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리서치
Tailand reseach for mission Trip
나라명 : 타이왕국(Kingdom of Tailand), 쁘라텟 타이(자유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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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역사요약
타이족의 기원
기원전 4,500년경부터 타이족은 원주민의 쌀농사를 중심으로 한 최소한의 자급경제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남부 및 서남부 지역에 거주하였다(태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기록). 한편 6세기 경 지금의 캄보디아 및 태국, 말레이 반도를 지배하던 푸난(Fuan) 왕국의 몰락으로 현재 미얀마 남부의 몬(Mon)왕국 및 메콩강 유역의 크메르(Khmer)왕국이 이 지역의 강대국으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강력한 부족연맹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10세기경부터 중국 남부지역에 거주하던 타이족들은 한족의 세력이 증대하자 남쪽으로 이동 지금의 태국북부, 미얀마 북동부, 라오스북부 및 베트남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부분적으로 소국가를 형성하며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족은 라오스를 형성하고 다른 일족은 더 남하하여 오늘날의 태국지역인 짜오프라야 강 유역에 정착해서 오늘날의 태국을 형성하게 되었다.
타이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위에서 기술한대로 북방에서 이주해 왔는지 남방에서 올라왔는지 또는 선사 시대부터 계속 그곳에 거주해 왔는지 아직도 논쟁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13세기까지 타이족이 그곳 일대에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쑤코타이(Sukhothai) 왕조 (1238~1378) :10세기경부터 타이족들이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태국의 광대한 평야에 정하게 되자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3세기에 타이족은 선주민인 몬족과 크메르족이 쇠퇴하자 치앙마이를 수도로 정한 태국북부의 란나타이 왕국(타이유언족), 쑤코타이를 수도로 정한 태국 중부의 쑤코타이 왕국(샴족), 라오스와 동북 타이의 랑싼 왕국(라오족) 등 태국계 민족의 소왕국이 각지에 생겼다. 이와같이 13세기에 출현한 타이족의 여러 소왕국중 가장 번성함과 동시에 태국사상 처음으로 독립된 왕조의 기틀을 형성한 쑤코타이 왕국은 태국 역사상 정통 왕조로 1238년 타이족 일파의 수장 퍼쿤 방끌랑타우와 퍼쿤 화므엉이 크메르 왕국의 쇠퇴를 틈 타 북서부의 주요 거점인 쑤코타이를 정복하여 건국한 나라이다. 쑤코타이 왕조는 제 3대 람캄행(Ramkhamhaeng)왕(재위 1277~ 1317) 때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람캄행왕은 크메르 문자를 변형시켜 타이문자를 발명하고 스리랑카로부터 소승불교를 도입하였다. 또한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안정적으로 주변국가를 복속 현재 태국과 거의 같은 크기까지 영토를 확대하였다. 람캄행왕의 사후 14세기 중반부터 쑤코타이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378년 아유타야 왕조에게 멸망하였다.
아유타야(Ayuthaya) 왕조(1350~1767) : 쑤코타이 왕조가 점차 쇠퇴해가자 주변의 속국들이 모두 독립, 강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나라가 아유타야 왕국이었다. 아유타야 왕국은 Uthong(Ramathibodi 1세)이 롭부리 지역에 1350년 건국한 나라이다. 14세기 말 주변국가를 복속시켜 왕국의 기반을 조성하고 1378년 Borommaracha 1세는 쑤코타이 왕국을 정복하였다.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아유타야 왕조는 무역이 번창하여 서양 제국 및 중국, 일본 등과 교역하였다. 9대 뜨라이록까낫 왕 때에는 말레이 반도와 벵갈만까지 통치영역을 확대하기도 했다. 한편 16세기부터 융성하기 시작한 인근의 미얀마와 잦은 전쟁으로 쇠약해지던 아유타야는 마침내 1569년 3년간의 미얀마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수도를 점령당하고 미얀마의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나레쑤언 왕은 1600년까지 미얀마군 완전히 축출하고 아유타야 왕국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다시 아유타야 왕조의 내부 혼란을 틈타 미얀마 군이 1765년 침공하여 아유타야 왕국은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아유타야 왕국의 멸망으로 태국은 정치적 분열 및 혼란기를 겪었지만 딱씬이 톤부리 왕국을 세우고 미얀마를 축출 타이왕국을 재통일했다.
