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
명장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
명장마을(鳴藏--)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장 마을은 동쪽에 옥봉산이 있고, 나머지 방향은 평지가 펼쳐져 있었으며, 마을은 동쪽 산기슭에 위치하였다.
명장(鳴藏)[명장(鳴莊)] 마을의 명칭 유래는 분명하지 않으나 명편(鳴鞭)을 보관하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명편은 옛날 의장(儀仗) 때 흔들어 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정숙하게 하는 기구로, 정편(靜鞭)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 동래 부사는 동래 독진(東萊獨鎭)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동래뿐만 아니라 양산·기장의 군사까지 지휘하면서 명편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보관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명장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 전하는 동래 읍지류 중 가장 오래된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명장리(鳴莊里)는 동면에 속하며 관문에서 5리 거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32]에도 명장리(鳴藏里)를 확인할 수 있어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마을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동상면 명장동으로 나온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명장리 명장 마을이 되었다. 1942년 10월 부산부 동래출장소 명장리, 1949년 8월 부산시 동래출장소 명장동, 1957년 1월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명장동에 속하였다. 1963년 1월 부산직할시 동래구 명장동 명장 마을이 되었다. 명장 마을은 1970년대 초반까지 미나리꽝과 논밭이 있던 농촌 마을이었으나, 1975년 안락 북 지구 구획 정리 사업이 시행되며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 명장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명장 마을은 명장 1동 21통 일대로 부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명장 정수장 부근이다. 동쪽으로는 반송로와 부산 도시 철도 4호선이 통과하며, 남동쪽에 명장역이 있다. 남쪽으로는 명장로가 지나간다. 1975년 구획 정리 사업이 시작되어 1980년대부터 아파트 및 빌라가 늘어나면서 옛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동쪽 옥봉산 기슭에 금정고등학교와 명동초등학교가 있고, 산중턱에는 옥봉산 당산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2일 자정에 제사를 지낸다.
명재재골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용문리
명주골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삼계리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
명주군(溟州郡)
강원도의 옛 군 먕칭으로 영동 지방의 중앙 및 강원도 동남부 해안에 접하여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1995년 1월 강릉시에 통합되어 도시와 농촌의 기능이 하나로 연계된 도농 복합의 새로운 강릉시로 개편되었다. 개편 당시 명주군의 면적은 945.64㎢, 인구는 약 7만 명이었다. 지금의 강릉시 주문진읍·성산면·왕산면·구정면·강동면·옥계면·사천면·연곡면 등 1개읍 7개면 65개 동리가 개편 당시의 명주군 지역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이전의 명주·강릉 지방에 대해서는 예(濊)·임둔군, 고구려의 하서량으로 보는 견해와, 진한의 하슬라국(또는 하서량)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6세기 이후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639년에 북소경을 두었다가, 658년에는 주(州)를 설치하고 도독을 파견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명주도독부로 이름을 바꾸고 9군 25현을 관할하게 했다. 이때 동제현·지산현·정선현·동산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원경·명주(940)·하서부·명주도독부(986)·명주목(992) 등으로 자주 변경되었다. 1012년에 명주군방어사가 되어 동계에 속했으며, 우계현(본래 우곡현, 757년 우계로 개칭, 삼척군 영현)·정선현·연곡현(본래 양곡현, 757년에 지산, 940년에 연곡으로 개칭)을 속현으로 관할했다. 1260년 경흥도호부로 승격했고, 1308년(충렬왕 34)에 강릉부로 개칭, 1389년에 대도호부로 승격했다. 조선시대에도 강릉대도호부로서 영동지방의 중심 역할을 계속했다. 별호는 임영·동온·명원이었다.
1895, 1896년의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원도 강릉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였던 대화면·진부면·봉평면이 평창군으로, 임계면·도암면이 정선군으로, 내면이 인제군으로 이관됨으로써 대관령 서쪽지역을 상실하여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1917년 군내면이 강릉면으로 개칭되었고, 1931년 강릉면과 1940년 주문진면이 읍으로, 1942년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했다. 1945년에 양양군의 현남면·현북면과 서면 일부가 편입되었으나, 휴전 후인 1954년에 현북면·서면이, 1963년에 현남면이 양양군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1955년 9월 강릉군 강릉읍·성덕면·경포면이 통합되어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강릉군의 나머지 지역이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인접한 양양군, 정선군, 강릉시에 명주군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80년에 4월에는 묵호읍이 분리되어 삼척군 북평읍과 통합해 신설되는 동해시에 통합됨으로써 명주군의 관할 구역은 계속 축소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강릉시에 통합되어 하나의 도농통합시가 되었다. → 강릉시
명주리(明珠里)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리(里).
약간의 산지에 위치하여 고도가 높은 편이다. 북동쪽에는 깃대봉, 남쪽으로는 숙구봉 등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지가 있다. 서쪽에는 명주저수지가 있으며 이를 비롯하여 작은 저수지들이 매우 많이 있다. 산지에서 하천이 시작되는 곳도 여럿 있다. 자연마을에는 명주, 사구가 있다. 사구는 마을에 모래 언덕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염걸장군묘소가 있다.
명주리(明珠里)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있는 법정리(里).
명주리는 북안면 남부 중앙에 위치하며, 동쪽은 신대리·용계리, 서쪽은 도유리, 남쪽은 북리·상리·당리, 북쪽은 옥천리와 이웃하고 있다.
명주리는 북쪽에 위치한 금오산의 지맥이 뻗어 내린 남단부에 자리 잡은 마을로, 마을의 남부는 멀리 구룡산과 동남으로는 사룡산(四龍山)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남단 인근에 도유지란 저수지가 있으며, 마을 앞은 북안천이 흐른다. 남으로 뻗은 지맥이 갑자기 낮아져서 구릉야산(丘陵野山)을 이룬다. 구룡산(九龍山)에서 발한 시내가 마을 중앙을 흐르고 있다.
명주리는 본래 영천군 원곡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용주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북안면 명주동이 되었고,
-1995.1.1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북안면 명주리로 개편되었다.
명주리(明珠里) 명칭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명주리의 자연 마을 용주는 과거 광복 직후까지만 해도 상인들이 모여 제법 활기를 띤 장터로, 상인들간에 불리어 전해 온 명칭이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창기(倉基)[창뜸], 들마을(들말), 대밭밑, 용주, 신방(새터)[새방], 강변, 본동 등이 있다. 창기(倉基)는 옛날 곡물을 저장해두는 창고가 있어 창기라 칭한다. 또는 무기(武器)창고가 있다고도 전한다. 들마을은 들 가운데 마을이 있다 하여 들마을이라 한다. 대밭밑은 뒷산에 큰 대밭이 있었으며 그 밑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대밭밑이라 한다.
명주리의 면적은 1.1㎢이며, 인구는 103가구, 209명으로, 남자가 103명, 여자가 106명이다(2012년 7월 말 현재).
명주리 마을에는 보건 진료소와 상점들이 입지하며, 지방도 921호선을 따라 가촌(街村)이 형성되어 있다. 주변 마을 소생활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명주소류지
경상남도 의령군 화정면 덕교리 479
명주저수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