서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아랫마을로 내려와 보리 이삭을 주워 양식을 삼고 벼가 나면 또 벼이삭을 주워서 연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산나물로 살았습니다. “언덕으로 벗 삼고, 천기로 집 삼고, 만물로 밥 삼으시오.”라는 남편의 유언을 따르며 자연 속에서 가난과 배고픔을 참아가며 묵묵히 살아갔습니다. 그녀의 말년은 아무도 돌보는 이 없어 고독했으나, 꾸준히 지난날을 참회하면서 남편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안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예수님을 그토록 잘 믿는 남편을 만난 행복자입니다.” 누구 하나 만나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고독과 고난 속에서 늘 감사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겨울에도 내복 한 벌 없이 무명 옷 한 벌로 지냈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족하며 만족해하였습니다. 또한 남의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혹 나무를 한 짐씩 가져다주면, “이런 죄인이 황송해서 어떻게 그런 나무를 뗄 수 있겠습니까?”하면서 기어이 되돌려 보냈습니다. 밤에 잠 잘 때는 “나같은 죄인이 어찌 하늘을 마주 보고 눕겠습니까?”하면서 옆으로 누워 새우잠을 잤습니다. 병들어 임종이 가까울 때까지 생활 일체를 자기 힘으로 했고, 다른 신자들이 도우려면 절대로 사양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과거를 속되하는 거룩한 생활이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오자 병상에서 돌봐주는 분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특히 그녀가 사랑한 성경구절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사54:1)는 말씀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길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치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더라.”(눅23:29)는 말씀이었습니다. 슬하에 자녀 하나 없었으나, 말씀의 부유함 속에서 주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찬양하며 살아갔습니다. 마지막 임종 시 그녀에게 보고 싶은 사람이 없느냐고 묻자 “사랑하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인데 누가 보고 싶겠어요?”하면서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일자무식하고 성격이 급하며 쉽게 화를 잘 내고, 남편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여 두 번씩이나 집을 나가 딴 살림을 차렸던 여인, 그러나 다시금 남편의 사랑으로 집에 돌아와 남편을 통하여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사상을 이해하고 남편처럼 청빈과 순결과 순종을 추구하면서 산 속에서 예수님과 자연을 벗 삼아 평생을 참회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보게 됩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철저히 못 박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된 삶을 사신 이세종 성자와 그 뒤를 따른 문순희 여사의 삶을 이어, 또 다른 거룩한 순결의 싹이 이 땅에 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