톤부리(Thon Buri) 왕조(1767~1782) : 아유타야 왕조가 망하고 미얀마 군의 공격 속에서 딱 지방의 성주이던 프라야 딱씬(Taksin)이 짜오프라야강 하구 서안 톤부리에 도읍을 세우고 잃었던 아유타야의 영토를 회복하면서 미얀마군을 축출했다. 딱씬왕은 이전의 아유타야 왕국의 정치제도나 사회신분을 그대로 세습하고 치앙마이를 정복하는 등 타이제국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딱씬왕은 정신이상으로 왕위에서 쫓겨나는 비극을 맞게되고 딱씬왕 1대로 톤부리 왕조는 종말을 맞이하였다. 대신 딱씬의 부하 장수였던 짝끄리 장군이 왕으로 추대되어 방콕으로 천도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짝끄리 왕조(랏따나꼬신 왕조)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랏따나꼬신(짝끄리) 왕조(1782~현재) : 1782년 딱씬 왕의 부하였던 짝끄리(King Yot Fa Rama I, 1782-1809), 장군이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던 왕을 처형하고 도읍을 현재의 방콕으로 옮기면서 현재까지 왕조가 지속되고 있다. 라마 3세때(Nang Klao, Rama III, 1824-51) 남동쪽으로 캄보디아 북으로 라오스까지 영토를 넓혔다. 19세기 들어 군주들이 유럽 국가들에 이권을 주고 그들과 정치적 관계를 맺게 됨에 따라 태국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태국은 그 동안 유지해오던 쇄국정책을 버리고 영국(1855년 보우링조약), 미국(1856), 프랑스(1856) 등 몇몇 서구열강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해외유학을 장려하였으며 도로건설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근대화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쭐라롱껀 왕(라마 5세 재위 1868~1910)은 랏따나꼬신 왕조(짝끄리 왕조)시대의 사회변혁뿐만 아니 왕권을 더욱더 강화하여 절대주의 국가를 만드는데 정성을 쏟았으며 사법, 행정제도 개혁과 함께 근대화를 실행하였다. 또한 자국의 영토를 서구열강의 지배 속에 놓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들의 집요한 침략정책에 의하여 상당한 영토를 빼앗긴 상태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이용하여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해 나가게 되었다. 1867년 캄보디아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에 양도했으며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방에 있던 속국을 프랑스에게 양도했다. 1917년에는 연합국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라마 5세부터 추진된 국왕에 의한 근대화는 마침내 진보적 사상을 지닌 많은 관료와 군인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진보파 그룹은 자신들을 길러준 왕의 권력을 부정할 만큼 세력이 강해지고 왕족 전제에 의한 정치적 부패에 불만이 높아져 1932년 6월 24일 무혈혁명을 일으켰다. 인민당이 주도한 이 혁명에 의하여 태국은 절대군주제에서 벗어나 12월 10일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고 입헌군주제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왕은 새로이 입헌군주로서 국가 통합의 상징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열강의 진출로 아시아 각국이 식민지화된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하였으며 1939년에는 국호를 사이암에서 타이로 변경하였다.
입헌군주 시대 :태국은 마지못해 2차 세계대전에 일본의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1942년 피분 총리 정권하에서 태국의 주권과 독립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하고 영국과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전황이 일본에 불리해지자 1944년 8월 일본과의 전시협정을 파기했다. 1945년 8월 16일 대영?미 선전포고는 일본의 무력강압에 의한 것으로 무효라고 선언하고 태국내의 친일파를 제거하기 시작했고 영국과 프랑스에 자진해서 손해배상을 해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도움으로 1946년 12월에는 유엔에 가입하였다. 1946년 6월 10일 등극한 지금의 라마 9세(푸미폰 아둔야뎃 왕)는 정치적 실권을 가지지 않고 있으나 계속되는 쿠데타에 의해 권력의 헤게모니가 바뀌는 상황에서도 현재까지 흔들림없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잡고 있다.
