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온 여인 · 2
전선자(아이리스)
정희 일행은 적상산 오색 단풍을 잘 구경하고 무주 덕유산리조트에 들어 내가 만들어간 반찬을 한식뷔페라며
죽 펼쳐 놓고 맛나게 들었습니다. 모처럼 만에 먹는 집밥이라며 너무 좋아했지요. 그것도 그럴 것이 미국을 출발, 하룻밤 우리나라 호텔에서 묵고 바로 그 다음날 베트남 호치민으로 떠나 5박 6일을 하고 돌아와 쉼 없이 공주,
부여, 순천, 대구를 거쳐 경주, 포항, 부산까지 국내 여행을 일주일 정도 하고 무주를 온 것이어서 그랬습니다.
것절이에, 짭짤한 젓갈류, 멸치와 연근조림, 장아찌 밑반찬까지, 시래기 된장국, 풋고추에 집에서 만들어 간 쌈장, 상추쌈에 한우 불고기까지 이것저것 고루고루 맛보며 내 노고에 치하를 아끼지 않았지만 조금은 미안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집에서 대접해야 할 절친인 친구를 집에 환자가 있다는 핑계로 집으로 데려와 대접하지 못하고 리조트 숙소에서 대접해야 했으니 참 마음이 편치 않았고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뉴욕에 갔을 때는 정희 집에 친구 셋이서 편하게 딩굴며 쉬었었는데 말입니다.
일 년이면 서너 차례 1박 2일이나 2박 3일 모임을 리조트에서 치르다 보니 어쩌면 이런 손님 접대는 이골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저녁 식사 후 편히 쉬라하고 나는 차로 20여 분 되는 무주 읍내의 내 집에 와서 피로한 하루를 쉬었습니다.
적상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눈앞에 그리며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좋은 곳에 그것도 적기에 구경시켜 줄 수 있었다는 것은 흐뭇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을 서둘러 챙기고 리조트로 향했지요. 다행히 날씨도 좋고 하루가 멋지게 펼쳐질 것이 눈앞에 또렷히 보였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곤돌라 탑승 예약 시간에 맞춰 설천봉 곤돌라 정류장에 갔어요. 때맞추어 코스모스꽃이 환히 바람에 출렁거렸습니다. 곤돌라를 타면서 보는 풍경은 오스트리아풍으로 지어진 건물이 숲속에서 아침햇살에 비춰 하얗게 돋보였고요. 우리는 학창 시절을 얘기하며 가까이에 있는 마이산에서 2박 3일 즐겼던 시절을 얘기하며 석이, 광이를 떠올렸지요. 지금 뉴욕에는 성은이, 현숙이, 여순이, 혜순이도 잘 살고 있다고, 풋풋했던 시절 가관식을 마치고 그날 기차를 타고 전주까지,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진안을 찾아 마이산 밑에 당도했었지요. 먹거리를 사서 짊어지고 늦은 밤에야 도착해 어느 평평한 밭에 남학생들은 텐트를 쳤고 우리는 코펠에 밥을 짓고 감자 넣은 된장국을 끓였어요. 얼마나 그 된장국이 맛있었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어요. 열이레 하늘만 빠꼼한 곳에 텐트 2개에 나누어 들어가 지친 몸을 쉬었습니다. 그다음 날 희뿌윰히 밝아오는 새벽을 맞으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너무 높고 거대해 마이산의 위용을 그때야 알았던 것이었어요. 전날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못 본 것이었어요. 사방은 고요한데 하늘의 별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밝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추억을 공유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참 신나게 얘기하는 시간에 설천봉에 곤돌라가 당도했습니다. 1,510m 고지에 다달은 것이지요. 높은 산상이라 그런지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산상 휴게소 겸 레스토랑에 들어가 잘 끓여간 생강차 한 잔씩으로 몸을 녹였습니다. 그리고 뒷쪽 밖으로 나가 안성 넓은 뜰을 바라보며 설명해주고 덕곡 저수지도 구경시켰습니다. 햇살은 눈부셨으나 바람끝은 차가웠어요. 향적봉을 올라가려 했으나 그 봉우리에는 안개가 꽉 끼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풍경은 아주 멋있었고 관광객을 위해 심어 놓은 메리골드 꽃과 코스모스 꽃밭에서 그 향기에 한참을 머물다가 내려왔어요.
점심은 맛난 예* 본가의 단골 메뉴 석갈비 정식으로 잘 먹고 나서 우리 무주 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낸 현구 씨가 운영하는 ‘통기타 라떼’ 라이브 카페로 갔지요. 반갑게 맞아주는 현구 씨에게 친구들을 소개하였고 맛있는 카페라떼로 목을 축이고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7080 세대들이 좋아하는 곡을 틀어주어 한참동안 감상에 젖었었습니다. 라이브로 팝송 몇 곡과 우리 세대가 알 만한 곡,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유심초의 <사랑이여> 또 이정옥이 부른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불러 주어 손뼉을 치며 같이 합창을 했고 환호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할랑할랑 즐기며 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말을 정희가 했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즐긴 우리는 구천동 단지 단풍이 곱게 물든 이곳저곳을 드라이브하고, 그동안 여독으로 피곤한 몸을 숙소로 와서 일찍 쉬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다음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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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의 손님 접대에는 이골이 났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무주에 다시 가는 것은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망설일 때 “나는 여러분들이 무주에 오시는 것이 더 편해요” 하시던 말이 지금 생각납니다. 무주에서 관광해설사를 하시든지 전문 숙박업을 내는 것이 편했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시간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할 일을 뒤로 미루면서 내것을 나누어주면서 봉사하시는 삶이 수십 년이되었습니다. 일지를 썼다면 여러 권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을에 온 여인> 제목만 보면 꿈처럼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와 앉았다가 떠난 아름다운 여인인 것 같습니다.
