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참봉은 상주에서 으뜸가는 부자다.
호탕한 성격의 박참봉은 돈벌이에만
매달려 골치를 썩이지 않았다.
농사일은 이집사에게 맡기고,
포목점은 오집사,
해산물 도매는 남집사,
소금 도매는 김집사에게 각각
맡기고 박참봉은 주로 선비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다.
박참봉은 애첩 추월이에게 맡겨
널찍한 요리집도 대리 운영을 했다.
상반기 결산일이 되었다.
집사들은 모두 장부를 가지고
요리집으로 모여 박참봉 앞에서
상반기 영업실적을 보고했다.
농사 담당 이집사는 작황을 보고하며
올 가을에도 천석은 문제 없다고
큰소리치고, 해산물 도매 남집사는
상반기 이익이 육백오십냥이
났다고 보고하고,
소금 도매 김집사도 칠백이십냥
흑자를 보고하는데, 포목점 오집사는
삼백사십냥 적자를 보고했다.
이유인즉슨 백부상에 며칠 다녀왔더니
창고에 엽연초 연기소독을 하지 않아
쌓아둔 포목에 좀이 슬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불찰이라 고개를 숙였다.
박참봉은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 상사요, 장사에 돈 벌고
밑지는 것은 상가지 상사다.”하고
껄껄 웃으면서 오히려 오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뒤 이어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다.
술고래 박참봉이 돌리는
매실주·감로주·산삼주에 모두가
대취했을 때 한줄기 돌풍이 불어와
촛불이 꺼져버렸다.
그때 “엄마야” 하는 박참봉 애첩,
추월의 비명이 들리고 나서 곧이어
불이 켜졌고 술판은 계속 이어졌다.
이튿날 아침, 추월이 꿀물을 타서
박참봉에게 들고 왔다.
“나으리 소첩이 어젯밤에 왜
비명을 질렀는지 아십니까?
오집사라는 인간이 포목점도
적자 낸 주제에 불이 꺼지자 소첩의
허벅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지 뭡니까.”
박참봉은 허허 웃으며
“네 허벅지에 들어간 손은 오집사
손이 아니고 내 손이었던게야.”
박참봉은 오집사 짓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덮어버렸다.
때 마침 상주고을에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악덕 원님이 새로 부임했는데
박참봉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돈을 바쳐도 바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더니 급기야 소금 도매상과
건어물 도매상을 원님의 종형에게
넘기라 협박을 했다.
거절한 지 닷새 만에 박참봉은
죄명도 불분명하게 옥에 갇혔다.
춘추가 두번이나 바뀌고 박참봉이
출옥했을 때 옥사 앞에 오집사가
생두부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사연인 즉,부인은
진즉 친정으로 가버렸고,
추월이는 원님의 애첩이 되어 있었으며,
이집사는 논을 다 팔아먹고 도망갔고,
남집사와 김집사도 해산물 도매상과
소금 도매상을 헐값에 원님 종형에게
넘기고는 도망을 가버렸다고 했다.
그날 밤 촛불 아래서 오집사가
장부를 펼쳤다.
“아직도 참봉 어른은 부자이십니다.
2년 동안 포목점 이익이
이천칠백오십냥입니다.”
인간 세상이란 염량세태(炎凉世態)라
잘나갈 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현역 시절 잘나가던 친구가 갑자기
몰락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뜬 후
빈소가 너무나 쓸쓸한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집니다.
오죽하면 옛날에도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고,
정승이 죽으면 텅텅 빈다''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미국의 흑인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여러분과
리무진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모진 바람이 불고 난 후에라야
강한 풀을 알 수 있습니다.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는
위 문구처럼 어렵고 위험한 처지를
겪어 본 후에라야 인간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랍니다.
허허 웃는 박참봉의 두눈에
회오와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흘러내렸습니다.
♤ 후덥지근한 장마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
첫댓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교훈적인 글입니다. 옷깃 여미어
다시 한번 읽어 봅니다.
어떨 때는 개 보다 못한 것이
인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개딸이 날뛴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