나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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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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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체성
종족명 : 타이인(81.5%), 화교(13.1%), 말레이족(2.9%), 기타(2.5%)이다.
주요언어 : 공용어로 타이어를 사용.
주요종교 : 불교(91.9%) => 소승불교로 성년남자는 일생에 한번 불문에 들어가는 것이 관행처럼 됨.
부수종교 : 이슬람교(4.8%), 기독교(1.6%), 나머지는 힌두교와 기타이다.
2.인구
전체인구 : 6402만 2000명 (2003년 통계)
도시화율 : 20%대(1995년 통계)초반
성인의 읽고 쓰는 능력 : 문자해득률(93.5%), 총취학률(53%)
3.언어
제1언어 : 태국어(모음 32, 자음 42자로 이루어진 표음문자이다.)
제2언어 : 라오스어(북동부 지방), 중국어(화교를 중심으로한 이민 1세대), 말레이어(남부 지방), 관광지에서는 영어도 통용가능하다.
4.경제
직업/주업 : 농업국으로서 총 수출량의 44.9%가 1차 생산물로 이루어진다. 근래에 들어서 농업위주의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서비스업의 비중이 큰 선진국형 산업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현실이다.(전인구의 약 80%이상이 농업, 수산업, 목축업, 산림업에 종사하고 있다.) 태국의 주업은 당연 관광업이다. 생산물/공예품/천연자원 : 세계의 주요 쌀생산국이다.(총 농산물 생산량의 약 86%) 그 밖에 고무, 옥수수, 야자, 타피오카, 사탕수수, 콩, 목화, 담배 등이 있다. 주석, 철, 납 등 이 있다. 게, 새우, 오징어, 조개 등이 있다. 수공업은 보석제품이 있다.
5.생활조건 및 개발 상황
음식/식습관 : 식사는 주식과 부식인 반찬으로 구성. 쌀을 주식으로 하며 음식을 상에 한꺼번에 차림. 양념이나 소스가 아주 맵거나 짠맛이 강함. 생선, 닭고기, 채소가 주재료이며, 기름을 적게 사용. 시각적인 면을 중요하게 여기며, 맛이 자극적이다. 음식에 향기가 있으며, 단맛, 신맛, 톡 쏘는 매운맛의 복합적인 맛. 코코넛밀크와 남플라(생선간장)같은 조미료, 마늘, 생강, 고수, 칠리 가루, 라임, 박하 등의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식사 예절로는 음식을 먹을 때는 빨리 먹지 말 것, 소리 내지 말 것, 음식을 씹을 때는 입술을 오므리고 씹을 것,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는 말을 하지 말 것,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들이 마시지 말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것 등이 있다.
의복 : 공식적인 것은 따로 없으나 태국전통의상을 격식있는 자리나 평상적인 곳에서도 볼수 있다. 여 성용으로 "파씬"이라는 태국실크로 만든 사각형 천을 치마대용으로 입는다. 일반적으로 실크로 만든 긴소매의 브라우스를 상의로 입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를 가로지르는 띠(미스 코리아 같은 데서 지역을 표시한 띠와 같은 것)를 한다. 남성용으로는 "쓰어 프라 랏차탄"이라는목이 긴 반팔셔츠가 있는데 격식있는 자리에서는 긴 팔을 입고 허리띠를 두른다. 주거 :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경제 발전과 공업화를 동반하는 방콕시의 급속한 성장은 간선도로망의 확장 건설을 따라 진행되는 선상의 도시 확대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한다.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주택건설은 새로 열리는 간선 도로를 따라 인접지역에 점적 분산 형태로진행되며, 초기 단계 간선 도로변 Shop house (Chinese compartment) 단지 건설 분양과 배후지대 택지 조성 분양에서, 80년대 초 Shop house 단지 개발의 계속적 규모 확대와 개인 주택단지 건설 turn key 분양으로의 발전을 거치면서, 중반에 들며 도심지역 (CHAO PHRAYA 강변, 중심 업무 지구)에 고층 Condominium (고급 아파트), 외곽 지역의 Villa Compound등으로 다양화의 추세가 전개된다.