가을에 온 여인보다는 <정희>라고 하고 정희와의 관계와 추억을 학창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오늘에 이르도록 쓰면 더 정겨울 것 같습니다. 그와 어디를 갔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정희는 정희로서의
특별한 농도를 가지고 나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도 문장의 첫 말에 ‘정희 일행’이라고 고유명사를 확실히 밝혀서 아주 좋습니다. 다른 손님들을 안내한 글에서 못 보던 매력 있는 패턴입니다. 아이리스의 친구는 정희입니다. 그 일행은 아이리스가 모르는 사람이지만
아이리스의 친구 정희가 데리고 온 친구이기 때문에 정희처럼 반갑습니다. 그러므로,
“정희는 함께 여행하던 친구들과 적상산 오색단풍을 잘 구경하고 무주 덕유산리조트에 도착하였습니다. 정희를 만난 것이 몇 년 만인가? 반가웠습니다. 내가 만들어간 반찬을 한식뷔페라며 죽 펼쳐 놓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모두 몇 명인가를 밝히면 그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을 오르면서 나눈 이야기. 똑같은 옛날을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친구와 나를 얼마나
긴밀하게 묶어주는지요. 아이리스는 정희와 함께 옛날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학창 시절을 얘기하며 가까이에 있는 마이산에서 2박 3일 즐겼던 시절을 얘기하며 석이, 광이를 떠올렸지요. 지금 뉴욕에는 성은이, 현숙이, 여순이, 혜순이도 잘 살고 있다고, 풋풋했던 시절 가관식을 마치고 그날 기차를 타고 전주까지, 전주에서 버스를 타고 진안을 찾아 마이산 밑에 당도했었지요. 먹거리를 사서 짊어지고 늦은 밤에 야 도착해 어느 평평한 밭에 남학생들은 텐트를 쳤고 우리는 코펠에 밥을 짓고 감자 넣은 된장국을 끓였어요.”
하루에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가관식, 전주행 거기서 다시 마이산행...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가관식을 예전에는 대관식이라 하였는데 영국 황실에서 하는 대관식과의 차이를 두려고 가관식(간호대학생들이 머리에 관-캡-을 쓰는 예식)이라고 했을까요. 그날의 흥분도 예사로운 일이 아닌데 멀리 진안 마이산까지 여행을 했네요. 그 젊음이 느껴집니다.
이럴 때 함께 가는 남학생은 여학생들에게 뽑힌 사람들인데 가서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일꾼이 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는 인연이 닿아 일생을 같이할 관계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함께 가는 남학생들은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아주 신나서 함께 갔을 것입니다. 남학생들은 석이와 광이 등 등이겠지요. 지금은 뉴욕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겠습니다.
문인협회 총무였던 현구 씨가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 ‘통기타 라떼’는 아주 운영이 잘 되고 심심치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가 늘 손님을 몰고 가서 신나게 해주니 얼마나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하는 노래도 달라집니다. 7080이 좋아하고 그리워지는 노래를 부르면서 쉬셨군요.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곡이라면 그게 바로 명곡입니다. 명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나도 그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정희가 했던 말,
”이렇게 할랑할랑 즐기며 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표합니다. 백번 맞는 말입니다. 특히 “손뼉을 치며 같이 합창을 했고 환호했습니다.”라는 대목이 부럽습니다. 정희 일행은 친구 덕분에 참 좋은 여행을 했습니다. 아이리스는 무주에 살면서 덕을 쌓고 있습니다. 전선자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무주의 정기를 담뿍 받아서 심신이 두루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무주에 여러 사람이 오고 가을에 오는 사람도 많지만 각 개인은 모두 다릅니다. 가을에 온 여인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정희>로 제목을 잡으면 그래서 좋습니다. 무대는 무주지만 주인공은 '정희'입니다.
것절이-- 겉절이 속까지 푹 절이지 않고 겉만 절인 김치입니다.
절친인 친구를—‘절친’이라는 말은 근래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친구 중에서도 친한 친구라는 말이지요. 아주 친한 친구라는 말이 더 정중합니다.
또렷히—또렷이
다달은 —다다른 원형이 ‘다다르다’입니다. 다다라, 다다르면, 다다라서
첫댓글 녜. 선생님! 좋은 말씀 해 주시니 어찌해야 할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겉절이, 아주 친한 친구, 또렷이(처음 이렇게 썼다가 또렷하다가 생각나 고치게 되었는데요), 다다른... 모두 고치겠습니다.
가끔 긴가민가 할 때가 많아요. 고맙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항상 바쁩니다.
날씨가 무척 추위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나날 보내세요~
언제나 행복하게 바쁜 아이리스님, 바빠서 그 행복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어미를 이로 할까 히로 할까 고민스러울 때 하다를 붙여 봐서 자연스러우면 히로 정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니 좋습니다. 그래서 나도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원칙은 원칙인데 예외가 있나 봅니다. 우리말 문법 다 맞기 매우 어렵습니다. 눈길 운전 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동지도 지났으니 소한대한 지나면 거의 끝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