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음모陰毛라는 이름의 음모陰謀/ 김민정
은하수 추천 0 조회 73 17.09.23 11: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음모陰毛라는 이름의 음모陰謀/ 김민정

 

머리털 나 처음으로 돈 내고 다리 벌린 날, 소중한 당신 산부인과에는 다행히 여의사만 둘이었다. 어디 한번 볼까요? 자궁경부암 진단용 초음파 화면 가득 잘 익은 토마토의 속살이 비릿한 붉음으로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깨끗하네요, 그런데 자궁 모양이 좀 특이해요, 뾰족하다고나 할까. 거웃 나 처음으로 내 아기집을 구경한 날, 어쩌다 뾰족한 자궁이 된 나는 콘헤드(conehead)의 아이 하나 고깔 쓴 제 머리 꼭지로 내 배를 콕콕 찌르는 상상만으로도 아 따가워 가시를 영 빼버릴 참이었는데 제모 어떠세요? 내 아랫도리를 헤집다 말고 얼굴을 쳐든 여의사가 코끝까지 밀려내려온 안경테를 걷어올리며 묻는 것이었다. 레이저 기계 새로 들여 행사중이에요, 겨드랑이 털과 패키지로 하세요, 휴가철인데 비키니라인 신경쓰셔야지요. 머리털 나 처음으로 거창까지 상가에 조문가는 날, 안성휴게소 화장실에 쪼그려 오줌이나 누는데 문짝에 덕지덕지 이 많은 스티커는 누가 다 붙여놓은 것일까. 여성 희소식 당신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02-969-6688 여성 무모증 빈모증 수술하지 않고 완전 해결! 마르크스도 이런 불평등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거다.

 

- 시집『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 지성사, 2009)

....................................................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성과 관련한 용어를 언급하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다달이 피를 봐야하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미증유의 세계를 겪지 못하는 남성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을 뜻하는 '섹스' 대신에 사회적 문화적 의미의 성인 '젠더'를 따로 쓰기로 결정한 것은 페미니즘의 영향이다. 성은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남성중심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 여성들에게 부과된 것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6년 ‘세계 성(性)격차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116위를 기록했다. 세계경제규모는 13위쯤 되는데 비해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은 여전히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것이다. 2-30년 전이라면 모를까 그동안 꾸준히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많은 분야에서 남성보다 우위에 있거나 적어도 남성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몹쓸 형편은 아닐 것으로 짐작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조사된 수치만 보면 양성평등은 고사하고 여권신장을 위해 계속해서 '젠더 불평등'과 '젠더 폭력'에 목청을 높여야할 사정임이 분명하다. 남아선호의식이 폐기된 지는 한참 되었고, 몇 년 전부터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른데 이어 2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남성을 추월한지도 오래다. 최근 여러 직업군에서 여성의 약진이 눈에 띄는 상황이라 머지않아 남성은 맥을 못 추는 시대가 오겠다는 씁쓸한 예감마저 들었던 터였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으로 여권신장 문제는 한방에 해결될 것이란 은근한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성 격차가 가장 적은 ‘톱 5’국가인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아일랜드는 일찌감치 여성대통령이나 여성총리를 배출한 바 있다. 그러나 선출직공무원 등에서 아직 괄목할 만큼 여성 진출이 이뤄지진 않았다. 기업의 임원비율도 4% 정도에 불과하다.

 

 성불평등이 가장 심한 쪽은 경제분야로 123위이다. 교육(102), 정치참여(92건강(76) 등 다른 분야보다 심각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성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만스럽다. 하지만 ‘마르크스도 이런 불평등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거다' 겨드랑이 털과 비키니라인에 거슬리는 부위의 ‘제모’와 동시에 ‘여성 무모증 빈모증’도 함께 엉켜 고민해야 하는 자기모순의 현실을. 그리고 여전한 남성 시선의 젠더적 권력을. 어느 부분은 여성 스스로가 극복해내지 않는 한 성적불평등관계는 지속되고 따라서 양성평등의 길도 지난할지 모를 일이다.  

 


권순진


숲의 Dance / Nomura Sojiro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