바로 80년대 말에, 몇 개발 업체가 고안 한것이, 역시 계속 확대 연장 되는 간선 도로변의 도시화 (남북 60Km 동서 40Km, 인구 700만명)를 따라 건설 분양을 시작한 shop house, town house와 개인 주택을 함께 조합한 주택단지, - "Composit residence"이다.
도로변에 일렬 (혹은 교통 밀도가 높은 지역 2열)의 1층에 상업, 공방 공간을 가지는 5층 내외의 shop house, 바로 배후계속 되는 2 - 4열의 상점, 공방을 가질수 있는 town house, 그 배후에 독립 주택 나열이 기본적인 "Composit residence" 구성 도식이다.
우선적으로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각 부위 대지사용 가치의 효율적 해석인 이 구성 도식은, 아울러 기능, 성격이 다른 주택유형들의 근접조합으로 사회, 경제 성분, 성향이 따른 주민들의 근린거주를 가정하며, 간선 도로변, shop house 와 town house사이 - town house들이 마주하는 공간-, town house와 독립 주택간,- 독립 주택들이 이웃하는 곳등, 각기 기능, 성격, 분위기가 다른 공간 들로써, 전체 단지의 다양하며, 변화있는 구성 요소가 된다
물/식수 : 태국의 수돗물은 석회질이 함유되어 있어서 식수로 적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태국에는 일반생수와 미네랄 워터가 있는데 여행객들은 주로 미네랄 워터를 마시며 물맛은 한국과 같다. 두 가지의 구분 방법은 일반생수는 불투명 병에 담겨 있고 미네럴 워터는 한국과 같이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다.
교통수단 : 태국의 교통 수단으로는 우선 방콕에만 운행중인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는 일반택시와,다른 지방으로 운행되는 시외버스, 그리고 시내를 마구 달리는 일반 시내버스와 흔히 툭툭이라 불리는 삼륜 오토바이가 있고 이외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배가 있습니다. 지방으로 가면 썽태우라고 있는데 트럭을 개조해 뒤의 자리에 손님을 태우고 다닙니다.베트남의 씨클로 처럼 생겨 먹은 자전거를 개조해서 직접 사람이 몰고 다니는 쌈로도 있습니다.
택시 : 공항에서 바깥으로 처음 나서면 보이는게 바로 이 택시입니다.요즘 거의 다라 할 만큼 모든 택시에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습니다.과거 미터기가 없었을 때 각종 바가지 요금과 횡포로 인해 관광객 뿐 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조차 기피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이젠 미터기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개선 되었습니다.가끔 공항이나 시내에서 흥정을 요구하는 기사가 있지만 아예 상대하지를 마세요.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이 미터기를 조작하는 악질 기사가 많이 있다는 건데 흔히 영어로 계속 얘기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 조작을 하죠.이걸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타자 말자 손목시계를 풀어서 시간을 재는 척 하세요.방콕의 택시는 기본요금이 35밧이고 나머진 시간과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데 2분 정도에 3밧 씩 올라갑니다.택시기사를 보면 지방출신이 많이 있어 방콕의 지리를 아직 모르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우리가 흔히 오해를 할 소지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사들이 손님을 태운 채 빙빙 돌아간다는 것인데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길만 골라 다니기 때문입니다.
