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오후 한 詩] 그린 빌라 -최유리
그린 빌라
ㅡ최유리
콧속에다가 빨간 물감을 짜고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어요
문을 열어 보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동생의 울음이 들렸어요
물에 젖은 이끼가 집으로 데려다주는 지도라고 들었는데
나는 벽에다가 머리 박는 일을 멈출 수 없었어요
학교에서 폐품으로 만든 작품을 가져오라고 해서 분리수거장에 갔어요
스티로폼 안에서 병아리 시체를 발견했어요
할머니는 방문에 차오르는 그림자가 저승사자라고 했어요
밥그릇을 비우던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어요
가위가 없어서 이빨로 테이프를 물어뜯었어요
우유 갑으로 만든 꽃상여가 거실을 막 통과했어요
허리춤에 빈 캔을 달고 나를 피해 다니는 유령을 보았어요
나를 닮은 것 같으면서도 귀를 막고 있는
■ 이 시는 참 끔찍하다. 그래서 잔혹동화를 읽는 듯하다. 그러나 어쩌면 앞의 문장은 잘못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일부러 모질고 혹독하게 꾸며 쓴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린 빌라" 어딘가에서 이런 참담한 일들이 있을 것만 같아서다. 왜 아니겠는가. 당장 '송파 세 모녀 사건'만 떠올려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잔혹동화의 진정한 잔인함은 '동화'라는 이름 아래 몇몇 가지 교훈들을 곁들여 우리 세계의 참아서는 안 될 비참함을 즐길 거리로 뒤바꾼 데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를 닮은 것 같으면서도 귀를 막고 있는" "유령"은 잔혹동화를 읽으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탄성을 지르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이지 않을까. 채상우 시인.