툭툭 : 요란한 소리와 더불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 삼륜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는 태국의 명물이자 골치덩어리인데 현재 태국 정부에서는 더 이상의 신규 면허는 허용치 않고 있다니 언젠가는 모두 다 사라질 것 같은데 이미 개발을 마친 전기로 운행되는 툭툭이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볼 수가 없군요.기본요금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승차하기 전에 기사와 가격을 흥정해야 하는데 처음에 목적지를 얘기하면 무조건 높은 가격을 요구합니다.그 요금에서 딱 반만 불러주시고 그래도 못 간다고 하면 다른 툭툭을 잡으세요.아마 대부분의 기사는 다시금 다가와 "오케'란 소리를 할 것입니다.가까운 거리를 이용할 때나 쓸모 있고 먼 거리를 갈 땐 요금도 비싸고,그 나쁜 매연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니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하세요.또 승차인원도 정해져 있지 않아 많이 탈 땐 8명 정도의 사람도 태우고 곡예운전을 합니다.최고로 싸게 탄다고 해도 20밧입니다.
시내버스 : 방콕의 시내버스는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일반적인 시내버스와 에어컨이 있는 것 그리고 차체가 좀 작은 마이크로 버스가 있습니다.일반버스는 요금이 전구간 동일하며 (3.5밧 ),에어컨 버스는 거리에 따라 조금 달라집니다.기본이 8밧이고,최대 20밧입니다.차체의 색깔은 일반버스는 거의 빨간색이며 에어컨 버스는 각종 광고문안이 새겨진 관계로 어지럽게 보이나 대부분 밝은 색 계통입니다.마이크로 버스는 요금이 20밧 균일이며.차안에는 에어컨과 텔레비젼,그리고 신문이 비치되어 있습니다.주요노선의 경우 시내버스는 24시간 운행되며 밤 시간엔 약간의 할증요금이 부과됩니다.
시외버스 : 방콕에는 현재 3군데의 버스터미널이 잇는데 주로 북부지방과 북동부 지방으로 운행하는 노선을 가진 북동부 터미널 ("콘쏭 머칫 마이")는 치앙마이,치앙라이,메홍손,수코타이,코랏,농카이 등을 다니며,위치는 공항근처에 있습니다.그리고 쓰쿰윗 로드 끝 부분에 위치한 동부터미널 ("에까마이")는 휴양도시인 파타야나 코싸멧 방향을 주로 운행합니다. 카오산 로드에서 가장 가까운 남부터미널 ("콘쏭 사이따이")은 삔까오 지역에 있는데 주로 남부 해안을 중심으로 운행합니다.수라타니.푸켓,춤폰,칸차나부리 등
그 외 2000년 초부터 정상적으로 운행될 도시고속전철이 현재 개통되어 운행 중이며,기차의 경우 차이나 타운 근처에 중앙 역인 훨람풍 역이 있는데 북부의 치앙마이와 동북부의 우본 랏차타니, 남부로는 길게 뻗어 푸켓이나 코사무이의 관문인 수라타니를 거쳐 국경도시인 핫야이,그리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폴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방콕을 벗어나면 쏭태우라고 불리는 대중교통이 있는데 이는 일반 트럭을 개조한 것으로 노선버스 구실을 합니다,
기타 : 태국은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국가로 치안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단, 총기는 허용되므로 현지인들과 시비나 언쟁은 피하도록 한다.)
6.사회구조
가족구조 :
1) 태국가족은 남자가 가장이라는 이념아래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며 남자가 가내 주요문제를 해결해 나감
2) 일단 결혼을 하면 각기 신혼 주택을 마련하여 분가해 나가 한 가정에 5-6명으로 구성된 소형단위 인 단일가족의 형태를 갖고 있음
3) 태국 헌법 제 1445조에는 단일 부부제로 되어 있으며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과 신뢰심이 강하여 가족이 경제적 기반단위가 됨
4) 강렬한 혈연관계로 신혼부부가 낳은 자식은 그 가족단합의 구심점 역할을 함
사회관습/모임/계층구조 :
1. 관공서 일처리 관행
1) 관료주의적이며 사례가 일반화되어 있음
2) 공무원은 봉사자로서 자세가 안되어 있음
3) 사례 제공시 쉽게 처리해줌
2. 좋아하는 운동 : kickboxing이 국기로 되어 있고 축구 등을 좋아함.
3. 외국인 금기사항
1) 발을 다른 사람 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무례임
2) 머리를 가장 신성시하고 있어 머리를 만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함
3) 화를 내는 것, 특히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얘기하는 것은 무례라고 간주
4) 국왕 및 가족에 대한 나쁜 언행.
축제/오락 : 태국은 거의 매달 다채로운 축제 문화가 있어서 여행시 상당히 좋은 볼거리와 추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주로 지방 축제가 많이 있는데 농사와 관련된 축제가 많이 있다.
1월 : 보상마을 우산 축제 (치앙마이) 돈 쩨디 기념 (쑤판 부리)
2월 : 꽃 축제 초순 (치앙마이)
3월 초 : 타오 쑤라나리 축제 (나콘 랏차시마)
4월 : 쏭끄란 (치앙마이 외 전국) 파놈롱 축제 (부리람)
5월 :로켓 축제(야쏘톤 첫 주 토.일)
6월 : 피따콘 축제 (러이)
7월 : 밀랍 인형 축제 (우본 랏차타니) 앗살라부차 (전국)
8월 : 람부탄 축제 (수라타니) 씨리낏 왕비 탄생일 (전국)
10월 : 물소 경주 대회 (촌부리) 채식주의자 축제 (푸켓)
11월 : 러이 끄라통 (수코타이 외 전국) 코끼리 몰이 축제 (수린 셋 째 주) 콰이 강의 다리 축제 (깐짜나 부리 다리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12월 초)
12월 : 국왕 탄생일 (전국 5일)
7.청소년 및 아동
교육 및 학교 제도 :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6년(3-3년), 고등교육 4년
8.종교
토속종교 : 소승불교(테라바다 불교)
종교의식/개념 : 소승불교는 갱인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태국인들에게는 종교라기보다는 생활그 자체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 승려로 생활을 해야 한다. 선교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실생활적으로는 불이익을 줌으 로 대부분 불교를 믿음.
9.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가?
복음이 들어간 시기 : 카톨릭은 1511년에 개신교는 1828년에 들어와 선교하였다. 그러나 170여년의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복음화는 더딘 나라이다. RAMA4세, RAMA 5세와 같 은 왕들은 선교사들과 친구이며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종교자유 칙령 선포정도 의 결과를 얻었을 뿐이다.
10.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태국은 전통적으로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복음을 듣더라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기에는 엄청난 시간이나 이해가 필요할 거 같다. 살아온 생활과 관습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저 좋은 사람이나 위대한 선생 정도로 생각할 거 같다.
11.교회현황
1980년 : 교회합계 :
2000년 : 1,000여명의 선교사와 60여개의 기독교 단체, 교회합계 : 1,608교회
12. 그들의 말로 번역된 성경이 있는가? (있으면 언제 번역되었는가?)
성서가 번역되어 있음. 전도지가 있으나 신앙성장을 돕는 서적과 교역자들을 위한 서적 등은 매우 부족하다. 전체 언어 81개, 성경 번역 신구약 성경 전체 18개, 신약 7개, 부분적 15개.
개신교가 들어온 1828년부터 조금씩 번역되었다. (Carl Gutzloff와 Jacop Tomlin은 태국의 첫 번째 개신교 선교사이다. 그들은 1828년 도착한지 2개월만에 그들의 중국어 성경을 다 소비할 정도로 근면했다. 그들은 또한 사이암 언어를 배워서 4복음서와 로마서를 중국어로부터 태국어로 번역하였고, 사이암어 사전을 썼다.)
13. 성경보급에 장애가 되는 요소는?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성경을 번역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역자도 많이 부족하다.
14.복음을 전할 다른 방편들은?
녹음테이프 :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Voice of Peace Studio가 복음전도와 교육용 테이프 사역을활발히 하고 있다.
라디오 : 49개의 태국 방송국에서 매일 기독교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FEBC, OMF, Full Gospel Mass Communications, Voice of Peace Studio가 대규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서적번역 : 1,000여 종의 서적이 태국어로 출판
영화 : 태국, 베트남, 흐몽 등의 언어로 준비되어 있다. (예수영화)
성경번역 사업 : SIL, NTM, OMF가 21개 언어의 성경을 번역하고 있으며 16 - 34개어로 성경을 번역할 번역자가 필요하다. 현재 태국 성경이 4개의 다른 번역으로 보급되고 있다.
지도자 훈련 : 현재 17개의 성경학교가 운영중. 지도자 양성이 최우선 과제. 시골지역은 성경교육을거의 받지 못하고 있으며 연장자 목사에 대한 맹종이 젊은 목사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대학생 사역 : 미약하지만 성장하고 있다.
중산층 사역 : 부유하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복음에 냉담하다. 대조적으로 강신술과 신비주의에 더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 사역 : 소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영향력이 크다. 방콕에 69개의 교회와 교인은 9,150명. 그러 나 중국인 전임 사역자는 거의 없다.
난민 사역 : 태국은 수십년 동안의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발생한 수십만명의 난민이 들어와있다. 이들을 향한 사역은 효과적이다. 약 20만명이 추정되며(1993년), 카렌족과 미얀마인들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회교도 사역 : 250만 회교도 중 90%는 말레이족으로 대부분 최남단 5개 지역에 살고 있다. 이지역은 정치적 갈등과 게릴라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어려운 지역이다.
호응도가 높은 사역으로는 의료, 교육, 농업, 구제사역, 공업, 학교시설, 설비, 공동시설 확충 등이 있다.
-가정 / 교회 : 빈약, -교회 : 약하다, -간접선교 : 학교, 병원 등의 간접선교는 초기에는 강했으나 현재는 후계자와 관리 소홀로 약화되고 있음.(사역현황)
15.변화나 기독교에 대해 수용적인가/(이유는?)
태국인은 300%의 종교를 믿는다고 표현, 불교 100%, 힌두교 100%, 애니미즘 100%. 수용적인 듯 하나 혼합적이고 다분히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반응한다. 이유는 태국은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적 특징과 더불어 아시아의 체면문화로 인해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많다.
16.복음을 위해 타문화권에서 온 선교사들의 도움이 필요한가?(이유는?)
꼭 필요하다고 느끼진 않지만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 타문화권 선교사님과 잘 동역하여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나간다면 선교사역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17. 내가 이 나라에 가서 사역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간접선교 중 학교, 병원 등이 초기에 강했는데 후계자와 관리 소홀로 약화되고 있는다는 사역현황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원래 의료선교사로 주님께 헌신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소식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비록 내가 의사로서 섬기지 못하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구해야겠다. 국내의 의료봉사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약품 같은 것을 후원받아서 그들의 육적 치유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영적 치유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그리고 교육면에서는 어린이 선교원 등을 지어야겠다. 어려서부터 불교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으면 당장은 보이는 것이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크면 주님의 말씀이 태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 날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린다.
또한, 요새 한류 열풍이 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에 강한데 우리는 기독교 문화인 CCM이나 CCD 같은 것을 보급하여 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이 주님을 구주로 인정하길 원한다. 태국의 불교문화가 주님이 주인되시고 주님을 찬양하는 주님의 문화, 그리스도의 문화로 변화되어 태국이 주께 회개하고 주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땅에 주의 말씀이 널리 선포되며 성령님이 주관하셔서 성령의 불로서 부훙의 물결이 일어나길 기도한다.
선교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하며 치유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생각과 형편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그들을 치유하며 섬겨야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주의 말씀이 꼭 선포되어야 한다.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이런 사역들은 소용이 없다. 진정한 치유는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복음이 열매를 맺어 그들이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선교의 본질 즉, 핵심은 주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을 전하는 것임을 마음에 되새기며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